극악서생 2부 – 16-3화 : 부활의 와룡전(臥龍殿).(3)
“…그리하여… 뒤늦게 곡주님의 족적을 발견한 못나고 못난 저희들은…….”
대교의 얘기가 내 사망 현장까지 다가갈수록 대교의 음성은 차츰 뭔가 뜨거운 열기로 휩싸이고 있었다. 난 대교의 심정과는 그 방향이 틀린 열기로 점점 견디기 가 어려워져 갔다. 결국 대교가 처참한 모습의 자기 주인을 목격하던 순간을 말하다가 필름이 끊기듯 툭 고개와 눈물을 떨구었을 때, 나는 몽몽의 통역을 중지시킨 다음… 절뚝거리면서도 빠르게 구덩이를 향해 달렸다. 미친 듯이 얼음 물 속으로 몸을 던진 나는 그 차가운 물 속에서 발악(?)했다.
“으아아~! 내가 미쳤지! 그깟 자존심때문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야 진유준! 임마! 네가 이제까지 살면서…! 저런 킹카~ 니 능력으로 꼬셔 본적 있냐? 응? 대체 뭔 지랄이냐고~! 뭘 믿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거냐고오~! 으아~ 썅!”
한동안 그렇게 피 토하는 듯 자학하던 나는 끝내 두 팔을 허공에 벌려 뻗으며 울부짖었다.
“나는, 미쳤-어~어어어어어~~~!”
내가 그러고 있자 황급히 달려 온 대교가 역시 물 속으로 따라 들어왔고, 과거의 어떤 순간처럼 날 안고 물 밖으로 인도하는… 그런 걸 조금은 기대했는데… 우이쒸~! 대교는 멀찌감치 떨어진 본래의 위치에서 내가 물 속에 뛰어들기 전과 똑같은 자세로 이쪽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있었다. 난… 중 고등학교, 아니 유치원쯤부터 내내 왕따 당한 아이 수준의 서글픈 심정이 되어 한 동안 멍하니 얼음 물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추웠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매우, 엄청~ 추웠다. 그리고… 결국 내 발로 간신히 물 속에서 기어 나왔을 때는 약간… 아니 솔직히 무지하게 빡 돌아 있었다.
그래… 좋다 이거야. 흔한 말로 골키퍼 있다고 골 못 넣겠냐! 더구나 난 현재 그 골키퍼의 형님이자 전에는 골키퍼 본인이기도 했던… 매우 복잡하지만 하여간 유리한 경력의 공격수가 아닌가. 까짓 거 한 번 해보자, 이거야! 그래… 싸나이 진유준! 힘내자! 대-한민국! 짜작! 짝! 짝! 짝!
에…? 뭐, 뭐야…? 내가 방금 왜 갑자기 낯선 박자의 박수를 친 거지? 그리고 대-한민국!이란 역시 낯선 어감의 구호는 대체… 음… 자주 가 보지도 못했던 축구장에서 내가 그런 구호와 함께 박수를 친 적이 있었던가…? 흐음…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뭐 아무렴 어떻겠나. 자, 다시 파이팅! 진유준! 아뵤~!(?)
내가 혼자 생쇼를 하며 슬금슬금 다가갔을 때에야 대교는 비로소 애써 감정을 추스리는 기색으로 몸을 일으켰다.
“…흑! 아직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닌데 제가 그만… 면목이… 없습니다.”
“크흠…! 음… 너에 관한 건 아우에게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런 건 눈물과 함께 흘려 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
조금(?) 속보이는 위로를 하는 내게 대교는 정말 같이 울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서글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천년, 만년을 울어도 씻겨 나갈 존재가 아니지요. 그 분은……”
아, 글쎄~ 그게 나라니까? 으… 그런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걸 참느라 괴이한 표정이 된 내게 대교는 동병상련의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생전 곡주께선 항상 진대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격동하시는 모습을 보니 두 분의 우애가 얼마나 각별했는지를 알겠습니다.”
“그러…니?”
좀 전의 내 행동, 특히 한국말로 울부짖은 소리들을 대교는 대충 아래와 같이 받아들였나 보다.
“으아아~ 내 아우가 배신자에게 살해당하다니~! 용서 못해~! 복수할 테다! 반드시 복수해 주겠다아~!”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진대가! 곡주께서는 후사를 모두 진대가께 맡기라 하셨습니다. 본녀는 모든 것을 걸고 따를 것이니…! 반드시 곡주의 피맺힌 원한을 풀어 주소서!”
정말 피맺힌 음성으로 부탁하며 대교는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게… 대교야, 나 일단 살아나고 보니까 그렇게 피맺힐 정도는… 음… 아니, 아닌가…? 대교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나 역시 대천마와 사갈새끼의 잔당들에게 유감이 많다. 더구나, 더구나…….
“…아우에게는 항시 흑주…라는 그림자가 따랐었지. 그…는 어찌 되었지?”
“유감스럽게도, 저희는 흑주님의 생사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허나… 곡주님께서 그리 되신 것으로 보아, 필시 흑주님도…….”
괜히 물어 봤군. 대교나 다른 이들은 당시에 반대편 산 아래에 잡혀 있어서 나보다도 상황을 모를텐데 말이다. 어쨌거나 흑주… 나는 그녀의 죽음을 아직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처럼 별 볼일 없는 놈도 덥썩(?)
살아나는 판국에 흑주 정도의 인물이 그렇게 어이없이 생을 마감했다고는…….
“…하긴, 그걸 믿고 안 믿고 와는 별개로… 용서하기 싫은 건, 싫은 거지.”
나는 그렇게 낮게 중얼거리며 대교로부터 등을 돌렸다.
“대교, 난 지금부터 최소 며칠간은 몸을 회복시켜야 한다. 그 사이 너도 내가 지시하는 것을 준비하도록 해.”
“존명!”
난 그대로 아까의 장소로 돌아가려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현재의 입장에서 한 번은 확인하고 넘어가야겠다 싶은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대교…! 내 아우는, 날 만남으로써 약해졌다. 날… 원망하지 않느냐?”
“…곡주께서 과거 얼마나 무서운 분이셨는지는 천하의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진대가의 영향으로… 사람들 앞에서도 진심으로 웃으셨고, 가끔은 보잘 것 없는 소녀 하나 때문에 눈물을 보이시는… 그런 분이 되셨습니다. 그런 곡주님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찌 비쳤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저를 비롯한 수하들이 두려움에 떨며 따르던 곡주님 보다도 진심으로 존경하며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그 분이… 더욱 강했다고 생각합니다. 모자란 것은… 곡주님의 그늘에 안주하여 방만했던 바로 저희들이었을 뿐…….”
언제나 내게는 모범 답안(?)을 제출해 주는 대교답다라고 할까…? 제기, 돌아서서 콱 깨물어(?) 주고 싶…으, 참자, 참아. 지금 내 처지에 감정대로 행동했다가는 역시 청명검의 이슬로 사라지지 싶어 나는 얌전히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제기……!
그로부터 오 일 후. 그 동안 내 몸에 박혀 있던 몽몽의 하위체가 관리(?)를 잘 해주었는지, 내 몸은 예상 이상으로 빠르게 회복되어 있었다. 물론 나 자신도 꽤나 열심히 재활 운동을 하기도 했는데, 처음 며칠은 사실 본래의 내 몸에 대한 느낌 자체를 즐겼다고 할까? 조금 전처럼 원판의 몸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경지의 놀라운 운동량, 팔굽혀펴기 이십 회를 마친 후에는 공연히 혼자 히죽~ 웃기도 했다. 뭐… 예전처럼 연속 백 회 이상의 수준까지 되돌아가려면 앞으로도 갈 길이 멀긴 했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복수의 칼을 뽑을 때가 된 것 같기는 한데… 문제는 내가 본래의 체력을 다 되찾아서 팔굽혀펴기 몇 회를 할 수 있게 되건, 십 킬로미터 구보 시간을 얼마나 단축시키건… 이 곳의 잘난 무공 고수들에게는 게임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나름대로 싸움 박질은 좀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는 사갈새끼의 잔당 중 가장 허접한 놈과 붙는 다 해도 깨질 것이 뻔했다.
“음… 나도 이건 손에 익숙한 편이긴 한데……”
나는 중얼거리며 패도광협의 정굴도를 들고 몇 번 붕붕~! 허공에 휘둘러보았다. 음… 느낌이 나쁘진 않지만, 역시 전문 칼잡이들을 상대로 ‘장작패기신공’이나 ‘잔가지치기도법’ 같은 거로는 조금(?) 무리가 있겠지? 물론, 내게는 아니 몽몽에게는 비화곡 성지에 보관되어 있는 호화찬란한 무공들의 데이터가 있다. 심지어 대천마조차 침을 흘리고 있는 생사금마도결까지도 말이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걸 어느 세월~에 익혀!”
나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정굴도를 내려놓았다. 지금부터 무공을 익히다가는 복수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늙어 죽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난 원래 칼잡이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어디까지나 군·바·리·다! 대한민국 특공대 진유준 하사!
나는 전에 여러 번에 걸쳐 이 와룡전에 가지고 와서 짱 박아 놓았던 내 개인 화기며 장비들을 모조리 내 방(부활한 곳) 한 가운데로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 시대로 넘어 올 때부터 가지고 왔던 더블 백과 그 안의 잡다한 물건들은 일단 젖혀 두고… 이 곳에서 제작하거나 장만한 것들을 대충 크게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수류탄 10개들이 박스 두 개. + 여분의 뇌관 등이 담긴 보조 박스 한 개.
- K-2 소총의 여벌 부품 및 조립 정비 용구 박스
- 팔자 고리 등의 레펠 장비 배낭.
- 부비 츄랩 설치 도구 박스.
- 군용 대검 등의 기타 장비 박스.
- ‘금단의 무기’ 제조 가능 재료 모음……
훗~! 꿈에서 소위 ‘타임(TIME) 씨’까지 만나서 대담(?)을 할 정도로, 그렇게 이 시대에 현대 무기 도입을 찝찝해 했으면서도… 그러면서도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넉넉히 만들어 놓을 걸 보면 나도 참…… 가만있자. 지난번에 원판의 몸으로 가지고 나갔던 화기들 중 사갈새끼를 영원히 잠재우는 전과를 올렸던 팔 장착형 소구경 권총. 이건 대교가 몽몽과 함께 챙겨 오긴 했는데, 당분간은 그다지 쓸 일이 없을 것 같고… 아까운 건 낙룡파에서 완전히 망가져 버린 K-2였다. 내가 혈도 잡히고 납치되는 와중에 사무라이 새끼 한 놈이 커다란 돌로 짓이겨서 그런 건데… 다른 더 중요한 원한들 때문에 잊고 있었는데 막상 생각나니 까 그 것도 꽤 열 받네? 군바리에게 총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거늘……!
“자아~ 그럼 우선 제 2호 독각포(毒角砲)부터 만들어 볼까!”
내가 고장을 대비해 여벌로 만들어 놓았던 부품들… 그건 새로 하나를 조립하고도 남았다. 고장이 잘 나는 부품이라 더 넉넉히 만든 몇 몇 개 빼고는 제 3호까지 만들 여력은 없었지만… 하여간 그 빌어먹을 사무라이 녀석! 너도 두고보자구. 얼굴 봐 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