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17-1화 : 신비인(神秘人)? 진유준.(1)
3-2. 신비인(神秘人)? 진유준.(1)
제 2호 독각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완벽하게 조립되었다. 그걸 정성 들여 닦으며 정비하고 있자니까, 몽몽이 슬며시 말을 걸어왔다.
[ …주인님! 다시 한 번 권고합니다. 현 상황에서 복수라는 극히 비생산적이며 위험한 행동을 선택하는 것은……. ]
“몽몽 선생! 이 건은 이미 어쩔 수 없다고 했잖아.”
[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인님은 본래 ‘생존’이라는 가장 중요한 목적을 위한 감정의 절제에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저로써는 현재의 행동을 임사체험의 충격에 의한 후유증의 일종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 사용자 등급의 재 조종이 있을 수 있으며, 이는 차후 저의 기능 이용에 불편이……. ]
사실… 몽몽은 내가 대교 앞에서 복수의 뜻을 밝힌 이후로 틈만 나면 복수심의 위험성에 대해 잔소리를 하곤 했다. 그래도 그 동안은 그 강도가 약한 편이었는데, 내가 본격적으로 무기를 챙기기 시작해서 그런가? 녀석도 이젠 ‘협박’까지 불사하기 시작하는군.
“후우~ 몽몽. 너 정말 내가 뭔가 이상해 졌다고 생각하니?”
[ 현재로써는 그렇습니다. ]
“몽몽, 넌 전에 내가 단신으로 사갈새끼를 추적했을 때에는 말리지 않았잖아.”
[ 그 당시 주인님은 격한 감정에 따라 행동하면서도 이성적으로 ‘승산의 계산’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주인님은 현재 사갈서생과의 트러블 당시에 비해 안정적인 심리상태이면서 구현 행동은 그 반대인 모순을 보이고 있습니다. ]
“흠… 내가 승산도 없이 감정만으로 이런다고 생각해?”
[ 이것은 승산 계산 이전의 문제입니다. 주인님은 지금 하지 않아도 될 싸움을 벌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대교님의 경우도, 오히려 설득하여 다른 길을 택하도록 유도하는 편이 옳다는 것을 주인님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
“그야 나도 대교는 가급적 이번 일에서 뺄 작정이야. 뭐… 여러 가지로 힘들겠지만, 어떻게 해서든 그렇게 유도해 봐야지.”
[ 그런데 왜 주인님 자신은……. ]
“왜냐하면…! 그 자들을 용서하기… 싫으니까. 알겠어?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
[ 이해할 수 없습니다.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
“훗~! 너 인간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했냐? 인간은, 특히 나는 본래 제멋대로야. 짜쉭~! 이제껏 봐 왔으면서 새삼스럽게…….”
[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님에 대한 데이터 분석 결과는 분명히……. ]
“이봐, 몽몽. 난 나 자신이 꽤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만 말야. 그래도 그게 ‘기계적으로 분석 가능’ 할 정도면 곤란하지이~! 뭐… 네가 그 놈의 사용자 등급을 어쩌든 그건 네 맘이니까, 배 째~!”
[ …정말요? ]
“이 쒸~ 이게 갈수록 요정 모드를 아무 때나 막 섞네? 너 정말 다중인격이냐?”
[ 실례지만… 주인님도 만만치 않아요. ]
으~ 이 자식, 이거 갈수록 다루기 어려워지네 그려.
[ …현재까지 축적된 주인님의 행동 패턴으로 보아, 더 이상의 충고는 무의미하다는 결론이 내려졌지만, 그래도… 저는 주인님이 자꾸 일탈 행동을 하는 것이 걱정이에요. 이러다가 정말 등급 상승이 무효화되기라도 하면……. ]
응…? 그러고 보니 그럴 경우, 요정 몽몽도 없어지게 되는 건가?
“네, 네~ 앞으론 알아모시겠습니다, 요정 몽몽 선생.”
장난스런 말로 마무리를 하긴 했지만, 만약 요정 몽몽이 사라진다면… 그건 좀 아쉬울 것 같다. 앞으론 정말 녀석에게 신경 좀 써야겠는 걸……?
난 인간의 복수심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놓고 몽몽과 노닥거리는 것이 끝나자마자, 잠시 빈총으로 여러 가지 사격 자세를 테스트해 보았다. 흐음~ 역시 원판 몸일 때와는 달리 전방으로 재빨리 달려나가(그것도 지그재그로) 엎드려 쏴 자세로 변환, 사격하는… 일명 ‘전진무의탁’을 하는데도 무리가 없군. 서서 쏴 자세에서도 조준선 정렬의 안정감으로 보아 그대로 저격 사격까지 가능하겠고… 좋아, 좋아. 이 정도면… 응? 웬 인기척?
“지, 진대가!”
“아, 미, 미안……!”
에구, 아무리 빈총이라도 사람에게 겨누는 법이 아닌데 이런 실수를… 그것도 내가 대교에게… 으~
“미안, 많이 놀랐지?”
“아, 아닙니다. 오히려 감히 진대가의 수련을 방해하였으니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아니… 나도 이제 잠시 쉬려고 하던 참이야. 들어와.”
여전히 짜증스러울 정도로 정중한 태도의 대교…! 그나저나, 웬일일까…? 지금까지는 지 방… 그러니까 얼음물이 있는 장소에서 기거하며 하루에 두 번 문안 인사하러 오는 것 빼고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던 녀석이 왜……
“진대가의 체력이 날로 회복되는 것이 현저하여 저도 기쁩니다. 하지만…….”
“대교야.”
“옛!”
“내가 그랬지, 난 아우에게 너에 대해 너무나 많은 얘기를 들어서… 그래서… 이렇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네가 무척 가깝게 느껴진다고 말야.”
“그러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너도 좀 날 편하게 대해 줄래? 너와 친했던 내 아우와 난 나이 차이도 거의 없다구.”
짐짓 장난기를 섞은 내 말에 대교는 조금 어색하게 웃었다.
“…진대가께서는 곡주님의 윗 어른이신데 제가 어찌 감히… 허나 원하신다면 가급적 격식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이씨~ 누가 들으면 내가 최소 삼십 년쯤은 연상의 존재인 줄 알겠다. 응…? 지금 막 대교가 표정을 자연스럽게 풀었다……?
“곡주께서도 저와 계실 때면 격식을 싫어하셨지요. 두 분은 어딘가 많이 닮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취~? 역시 우리 대교는 보는 눈이 있다니까?
“후훗~! 그래, 그러니까 앞으론 정말 편하게 지내자구, 우리!”
나는 요 며칠 사이에 처음으로 보는 대교의 본래 표정이 반가워서 무심결에 대교의 어깨에 손바닥을 턱 올렸다. 윽, 이건 아직 오버…인가?
“실은, 오늘은 앞으로의 계획을 상의 드리고 싶습니다만……!”
대교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포권하는 자세를 핑계로, 내 손바닥으로부터 자신의 어깨를 살짝 떼어 냈다. 그런 대교의 자연스럽고도 교묘한 동작은 누가 봐도 크게 어색하게 느끼지 못할 정도였지만, 이미 모처럼의 좋은 표정을 지워버린 대교 앞에서 난 전신에 눈보라가 휘감아 도는 것처럼 속으로 ‘추워… 너무 추워……’하고 중얼거려야 했다.
이 얄미운 계집애 같으니. 명색이 지 주인의 형님인데 어깨 한 번 만졌다고 그렇게 안면을 싹 바꾸다니… 예전처럼 머리라도 쓰다듬었으면 칼부림 나겠다. 아~ 멀고도 먼 내 연애 전선이여…….
“진대가……?”
“으, 응? 아… 그래. 에… 안 그래도 이제 슬슬 여기서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은 했었어.”
“벌써, 말입니까?”
“벌써…라니? 난 대교가 누구보다 기다리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야 저는… 허나, 진대가께서 아직 무공을 되찾지 못한 상태이니 마음만으로 대사를 진행할 수는 없겠기에……”
되찾긴 뭘 되찾냐. 무공에 관한 한, 난 본래 개털인 것을…….
“대교… 불행히도 나는 그렇게 단 기간에 무공을 되찾을 수는 없어. 그러나 내게는 지금 너도 알고 있는 독각포와 또 다른 신병기(神兵利器)들도 있어. 사실… 그동안은 천하의 비화곡주라도 저 것들을 완전히 사용하지는 못했을 거야. 본래 내 몸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니 말이야. 그리고 내가 서두르는 것은 무엇보다… 나는 지금 내 아우(나)의 원수들이 하루라도 더 편안히 지내는 것을 원치 않아!”
내가 진심으로 이를 악물자, 대교는 새삼스럽게 내 손안의 K-2와 다른 무기 박스들을 돌아보더니, 비로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도 진대가의 심정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흉수들의 목을 곡주님의 영전에 바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영전이라… 그러고 보니 만약 내가 내 영전 앞에 서게 되면, 그거 참 기분 묘하겠다. 내가 내 영전… 아니, 내가 원판 때의 내 영전에서 내 형님의 입장에서… 동생이었던 나를 대하는… 으… 빌어먹을…! 빨리 호칭을 정리하던가 해야지, 헷갈려서 생각도 맘대로 못하겠다.
“흠, 하여간! 빠르면 내일. 늦어도 삼일 안에 출발한다. 마음의 준비하고 있도록 해.”
“존명!”
명령을 받든 대교는 재빨리 지 방으로 복귀…할 줄 알았는데, 음… 얘가 왜 미적대며 눈치를 보고 있지?
“아, 저… 실은 전부터 진대가의 마배기신공(魔培奇神功)이 궁금했기에…….”
“응…? 뭐?”
“진대가께선 과거 그런 이름의 신공을 극성까지 연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곡주님 말씀으로는 천하무쌍의 신공이며 가히 파천(破天)의 위력을 지니고 있다 하셨는데…….”
으~ 생각해 보니 언젠가 대교와 자매들이 예의 ‘신비인(神秘人) 하사 진유준’의 무공에 대해서 물어보는 바람에 대충 생각나는 대로 지껄인 적이 있긴 한 것 같았다.
“…그, 그럴 리가, 아우가 그렇게 말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무공명은 그렇다 치고, 내가 거기에 천하무쌍이니 파천의 위력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덧붙였을 리가 없지 않은가.
“마배기신공이 비록 익히기는 어려우나, 그 오의(奧義)를 깨친 자는 능히 천하를 굽어볼 수 있다 하셨습니다.”
이, 이봐! 내가 언제 그런 말을……
“…아니, 저… 그게… 저기, 대교야. 설마 지금 그걸 내게 보여 달라는 건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진대가의 비전을 함부로 원하겠습니까.”
이 앙큼한 것아! 아닌데 왜 말을 꺼낸 거냐! …고 반문하고 싶긴 하지만… 으~ 일단 수습부터 하자.
“나도… 말이야. 내게 훌륭한 무공이 있으면 너에게 전수해 주고 싶어. 하지만 마배기신공은… 너에게 맞지 않을 거야. 그게, 자신과 잘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독(毒)이 되는 심법(心法)… 이거든.”
“아, 그런 것이었습니까.”
겉으로는 납득함과 동시에 뻔뻔한 부탁을 해서 죄송합니다… 식의 태도를 보이는 대교였지만, 기분탓일까…? 내게는 대교의 눈빛이 마치…….
“흥~! 당황하는 걸 보니, 좋은 무공이라 아까워서 그러지? 내참, 더러워서… 나의 곡주님이셨다면 내가 말하기도 전에 뭐든 다 주셨을 것을…….!”
이러는 거 같았다.
그럴 리가 없는 대교가 얌전히 자기 처소로 돌아간 다음에도 나는 공연히 찔려서 두 손의 머리를 감싸 쥔 채 고민 모드로 들어가야 했다.
당시 내가 말한 마배기신공이란, 나 진유준이 과거 무술이란 걸 접한 정도를 표현한 것으로… 꼬맹이 때 태권도 조금, 중학교 때 합기도 약간 집적, 고등학교 때 동생과 이소룡의 절권도 흉내의 대련 즐기기, 군대에서 특공무술 억지로 따라하기… 뭐 그런 식의… 말 그대로 잡다한 무술을 ‘맛배기’만 한 걸 조금(?) 과장해서 비유한 거였다.
으… 깜박했는데, 다른 애들은 물론이고 저 똘똘한 대교도 당시 주인이었던 내 말은 무조건 엄청나게 뻥튀기해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체 어떤 해석 과정을 거치면 맛배기가 천하무쌍이 되는 걸까…? 맛배기가 저 정도면 언젠가 삼태자의 보디가드 류혼(流魂)에게 썼던 천외천(天外天)이란 표현은 대체 어떤 수준…? 으으~ 모르겠다. 또, 또… 뭐가 있지? 내가 날 표현했던 말 중에 수습하기 어려운 말이… 우오오~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