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2-3화 : 극악(極惡) 마병기(魔兵器) 출현
[ 저의 기능 일부를 수행할 수 있는 하위체의 분리가 가능합니다. 하위체가 필요한 작업이 어떤 것입니까? ]
내가 몽몽의 기능을 일부 가진 분신, 몽몽 용어로 하위체를 만들 아이디어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에 성지의 비밀 통로 찾아 헤맬 무렵이었는데, 비밀 통로로 의심되는 지하수로 안을 조사할 일종의 무인 탐색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전보다도 단순한 기능만 있으면 될 것 같아. 그러니까… 저 K-2를 제어하여 누가 방아쇠를 당기지 않아도 자동으로 격발되도록 하는 거지.”
[ K-2 내부 공간에는 본체의 7.9%에 해당하는 하위체가 이착 가능합니다. 그런 단순한 기본 동작의 구현이라면 3.7%의 하위체로도 가능합니다만, 해당 기능이 동작할 환경을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
“환경? 음, 언제 쏘냐 이거지? 그 조건도 간단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K-2에 손을 댔을 때.”
[ …해당 동작 환경의 자체 처리가 가능한 하위체 구성은 불가능합니다. 주인님과 다른 인체 접촉과의 차이를 구분하는 정보의 처리를 위해서는 본체의 11.4%가 요구됩니다. ]
으잉~? 뭐야 이거. 전의 무인 탐색정도 10% 이하로 충분하다고 한 것 같았는데 이게 무슨…
아, 아니 확실히 듣고 보니 간단한 게 아니로군. 그때의 무인 탐사정 같은 경우는 수로 안의 상황 정보 수집이 끝이고 지금은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하는 정보의 분석 처리까지 하위체가 해야 하니까 확실히 기계적으로는 상위의 체계가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총구가 사람들을 향하지 않았을 때’라는 조건도 포함시켜야 하고 가능한 한 유탄의 위험성까지 계산을… 으… 내가 너무 간단히 생각했나 보다.
나는 뒹굴대던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며 톡톡톡 몽몽을 두드렸다.
“…몽몽. 좀 있다 다시 하자. …미령아! 차 한잔 다오.”
나는 이미 해가 떨어져 달이 임무 교대한 창가로 나가 미령이가 내온 차 한잔 때리며 다시 머리를 굴려 보았다.
근데… 제기, 몽몽도 안 된다면 정말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인지 몽몽의 하위체를 생각해내기 전보다 더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에구, 좀 쉬었다 하자.
“미령아.”
“예, 곡주님.”
“요즘 거의 너 혼자 내 시중 드느라 힘들지 않니?”
“천만에요. 헤에~ 오히려 곡주님을 독차지한다고 다들 부러워해서 신나는 걸요?”
진짜 신나하는 표정이다.
이 녀석은 자매들 중 권력에 대한 적응력이 가장 빨라서 조금 남용의 기미가 보여 걱정일 정도이니 오죽 할까 싶다.
지난겨울의 크리스마스 때였던가? 섬서이귀라는 자들이 연말이라고 간만에 비화곡에 왔다가 미령이에게 망신을 당하고 돌아갔다는 얘길 나중에 들은 일이 있었다.
섬서이귀는 섬서성 출신의 형제 마두인데 나이는 우리 지총관 또래의 중년, 사마외도로써 강호에 등장한 시기는 총관보다 빠르고 악명은 거의 상관마 당주 수준이라고 한다.
비화곡 짬밥이 적어서 당시 지위는 소속된 외당의 고시리 당주 밑이었지만 입곡을 권유한 우리 야후 장로와의 친분도 있고… 하여간 원래의 미령이라면 감히 말대꾸하기도 겁내야 마땅할 신분과 성깔을 지닌 마두들이다.
미령이는 그런 이들을 상대로 큰소리를 치며 자신들의 신분, 곡주 애인의 동생들… 아니 당시에는 네 자매가 모두 극악 전담 미소녀 군단으로 더 알려졌으려나?
하여간 당시에는 바뀐 지도 얼마 안 된 신분의 권력을 만끽했다고 한다.
그리고 소문으로는 섬서이귀가 어째서인지 같이 있던 소령이에게 더 질려서 본단에 머무는 내내 피해 다녔다고 하던가?
소령이는 미령이와 달라서 공식적인 서열에 충실하고 누구에게든 예의를 지키는 소녀이다.
그런 소령이에게 섬서이귀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서 소령이와 미령이 본인들에게 캐물어 듣고는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음… 그리고 보니 그 동화 속 요정을 가장한(?) 돌발 소녀가 보고 싶어지는군.
“소교하고 소령이가 돌아오려면 며칠 더 남았지?”
“언니들은… 본래 예정은 4일 남았습니다. 하지만 사부님은 거기서 이틀 정도 더 소요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 총관이 그렇게 말했다면 맞겠지 뭐.”
소교가 갑자기 익히고 싶은 무공이 생겼다고 흑주처럼 휴가를 신청하여 사부인 지총관 개인 연무실에 짱 박힌 건 열흘 전이었다.
두 명이 함께 펼치는 합공이라고 소령이도 데려갔는데 처음엔 남은 미령이가 삐져서 툴툴댔지만 한 명이 반드시 소령이처럼 쌍검을 써야 하는 조건이 붙은 데다 막상 혼자 남으니 금방 풀어져 헤헤거리고 지낸다.
요즘 대교도 좀 바쁘다 보니 터치할 언니들 없이 지내는 게 꽤 편한 눈치였다.
자리를 비운 녀석들 생각하다보면 당근 또 흑주가 떠오른다. 이 녀석은 사실 이미 열흘 전에 소교들과 교대라도 하듯이 돌아와 있지만 어째 상태가 맘에 안 든다.
“그리고… 어이, 흑주. 너 거기 있긴 하냐?”
몽몽에게 스캔시키면 금방 알 수 있겠고, 그런 확인을 하지 않아도 말없이 어디 딴 데 갈 놈이 아니라는 거 뻔히 알면서도 괜히 말을 걸어 본 거다.
어쨌거나… 흑주가 지금 또 내 말 씹고 있지만 흥미로운 표정으로 눈빛을 반짝이는 미령이 앞이기도 해서 난 그냥 쓴웃음과 함께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정도로 대화 시도를 그만두고 말았다.
흑주가 지 사부들에게서 대체 어떤 특훈을 받고 왔는지 몰라도 몽몽의 스캔 결과로는 전과 내공 수치 자체의 변화는 크지 않았는데 대신 처음에 만날 당시처럼 내 말에도 전혀 대꾸가 없고
그건 고사하고 복귀한 날 잠깐 모습을 드러냈을 뿐 지금까지 열흘 동안 잠깐 나와 보래도 미동도 않는 등 말도 안 듣는 놈으로 돌아온 상태이다.
아무래도 이 놈의 거두마군과 소살파파 두 노친네들이 새로운 무공 전수라던가 도움을 주기는커녕 잔뜩 군기만 잡아 보낸 것 같아 상당히 짜증이 났다.
기껏 가끔이라도 반응을 보이는 녀석이 되었다 싶었는데…
쳇, 다른 마두들이라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골탕을 먹여 줬을 텐데 내 나이의 몇 배나 되는 노친네들에게 그러기도 뭐하고…
“아무래도 저 녀석은 내가 또 강호로 나갈 때나 볼 수 있으려나보다. 미령아, 차나 한 잔 더 다오. 아, 흑주차(黑珠茶)로!”
“예, 곡주님.”
미령이에게는 나의 흑주에 대한 짝사랑(?)이 재미있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아무래도 흑주를 그냥 발밑의 그림자로만 생각하고 잊고 지내기가 싫었다. 언제고 내가 돌아가고 원판의 육체가 사용자를 읽은 상황(돌연사?)이 되었을 때, 대교와는 다른 의미로 가장 걱정되는 인물이 바로 흑주였다. 대교도 일편단심 무한충성소녀인 건 알지만 그래도 최소한 자기 인격이 있어서 어느 때고 독립시켜도 혼자 잘 살아갈 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대교보다 훨씬 긴 세월을 저 모양으로 살아 온 흑주는 영 불안했다. 비화곡주 독각와룡 진하운의 생명을 지키는 걸, 주인이신 곡주님을 목숨 걸고 지킨다는 개념의 경지를 넘어서… 아무런 조건도 없이 마치 숨 쉬고 살아가는 행위 자체처럼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불안한 것이다. 숨 쉬지 못하게 되었을 때 인간은 누구나 죽게 되니까 말이다.
제기, 역시 떠나기 전에 어떻게든 녀석의 세뇌를 조금이라도 풀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일단은 지금까지처럼 틈틈이라도 꾸준히 말을 걸면서 추가 방법을 모색해 봐야겠다. 녀석이 스스로 다른 대상에 관심을 가져 준다면 가장 좋을 텐데… 음, 어쨌든 흑주의 경우는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오늘은 잠시 접어 두자.
톡! 톡! 톡!
“자아, 몽몽! 다시 시작해 보자.”
기세 좋게 다시 하자고 말문을 열었지만, 그 사이에 하늘에서 앳다 먹어라 하고 묘안을 던져 줬을 리도 없어서 나는 곧바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주인님이 원하시는 상황을 다시 한 번 보다 구체적으로 알려 주시면…]
“됐네, 이 사람아. 조금만 더 기다려봐. 나도 머리란 게 있는 사람이야.”
뭐, 비록 최고 사양의 시스템에 어울리지 않는 DOS 정도 수준이 깔려 있는 꼴이긴 해도… 아니, 내 영혼이 DOS면 또 어떠냐. 겉멋 든 Windows 계열의 OS보다 에러도 적고 멀티 기능을 빼면 꽤 쓸만하지 않은가. 기능 면에서는 다소(?) 딸려도 안정성에는… 음, 이런 자기 위안할 때가 아니로군. 빨리 묘안을 짜내야 몽몽에게 조금이라도 면목이 설 것이 아닌가 말이다.
사실 몽몽에게 ‘이러 저러한 조건하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말해봐’라고 하는 게 더 빠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가뜩이나 몽몽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생각하는 것까지 모든 걸 기대는 건 싫어서 이러는 건데… 근데 참 막막하긴 하군. 차라리 K-2에 주술(呪術)을 걸어 귀신이나 요괴를 씌운다거나 하는 게 가능하면 좋겠다. 그럼 주술자인 내 마음대로 격발이든 뭐든 막 시킬 텐데 말이다.
“에효~ 근데 내가 뭔 주술을 알아야 말이지. 원판 녀석은 그 잘난 머리로 다 암기했는지 기록도 남겨 놓지 않았고, 원판에게 온갖 잡다한 주술을 가르쳤던 수라혈불(修羅血佛)이라는 인물은 벌써 몇 년째 행방불명 상태로 비화곡의 정보망에도 잡히지 않고 있다 한다. 게다가 수라혈불은 지금 나타나 봤자 내 입장에서는 주술을 배우기는 고사하고 피해 다녀야 할 인물이다.
진짜인지는 몰라도 소문에 의하면 수라혈불은 각종 주술에 통달해서 귀신이나 요괴를 잡는 건 물론이고 귀신들을 부하로 거느리고 있다고도 하는 이 시대의 퇴마승(退魔僧)이라고 한다. 확인된 바 없는 유비통신 중에는 그가 귀신들을… 응? 가만…? 통신…? 토옹신~?
“…야, 몽몽!”
[말씀하십시오, 주인님.]
“너 통신되지? 니 하위체하고… 아니, 잠깐만. 그래. 하위체에 본체의 몇 가지 명령을 받을 수 있는 수신 기능과 격발 같은 기본 작동 기능만 넣는다면 몇 프로나 필요하지?”
통신은 기본으로 된다. 지금 이 순간도 미래 여자 ‘진’이 이 시대에 돌아올 걸 대비해 몽몽은 항상 그녀와의 수신 채널을 열어 놓고 있는 것이다.
[말씀하신 기능의 구현은 5.3%로 충분합니다.]
“…새애끼, 너 재밌냐? 나 길들이는 거?”
[길들인다는 개념은 옳지 않습니다. 사용자 능력 개발 및 유지는 저의…]
“농담이야, 임마.”
결국 몽몽을 이용하는 거에서는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번엔 기분이 나쁘지 않군. 역시 고민하고 생각하는 정도는 자기가 해야 인간답지 암. 자아… 좀 먼 길을 돌아왔지만 목표로 갈 방법이 확실해졌으니 이제 밀어붙여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