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22-3화 : 연옥도의 무법자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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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2부 – 22-3화 : 연옥도의 무법자들.(3)


3-7. 연옥도의 무법자들.(3)

얼마 후, 나는 새삼 정신을 가다듬으며 내 전용 연
무장으로 향했다.
천우신의 돌발 발언 때문에 다소 흔들리기는 했지
만, 난 대한민국 모범 청년(간만이다, 이 표현)이자 모
범 칼잽이…는 좀 이상한가…? 하여간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입장에서 수련을 게을리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
다.
내 전용 연무장이란 연옥도 간판 바위를 중심으로
사방 오십 여 미터 정도의 공터였는데 공터의 3/2 정
도는 바다를 낀 모래사장이었고 나머지는 매끄러운 자
갈로 뒤덮여 있었다. 간판 바위 뒤의 절벽이라던가…
금마도결이 펼쳐진 흔적이 가장 많은 것으로 보아 패
도선배(앞으로는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역시 여기를
주로 연무장으로 썼던 것 같았다.

“흠~ 어제는 역시… 삼시전결(三矢電訣)에서 임룡무
희결(林龍舞喜訣)로의 연결이 가장 큰 문제였지?”

[ 그렇습니다. 삼시전결은 직선적인 쾌속에 몇 가지
변화까지 담은 수법으로 대표적인 양강(陽剛) 계열 공
격 법이나 임룡무희결은 무수한 변화 속에 허초의 방
어와 역공의 진초가 혼재 된 수법으로, 기술적인 연결
이라면 어제 주인님께서 시도했던 것처럼 마지막 초식
에서 왼발의 방위를 수정하고 방위각에 비례하여 발도
(發刀)의 각도를 변경하는 것만으로도 무리 없는 연결
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럴 경우 애초 도의 탄강기
(彈剛氣) 위력을 12% 내외로 줄여야 하며 그로 인한
삼시전결의 위력 감소로 이 시대 상위 10% 이내의 고
수에게는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여지가 현격히 감소
하며 그 만큼 임룡무희결의 효과적인 운용에도 손실
이……. ]

“어이~ 어이. 복습은 안 시켜 줘도 돼.”

나는 놔두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몽몽의 말을 일

단 끊었다. 사실 난 예전과 달리 지난 15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철저한 학습에 의해 무공에 관한 이론도 꽤
빠삭해 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역시 철저히 기존 이
론에 따르는 건 거부감이 앞섰다.

“뭐, 결국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알아.
하지만… 너 말야, 나도 고생께나 해서 알아 낸 건데…
너무 빡빡한 거 아냐, 몽몽 코치?”

내가 조금 장난기를 섞어 투정을 부리자 몽몽은 아
예 잠시 대꾸도 하지 않았다. 뭐… 무공 수련 할 때만
은 감정(녀석에게 그런 게 있다면)을 빼고 하자고 한
건 나였으니 불만은 없지만 서도…….

“몽몽, 결국 남은 공청석유까지 날름 한 다음에 어
찌어찌… 임독양맥을 타동 시키면 간단한 문제라는…
그걸 말하고 싶은 거라는 거 알아. 임독양맥이 통하고
나면 양기의 운용에서 음기의 운용으로 전환하는 게
빠르고, 더 나아가 동시에 운용하는 것까지 가능하니
애써 잔머리를 굴릴 것도 없겠지. 근데… 근데 말이

야.”

나는 정글도를 쥐고 있는 오른 손의 손바닥에 흡기
를 운용하며 손가락으로 손잡이를 살짝 튕겼다. 내 손
을 중심으로 정글도가 강풍을 받은 풍차처럼, 혹은 고
속정의 프로펠러처럼 휘어옹~ 소리를 내며 돌았다.
나는 그 상태에서 대충 각도를 계산한 다음, 정글도
를 숲 쪽으로 던졌다. 무서운 기세로 회전하는 부메랑
이 되어 날아간 정글도는 목표했던 수 십 미터 떨어진
곳의 나무들의 가지 다섯 개를 정확한 순서로 잘라 냈
다. 그런 후 정글도는 전혀 기세가 죽지 않은 채 회전
하여 다시 내 쪽으로 날아 왔고, 난 그 무섭게 회전하
는 정글도의 손잡이를 정확히 잡아 챈 다음 말을 이었
다.

“그게… 난 아무래도 있을 것 같아. 뭔가… 뭔가 다
른 방법이 말야.”

[ 주인님은 분명 위기감지능력 못지 않게 무에 대한
감각이 탁월합니다. 어제 주인님은 저의 복잡한 연산
능력이 필요한 방위각 계산을 예의 ‘감’을 통한 단순

계산으로 만으로 비슷한 결과를 도출해 냈습니다. 또
한 방금 시전 하신 상승의 공격 법에 필요한, 기의 운
용에 있어서의 정교한 분배와 타이밍 계산… 아마 그
것도 스스로는 대·충·이라는 말로 의식하셨을 것입
니다만… 역시 훌륭한 결과를 냈습니다. ]

으윽…! 이 자식, 갈수록 날 너무 잘 이해해 버리는
것 같다.

“칭찬이라기에는… 웬지 가시가 도친 것 같군.”

[ …주인님도 인정하시죠? 최근 한 달 가량의 기간
동안은 무인으로서의 고속 성장이 주춤한 상태라는 것
을. ]

“그야 뭐… 누구나 그런 때가 있는 거라구. 더 높은
단계로 넘어 갈 때의 고비…라고 나 할까?”

[ 그 고비에 투자하고 있는 기간이 단지 ‘시간 낭
비’… 라고 한 다면 어떻습니까? ]

으… 이 자식, 이제 보니 오늘은 아주 작정하고 있었
구나.

[ 주인님의 성격상, 무공 구결 이해도와 운용 방식

에 있어서의 상이점은 이미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효
율적인 측면에서 가급적 저의 권고를 따라 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또한, 지금부터라도 삼십 육 개 도결로
이루어진 금마도결의 실질적인 응용에 있어서 제가 계
산을 끝낸 조합들을 보아주시기를 우선적으로 권고합
니다. ]

“하아~ 몽몽… 좀 봐 주라. 난 그래도… 뭔가 결정적
인 건 내 손으로 잡고 싶은 거야.”

[ 늘 그렇듯…! 권고는 이 정도에서 끝내겠습니다.
그러니… 분발해 주십시오. 저도 주인님께서 제 계산을
초월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

“훗~! 짜식…! 기어이 부담 팍팍 주는 구만. 어쨌든…
고맙다. 이해해 줘서.”

[ 아뇨! 절대~! 이해한 게 아니라구욧! ]

응…? 요정 몽몽…? 무공 수련 때는 처음 나오지, 아마?

[ 에효~ 뭐 이런 주인님이 다 있을꼬! 이미 모든 구결 각각의 운용 원리를 다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할 때는 자기 멋대로 지를 않나! 그래 놓고는 그냥 괜히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는 소리나 하질 않나! 이미 이론을 완벽하게 갖춘 분이 맨날, ‘그래도 정석은 싫다’는 소리나 하고, 또오~ ]

“으-! 야, 야! 너 뭐야? 이번엔 개기러 나온 거냐?”

[ 그럴리…가요. 하도 답답해서 잔소리부터 해 버렸네요. 뭐… 소용없겠죠. 기본형의 설득도 먹히질 않으니 제 주제에… 에효효~ 그럼 나온 김에 그냥 응원이 나 하고 갑지요. ]

내가 어이없어 하는 사이 요정 몽몽은 잠깐동안 요상한 동작의 응원 춤을 춰 보이더니, 마무리로 박수와 함께 대~한민국! …그렇게 외치고는 뾰루룽~! 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동작은 응원이었지만, 표정은 세상 다산 녀석처럼 침울한… 뭐랄까… 고집불통 사장 보필하다 지친 비서가 잠깐 이성을 잃은 모습을 본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짜식… 거, 진짜 미안해지게스리… 알았어, 몽몽… 나, 열심히 할께.”

나는 요정 몽몽의 일탈 행동에 약간 질려서 잠시 몸을 푸는 동작을 반복하기만 했다. 근데… 뭐지…? 웬지 상당히 억울한 느낌이 드네…? 다 나 좋자고 하는 일인데 왜 지 놈이 더 설치는… 음… 아닌가? 그건 역시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으음… 제기, 뭐지? 뭐가 억울한 거지…? 아, 생각났다!

“야, 임마 요정 몽몽! 너 잠깐 나와 봐!”

내가 씩씩대며 외치자, 요정 몽몽이 다시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가만 생각해 보니까… 야, 임마! 그 동안 나 잘 했잖아? 스스로 이론도 학습하고, 너와 진지한 토론을 거듭하면서 성실하게 연구를 거듭했으며, 말이 대충이지 너 내가 정글도를 이렇게 다룰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환장할 정도로 많은 연습을 많이 했냐, 응? 게다가 네 녀석의 ‘수면 학습’이라는 거 작동 시켜서 잠자는 중에도 끊임없이 무공을 연마해 왔는데… 근데 뭐야, 너 방금까지 내가 무슨 ‘건방진 천재’라도 되는 양 몰아 붙였지! 너어~ 다 알고 있는 녀석이 이래도 되는 거야? 최근에야 겨우 스스로 뭔가 해 보겠다고 이것저것 시도한 거 가지고 날 이렇게 매도해도 되는 거야? 응?”

쒸~ 말하다 보니까, 정말 스팀 받네?

[ 주인님께서는, 평소 스스로의 성향을 반골 기질이라고 하셨고… 저는 그런 성향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최근의 일을 강조했을 뿐이에요.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 드릴께요. ]

으… 이렇게 알아서 기어 버리면 계속 화를 내기가 좀… 치이…! 할 수 없지. 적당히 몇 마디하고 끝내 줘야겠다. 사실 녀석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고……

“뭐… 그렇다고는 해도, 조금 전의 넌 너무 오버였어 임마. 니가 아무리 완벽한 인공지능이라도 그렇지, 그런 시늉으로 주인의 마음을… 쳇! 너 임마, 혹시 나 모르는 사이에 또 뭔가 바뀐 거 아냐? 그래서 정말로 사람처럼 내게 기분 나빴던 건 아니냐구.”

[ 헤에~ 역시 우리 주인님. 무지 빨리 알아 차려 버렸네. ]

…뭐?

[ 그게… 실은 저도 그간 쌓인 게 많아서… 한 번쯤은 제 쪽에서 적극적으로 주인님을 통제해 보고 싶었거든요. ]

뭐… 시라고라~? 아니 그럼 이게 정말…….

[ 저는 저희 시대에서도 손꼽히는 고성능 로봇이라구요. 그런 제가 하급 로봇들처럼 늘 사용자 명령만 듣고… 그래서 스트레스가 조금… 뭐어~ 그래도 사용자에게 나쁜 방향으로의 유도는 있을 리가 없다는 건 아시잖아요. 용서… 해 주실 거죠……? ]

스트레스…? 로봇이…? 나는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듣고 있나, 잠시 해독 불능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게 몽몽은 조금 흥분된 표정으로 종알대기 시작했다.

[ 실은,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구요! 제가 시간 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 제작된 동급 로봇 중에서 ‘자존심’까지 형성된 인공지능은 없었어요. 이 일이 저희 시대에 알려지면 주인님께서는 틀림없이 유래 없는 우수 사용자로 칭송될 거예요. ]

“칭송…? 장송이 아니고? 별 이상한 놈 다 보겠다고 머리 속 좀 해부해 보자… 그러는 거 아냐?”

[ 아이 참, 그게 아닌데… 하아- 죄송해요. 적당한 때 잘 설명하려고 했는데, 주인님이 너무 빨리 알아채셔서……. ]

알아채긴 뭘 알아채냐, 임마. 난 그냥 해 본 소리였을 뿐이었는데 니가 괜히 찔리니까 제풀에 자백해 놓고……. 그보다… 자존심…이라고? 이렇게 황당하게 진화가 가능한 녀석에게 그 동안 자존심 하나 만들어 준 놈이 없었다고? 대체 어떤 녀석들이야, 미래 인간들은.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데, 네 변화에 따른 내 등급 상승은……?”

[ 음… 전보다 확장된 정보 제공과 응용 단계…? 단, 아직 최고 수준은 아니에요. ]

“그것뿐……?”

[ 죄송하지만… 그 것뿐! ]

“이제 너… 기분 나쁘면 파업도 하고, 데모도 하고… 그러겠다, 응?”

[ 설마… 주인님처럼 좋은 분께 제가 어떻게 그러겠어요. ]

좋은 분께 어떻게…? 그럼 내가 나쁜 분이면…? 내 참… 이건 ‘하겠다’는 선언이로군.

“몽몽의… 여러 가지 구현 형태… 아니 여러 ‘인격’ 사원(?) 여러분…! 노조 만들면 꼭 얘기해 주게. 사장인 나도 항상 대화의 창구를 열어 두겠네. 이 험한 세파를 헤치고 살아가려면 노사가 한 마음으로 뭉쳐야 하네. 암… 그렇고 말고.”

확실히 그동안 너무나 착했던 식민 로봇(?) 몽몽의 뜬금 없는 ‘독립선언’은 상당한 충격이기는 했다. 아아~ 인간 진유준… 비록 한때지만 천하 마도인들을 발 밑에 두고 수족처럼 부리며, 대교 자매들이라는 꽃밭에 둘러싸여 있던… 그런 시절도 있었는데… 그리고 그때는 몽몽도 너무나 착한 아이였는데… 이젠 이 놈 마저 배신을 때리고… 아~ 좋은 시절 다 가고… 이제 정녕 내게는 이 낡은 정글도 하나뿐이란 말인가? 으아~ 나~ 돌아~갈~래애애애애~ 나는 웬지… 시커먼 기차가 맹렬하게 달려오는 철길에 서서 외치면 어울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절규를 속으로 한 번 해 보았다. 그리고… 곧 피식 웃으며 감정을 털어 버렸다. 미래 녀석들… 아니, 콕 찝어서 그 웬수 미래 여자 ‘진’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몽몽을 만들고, 하필 내게 선물해 주고 떠났는지가 새삼 궁금해졌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봤자 소용이 없는 일에 공연히 정신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 주인님…? 역시… 불쾌하셨군요. ]

“아니… 농담 식이었지만 진심이야, 몽몽. 앞으론 지금보다 더… 동등한 관계로써 대화를 나눠 보자구. 뭐… 앞으로도 잘 부탁해, 몽몽.”

새삼스런 내 인사에 요정 몽몽은 갑자기 훌쩍 날아오르더니 슬며시 내 어깨쯤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자기가 무슨 진짜 요정이라고… 수줍은 얼굴로 다가와 내 뺨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 후후~ 저도 잘 부탁 드려요. 나의 주인님. ]

내참… 이 녀석, 이젠 이런 일에도 주인의 신경 조직을 조정하는 군. 정말로 인형처럼 작고 귀여운 입술이 내 뺨에 닿은 기분이 들게 하다니…..

잠시 후, 나는 다시 본격적으로 무공 수련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퍼엉~! 연무장의 모래와 자갈 조각들이 내 정글도에서 뿜어진 거칠고 난폭한 도기 때문에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솟아올랐다. 안개처럼 피어올랐던 그 파편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속에서 나는 조용하면서도 화려한 칼춤을 추었다. 한 호흡마다에 한 번의 변화가 보이고 두 번의 변화가 숨은… 춤 아닌 춤이었다.

[ 폭호결(暴虎訣)에 의한 파편을 모두 피하면서도 세 군데의 포인트에 트랩을 장치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

임룡무희결의 진의는… 겉으로는 일견 그냥 수세적인 방어법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방어와 함께 순간적으로 적이 기대거나 밟을 예정의 주변 지형 지물을 조금씩 건드려서 트랩을 만들어 내는 수법이다. 여러 명에게 기습당했을 때 특히 유용할 것 같아서 내가 최근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도결이었다.

“뭐… 확실히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조합은 폭호결과 임룡무희결인 것 같군. 근데… 몽몽. 난 왜 자꾸 다른 놈들에게 소개 시켜 주고 싶은 걸까? 심술궂은 중매쟁이처럼… 말이야.”

나는 그렇게 너스레를 떨고는 삼시전결 못지않게 임룡무희결과 궁합이 나쁜, 옥녀결(鈺女訣)을 펼치기 위한 보법을 천천히 밟아 보기 시작했다.

[ 쿡! 누가 주인님을 말릴 수 있겠어요. ]

몽몽… 너무 그러지 말라구.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각자 너무나 많이 변하고 성장한 존재들… 대교와 그 동생들… 그리고 이젠 너 몽몽까지… 너희들 모두 앞으로도 계속 더 아름답고 의미 있는 무언가가 되어 가겠지…? 후우~ 나 역시 너무 뒤쳐지고 싶지는 않다구. 거울도 없는데 내 얼굴을 내가 볼 수야 없겠지만, 현재의 내 표정은 어쩌면 고된 훈련을 마친 날 밤에도 거르는 일 없이 대대장 직영(?) 도서실을 찾아 들던… 그때와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사회 복귀를 앞두고 공부 좀 해보겠다고 하던 때와 지금을 비교하기는 좀 뭐하긴 하지만 말이다.

“몽몽… 또 간다.”

나는 훌쩍 몸을 날린 다음, 우선 간판 바위를 발판으로 삼아 내 몸을 화살처럼 쏘았다. 모래사장과 거의 수평으로 몇 십 미터를 활강(?)하는 내 신형의 괘적을 따라 하얗게 모래 안개가 일었다. 바다를 코앞에 두고 내려서기 직전에 상체를 반대로 비틀며 정글도를 휘둘러 안개 속에 몇 발의 도기탄(?)을 먹인 나는 바다 수면에 닿기 전에 다시 전신을 회전시키며 수면 위로 수신결(水神訣)의 해왕노호(海王怒號) 초식을 펼쳤다. 폭호결 때보다도 넓고 환상적인 물안개 속에서 나는 다시 춤을 추…려고 했는데… 음… 역시 뭔가 좀……. 나는 정글도 끝을 얕은 바다 물과 모래 속에 박아넣은 상태에서 그 정글도 손잡이 부분을 한 쪽 발로 딛고 선 채 고개를 갸웃했다. 흠… 해왕노호, 일명 ‘바다의 용이 빡 돌아서 하는 지랄’이라는 초식은 본래 물안개와 함께 그 속에 몇 줄기 진력이 담긴 물 총탄이랄까, 그런 걸 섞어 놓는 수법인데, 거기서 수탄을 빼면 진기 운용에도 여유가 생기고 해서 임룡무희결의 초식들을 대신 넣을 여지가 있을 것도 같았고… 이론적으로는 괜찮을 것 같았던 초식들이 막상 실제 연결하려니까 웬지… 뭔가 어색했다. 이게 아닌데…라는 느낌이 드는 거 억지로 실행해서 좋은 꼴 본 적 없고…. 후우~ 역시 숲 속 전문용에게 잠수까지 시키는 건 좀 무리였으려나? 쳇~! 용이 뭐이래? 용은 본래 육해공 만능일텐데 말야.

[ 이번엔 춤… 안 추시렵니까? ]

“기분이 나야 추지 임마. 흠… 근데 말야. 정말 해룡과 지룡… 그런 것들이 칼처럼 자기 구역을 지키며 따로 놀았을까?”

[ 현실상, 그 존재 자체가 증명되지 않았습니다만? ]

“그런가…? 흠… 여의치 않으니까, 내가 괜한 트집을 잡았나 보다.”

나는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정글도를 잡음과 동시에 정글도를 통해 도기를 방출하는 탄력으로 몸을 날려 다시 마른 모래사장으로 복귀했다.

“뭐, 옥녀와 지룡 사이에 해룡을 뚜쟁이로 넣는 건 실패했다 치고… 이제 지룡의 신부감으로 또 누가 좋을 꼬?”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점찍어 놓은 도결이 있었기 때문에 난 기도가 조금 안정되자마자 바로 다음 무공 생쇼를 펼쳐 보였다. 다시 우르릉 쾅, 요란 껄쩍찌근한 소음들이 이어지며 연옥도의 해변가 한 쪽의 자연 환경이 어지럽혀지기 시작했다.

“후우… 어때, 이번 건?”

[ 조합 자체는 무리가 없는 것 같지만, 두 가지 도결을 아예 따로 따로 시전하는 것보다 특별한 메리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

다시 쿠콰쾅, 파파팍- 푸우욱~(?)

“하아~ 후우, 후… 이번 건……?”

[ 역시 따로 시전하는 것보다 장점이 없을 듯 합니다. ]

“에이 쒸! 그럼 이건!”

또 우콰콰~ 파창, 삐다다다다~(?)

[ …조합 자체가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 초식을 그 흐름에 넣을 생각을……. ]

썅~ 카카칵~ 파츠측~ 꽝! 뿌룽~(?)

“헥, 헥~ 방금…은, 어땠어, 몽몽……?”

[ …주인님의 노력… 열정이랄까, 그건 인정하겠지만 역시 방금 펼쳐 보이신 건… 다소, 상당히… 얼토당토않습니다. ]

“헉~! 우이 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헥헥~! 기껏 뺑이치며 자그마치 네 개의 도결에서 뽑아 낸 엑기스로 만든 사연참신공(?)을… 후우~ 펼쳐 보였는데 감상이 고작 그거냐?”

[ 해석과 표현만 고상하게(?) 한다고 위력이 붙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전 주인님의 무공 수련에 희생되고 있는 연옥도의 자연 환경이 불쌍합니다. ]

“이런… 된장에 젠장을 말아먹을 놈 같으니라구!”

제기… 나는 가뜩이나 오기로 무리해서 기를 유통하느라 무리가 온데다 몽몽의 가혹한 정신 공격에 치명상을 입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잠시 운기조식을 하며 몸을 추수를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난 운기조식을 마치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몸은 그렇다 치고… 어째 냉정한 코치 모드의 몽몽보다 요정 모드의 몽몽이 살짝 섞인 게 더 끔찍한 타입의 코치인 것 같다. 아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했던 것 같은데……?

“…야, 너 혹시 ‘자존심’이 아니라 ‘싸가지 없음’이 추가 된 거 아냐? 아니면 혹시 또 다른 모드 개발했냐?”

[ 음… 현재 코드 명 ‘요정’ 다음으로 구성 중인 제 2형태 구현 및 모드는 거의 주인님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

허걱~! 그, 그럼 아까의 그 싸가지가 바로 나…? 이, 일찍이… 날 초사악말빨이라고 모함하던 친구 놈들이 있긴 했지만 모두 남모르게 응징하여 비밀을 지키고 있었건만… 으으~ 이게 그 유식한 말로 ‘인과응보’라는 건가?

[ 아까의 ‘베타 모드’가 불쾌하셨다면, 당분간 제 2 형태 구현을 유보할 수도 있습니다. ]

나는 이 연옥도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버릴지도 모를 만큼 깊고 깊은 한숨을 내쉬고 나서야 겨우 말을 이을 수 있었다.

“…그냥 영원히 유보해 주라. 아니, 아예 지워 줘! 제발! 부디! 플리즈~!”

[ 후후… 역시 제가 더 좋은 거죠? 실은… 저도 저 말고 다른 형태 구성은 싫다구요. ]

까불거리며 등장한 요정 몽몽이 이젠 천사처럼 보일 정도였다.

“몽몽… 언제 너 리얼모드로 한 번 나와 다오. 우리 이쁜 요정 몽몽이를 꼬옥 안아 주고 싶구나.”

[ 홍홍~ 생각해 보구요. ]

말이 씨가 된다더니… 아니, 혹시 내가 벌써부터 몽몽을 ‘다중인격 로봇’이라고 불렀던 건 역시 나도 모르고 뭔가 감 잡고 그랬던 걸까…? 어쨌거나 큰일이다. 지금 있는 몽몽들(?) 잘 구슬려서 또 하나의 내가 탄생하는 것만은 막아야… 응…? 설마… 요정 몽몽 녀석이 이걸 노리고 협박의 수단으로 맛배기 진유준(?)을 드러낸 것은 아닐까?

난 새삼스런 의심을 담아 요정 몽몽을 주시해 봤지만, 녀석은 그런 내 반응은 아랑곳없이 기분 좋은 호르릉~ 소리를 내며 내 주위를 날고 있었다. 꼬마 요정… 혹은 꼬마 악마…? 끄응~ 어느 쪽이던 역시 악마 쪽은 내가 모델일 것 같은… 제기, 역시 사람은 세상을 바르게 살아야 하나 보다.

오늘은 이래저래…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라도 더 진도가 나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나는 천천히 연옥도 간판 바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위 앞에 선 나는 언제나 수련의 시작과 끝에 하듯 연옥서생 사부가 있음…직한(?) 방향을 향해 경례를 붙였다.

“하사 진유준. 명일 훈련 종료를 보고합니다.”

후… 오늘 같아서는 앞으로도 좀처럼 진도가 나갈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늘 그랬듯, 이 바위 앞에서 패도광협이 새겨 놓은 글을 올려다보고 있자니까 웬지 다시 투지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생사금마도결이라는 이름 아래 포진한 총 36개의 도결들… 전성기 때의 패도광협은 자신의 생사금마도결 중 하나를 완벽하게 연성하는 것만으로도 능히 일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광오한 말로 당시의 대표적인 고수들을 자극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당시 종남산(終南山)에서 있었던 전국구 급(?) 비무대회를 삼시전결 하나만으로 제패하여 그 말을 증명했다고 했다. 대교도 목야평에서 한 번 펼친 적이 있었던 삼시전결이 강호상에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이유가 그거인데… 뭐, 그보다 패도광협은 정작 나중 은퇴를 선언했을 때는 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하던가?

“나는 평생에 걸쳐 생사금마도결 전부를 완벽하게 연성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생사금마도결을 통일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천하제일인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로 논란이 있을 법한 은퇴사인 것 같지 만… 암튼 그랬다고 한다. 뭐… 그 천재 선배가 은퇴할 때까지 못한 걸 나 따위가 해 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겠지만 서도… 그렇다고 더 이상 몽몽이라 는 특급 쪽집게 선생이 뽑아 주는 족보(?)만으로 성적을 올리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어쩌면 내 진짜 경쟁 상대… 최강의 라이벌은 나와 원판으로 이루어진 합체 로봇보다도 먼저 대교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대 선배 패도광협… 바로 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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