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23-1화 : 연옥도의 사망유희(死亡遊 ).(1)
3-8. 연옥도의 사망유희(死亡遊).(1)
성명 – 진유준.
무공 입문 – 524일 전.
현 수준 – 내공 현 시대 상위 1%. 독문 절기 습득력 50%. 실전 경험 699회. 종합력 평가 현 시대 상위 10%.
참고 사항 – 현 시대 상위 고수 기준은 등록된 고수들의 종합력 평가이나, 무인들의 존재 유무와 기량 변화의 추정이 어려우므로 최소 10%의 오차 범위가 존재함.
나는 몽몽이 제공하는 간단한 상황 정보를 슬쩍 확인해 보고는 짧게 한숨을 몰아내 보았다. 단숨에 천하제일인이 되려는 욕심을 가져 본 적도 없고… 현재 수준만 해도 엄청난 혜택 덕분에 얻은 비정상적인 위치였다. 강호 기업의 사장단 내지는 이사진에 낙하산 인사로 끼어 든 나지만… 그럼에도 내가 항상 목이 마르고 ‘2프로 부족(?)’을 느끼는 건… 역시 대천마라는 적과 패도광협이라는 라이벌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지금쯤은 원판의 공백을 메꾸고 마도제일인으로 등극해 대교와 날 찾고 있을 대천마 같은 경우, 조만간 직접 격돌해야 할 대상이므로 난 막연히 이 정도면 되었다고 안심하고 있을 처지가 못되는 것이다.
[ …십 분 후부터 배틀 모드로 돌입하겠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전 기본적인 대화를 뺀 기능 대기 모드로 들어갑니다. 주인님의 힘만으로 싸우는 것도 좋지만… 위험할 때는 부디 제 기능을 복원해 주십시오. ]
몽몽의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금 전 변함없이 연옥도 일주 구보를 끝낸 상태이고 어제와는 달리 운기조식은 삼십 분 정도로 간단하게 끝낸 참이었다. 그 후에 일찌감치 연무장에 도착한 나는 지금 삼시전결 중에서 중간급의 스피드와 파괴력을 가진 초식 몇 번 펼쳐 보는 것을 가벼운 준비운동으로 삼아 몸을 풀며 곧 다가올 혈전을 대비하는 중이었다.
“…금동아. 오늘은 여기서 놀면 안 돼. 천우신에게 돌아가 있어.”
내가 팔을 휘두르며 재촉하자 근처에서 마침 자기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던 금동이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끽끽대며 투정을 부렸다. 금동이는 그동안 나와 천우신을 보면서 스스로 감 잡은 것도 있을 테고, 몽몽에게 예의 수면 학습으로 계속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에 지금은 우리들 말을 어지간히 알아듣는다. 우리 쪽에서도 금동이의 의사 표시를 대충은 감 잡기 시작했기 때문에 사람 대 사람 정도의 대화는 불가능할지 몰라도… 최소한 함께 지내는 것에는 큰 불편이 없었다.
“짜쒹…! 오늘 따라 웬 투정이지? 어여 가보란 말이 시!”
[ 주인님. 기본 상황에서의 정확하지 않은 언어 구사는 금동에게 혼란을 줍니다. ]
“아, 실수…! 앞으로는 주의하지.”
일단 사과는 하고 봤지만 금동이는 이미 놀이를 포기했는지 자기 장난감인 십여 개의 진주를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이 연옥도에는 진주조개가 무지 많아서 처음엔 나나 천우신도 꽤나 놀랬었지만 지금은 둘 다 그냥 시큰둥~했다. 천우신은 본래 비화곡 못지 않은(혹은 그 이상) 대기업 회장이니 그렇고… 나는 사실 비화곡주에서 짤린 후에는 개털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역시… 너무 많으니까 이젠 보석같이 보이지도 않았다. 물론, 최고로 예쁘고 큰 진주 몇 개는 대교 자매들 주려고 따로 챙겨 놨지만 말이다.
“응…? 뭐야. 금동이 너, 왜 다시 돌아왔어?”
나는 간 줄 알고 등을 돌렸다가 뒤에서 다시 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다시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헌데… 뜬금없이 돌아온 금동이는 뭔가 이상해 보였다. 그 짧은 사이 웬지 눈에 총기가 없어졌다고 할까? 나는 금동이에게 다가가던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야, 임마. 너 왜 그래? 다쳤어?”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금동이 너머의 수풀이 파악-갈라지며 튀어오르는 회색의 인영(人影)! 순간적으로 반짝 빛을 반사한 검 끝이 소리도 없이 내 가슴을 향해 찔러왔다. 아차 하는 사이 이미 내 가슴 한 복판에 와 닿은 검 끝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흥! 백골단… 너희부터냐?”
느닷없이 등장하여 일 검을 내 가슴 한 복판에 적중시킨 회의(灰衣) 복면 괴한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어느 사이 자신의 검과 내 가슴 사이에 끼어 든 정글도의 옆면도 그랬지만, 자신이 언제 내 암기(?)에 당했는지 믿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내가 손가락으로 퉁긴 작은 진주에 혈도를 적중당해 마네킹처럼 움직일 수가 없게 된 백골단의 옆을 스치고 걸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너도 날 속이기 위한 저 가짜 말고… 진짜 금모신원 금동이를 상대로 던지고 맞추기 훈련을 하다 보면… 저절로 암기 고수가 될 수 있을 걸?”
여유 있게 폼을 잡기는 했는데, 문제가 좀 심각했다. 천하무적(?) 금동이는 그렇다 치고… 이렇게 되면 천우신도 걱정이었다. 천우신도 애초 보통의 고수는 아니었고 동천만년영삼을 복용한 탓에 공력도 엄청 진보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런 퇴로도 없는 섬에서 비화곡 고수들의 전면 공격을 당하게 되면…….
“몽몽, 천우신이 버틸 수 있는 추정 시간은……?”
[ 적의 병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천우신님의 능력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최소 세 시간은 생존해 있을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단, 대천마나 비슷한 급의 적이 상대일 경우는 논외입니다. ]
치이… 할 수 없지. 일단은 세 시간, 아니 두 시간에서 두 시간 반 정도를 한계 시간으로 잡고 행동할 수밖에…….
“너희들 말이야. 이젠 첫 번째처럼… 봐 줄 틈이 없어.”
나는 본격적으로 내 앞을 가로막고 나서는 백골단 병력들에게 그렇게 경고했다. 물론… 그런다고 안 올 놈이 아니지만…….
나는 잠깐 발걸음을 멈추었고, 그러자 사방 네 곳으로부터 거의 동시에 달려든 놈들이 검광을 번득였다. 이런 연계 공격은 보통 뒤나 옆을 맡은 놈이 가장 위험하기 때문에 나는 정면의 기세 좋은 놈을 무시한 채 앞으로 성큼 발을 내딛으며 몸과 팔을 회전시켜 나머지 방향으로 동시에 삼시전결을 펼쳤다. 카악! 하는 한 번의 소리와 함께 차가운 백색 섬광이 세 개…! 삼 면의 적들이 동시에 시체같은,에서 진짜 시체로 변해 거꾸러지고 있었다.
“너도 비켜!”
나는 정면에서 돌격해 왔다가 역시 내 진주 암기에 맞고 주춤거리고 있던 놈의 가슴을 단칼에 베어 버렸다. 단숨에 일진을 격파한 나는 계속 거침없이 우리의 거처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며 사방을 돌아보았다. 내 오감에 확인되는 백골단만 해도 사방의 나무 위나 바위 옆에 이십 사명…! 놈들은 서서히 포위망을 좁히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놈들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인 다음… 재빨리 몸을 돌려 냅다 튀었다. 뭐… 내가 처음의 네 명을 단숨에 쓰러트리고 계속 정면 돌파할 듯 폼을 잡은 건 이렇게 일단 튀기 위해서였다. 단숨에 수십 미터를 치고 나간 나는 포위망 중 가장 적은 두 명이 배치되어 있던 뒤쪽의 두 명 역시 삼시전결로 아작을 내버렸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뒤늦게 깨달은 놈들이 우르르 몰려 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선두 그룹의 숫자를 가늠해 본 후 다시 몇 십 미터 정도를 적당한 속도의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약 삼십 분 정도 후… 나는 처음 시작했던 장소 부근의 바위에 서서 이제 단 두 명이 남은 백골단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숲을 이리저리 달리는 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오는 놈들을 차근차근 베어 버린 탓에 백골단들은 숲 여기 저기에 골고루 피를 흘리며 늘어져 있었다. 남은 백골단 세 명은 시체 같은 낯빛이 더욱 창백해진 상태였지만, 과연 비화곡의 정예… 물러설 뜻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래 봤자 지금의 내 삼시전결에는 일격에 사라지고도 남을 놈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약 백 미터 정도 떨어진 언덕 위로 시선을 돌렸다. 이 숲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지금까지의 내 싸움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세명의 남자들… 그들의 면모를 나는 새삼 하나하나 확인 할 수 있었다. 백골단의 단주 마혼사조 한기, 마극파천대의 대주 뇌제 단목상, 그리고… 내 원수 대천마 사문학!
“치이… 여기서 갑자기 대천마까지… 제기, 이 건 좀…….”
나는 갑자기 하락하는 사기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고, 그 사이 대천마는 한기와 단목상에게 뭐라 명령을 내리는 것 같았다. 이제까지 내가 수십 명의 백골단을 해치우는 것을 내려다보기만 한 것은 내 역량을 확인해 보기 위한 것이었을 테고… 이제부터 또 얼마나 많은 병력들을 동원해 공격해 오려는지 모르겠지만 조금 전까지처럼 단순한 유인 작전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한기와 단목상 두 초고수의 연수합공… 그럴 경우도 상당히 껄끄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일단 두 사람은 아직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도 머리 수로 내 힘을 빼겠다…? 쳇…! 아무리 내가 정체 모호의 고수라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냐, 대천마 할배?
“이봐, 대천마!”
나는 내력을 담아 힘껏 소리를 쳤다.
“당신이 직접 내려와 보는 게 어때? 당신이 날 쓰러트릴 수만 있다면 생사금마도결을 넘겨주지! 어때?”
‘오냐 그러마. 약속은 꼭 지켜라.’ 이러며 대뜸 넘어 오는 걸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치이… 이렇게 반응이 없을 줄이야. 뭔가 더 강력한 유혹이나 약을 올릴 거리가 없을까……?
“넌… 영원히 저 분을 상대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갑자기 뒤쪽에서 들려 온… 여러 가지 의미로 섬뜩한 음성에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불과 십 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까지 느끼지 못했던 절정의 고수… 그리고 기습을 모르는 정직한 마인(魔人)… 과거의 사마제일검이 거기에 서 있었다.
“총관… 당신이……?”
“흥~! 곡주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또한 의형제를 맺은 정 또한 무시한 짐승… 네 놈의 목을 내 손으로 베는 날을 기다려 왔다.”
나는 평소와 달리 날렵한 무사복에 머리에는 검은 띠까지 질끈 묶은 모습으로 천천히 칼을 뽑아드는 총관 지천공을 바라보며 잠시 갈등했다. 그러나 역시 이 상황에서는 이 사람에게 내가 모함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일단,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건 말해 두고 싶소만.”
“문답무용!”
예상대로 구체적인 설득이고 나발이고 할 틈은 없었다. 나는 무심결에 평소의 리듬으로 한 호흡을 삼켰는데 그 호흡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이미 총관의 칼날이 벼락처럼 내리꽂히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정글도를 들어 방어했지만 쩡~!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정글도와 전신이 동시에 종처럼 울렸다.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 한 바위를 칼로 받아 낸 것처럼 묵직하고 강렬한 총관의 일검에 나는 새삼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이어지는 총관의 무서운 공격, 그 하나하나에 나는 소름이 쫙쫙 끼쳤다. 총관의 몸이 안개처럼 흐릿하게 좌우로 흔들린다 싶은 순간이면 어김없이 위, 아래 가릴 것 없이 실처럼 가는 빛줄기가 예리하게 허공을 갈라 왔다. 숨돌릴 틈도 없이 정글도를 휘두르며 간신히 그 섬광처럼 빠르고 독사의 이빨처럼 독기를 품은 검광을 막아내던 나는 한순간 뭔가 더 섬뜩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나는 본래 옆으로 짧게 퉁겨 내려던 총관의 검을 무리하게 힘을 주어 가며 거세게 옆으로 쳐냈다. 그와 동시에 반사적으로 상체를 비틀었지만 한 타임 늦고 말았다. 왼쪽 갈비뼈쯤을 찌르는 날카로운 충격 때문에 나는 황급하게 뒤쪽으로 몸을 날려야 했다.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정신없이 총관으로부터 멀어 진 끝에 간신히 신형을 바로 하고 서자 총관이 쯧~! 하고 혀를 찼다.
“그 와중에 섬광분소지(閃光分小指)를 막아냈단 말이지…? 과연 곡주님이 중히 본 인물답군.”
총관의 음성에는 뭔가 아쉬워하는 기색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섬광분소지… 그건 한때 천하에서 가장 빠른 탄지공(彈指功)으로 알려졌던 마검인(魔劍印)의 무공이며 지금은 물론 그 후계자인 총관의 독문절기였다. 본래 총관이 탄지공 류에 일가견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제기, 설마 조금 전처럼 격렬한 진기 소모가 필요 한 난투 중에도 그걸 날릴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다행히 본능적인 위기감에 따라 움직여 혈도의 직격은 피했기에 치명상은 피했지만, 역시 온전히 호신강기(護身强氣)를 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옆구리에 상당한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다.
“당신이야말로 과연 왕년의 사마제일검… 치이… 역시… 옛정을 따질 때가 아니군.”
나는 아까 수십 명의 백골단을 상대할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전율이 전신을 타고 흐르는 것을 음미하며 이를 악물었다. 대천마고 나발이고 지금 눈앞의 무서운 아저씨와 싸우는 일이 더 날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번엔 내가 먼저 가지!”
나는 외침과 동시에 전력으로 총관에게 달려가며 정글도에 기를 집중시켜 삼시전결을 준비했다. 쨍!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내 정글도를 쳐내던 총관의 안색이 일순 변했다. 두 번째 정글도가 이미 그의 목줄기를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총관은 재빨리 신형을 뒤로 물리며 그것까지 막아냈지만 세 번째 정글도는 기어이 그의 허벅지를 그었다.
“으웃~!”
고통보다는 당혹감이 담긴 신음성이었다. 백색 도광 세 개가 거의 동시에 번득이는 것… 그것만이 삼시전결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각각 전혀 다른 공간에 진짜 정글도 세 개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것, 그게 삼시전결의 최후 단계였다. 나는 아직 좀더 다양한 각도로 하기도 힘들고 연속으로 펼칠 수도 없지만…
“미안해 총관!”
나는 그렇게 외치며 아까 백골단에게 썼던 삼시전결의 중간 초식들을 쏟아 부었다. 처음과 달리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 총관은 어느 순간, 다시 섬광분소지를 날려왔다. 접근전 중에는 뻔히 올 걸 알면서도 피하기가 어려운 공격이었기에 나는 결국 우세한 상황을 포기하고 주춤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섬광분소지를 피하면서도 동시에 반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가 그가 그걸 쓰기 전에 쓰러트릴 수 없는 이상 승리를 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쳇! 미안하다는 거 최소!”
내가 불만 어린 소리를 툭 던지자 총관은 쓰게 웃으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 진천공이 설마 섬광분소지를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쓸 때가 있을 줄이야.”
“훗~! 어쨌거나 당신은 왕·년·의 사마제일검이지. 현역은 아니지 않소.”
“그래. 하지만… 아직 짐승 한 마리를 도살할 능력은 있지.”
총관은 변함없이 흉폭한 살기를 뿜고 있었지만, 나는 이 잠깐의 소강 상태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나만 묻겠소. 정말 내가 진하운을 해쳤다면… 웃!”
나는 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나는 머리 위쪽에서 맹렬하게 엄습하는 살기에 반응하여 반사적으로 허공에 정글도를 그었다. 내 정글도가 적의 병기와 부딪치며 불꽃을 내는 순간 나는 다급하게 옆으로 몸을 날려 적의 사정권으로부터 벗어났다.
“무슨 짓이냐! 단대주!”
총관이 야수처럼 포효했다. 기습을 당한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총관이 날 기습한 단목상에게 검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단목상은 자신을 가로막으려는 기세의 총관에게 비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었소. 지총관님. 천마 곡주님…의 명령이 오.”
“흥~! 누구라도 내 싸움에 끼어 들 수는 없어!”
“설마… 곡주님의 명령에 불복하겠다는 거요?”
“당신이야말로 설마, 천하의 비화곡주께서 일 대 일의 대결에 끼어 들라는… 그런 명령을 내렸다는 건 아니겠지?”
이거, 잘 하면 총관을 더 상대하지 않고도… 아…? 총관과 단목상의 갈등에 주목하고 있던 나는 어느 순간 등 뒤가 섬뜩해지는 것을 느끼고서야 나의 치명적인 실수를 깨달았다. 등 뒤로부터 내 몸을 찌른 칼이 거짓말처럼 내 가슴을 뚫고 눈앞에 솟아 있었다. 고통을 느끼기 전에… 기분 나쁜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끄아아아~!”
비로소 내 입에서 정말 도살당하는 짐승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도 나는 눈앞의 검을 왼손으로 움켜쥐고 오른손의 정글도를 손바닥 위로 회전시켜 등 뒤를 훑었다. 칼날에 실린 힘이 사라지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뒤를 돌아보니 등 뒤에서 날 찌른 놈… 백골단의 단주 한기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날 비웃고 있었다.
“끄으으~! 압!”
나는 이를 악물고 가슴의 칼끝을 정글도로 쳐서 단숨에 다시 등 뒤로 빠지게 했다.
“몽몽… 전 기능… 회복.”
나는 때늦은 명령을 내렸지만, 스스로 이미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상대하는 자들이 정파가 아니라는 것을 순간적으로 망각한 대가였다. 적의 비열함에 항의할 마음도 없었다. 방심한 것이 잘못이었고 방심한 놈이 병신이었다. 그래도… 나 혼자 갈 수는 없었다. 한기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순식간에 흩어져 가는 진기를 애써 끌어모으며 한기에게 향했다. 놈은 질린 듯한 표정으로 주춤 물러섰고, 그 순간 그의 몸은 순식간에 다섯 조각으로 갈라지며 주저앉았다. 백골단의 단주 정도 되는 고수가 미동도 하지 못하고 당할 정도의 쾌로 총 네 줄기의 전결… 나는 지금까지 중 가장 완벽한… 삼시전결이라는 이름을 능가하는 경지를… 마지막 순간에 겨우 터득한 것이다.
나는 다시 총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총관은 여러 가지로 복잡한 표정이 되어 말없이 서 있었고 단목상만이 회심의 표정을 지으며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 적의 공격에 심장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 힘으로는 복구가 불가능합니다. ]
알아, 안다구 몽몽… 잘난 무공 연마로… 내 몸의 상태 정도는 싫을 정도로…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구. 제기…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지금 내 앞에서 검을 치켜들기 시작한 저 놈까지 해치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는 애써 악으로 깡으로 이를 악물어 보았지만 이미 눈앞은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흐릿하게 느껴지는 적의 움직임에 맞추어 나는 진짜 최후의 일초를 날렸다. 퍼억~하는 괴이한 소리와 함께 나는 힘을 잃고 무너져 내렸다. 더 이상 고통은 없었고… 다시 암흑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