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25-1화 : 돗대의 가치.(1)

랜덤 이미지

극악서생 2부 – 25-1화 : 돗대의 가치.(1)


4-1. 돗대의 가치.(1)

천우신이 휘두른 검의 이슬로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내 팔팔 돗대의 원한…! 그로 인해 발동한 내 광기는… 사실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잘해야 몇 분에 불과한 시간이 지난 후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이성을 찾은 나는 내 돗대의 원수, 천우신을 향한 공격을 멈추고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나의 이 놀라운 인내력에 대한 요정몽의 평가는 이랬다.

[ 주인님! 미쳤어요? ]

천우신과 나 사이의 허공에 떠 있는 요정몽의 반응이 다소 섭하긴 했지만… 사실 나도 조금 전까지의 상황이 다소… 좀… 그러니까, 하여간 문제가 있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 유준…! 미안해. 일단… 진정 좀 해.”

혼비백산한 표정과 목소리이긴 했지만 과연 천이단의 짱답게 내 생사금마도결의 연속 공격을 모두 막고 피해 낸 천우신…! 제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웬지 더 약이 오르기도 하고…….

“피하십시오, 암천주!”

조금 전 내 일 검에 밀려나긴 했지만 다시 천우신과 내 사이로 뛰어드는 천노와 지노, 일명 천지 쌍노… 쯧…! 자기 주인의 친구라던 내가 느닷없이 미쳐서 그 난리를 쳤으니 꽤나 놀란 모양이다. 하긴… 천우신은 그렇다 치고, 이 노인네들이나 지금 날 포위하고 있는 천이단 무사들에게는 미안한 노릇이었다.

“모두 물러서. 물러서라! 적이 아니야! 내 친구다!”

조금씩 포위망을 좁혀 오던 천이단 무사들이 천우신의 고함소리에 머뭇거리고 있었다.

“모두 물러서라고 했다! 내 친구에게 칼을 겨누는 놈은 누구도 용서하지 않겠다!”

“하지만 암천주…….”

“두 분 장로께서도 물러서요! 이 건 저 친구와 나, 둘의 문제입니다.”

치이… 상황이 좀 그렇긴 하군. 천우신이 천지쌍노를 공적인 말투로 대하는 걸 보니 내가 사고를 치긴 친 모양이라는 느낌이 새삼 드는… 음… 들긴 하는데… 그래도 역시 돗대의 원한은… 제기! 몰라! 수습이 되든지 말든지……!

“이봐, 유준!”

천우신이 다시 날 불렀지만, 나는 팩~ 몸을 돌려 선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뒤쪽을 막고 있던 천이단 무사들 몇 명이 주춤대며 길을 텄다. 음… 이 친구들에게 가장 미안하군. 빡 돌은 상태에서도 함부로 살수를 쓸 나는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 세 명은 내 공격을 막다가 내상을 입은 듯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 으~ 몰라! 몰라! 다 천우신 탓이라구우~!

나는 마음속으로 조금 전 깽판 친 걸 모조리 천우신 탓으로 돌리며 선실로 돌아와 침상에 털썩 몸을 눕혔다. 급히 뒤를 따라 온 천우신이 조심스럽게 침상으로 다가왔다.

“저기… 이제 그만 화를 풀고… 경솔했던 날 용서해 주시게나, 친구.”

다시 사과를 거듭하는 천우신은 평소보다 더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아직 긴장을 풀지 못한 기색이 역력했다.

“됐어. 그만 나가 줘.”

내 냉냉한 대꾸에 천우신은 다시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극적였다.

“거참… 설마 세상에 그렇게 귀한 연초가 있을 줄은… 내가 너무 경솔했네, 친구.”

“…나가 달라고 했다.”

내가 다시 슬쩍 살기를 내비치자 천우신은 찔금하여 물러서더니 서둘러 선실로 나갔다. 그와 교대하기라도 하듯 다시 요정몽이 등장해 눈앞으로 날아왔다.

“요정몽… 내가 너무 심한 거 같으니?”

[ 글쎄요. 사정을 아는 저희로써는 주인님 심정도 이해는 가지만… 근데 그거 정말이에요? 돗대, 즉 마지막 한 가치의 담배는 자기 부모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 는 표현 말예요. ]

“훗~! 말이 그렇다는 거지 누가 부모님께… 아니, 기본적으로 우리 나라에서 자식에게 담배 얻어 피는 분이 어딨겠냐?”

[ 흐응~ 역시 그냥 표현의 한 기법일 뿐이었군요. 하지만… 조금 전 주인님이 보인 비정상적인 포악함으로 미루어… 아주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닌지도 모르겠네요. ]

요정몽은 몰랐던 나의 다른 면을 보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새삼 내 안색을 살폈다.

[ 일년이 넘게 우정과 동료 의식을 쌓아 온 사람에게 다짜고짜 삼시전결을 날리질 않나… 그걸 말리려고 달려온 천이단의 모든 식구들에게까지 연이어 생사금마도결을 펼치고… 에효~ 전 주인님이 정말 이상해지 기라도 한 줄 알았어요. ]

“흠, 음… 좀… 심하긴 했지. 인정해. 에… 그래도 누구 크게 다친 사람은 없잖아. 힘 조절… 했다구. 나름대로.”

[ 그야… 저도 그래서 주인님이 음, 완전히 돌아버린 건 아니라는 판단을 할 수 있었지요. 그렇다고는 해도 기호품에 불과한 담배 한 가치 때문에 차후 주인님께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는 ‘정보망’을 적으로 돌리는 행동을 하신 건 이해할 수가 없어요. ]

“야아~ 누가 천이단을 적으로 삼는데? 좀 아깐 그냥…….”

나는 뭔가 변명을 하고 싶어서 입을 열긴 했지만, 머뭇거리다가 끝내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으~ 하여간…! 나도 이 성질 머리를 좀 고쳐야 하는데… 그깟 담배 한 가치 때문에 빡 돌아서… 그깟… 으… 그깟이 아니잖아. 으으~ 내가 그 돗대를 일년 넘게 짱 박아 놓고 어떤 심정으로 참아왔는데… 으오오~ 또, 또 빡이…….

난 다시 뭔가 돌아 버리는 걸 바로 잡는데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천우신이 다시 선실로 돌아와 날 찾은 건… 다행히 내가 어지간히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성공한 후였다.

[ 주인님! 알죠? 진정하시고, 수습! 수습! ]

“이보게, 유준. 우리 잠시 얘기 좀 하세.”

“…해봐.”

쯧…! 요정몽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내 입에서는 쉽게 좋은 목소리가 나와 주지 않았다.

이봐, 천우신… 이 친구야. 화해를 하고 싶으면 뭔가 성의를 보여 달라구, 성의를!

“유준… 일단, 한 잔 하면서 얘기하세.”

“…그러지.”

얼마 후, 나는 다시 갑판으로 나와 그 사이 훌륭하게 차려진 술상 앞에서 천우신과 마주 앉았다. 어느 사이 날이 어둑어둑해진 것이… 술맛이 더 날 법한 분위기였다. 뭐, 결국 ‘술’이라는 강력한 유혹에 넘어가 냉큼 화해의 테이블로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순순히 항복하기는 좀 그래서, 나는 내 전통 독문절기인 급속단발변신마공을 시전하여 ‘아직 빡이 돌아있는 상태’를 연출하며 몇 잔의 술을 비웠다. 연옥부대(?) 제대하기 전까지 금동이가 운영하는 PX에서 지급되었던 원숭이 술에 비하면… 1년 만에 마시는 사제 천이단표 술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크어~ 좋다. 아니, 아니. 표정 관리. 표정 관리-!

“녀석~! 좀 천천히 마셔.”

천우신이 말린 것은 내가 아니라 금동이였다. 그 사이 아까 마신 술이 다 깬 금동이 녀석도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었는데, 이 자식이 우리보다 더 빨리 술을 푸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건, 아까는 정말 미안하게 되었네, 친구.”

내가 금동이 녀석에게 안주를 먹여 주며 조금 표정을 풀자 천우신은 눈치 빠르게 건배를 청해 왔고,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녀석과 잔을 부딪쳤다. 쯧…! 술기운이 돌기 시작해서 그런가…? 웬지 아까 빡 돌아서 깽판 친 사실이 민망해지면서 오히려 그 정도로 칼부림까지 한 것이 좀 미안해지기도 하고… 음… 그래도 돗대에 대한 아쉬움은 그렇게 쉽게…

응…? 천우신이 내미는 이건… 천지 쌍노가 특별히 구해 왔다는 질 좋은 연초…? 어디… 음… 후우~ 솔직히 맛은 군용 팔팔보다도 이 쪽이 나은 것 같기도… 음… 미안해, 내 돗대야. 뭐, 어쨌거나 결국 ‘내가 봐준다’라는 태도를 유지하면서 수습이 된 셈이다. 흐흐~ 하여간 나는 마음이 너무 넓어서(?) 탈이 라니까. 오~ 이 안주는 정말 맛있는 걸? 하긴, 이렇게 다양하고도 정상적인 재료로 조리된 음식을 먹어 본 것도 일년 만이니… 좋아, 좋아.

“천우신…! 그리고, 금동아! 너도 건배!”

나는 어느 사이 돗대의 원한을 잊고 일년만의 고급 술과 안주… 담배를 즐기기 시작했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너무나 마음이 넓고 뒤끝이 없는 호탕한 성품인 탓에… 음… 크흠… 하여간……!

얼마가 더 지나… 점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자, 슬며시 천노와 지노가 술자리에 끼어 들었다. 천우신은 그렇다 쳐도… 이 두 노인네에게는 정말 미안한 노릇이었다.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제가 아직 수양이 모자라 자신을 잘 다스리지 못했으니 두 분은 부디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최대한 정중한 표정과 태도를 보이기 위해 노력하며 사과를 하니 천노와 지노는 사람 좋게 껄껄 웃으며 사과를 받아들였고 겉으로는 아까의 내 광분 모드를 크게 마음에 두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잠깐의 오해에 의한 소란이 있었지만, 우린 그 이상으로 깊은 우애로 다져진 사이. 자아~ 또 한 잔 드세, 친구.”

“후후~ 그럴까 친구.”

천우신과 나는 다시 연이어 석 잔의 술을 건배한 후 머리 위에서 잔을 뒤집어 보이면서 웃었다. 여기까지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는데… 문득 천노와 지노가 입을 열었다.

“진대협…! 다시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죄송하지만, 아까의 그 연초가 대체 어떤 귀물인지 무척 궁금하군요.”

“어허~ 천노, 이 사람! 공연한 걸 물어서 진대협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말게. 그러다가… 또 진대협의 생사금마도결을 맛보게 되면… 이번엔 옷자락으로 끝나지 않을 걸세.”

“나야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몸. 그런 귀물의 진면목을 듣고 죽으면 억울하지 않겠지.”

“어허~ 듣기 전에 저 세상으로 갈지도 모른다니까.”

에…? 웃고 있는 얼굴 표정과 달리 대화 내용은 어째… 좀 꼬인 거… 같지……?

“천노! 지노! 내가 실수하여 친구의 귀물을 훼손하였는데, 자꾸 그 얘기를 꺼내면 내 입장이 뭐가 되나.”

천우신이 눈치 빠르게 끼어 들어 천지 쌍노를 나무랐다. 나는 일단 여전히 미안해하는 기색을 기본으로… 그러나 일단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천지쌍노는 천우신이 나서자 금세 입을 다물었고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만을 가득 띄우고 있었다. 그러나… 천우신이 잠깐 화장실 간다고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지노가 슬며시 물어왔다.

“…두 분은 일 년이 넘게 함께 지내셨는데… 그동안도 오늘처럼 살벌하게 다투신 적이 있습니까?”

“살벌하게…는 고사하고, 우린 친구가 된 후에는 특별히 다툰 적도 없소.”

내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자 지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흠… 겉으로는 여전히 특유의 둥글둥글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체 얼마나 귀한 물건이었기에 그렇게 깽판이었던 거냐!’라고 비꼬는… 그런 기색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흐음… 그런 분들이 연초 하나 때문에… 훗~! 정말이지, 세상에 다시 없이 귀한 연초였던 모양이군요.”

제기…! 역시 기분 탓이 아니었군. 나도 아까 천우신을 비롯해 모든 천인단들에게 칼부림을 한 건 분명 내가 너무 오버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말 미안하지만… 쓰~ 그래도 상대가 이렇게 나오니까 또 삐뚤어지고 싶잖아, 이거.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