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3-1화 : 시간(TIME)씨의 방문.(1)
- 시간(TIME) 씨의 방문. (1)
후욱~ 뿜어낸 담배 연기가 허공을 물들이다가 천천히 작은 창문으로 빨려들듯 기어나가고 있다.
“음… 아침부터 용변기에 앉아 담배를 꼬시르는 것만으로도 간밤의 심란한 꿈, 악몽이라고 하기는 좀 그래도 결코 편하지 않은 기억이 조금은 엷어지는 기분이다.”
내게 너무도 끔찍했던 총기 오발 사고가 났던 건 4일 전… 그로부터 하루도 편히 자 본 일이 없는 것 같았다. 너무나 천만다행히도 당시 내가 지레 상상한 것과는 달리 죽거나 병신 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작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 두 명, 부상 수준으로 상한 사람이 두 명이었다.
내가 그날 탄창에 넣어 놓은 총알 수는 총 9발, 세 발은 처음 위력 시범 사격용, 세 발은 장로들 손안에서 발사될 위협용. 나머지 세 발은 처음의 시범 사격이 혹시라도 빗나갈 경우를 대비한 예비탄이었다.
“에효오…! 사람들 앞에서 탄창 갈아 끼우는 거 보이기 싫어서 미리 예비탄까지 넣어 놓은 것부터가 실수였을까?”
내 K-2 아니라 어떤 총이라도 탄알 장전… 즉, 노리쇠가 전진하여 탄창의 탄알을 약실로 밀어 넣은 상태에서는 땅에 던져진다거나 하는 충격을 받으면 그대로 발사될 위험이 크다. 사전에 이성적으로 작전 짤 때는 장로들 중 누구라도 내 경고를 무시하고 총을 팽개칠 정도로 공포에 질리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해 놓고 정작 천마 대장로가 총열을 잡는 돌발 상황에서 그만 당황하여 오버 행동을 한 것이 내 결정적인 실수였다. 그리고 총이 우리 손을 벗어난 순간 몽몽이 재빨리 하위체에게 안전장치를 걸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 또한 오히려 악재로 작용했다.
만약 몽몽의 하위체가 제대로 안전장치를 걸었다면 오발은 없었을 것이고, 차라리 기동하지도 않았다면 첫 오발 시 나머지 총탄도 연발로 모두 허공에 발사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히도 안전장치는 애매하게 걸리다 말았고 결국 오히려 한 발씩 나누어 약간의 사이를 두고 오발이 계속 되었던 것이다. 나중 하위체를 회수한 몽몽도 이 상황의 명확한 규정이 어렵다고 하니, 한 마디로 재수가 없었다고 할까?
“아니… 첨부터 최악의 사태를 상정하여 그런 때는 하위체가 K-2의 안전장치를 움직이려는 소극적인 동작보다 아예 부품 사이에 끼어 들어 굳어 버린다거나 하는 동작을 하도록 셋팅 했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면 역시 내 잘못이라는 가책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예비탄 중 첫 발은 그렇게 다행히 아예 아무 것도 없는 허공으로 발사되었고 두 번째 탄은 좀더 땅 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발사되어 우선 내가 앉아 있던 의자를 박살낸 다음 테이블 모퉁이를 날리고 마지막으로 위에 쳐져있던 천막에 작은 구멍을 내는데 그치고 사라졌다. 그렇게 두 번째 총탄까지는 인명피해가 없었는데 마지막 한 발이 심한 사고는 다친 것이다.
거의 바닥에 누운 상태에서 발사된 세 번째 탄은 놀랍게도 그 때까지 홀로 당당히 서있던 천마 대장로의 발목을 스치고 계속 날아가 수십 미터 밖의 땅바닥에 엎드려있던 비연대 대원 중 한 명의 등에 매어진 검 집에 명중, 검 집을 부수며 방향을 틀은 후 다시 십여 미터 밖의 외당(外堂) 부당주(副堂主) 형의귀(泂意鬼) 마진풍의 왼쪽 귓볼을 날려버렸고 마지막으로 총탄은… 폭풍당 당주 상관마의 가슴에 박혀 버렸다.
상관마 당주… 언제든 사소한 일로도 사고 칠 것만 같은 난폭한 사내지만 미염당(美艶黨) 당주 ‘참절마녀(斬截魔女) 고리라’를 짝사랑하면서 말도 못 꺼내는 순정파의 면모도 지닌 사나이… 그의 호신강기가 그만큼 강했던 건지, 아니면 총탄이 검 집을 부서며 약해진 건지 하여간 다행히도 총탄은 그의 강인한 근육 사이에 멈추어있었다고 한다. 의화각에서 간단한 외과수술만으로 총탄을 제거한 그였지만 현재 그에게는 가슴의 상처가 문제가 아니다. 이번 일과 함께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그는 누가 보아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병문안 갔던 내가 힘이 쪽 빠질 정도로 그는 혼자 싱글싱글~ 거리느라 내가 온 줄도 모를 정도였다.
알고보니… 그가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나서 그에게 제일 먼저 달려와 상세를 살피던 사람이 다름 아닌 미염당의 고당주였던 것이다. 목격자의 말로는 그녀가 당황하여 눈물까지 흘리며 매달렸다고 하니 상관마가 저렇게 입이 찢어지기 직전인 것이 이해가 갔다.
하도 좋아해서 다치게 한 것에 대한 미안함도 느끼지 못할 정도인 상관마 당주를 제외하니까 가장 보기 민망하고 죄책감 들게 하는 건 외당 부당주 마진풍이었다. 마부당주는 본래도 그리 잘생긴 타입은 아니었는데 이젠 짝귀가 되어 버렸으니…
마부당주에게는 대교가 추천한 선물인, 그가 전부터 탐냈다는 명검하나를 선사했고 검 집이 박살날 때 등에 찰과상을 입었다는 비연대 대원에게도 적당한 검을 새로 보내 주었다. 달리 사과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그렇게 선물로 떼웠지만 그런 행위자체도 찜찜한데다 선물 받은 이들이 그 것도 곡주가 직접 하는 선물이라고 감격에 겨워하는 모습은 더욱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발목을 스치긴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천마 대장로는 오히려 자신의 잘 못이라며 스스로 폐관에 들어간 상태고…
결국엔 본래 계획했었던 최고의 효과를 보이며 K-2의 마병기 등극에 성공한 셈이긴 했다. 그날 이후 미령이 조차도 K-2가 밑에서 대기 중인 내 침상 근처로 오는 것을 꺼리는 눈치가 보일 정도이니 다른 이들의 반응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뭐… 심지어는 정작 나 자신도 다시 K-2를 사용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이 예기치 못했던 오발 사고는 내가 잘못된 길을 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기존의… 상당히 정리되었다고 생각하던 내부 갈등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어서 난 지난 4일 간을 꽤나 우울하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대교도 말을 걸기 어려워 할 만큼 인상을 구긴 채 술만 푸면서 며칠을 보내다가… 어젯밤은 드디어 한 껄끄러운 손님의 방문을 받았다.
“진유준!”
바로 내 귓가에 입을 대고 부르는 소리 같았다. 놀라 눈을 뜬 내 앞에는 끝도 없이 펼쳐진 빈 공간이 놓여져 있었다. 나는 웬지 모를 불안감을 품은 채 나를 부른 상대를 찾아 사방을 둘러보았다. 근원이 어딘지, 어떤 방향인지도 모를 밝음이 주변에 넘치고 있어서 나쁜 꿈을 꿀 때의 전형적인 어둠 속보다는 나았지만 역시 비정상적인 불쾌감이 느껴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빛의 공간 속에 한 남자가 서있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는 거기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처음부터 거기 서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양복이라는 느낌을 주는 복장을 한 것 같은데 그의 주변 공간이 묘하게 흐릿해서 판단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역시 불확실한 느낌의 얼굴이 입을 열었다.
“20세기의 대한민국 군인, 하사 진유준!”
지금은 군인이 아니라는 대꾸를 하고 싶었지만 참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넌 지금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그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를 알고 있는가?”
난 또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알고 있다고 생각해.”
“넌 너로 인해 일어날지도 모를 역사의 혼란을 경계한다고 했다. 아니… 그 전에 넌 자신이 아무리 원치 않았다고 해도 너 자신의 말과 행동 때문에 살해당한 자들에 대해 인간적인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고… 그 것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도 그런가?”
너무도 당연히 예상했던 질문이지만 난 쉽게 입을 열어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 시대로 온 이후 무수히 반복하여 자문을 거듭했던 문제이고 나름대로의 논리로 자답하며 자기합리화의 수단으로 삼아 왔지만… 역시 항상 다시 언급하고 싶지는 않은 주제의 얘기였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너는 너로 인해 다치고 살해당한 사람들을 기억하는가?”
“기억…해.”
“그런…가?”
반문하는 음성이 비웃음과 경멸에 젖어있다고 느끼며 나는 발끈했다. 난 차라리 욕은 참아도 비웃음과 경멸 같은 건 못 참는다.
“저기, 이봐, 시간… 타임씨!”
특별히 영어를 더 선호하는 건 아니지만 시자류 발음이 반복되는 것보다는 어감이 나은 것 같아 후자를 선택해 불러본 거였다. 저 정체 모를 남자를 대뜸 ‘시간(TIME)’이라는 관념적인 존재로 규정해 버리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하여간 일단 부르니 정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한 번 얘기해 보자구. 나도 할 말은 있다 이 거야.”
아아~ 발끈 돌면 배째라로 나가는 내 버릇이 또 나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