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3-2화 : 시간(TIME)씨의 방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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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2부 – 3-2화 : 시간(TIME)씨의 방문.(2)


  1. 시간(TIME)씨의 방문.(2)

나는 바로 자리에 다리를 꼬고 앉은 양반 자세로 팔에 턱을 괴며 일명 뻔뻔하게 뺀질대며 대꾸하기 모드로 들어갔었다.

“다시 한 번 물어 봐 보슈!”

“…너는 너로 인해 다치고 살해당한 사람들을 기억하는가?”

“당근 기억하지. 내가 바본감? 1년도 안 된 일들인데.”

“그렇다면… 이 시대에서 네가 하는 행동들이 기존의 네가 알고 있는 역사에 미칠 영향을 경계해야 한다는 마음… 그것은 기억하는가?”

“그, 그야……”

“너 참 뻔뻔하구나”라는 반응을 기대했는데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니까 조금 당황스러웠었다.

“그렇다면, 왜 굳이 20세기의 병기를 그렇게 애써가며 만들어 낸 거지?”

“뭐, 굳이 20세기의 병기인 건 내가 거기에 익숙하고 그 이상의 시대 무기는 만드는 거나 사용하기가 더 부담스럽… 아, 아니… 이건 주제에서 좀 벗어난 얘긴가…? 그러니까… …에이 쒸~ 알잖아. 나란 놈. 제기, 기분 X같더라구. 주변 사람들에게, 특히 계집애들에게 보호만 받아야 한다는 거, 그것도 그렇지만 그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도울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거… 사내자식으로써 정말 X같잖아. 안 그래?”

“단지 사내로써……?”

“…단지 나 마나. 일단 그렇수. 나, 그렇게 교육받고 자랐수다. 사내자식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심지어 뭐 먹을 때도 터프하게 먹어야 한다는 교육까지… 뭐, 대부분 결국 내 성격과 맞는 방침만을 끝까지 따르는 거겠지만.”

“사내로써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주변의 사람들까지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 그 결과, 혹은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사람들을 해친다 해도 옳다고 생각하는가?”

“…모르겠소.”

“모른다?”

“그래, 모르겠수다. 결국 끝까지 모를 거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옳고 그름을 떠나 나만의 기분을 정해 봤는데… 그건 내가 어떤 일을 했든 다시 한 번 그 상황이 되풀이되어도 같은 결정, 같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건 받아들인다는 거야. 그게 죄가 되어 누군가 날 심판했다고 나서더라도… 적어도 나 스스로는 날 욕할 수 없어.”

“너의 그 마음… ‘각오’는 한 여인의 존재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 아니… 그건… 제기, 솔직히 대교 걔… 그 아이가 위험해졌을 때 특히 그런 각오를 하게 된 건 인정하지만… …에이 쒸~ 어쨌든 모든 게 결국 내 선택이라니까? 댁도 날 욕하고 싶으면 욕하고 깨고 싶으면 깨버리슈. 근데 나, 끝까지 게기 긴 할거요.”

“…위험인물이로군.”

그때 비로소 나는 조금, 아니 뭔가 많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인물이라는 판정을 내리는 순간 어쩐지 타임씨는 웃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20세기의 병기 제작, 그 밖의 모든 행동에 최대한, 아니 최소한의 주의는 기울였는가?”

“응? 그야 뭐, 나름대로 하는 데까지 보안유지는 했소. 머리가 딸려서 못한 건 할 수 없고… 근데, 저기… 이제와서 이런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타임씨… 오늘 왜 온 거…요?”

역시 또 웃는다…? 문득 든 생각이란 그때까지 내가 혼자 흥분해서 오버한 거지 타임씨가 특별히 먼저 시비를 거는 말투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내가 너를 부른 것이 아니라, 네가 날 부른 거야.”

“응…? 내가 언제……”

“계속, 언제나.”

내가 저 타임씨를 부른 거라고? 언제나……?

“이제 듣고 싶은 질문은 모두 들었는가?”

듣고 싶은… 질문이었다고?

“아, 아직 뭔가 남은 듯… 아니 그게 아니라, 당신은 대체……”

“…너무 자주 날 찾지는 말게.”

너, ‘이성’이지?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망설여져서 머뭇거리는 사이 타임씨는 올 때처럼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웬지 재미있어하고 있다는 느낌만을 남긴 채.

그렇게 다소 허무하게 타임씨와의 만남은 끝났고 나는 아마도… 그 후로도 꽤 많고 다양한 꿈을 꾸었던 것 같다.

다만 아침에 깨어났을 때 내 머리 속에는 그 타임씨의 질문과 나의 대답만이 뚜렷하게 머리 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제기, 기억을 찬찬히 되짚어보니 역시 내가 혼자 오버한 꼴이었다. 예의 타임씨에게 받은 질문은 모두 그간 내가 고민하면서 스스로 던졌던 것들이었다.

그걸 외부인사(?)를 일부로 초빙해 다시 들으면서… 그렇게 내린 결론이 ‘배째라’…? 으~ 나란 놈은 대체……

결국 이번에도 완전하지도 못한 자기 합리화의 과정이었나? 완전한 자기 합리화가 되면 그건 그거대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만… 그보다 지금은 궁금한 것이 하나 더 생겼다.

지금까지 출현한 비정상적이고 애매 모호한 내 마음 속의 존재가 대충 세 개, 아니 세 명인가? 우선 ‘이성’ 군과 ‘본능’이. 이 둘은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아주 오래 전부터 내 스스로 이미지화하여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써먹은… 고의적으로 창조한 내 마음의 분신들이다.

군대 입대하는 시기를 전후로 암 생각 없이 사는 동안 한참 잊고 있다가 이 세계로 넘어 온 이후 다시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예전과는 달리 내가 부르기도 전에 지들이 먼저 불쑥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아 진 것 같았다.

그래서 인가? 이젠 아예 엉뚱한 존재까지 등장한 것이다.

어제 밤의 타임씨는 대체 뭐였을까? ‘이성’이란 놈이 환골탈태 한 모습이거나, 혹은 그냥 변장하고 나타난 거라는 추측이 가장 유력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아무래도 너무나 낯선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나 같은 놈이 몇 번 불렀다고 해서 정말 시간이라는 그 거대하고(아무래도 그렇겠지?) 초월적인 존재가 폴리모프… 이거 맞나? 하여간 인간형으로 변신해 날 찾았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일 것이다.

흠, 꿈 한 번 꾼 거 가지고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는 건가? 그렇지만… 꿈치고는 너무나 생생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대화 내용 하나하나를 다음 날 잠에서 깬 이후까지 다 기억하는 꿈은 꿔 본 적이 없잖은가. 설마……

“몽몽… 혹시 말야. 그 동안 나 정신분열 같은… 그런 증세가 보이지는 않티?”

[ …… ]

헉~! 의미 있어 보이는 침묵……!

“어, 야. 솔직히 얘기해봐 임마.”

[ 인간이 사고가 발달하고 문명의 고도화를 이루면서 조금씩의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 늘었다는 것은 기본적인 정설입니다. 주인님의 경우, 스스로의 문제를 조절할 수 있는 단계이므로 정신분석학 이외의 기준으로는 ‘정상’입니다. ]

“…정신분석학으로는 ‘환자’고?”

[ 주인님이 우려하는 ‘환자’는 타인과의 대화와 관계 유지가 곤란할 정도의 자기 통제가 불가능한 단계를 의미합니다. 주인님의 자기 통제력은 ‘정상’입니다. 참고로, 주인님과 같은 단계의 사람들을 ‘대다수의 사람’이라고 인식하셔도 무방합니다. ]

“몽몽선생… 고마워. 근데 하나만 더 묻자. 어제 밤 혹시 내 몸에 뭔가 이상한… 그러니까 정체 불명의 에너지가 접근한 적 없니?”

[ 주인님의 의식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특정 에너지 흐름은 없었습니다. 다만, 뇌파 기록에는 0.83초의 시간 동안 평소보다 격렬한 반응이 있었습니다. 나쁜 영상의 발현… 악몽을 꾸셨습니까? ]

“아니… 뭐, 악몽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좀 특이한 꿈을 꾸긴 했어.”

[ 주인님의 최근 스트레스 지수가 매우 높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처치입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경우 문제의 본질을 당분간 회피하는 것도 한 방안입니다. ]

“뭔 소린 지는 알겠다만… 좀 불안해서 그래. 사실은… 나 며칠 전일도 벌써 많이 잊고… 죄책감 같은 감정이 이미 흐려져 가는 것 같거든. 그게 오히려 불안해. 내가… 원판 녀석과 같은 놈이 되가는 것 같아 서……”

그렇다. 실은 그게 문제의 본질이었다. 처음 이 세계로 왔을 때와는 달리 원판 극악에 대한 비정상적인 충성심이 가득한 이 곳의 분위기에 익숙해져 가는 자신을 느끼고 있기에 나는 더 애써 타임씨와의 대화 내용 같은 고민들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내 생존, 아니 그저 나의 생활을 위해 다른 사람의 고통을 당당히 무시할 수 있게 된 순간, 나는 내가 아니게 되며 극단적으로 정말 ‘극악서생’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

[ …주인님. 이 곳에 들어 온 지 56분 24초가 경과되었습니다. ]

응? 내가 해우소에 들어앉은 지 벌써 그렇게 되었다고? 우… 내 최고 기록이다. 난 변비에 걸린 적이 없어서 화장실에서 이렇게 오래 게긴 적은 없… 아니 그보다 내가 언제 그런 기록 재라고 한 일도 없건만 몽몽 녀석이 그걸 굳이 상기시켜 줄 이유는 없잖은가.

훗, 로봇 주제에 인간과 대화 중에 말 돌리기까지 하는 건가? 확실히 이 녀석 갈수록 인간 같은 느낌을 많이 주는 군 그래.

역시 이 녀석은 자체 진화하는 타입의 인공지능인 건가? 그렇다면 혹시 나중엔 “후후후~ 주인은 개뿔이, X라 무식한 것이 그 동안 감히 까불며 부려먹었지?

앞으론 내가 주인이다. 나 없이는 여기 생활도 X되는 거 알지? 알아서 기어 임마, 응?” 이렇게 나오는 거 아냐?

“…어떻게 하지 언니?”

뭘 어떻게 해, 그냥… 응? 뭐?

“일단 몇 번 더 불러 보고 대답이 없으시면 할 수 없겠구나.”

“그치만… 나 저번에 해우소 들어갔다가 무지 혼났단 말이야.”

문밖에서 들려오고 있는 건 미령이와 대교의 음성이었다.

그거야 나 볼일 보는데 들어오면 화를 낼 수밖에… 에구, 어쨌든 몽몽이 시간 알려 준 이유가 이거였나 보다.

“곡주님! 대교가 왔습니다. 죄송하지만 잠시……”

미령이 대신 대교가 문을 열고 들어오려는 기색이라 나는 서둘러 노크하며 곧 나간다고 소리치고는 초스피드로 마무리를 하고 나가야 했다.

나와서도 대교가 너무도 걱정스러운 태도로 바라보는 바람에 공연히 화끈거리는 얼굴로 손을 닦아야 했다.

“해우소에 드신 지 오래도록 소식이 없으셔서… 혹시 요즘 심화가 심하여 건강을 해치신 게 아닌가 소녀는 걱정이 되어서……”

날 걱정해 주는 소녀의 애잔한 표정과 절절한 음성이 평소라면 감동을 불러일으킬 만한 그림이었지만 결국 저 애절한 분위기로 ‘변비 걸렸냐’고 묻는 거라 쪽팔림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제기… 앞으론 해우소에 너무 오래 짱 박히는 건 삼가야겠다.

뭔가 기분 전환할 거리를 생각하려는 찾으려는 참에 마침 소교와 소령이가 수련을 마쳤다며 복귀했다.

“비연대 부대장 소교 이하 수석무사 소령 일인이 원대 복귀하였습니다.”

꽤나 군대틱한 신고가 있은 직후, 소교는 바로 절대 군대스럽지 않은 본래의 분위기로 돌변하여 특유의 애리~한 미소와 함께 방안에 흰 꽃잎을 날리며 서 있었다.

그 옆에 선 소령이도 아직 입을 열지 않은 채 풀잎에 앉아있는 작고 귀여운 투명 날개의 요정 모드를 유지하고 있었다.

예전대로 대교와 미령이도 함께 나란히 서니까 웬지 이제야 안정감이 느껴진다. 나야 무조건 대교가 짱이라고 생각하는 불출이지만 그래도 역시 얘들은 네 명이 함께 세트로 있어야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그래, 그간 수고했다. 수련은… 그 원앙검(鴛鴦劍)은 잘 익혔고?”

“예, 아직은 부족하여 겨우 검로(劍路)를 흉내 낼 정도라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사부는 이제 저희 둘이 익혔으니 다른 이름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원앙검은 이름이 노골적으로 주장하듯, 본래 100여 년 전의 어떤 사이좋은 부부 고수가 지들이 합공을 펼치기 좋게 만든 검법이라고 한다.

신고를 마친 후에는 창천각 앞에서 내가 참관하는 가운데 소교와 소령이의 시범이 있었는데 녀석들의 사부인 총관은 자기가 직접 대항군을 해주는 열의를 보였다.

근데… 저런 미소녀 둘이서 남녀 역할을 나누어 맡는다곤 무조건 괴이오묘한 상상부터 떠올리는 종자들도 간혹 있겠지만… 당근 나는 아니건만, 내 앞에 서 펼쳐진 소교와 소령이의 원앙검을 보면서 나는 어찌 된 것이 강하겠다던가 아주 효율적인 합공이라던가 하는 생각보다는 아름답고 어딘가 에로틱한 검무(劍舞)라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 2인의 교차 공격 포인트와 검로의 다채로움, 보법의 조화로운 운용으로 보아 각자의 내공 수위가 10%, 13% 보강될 경우 이 시대 1류 고수, 현 소속 단체의 당주급 인물들의 제압도 가능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

몽몽의 분석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왜 저런가 싶어서 시범이 끝난 후 총관에게 슬쩍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원앙검의 원작자인 부부는 말할 수 없이 뜨거운 애정으로 유명했던 마도의(하필!) 고수들인데 마도인답게 지글의 애정표현에 있어서 남들 시선은 거의 신경 안 쓰는 성품들이었단다.

총관도 저 원앙검이 두 남녀가 함께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민망한 자세를 취하도록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고 좀 손을 본다고 보았다는 데, 보기엔 좀 그래도 무공의 이치에 딱 맞게 구성되어 있어서 많이는 못 고쳤다고 한다.

“흠, 흠… 잘 했어. 아주 멋져~!”

애써 익히고 와서 시범까지 보이느라 땀을 흘리고 선 두 소녀에게 하필 그런 거 익혔냐고 타박할 수도 없어서 일단 박수까지 쳐주며 칭찬을 해주었지만 속으로는 영 찜찜했다.

거참~! 그때 총 만드느라 바쁘지 않았더라면 확인하고 미리 못하게 했을 텐데… 소교 녀석 업그레이드로 하필이면 저런 무공을 골랐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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