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32-2화 : 말짱 도로아미타불(?).(2)
4-7. 말짱 도로아미타불(?).(2)
“…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 엄마 한숨은 잠자고~ 아빠 주름살 펴져라~ 라…라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다실 때 괴~에로움 다 잊으시고오~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음,음- 음음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젠장~ 유준~ 아안자서~ 환장 기이도 드으릴 때~ 대-교 잘도 잔다~ 아~ 대애교 잘-도 잔다…”
“고, 곡주님…?”
“에… 병아리는 병아린데… 개나리는 씨불… 어둠에 묻혀… 뭐냐, 대체…”
난 계속 한국말로 랩(?)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교가 알아들을 리도 없건만, 그래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은 느껴지나 보다.
“뭣들 하느냐! 괴의(怪醫)는 어째서 오지 않는 거냐!”
“사람을 보냈으니 곧 도착할 것입니다.”
“서둘러라! 곡주님 상태가 좋지 못하다!”
그래 나 맛 갔다. 하지만 다른 어떤 의사보다… 지금 내게는 정·신·과· 전문의가 필요하다구.
“아가씨는?”
“아가씨께서도 급히 오고 계십니다.”
아가씨…? 대교가 아가씨라고 한다면… 하연인가? 진 하연… 내 이쁜 쌍둥이 동생… 내… 제기…
“곡주님…!”
나는 다시 한 번 날 부르는 대교에게를 쓸쩍 올려다 보며 비로소 중국어로 입을 열었다.
“…왜.”
“…”
너무… 썰렁했나? ‘죽음에서 복귀한 연인’씩이나 되는 작자의 첫마디가 ‘왜?’ 후… 그렇지만 난 지금 그런 거까지 배려할 여유가 없다. 으… 제기, 그 동안 중국어는 더 늘어서 웬만한 회화는 가능하겠지만 그래봐야… 아니, 그래도 이나마 다행인가…? 아니, 아니… 말만 하면 뭐해. 대체 앞으로 뭘 어떻게… 으우우~ 썅! 정신차리자! 정신차리자, 진유준!
“곡…주,님…”
내 ‘왜’ 어택에 잠시 얼어 붙어있던 대교가 마악 풀어지고 있는 참이었다. 밖이 좀 소란스러워진다 싶더니만, 진하연이 뛰어들어왔다. 흔한 말로 버선발로 달려 온 듯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약산성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당장에 내게 몸을 날려 매달려 오지 않을까 겁났다. 그러나 진하연은 내 예상이나 걱정과 달리 한 손을 문틀에 짚은 자세로 멈춰서 날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것도 아주 한참을…
“오,라,버,니…?”
이제야 부르는 군. 하연이에겐 뭐라고 첫 마디를 해 줘야 하나…? 사실… 얼마 전 벌써 만났었던 대교보다 진짜 오랜만인 쟤가 더 반갑기는 하다.
“하이~”
그러면서 한 손을 들어 흔들어 주었다. 물론 반응은 썰렁~!
“아… 크흠! 목이… 아직 좀… 하여간, 그 동안 잘 있었니?”
비교적 정상적인 인사를 건네자, 비로소 진하연이 움직였다. 녀석은 무슨 말인지 할 듯 말 듯 입을 달싹이며… 조금 불안해 보이는 걸음으로 내가 누운 침상으로 다가왔다.
“…오라버니. 약·산·성·에서 헤어진 후… 얼마만인가요…?”
“무슨… 소리냐? 약산성에서 헤어지다니? 거긴 다시 만난 곳이잖아?”
“아아아~!”
탄성(?)과 함께 진하연의 다소 애매했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가 싶더니만 녀석은 기어이 내게 달려들어 내 목을 와락 껴안고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의 엄한 질문은 아무래도 내가 진짜인가 확인하기 위함인 듯 싶었다.
“아아~ 돌아왔다~ 정말 돌아왔어! 오라버니! 아아- 오라버니! 오라버니! 오라버니! 오라버니!”
진하연은 계속해서 오라버니 소리를 반복하며 매달리다가는 내가 아파하는 기색을 보이고 나서야 겨우 조금 진정하는 것 같았다. 꽤나 어색하게 웃어보이는 내 얼굴을 진하연은 마치 소중한 보물을 대하듯 어루만졌고 입으로는 여전히 ‘오라버니’만을 찾고 있었다. 제기… 너무 이렇게 미친 듯(?) 반기니까 웬지 미안하고 죄책감마저 든다. 보조를 안 맞춰 주면 섭해 할 것 같아서 나도 녀석의 손을 맞잡아 주고 등을 토닥여 주긴 한다만… 이래도 되는 지 모르겠네. 난 진짜가 아니거늘…
“…아가씨. 괴의가 도착했습니다.”
대교가 옆에서 알려 왔을 때에야 진하연의 표정이 조금 수습되고 있었다. 대교는… 자기도 기쁘긴 기쁜데 진하연의 박력에 밀려 타이밍을 놓친 듯한 묘-한 표정이었다.
“‘괴의 양영기’…!”
진하연이 고개를 돌려 낮게 부르자, 마악 실내로 들어서던 검은 콧수염의 중년 사내가 주춤 멈추어 섰다.
“조금 만 더 늦었다면, 난 당신을 만 갈래로 찢어 낭아군(狼牙軍. 늑대 특수 부대)의 먹이로 던져 주었을 거야.”
진하연의 표독스런 말에 괴의 닥터 양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는 왕진이 늦은 이유에 대해 뭐라 변명하고 싶기는 한데 까닥 잘못 입을 열면 정말 X된다고 생각했는지 그저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며 침상으로 다가왔다. 그로부터 얼마간 괴의는 꼼꼼하게 내… 제기, 하여간 내 진맥을 짚어보고 전신을 체크했다.
“…경하드립니다. 육체의 소생은 거의 완벽하게 이루어진 듯 합니다.”
“거의……?”
“아, 예. 아직 맥이 불안정하고… 특히 심장의 움직임이 좋지 못합니다. 전신의 근육이 약화된 것은 오랜 기간 움직임이 없으셨으니 당연한 것이고… 하지만 전의 치명적인 부상은 거의 회복되었으니 이제 일 년 정도 요양을 하시면 본래의 건강을 되찾으실 수 있을 거라 봅니다.”
“내 몸은… 본래 좋지 못했어.”
“아… 그건 이번 일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듯 합니다. 장기간 묘랑(苗琅)의 십전대보경천부활술(十全待保競天復活術)이 실시되는 과정에서 예전보다 나은 상태가 되신 듯 합니다.”
원판의 몸이 담겨져 있던 저 물이 설마 우리 시대의 십전대보탕은 아니겠지? 뭔 십전대보탕이 이런 엽기적인… 아니, 아니 그보다…
“혹시, 무공을 익히는 것도… 가능한가?”
“…죄송합니다만, 그건 불가할 듯 합니다. 파괴된 단전만큼은 회복되지 않았기에…”
어차피 크게 기대한 건 아니었고 다시 첨부터 뺑이 치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도 역시 좀 아쉽군. 이 알량한 몸이 전보다 나아졌다고 해봐야 거기서 거기일 것 같고… 으… 제기, 어쩐다…? 어떻게 해야 이 빌어먹을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곡주님…? 어딘가 불편하십니까?”
“…아니, 당신은 이제 가봐.”
“아, 예. 소인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곧 몸을 보할 수 있는 탕재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괴의… 이름처럼 뭔가 특이한 내력이 있을 것 같은 닥터 양이었지만, 더 괴물들이 모인 자리라 그런지 조금 빛이 바랜 듯한 그는 곧 얌전히 물러났다. 다시 진하연과 대교가 내 머리맡으로 모여 앉았다.
“십전대보경천부활술……?”
“후후~ 그래요, 오라버니. 오래 된 어떤 의서에서 발견한 방법인데… 솔직히 이 정도로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만약 효과가 없었다면… 그랬다면…”
진하연은 웃으며 입을 열었지만 말끝에는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수고했다. 그리고… 고맙다.”
솔직히 별로 안 고마웠지만, 본심을 밝혔다간 늑대 밥 될 것 같아서 얌전히 그렇게 말해 주었다. 아아~ 대체 이게 뭔 팔자인 거냐. 본래의 몸으로 그 지랄을 떨며 무공까지 익혀 놨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말짱 도로아미타불이라니… 으으… 또 열 받는다.
“오라버니? 괘, 괜찮아요?”
“후우~ 난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
괜찮을 리가 있겠냐. 차라리 이대로 콱 디져 버리고 싶은 기분… 응…? 가만…? 죽…는다? 또 죽는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다시 본래의 몸으로 복귀…? 아니면 그냥 진짜 죽음? 어느 쪽일까? 모 아니면 도…? 해 볼까? 이번엔 스스로 한 번 죽어 봐……?
“오라버니… 아직 피곤하신 것 같아요. 잠시 주무시도록 하세요.”
“으,응… 그럴…까?”
잠이 올 리가 없었지만 일단 눈을 감았다. 몽몽도 없는 최악의 상황이어서 잠시 망가지고 있었지만, 지금 웬지 한 줄기 빛이 보인 것 같았다. 아직 정해진 수명이 다하지 않아서 그런지 어쩐지… 지금까지의 별의별 경험으로 봤을 때, 내 영혼은 꽤 질긴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지금 또 돌아가셔 주면 다시 원상복구 되는 거 아닐까? 벌써 두 번이나 이 짓거리 했는데 또 안 될 것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지?
순간, 온갖 자살 방법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혀 깨물기, 칼로 손목 긋기, 목매달기, 높은 장소에서 딱딱한 곳으로 혹은 물 속에 투신, 분신 자살, 쥐약(?) 먹기, 굶어 죽기, 술 처먹고 마차에 뛰어 들기, 접시 물에 코 박기… 제기… 마지막에 떠오른 건 뭐냐? 어찌 되었든, 막상 주욱 떠올려 보니 만만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얼결에 당하는 거라면 몰라도 내 스스로 위의 방법들을 시행한다는 건… 으… 제기. 정말 못 할 짓이다. 게다가 만약 덥썩 죽었는데 갈 곳이 없다면…? 내가 지금 이 꼴이 된 거 보면 신수성녀의 동굴 속에서 내 본래의 몸도 죽었거나 그에 준하는 사태에 빠졌다는 건데… 역시 일단은 그 쪽 상황을 먼저 알아낸 후에 뭐든 방법을 찾아보는 게 순서겠지?
그나저나… 내 팔자도 정말 기구하다. 이십 몇 년을 별다른 굴곡 없이 잘 살아왔는데… 어쩌자고 최근 몇 년 사이에 몰아서 별의별 꼴을 다 당하는 건지 모르겠다. 소설이나 영화 장르로 치자면 지금까지도 SF(몽몽과 시간여행), 무협, 환타지(이무기, 금동이 등의 존재.)의 짬뽕이었는데 거기다가 이젠 오컬트까지 들어가는 건가? 이러다가 설마 ‘유령 진유준의 모험’… 뭐 그딴 식으로 진행되는 건 아니겠지?
으… 모르겠다, 모르겠어. 하지만… 싸나이 진유준.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 해도 이대로 얌전히 상황에 끌려 갈 수만은 없다. 일단 애들 풀어서 본래의 내 몸과 몽몽을 회수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대교.”
“예, 옛 곡주님.”
내가 불쑥 눈을 뜨고 부르니 어째 조금 당황한 눈치이다. 진하연은 문가에서 수하들에게 뭔가 보고를 받고 있는 것 같고… 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내가 죽어… 음, 잠들어 있는 사이. 진유준 형님께서 강호에 나갔을 것이다. 그렇지?”
“예. 실은 그 분도 사갈서생의 잔당을 처리한 후에는 최근까지 행방불명 상태였습니다만, 최근에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그야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지. 게다가 현재 위치는 복대성 외곽 북서쪽 대략 8킬로미터 지점의 계곡…이라고 말해 줄 수가 없는 것이 갑갑하군.
“…그래.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형님의 행방을 알아봐 줘.”
“진유준님은 곧 지하무림을 접수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저와 합류하기로 했으니 그 때……”
“최대한 빨·리·라고 했다. 천이단을 써서 찾아.”
“…존명!”
응…? 왜 갑자기 옛날 모드지? 웬지 좀 삐친 것 같기도 하고… 음… 역시 내가 너무 딱딱하게 대했나? 하긴, 난 그렇다 치고 녀석에게는 오늘의 재회가 보통 감격스런 사건이 아닐텐데 정작 나란 놈은 시큰둥… 아니 아예 심통이라도 난 듯 자기를 무시하고 있는 형편이 아닌가.
“대교……!”
“예, 곡주님. 하명하십시오.”
삐친 거 맞군. 음… 어쩐다? 이제라도 달래 줘? 아니면… 아예 계속 썰렁하게 대해서 그간 진유준으로써 당한 설움을 갚아 줘……?
“곡주님.”
“왜.”
쯧~! 또 퉁명한 대꾸를 하고 말았다. 그 동안 나도 꽤 맺힌 게 많았었나보다. 에구, 싸나이 진유준… 내가 이렇게 속이 좁았었나?
“돌아오셔서… 정말 기쁩니다.”
윽, 얘 삐친 거 아니었나? 갑자기 왜 이렇게 이쁘게 웃으면서 말하는 거야?
“줄곧… 줄곧 기다려 왔습니다. 곡주님께서 이렇게 다시 절 바라보시며… 제게 목소리를 들려 주시는 순간을 말입니다.”
“크…음! 음… 음……”
순식간에 섭섭했던 마음이 사라져 간다. 제기! 안돼! 차라리 속 좁고 말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수는… 으… 웃지마! 웃지 말란 말야, 이 것아!
“대교. 실은……”
빌어먹을! 말해 버릴까? 죽은 나도 못 이겼는데 다시 살아나기까지 한 나를 내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으… 무지 헷갈린다. 하여간 괜한 덩 고집 부리지 말고 얘한테 만이라도 말해 버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래야 내 본래 몸을 되찾는데 협조 받기도 좋지 않을까?
“네게 할 말이 있어. 하연이가 없을 때 너에게만……”
“오라버니!”
으윽, 놀래라! 이 기집애, 사람 놀래 죽일 일 있나? 왜 느닷없이 대교 뒤에서 튀어나오는 거야? 어…? 가만, 죽는 게 나을 뻔했나? 으… 하여간 무지 헷갈리는 신세다.
“후후~ 날 빼놓고 대교 동생에게만 무슨 얘기를 하시려고 그러오?”
“아,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야.”
“호호호~! 이쯤에서 자리를 피해 주고도 싶지만, 그렇게는 못하지. 대교 동생! 앞으로 며칠간은 오라버니를 놔주지 않을 거니까 그렇게 알라구!”
그러면서 진하연은 위쪽에서 내 머리를 거꾸로 감싸 안았다. 어, 야아~ 아무리 동생이래도 다 큰 것이 얼굴 쪽에 그렇게 가슴을 붙여 오면……
“별 말씀을 다하시네요. 제가 어떻게 오누이간의 정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대교는 그렇게 말하면서 생긋 웃었지만, 만화 식으로 표현하자면… 웃음 짓는 눈가에 힘줄이 불끈 솟아오르는 듯한… 그런 기색이 느껴졌다. 진하연 역시 생글생글 웃고 있지만 웬지 두 여자의 사이에서 스파크 같은 것이 파바박~ 튀는 듯한 분위기. 제기… 뭐냐, 이건.
“…헌데 조금 전 삼장 대사를 부르시는 것 같던데……”
“아, 맞다. 오라버니. 곧 옛 친구를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옛 친구 삼장 대사? 왜 손오공하고 저팔계, 사오정들을 데리고 다니는 삼장 법사는 아니고?
“삼장…이라고?”
“아… 모르시겠구나. 그는 최근 법명을 바꾸었다고 하죠. 이젠 수라혈불이라고 불리던 과거를 청산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음… 그랬군. 삼장이 바로 수라혈불이었구나. 그 사람은 나도 알지. 아직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없…는 건 없는 건데… 으악~! 일났다! 그 인간이 여기 온다고?
“수라혈불?”
일시에 굳어진 나를 진하연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았다.
“왜… 그러세요?”
쓰바- 따따블로 X되게 생겼다. 내 영혼의 정체를 완전히 뽀록 낼 지도 모를 인물이 하필 지금… 아이고~ 이를 어쩌지? 어쩐다? 대교도 대교지만 지금 날 안고 있는 이 이쁜이 여자 극악께서 내 정체를 알게 되면 얄짤없이… 으아아~ 이렇게 대책없이 죽을 수는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