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34-2화 : 북천여제(北天女帝)의 무위(武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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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2부 – 34-2화 : 북천여제(北天女帝)의 무위(武威).(2)


이 자리에서 자옥령과 가장 가깝고 잘 아는 사람은 당연히 조예린 공주다. 지금까지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도 그녀가 당황하는 걸 보면 소문이 그리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자옥령은 일단 가벼운 웃음으로 동요를 감추었다.

“무(武)에 관한 논의라면 언제라도 환영입니다만… 진유준 하사님께라면 제가 오히려 한 수 배워야 할 입장이지요.”

음… 그래도 역시 내게는 대뜸 그렇게 대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하긴, 현재까지 우리는 불치병 환자였던 언니가 완치되어 기쁨에 쌓인 자매와 그걸 치료해 준 의사(?)와의 티타임이라는… 매우 긍정적이고 흐뭇한 분위기였지 않은가. 나나 조예린이 지레 긴장해서 그렇지 내가 방금 ‘난 사실 니네 가문의 철천지 원수! 음하핫~!’ 하는 류의 대사를 친 것도 아닌데 자옥령이 대뜸 호전적이 될 리가 없기는 했다.

어쨌든… 처음부터 말을 꺼내지 않았으면 모를까, 일단 시작했는데 무든 당근이든 양파든 하여간 썰긴 해야겠기에 나는 슬며시 내 정글도를 자옥령의 눈 앞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혹시 들으셨는가 모르겠지만… 이 몸은 전에 지녔던 가문의 비전을 모두 잃고… 얼마 전 기연을 얻어 새로이 생사금마도결(生死金魔刀訣)을 익힐 수 있게 되었소.”

다시 자옥령의 기색이 뭔가 조금 변했다.

“생사금마도결…이라고 하셨습니까?”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다음 내 정글도 위에 올려놓았던 손의 손가락을 가볍게 툭툭 두드려 보였다.

“과연… 그 박도(朴刀)가 실은 패도광협의 애도… 군마도(君魔刀) 혹은 지천도(至天刀)라고 불려지는……”

자옥령은 말끝을 흐리며 빙긋 웃었고, 난 문득 소름이 끼쳤다. 특별히 무서운 표정을 지은 게 아니라 너무 여유롭고 잔잔한 반응이어서 오히려 더 섬뜩했던 것이다.

“전설의 병기와 무공을 지닌 분이 바로 가까이 있었거늘 제 짧은 안목이 미처 알아보지 못했군요.”

자옥령은 내 쪽으로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겉으로는 경의를 표현하는 식의 태도였지만, 고개를 드는 그녀의 서늘한 두 눈이 새삼 날 탐색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문의 원수가 된 수준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자옥령의 투지를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한 것 같아서 더 빼지 못하도록 살짝 못 박는 대사를 추가했다.

“후후… 우리가 무슨 원수 사이도 아닌데 서로 살수를 쓰는 일이야 있겠소. 무인끼리 인연이 닿았으니 지닌 바 재주를 가볍게 겨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지 않겠소.”

“…정히 그러시다면……”

막 승낙의 뜻을 밝히려던 자옥령이 순간 멈칫했다. 내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건너편 탁자 아래로 조예린이 팔을 뻗어 자옥령의 손을 잡은 것 같았다. 조예린은 보일 듯 말 듯 작게 고개를 젓고 있었다. ‘너 설마 내 생명의 은인과 칼부림을 하겠다는 거니? 그러려면 차라리 날 대신 쳐라, 이 것아~!’…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하여간 만류하는 기색이었다.

“…따로 논검비무(論劍比武)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군요.”

논검…? 쳇! 결국 그냥 말싸움(?)으로 하자는 건가? 아니, 아니… 전에 연옥도에서 천우신과 가끔 벌였던 논무(論武)도 꽤나 살벌했던 것을 생각하면, 논검비무만으로도 저 여자가 얼마나 강한가를 가늠하기에는 충분하려나?

“좋소이다. 난 늦어도 이틀 후에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니 그 전에 시간을 가지도록 하죠.”

“…그럼 시간은 내일 오전 중이 좋을 듯합니다. 장소는……”

장소 선정부터 신중하다는 건 역시 평범한 말싸움 수준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일까?

“흐음… 장소는 공정하게 암천주(暗天主)께 부탁드려도 될까요?”

고개를 돌리는 자옥령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천우신이 대오와 함께 동굴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이미 우리 대화를 들었는지 천우신은 별다른 반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절세 고수의 대결에 어울릴 만한 장소가 마침 근방에 하나 있습니다.”

자옥령은 천우신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더니 이어 내게 물었다.

“전 종소를 참관인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만, 진하사님께선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고개를 돌려 종소를 바라보니 종소는 평소의 새침 모드는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매우 절실하게 ‘사탕 주세요’… 아니, 아니… 하여간 ‘꼭 참관하게 해 주세요’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리 천진한 어린애 같아도 저 녀석 역시 무림인인 것이다.

“난 아무래도 상관없소. 하하하~! 내일 종소 앞에서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겠군!”

나는 짐짓 크게 웃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이미 다시 긴장 상태로 돌입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일찌감치 숙소를 찾아들어 누웠지만 결코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비록 논검비무라고는 해도 무공을 익힌 후 처음으로 현실에서 강적을 상대할 생각을 하니 좀처럼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던 것이다.

“뭐… 차라리 잘된 셈이야. 사실 아무리 내가 도발을 하고 자옥령이 철저한 승부사 기질의 여자라 해도 현재 상황에서는 정말 전력을 다해 나와 싸울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서로 진짜 상하게 않는 논검이라면 자옥령도 부담없이 전력을 다해 자신의 무공을 선보일 수 있겠지?”

[일반적으로 논검비무라 하면 특정한 형식과 기준이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단어를 직역한 의미처럼 말로써 무공에 대한 지식과 응용력의 우열을 가리기만 한다면 별다른 문제가 있을 수 없지만, 비무에 임하는 상대 고수의 진지한 태도와 전투 시 주인님의 집중력을 감안하면, 실제 비무에 가까운 위험성을 동반할 수도 있습니다.]

몽몽의 경고는 나와 자옥령이 각자 스스로 머리 속에 ‘위험할 정도의 가상현실’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과거의 고수들 중 논무에 집중하다가 정말 육체의 내상을 입은 사례가 종종 있다고 하던가……?

[자옥령은 이미 주인님의 힘이 되어 주기로 했으니 그 역량을 정확히 알아두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위험성을 감안하여 충분히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몽몽의 말에 일단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솔직히 그 부분이 그렇게까지 걱정되지는 않았다. 아무리 집중을 한다 해도 설마 싱크로율을 왕창 올려놓은 몽몽의 가상현실 때처럼 죽기야 하겠나 싶기도 하고… 또,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나 역시 지금은 좀 한다…라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방심을 한다거나 할 여유 또한 눈곱만치도 없었다.

자옥령은… 불과 십삼세 때(지금의 종소와 같은 나이), 당시 억울하게 살해당한 친척 언니의 복수를 위해 조홍산장이라는 중원의 재벌기업에 단신으로 쳐들어갔다고 한다. 조홍산장에서는 막대한 돈과 거미줄 같은 인맥으로 정사마 전반에 걸쳐 수많은 고수들을 끌어들인 상태였다고 하는데, 그 중에 점창파의 후계자로까지 거론되던 젊은 고수가 끼어 있었다는 것만 봐도 당시 자옥령이 상대한 고수들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 번째 중원 출도에서 얼어붙은 하늘의 여제라는 칭호와 함께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는… 아무리 특수한 환경 하에서 영재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그 나이에는 좀 심한 거 아닌가 싶은 천재가 바로 자옥령이란 여자이다. 그 후로도 두 번인가의 추운 계절에 다시 중원에 나타나 전설을 더욱 공고히 했던… 어…? 그러고 보니 자옥령은 독특한 내력과 체질 때문에 고향인 북해빙궁처럼 추운 계절에는 엄청나게 강하지만 현재의 중원처럼 따끈따끈한 기온 속에서는 본래의 내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다고 했다.

끄음… 자옥령이 항상 너무 태연해서 깜박하고 있었는데 자옥령은 지금 상당한 핸디캡을 가진 상태에서 나와 비무를 하게 된 셈이로군. 그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처음 생각대로 진검비무를 벌이게 되었다면 이기든 지든 상당히 찜찜한 경기(?)가 될 뻔했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옆에서 자옥령을 말려서 논검비무로 바뀌게 해준 조예린 공주에게 또 한 번 감사해야겠군 그래.

난 동굴 벽 몇 개 너머의… 대충 이 정도쯤이다 싶은 조예린의 침실 방향으로 손가락 두 개로 약식 경례(?)를 해 주었다.

“땡쓰~ 프린쎄스~ 미쓰쪼오~(발음이 어째……)”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종소를 대동한 나와 자옥령은 천우신의 안내를 받아 비무 장소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잘해야 배구장 절반 정도 크기의 공터였는데 주변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허리를 틀어 에로틱한(?) 자태를 뽐내는 나무들이 밀집해 있었고 공터 한 가운데에는 커다랗고 평평한 바위 하나가 한가롭게 누워있었다.

“과연… 너무나 아름답고 운치 있는 장소를 찾아 주셨군요.”

자옥령은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듯 천우신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지만 나는 뭐 그냥 그저 그랬다. 이건 아무래도 도통한 신선들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며 말 그대로 신선 놀음을 즐기는 장소의 분위기인데… 확실히 말로만 하는 논검에는 잘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내가 오늘 하고 싶은 비무에는 좀 아니지 싶었다.

어쨌든, 그 왕성한 호기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간택(?)받지 못한 천우신이 너무나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가고 나는 바로 정글도를 들어 어깨에 턱 얹었다. 그러자 자옥령의 왼손 손목이 살짝 움직이는가 싶더니 땅바닥에 비스듬히 서있던 그녀의 검이 둥실 허공으로 떠올라 그녀의 손아귀로 들어갔다. 손목과 검신을 연결한 끈이 당겨진 결과일 뿐이지만 사소한 움직임까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마치 검이 자신의 의지로 주인을 찾아간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자옥령은 검을 두 손으로 쥐고 앞으로 내밀며 또 뭔가 인사말(?)을 하려고 했지만 나는 손을 흔들어 그만두라는 뜻을 표했다. 정글도를 도끼처럼 어깨에 걸친 일명 ‘장작 패러 가는 일꾼 자세’로 공터의 바위 근처까지 걸어간 나는 다시 불쑥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자- 여기서 나는 이 자세 그대로 당신에게 평소의 걸음으로 다가서기 시작할 거요.”

정식 비무에 따르기 마련인 예절 같은 거 무시, 뜬금없고 의미 모호한 내 선언에 참관인 종소는 ‘저 사람 대체 왜 저래?’라는 표정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자옥령은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살며시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멋진 기수식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쪽으로 세 걸음을 걷겠습니다.”

그렇게 대꾸한 자옥령은 내가 가겠다고 한 방향과 90도 정도 직각의 왼쪽으로 세 걸음 정도 떨어진 지점을 손으로 가리켰다. 보통의 기수식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내 행동과 그에 못지 않은 자옥령의 반응……

“…생사금마도결, 삼시전결!”

난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재빨리 몸을 틀며 왼쪽으로 삼시전결을 날렸고,

까깍! 하는 소리와 함께 돌가루가 날리며 바위 모서리에 두 줄기의 도흔이 새겨졌다. 물론 나는 지금 엄한 바위를 향해 삼시전결을 날린 거였지만 내가 처음에 말한 대로 움직였을 경우에는 삼시전결이 펼쳐진 방향이 바로 자옥령이 움직일 지점이었다. 헌데… 이미 자옥령은 조금 전의 위치에서 1미터 정도 뒤로 이동한 위치에서 기본적인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경황이 없어 특별한 초식을 쓰지는 못했습니다만……”

자옥령은 변명하듯 말했지만, 나는 내심 소름이 끼쳐서 애써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초식이 무어 그리 중요하겠소. 후… 본래는 이번 기습으로 반 호흡 정도는 훔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도 최소한 삼십 초는 더 몰아붙일 생각이었는데… 그만두겠소.”

“…그랬을 경우, 저는 아마도 저 부근까지 유도되었을 텐데… 사정을 봐주셨군요.”

자옥령, 저 여자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데도 내가 계획했던 지점을 거의 정확히 집어낸다. 그 전에도 내 삼시전결을 그저 단순한 회피 동작만으로 피해낸 거였고… 하여간 내 쪽에서 사정을 봐주는 건 고사하고 그대로 계속 밀어붙였으면 결국에는 그녀의 반격에 걸려들었을 것이다. 솔직히… 잘 못 건드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더 깊은 곳에서는 그 이상의 묘한 흥분과 투지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정글도를 어깨에 걸치며 싱긋 웃어 보였고, 자옥령도 마주 웃으며 천천히 방어자세를 풀었다.

“훗…! 내가 처음부터 북천여제께 너무 실례를 범한 것 같소.”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기대했던 논무가 될 것 같아 저는 무척 기쁩니다.”

‘기대했던’이라. 역시……!

“나름대로 머리를 쓴답시고 기습을 해봤지만 역시 통하지 않았으니, 오늘은 내가 어려움이 많을 것 같소.”

“저는 놀라서 얼결에 피했을 뿐입니다. 운 좋게 흉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 다행입니다.”

뒤늦게 정다운(?) 대화를 나누고는 있지만, 이미 내가 행동으로 제안한 ‘실전적인 논무’를 자옥령 역시 행동으로 동의한 셈이어서 우리 사이의 긴장도는 점점 더 높아져가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이 예의 장작패러 가는 자세로 있는 걸 좋아하는 데다 생사금마도결에는 이 자세에서 즉각 발도(拔刀)로 들어가는 초식이 많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중의 어떤 초식을 써야 내 앞에 아무렇지도 않게 서있는 자옥령의 저 자연체를 무너트릴 수 있을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칠성보(七星步)로 당신의 이장(二丈, 4.8미터.) 앞까지 접근하겠소.”

나는 적당한 방향을 향해 칠성보라는 보법의 일부를 활용하여 걸어 보였다. 자옥령은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면서 즉시 두 걸음을 떼었다. 그녀가 이동해 보인 건 일견 별다른 의미는 없어 보였고 다만 나와의 거리가 약 1미터 정도 더 유지되는 곳이었다.

“진보전도(進步纏刀)!”

“황우인침(晃宇引針).”

일단은 많이 알려진 수법으로 쳐들어간다고 하자 자옥령 역시 일반적인(?) 반격책을 내놓았다.

“연환요도(連環搖刀)!”

한 번 흔들기.

“백사문식(白蛇門式)!”

안 흔들린다. 제기.

많이 알려진 초식은 그냥 말로 외치고, 각자의 비전무공을 쓸 때는 정확한 시범을 서로 보여가면서 논검(論劍)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간간이 서로의 수법을 칭찬하거나 분석하는 대화가 섞이기도 했지만 공방이 계속되면서 조금씩 잡소리가 줄어가고 있었다. 상대의 초식에 대항하는 초식을 내놓은 시간이 경쟁적으로 빨라지면서 나는 차츰 호흡이 가빠오고 있었다. 백초? 아니 천초? 쉴 틈 없이 몇 초를 교환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 말에 즉각 반응하고 반격해 오는 자옥령의 말이 너무나 정확하고 실감이 나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내가 자옥령과 정말 실전을 치르고 있다는 감각 속에 빠져가기 시작했다.

…기습적인 자옥령의 한빙장(寒氷掌)을 막기 위해 나는 반사적으로 왼손에 태양공(太煬功)을 집중했다. 남은 여력으로 제대로 반격하기는 무리일 것 같아서 재빨리 뒤로 물러나는 내 신형을 따라 자옥령의 검 끝이 독오른 뱀처럼 따라 붙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삼시전결의 초식으로 뱀의 머리를 쳐냈다. 잘려 나간 것 같았던 머리는 순식간에 몇 배로 늘더니 다시 차가운 냉기를 토해냈다.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나는 오히려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다음 순간, 허벅지쯤에서 시큰한 통증이 느껴졌다. 정신없이 막아 낸 상단 공격이 허초(虛招)였고 그 쪽이 진초(眞招)였던 모양이다. 아니, 모두 진초였을까? 하여간 위기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공공보법(空空步法) 펼쳐 재빨리 거리를 확보하면서 정글도를 자옥령에게 던져 버렸다. 회전하며 날아드는 정글도를 간단히 피하던 자옥령이 순간 당황하여 비틀거렸다. 아까 임룡무희결(林龍舞喜訣)로 그녀 주위의 땅 밑에 파놓은 함정 중 하나에 드디어 걸린 것이다.

자옥령이 잠깐 놓친 중심을 바로잡는 사이 한 번 피했던 정글도가 부메랑처럼 돌아와 그녀의 등 뒤로 날아들고 있었다. 나는 무리하게 진기를 끌어올리며 자옥령의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자옥령은 순간적으로 등 뒤의 정글도와 정면의 내 장력을 가늠해보는 것 같았다.

다음 순간, 그녀는 재빨리 몸을 땅바닥에 쓰러지다시피 눕히며 나와 정글도의 사정권에서 벗어났고 그 와중에도 또 내게 일검을 날려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 쪽이 페인트 모션이었다. 나는 재빨리 장력을 거두며 발에 힘을 주어 자옥령의 검 끝을 넘는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 상태로 내 정글도와 만났지만 손으로 잡고 어쩌고 할 틈이 없어서 나는 발로 정글도의 손잡이를 걷어차 버렸다. 방향이 바뀌고 회전력까지 더해진 정글도가 자옥령을 향해 거세게 내려꽂혔다. 내 최후의 반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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