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37-1화 : 더블드래곤(Double Drago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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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2부 – 37-1화 : 더블드래곤(Double Dragon).(1)


5-4. 더블드래곤(Double Dragon).(1)

“하아-“

짧은 숨을 토해내며 번쩍 눈을 떴다. 단번에 성공한 기쁨을 만끽하거나 네 번째 도킹 성공 어쩌고 지껄일 여유가 없어서 나는 즉시 몸을 일으켰다. 내 침상 옆의 탁자에 엎드려 졸고 있던 대교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잠이 깸과 동시에 반가움을 표현하려던 대교의 얼굴이 문득 굳어졌다.

“대교!”

“예, 옛!”

“하연이를 불러와, 당장!”

내 표정과 태도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껴졌는지, 재빨리 바깥에 대기 중인 병력에게 명령을 전달하고 돌아 온 대교가 새삼 신중하게 내 안색을 살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곡주님. 괜찮으신 겁니까?”

“난 괜찮아. 그보다……”

다급한 일이라 일단 오긴 왔는데… 대교나 하연이 입장에서 보면 난 지금 오랜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난 건데 뭘 근거로 필요한 명령을 내려야 할지가 곤란하긴 했다. 신수성년 치료하다 여기로 날라 왔던 일 이후 생각해 놓은 게 있긴 하지만 그 설명이 제대로 먹힐지 어떨지……

“난… 괜찮아. 하지만 예정보다 빨리 깨어나는 바람에 언제 다시 의식을 잃을지 몰라. 그러니 우선 대교 네가 먼저 듣고… 만약 하연이가 오기 전에 내가 잠들면 그대로 전달해 줘.”

변명거리가 마땅치 않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개들을 따돌린 대독 작전의 효과가 그렇게 금방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상황이 절대적인 건 아니니까 말이다.

“우선 최대한 빨리 네 동생들을 이 곳으로 철수시켜. 그리고 다른 세력들에게도 경고를 보내 모두 조심하라고 말이야.”

나는 잠시 말을 끊고 다시 생각해 본 다음 말을 이었다.

“…대천마가 곧 움직일 것 같아. 반천복화 세력 모두 조심하는 건 물론이고 가능하면 모두 몸을 숨기라는 지시를 내려. 내… 의형 진유준 하사가 지하무림을 접수할 때까지 말이야.”

“지금까지도 조심하고 있긴 합니다만… 아예 활동을 접고 칩거하라는 말씀이군요.”

명령 자체에는 비교적 의혹이 없는 눈치였지만, 한편으로 ‘대체 뭔 일이래?’라는 표정인 건… 퍼 질러 자던 놈이 별안간 일어나서 하는 명령이기 때문일 것이 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명령의 근거를 나름대로 설명하려들었을 때였다. 바깥이 좀 어수선해 진다 싶더니만 진하연이 나타나 나는 듯 침상으로 달려왔다.

“오라버니! 다시 돌아오셨군요!”

깨어날 때마다 눈물나게 반가워하는 여동생 하연이를 진정시키는데 약간의 시간을 소모한 후, 좀 전에 대교에게 한 말을 다시 반복해야 했다. 진하연은 빠르게 상황을 이해하고 즉시 묘랑(苗琅) 모드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세부적인 시행은 하연이 너와 대교가 지휘해. 대교의 동생들은 반드시 이 곳으로 복귀시키고 다른 세력들도 아직은 절대로 비화곡과 충돌해서는 안돼.”

“진유준님이 마군황에 오르실 때까지… 그로서 반천복화 세력이 비화곡과 힘의 균형을 이룰 때까지 말이지요?”

“그래. 그 때는 아무리 대천마라도 쉽게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을 거야.”

“과연… 천마 노괴가 무리를 해서라도 서둘러 움직일 가능성이 높군요. 그리고 진유준님의 강호귀환과 이후 행적을 노괴가 벌써 알아챘다면 그건 진유준님이 유일하게 직접 접촉한 우리의 강호 교두보인 교아루에 적의 간세가 있다는 반증.”

내 말을 새삼 분석하는 진하연의 얼굴에 원판 가문 특유의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제기, 간만에 보니까 더 사악함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너 역시 짐작하고… 그리고 대비를 하고 있었겠지?”

“후후~ 아직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철수 시켜보면 알겠지요.”

절대로 첩자가 아니라는 공인 마크의 대교 동생들만을 돌아오라고 연락해 봐서 무리하게 따라오는 자들을 용의자로 보겠다는 것이 진하연의 논리인데…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색출 법인 셈이다.

“근데 만약… 첩자가 거기에 걸려들지 않고 교아루에 남으면?”

“그럼 상관없잖아요. 수뇌부인 이 곳과 핵심 인물들만 안전하면 교아루 정도 사라져도……”

으~ 역시나 여자 극악이다.

“…확실하지도 않은데 쓸데없는 희생을 자처할 필요 없어. 교아루의 다른 병력들도 적당한 명분으로 칩거시켜. 단, 교아루든 혈의문이든 각 단체가 서로의 움직임을 알지 못하도록 해야겠지만 말이야.”

“흐응~ 오라버니는 아직도 하연이가 어린애인 줄 아시나봐요.”

그런 기본적인 조직 운용법 정도는 자기도 빠삭하다는 귀여운(?) 항의였지만… 인간아, 내가 괜히 잔소리 하겠냐? 넌 너무 잘해서 탈이라구. 보나마나 지금처럼 효율성에 입각해 부하들 버리는데도 주저가 없을 테니 말이야.

“헌데, 지난번에는 아무 말씀도 없으시더니……”

으음. 올 것이 왔군.

“…그게. 꿈…을 꾸었다고 할까? 잠들어 있을 때 말야. 깨어 있을 때보다 더 생생하게 앞으로의 일들이… 보이더라고.”

내 말에 대교와 진하연의 표정이 대뜸 더 심각해더니 지들끼리 눈빛을 맞춘다.

  • 대교 동생, 꿈꾼 거로 명령을 내렸다는데?
  • 그러게요? 아무래도 괴의를 불러서 정신감정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 그래야겠어. 지금까지 들은 명령은 안 들은 거로 하자구.

이 딴 무언의 대화가 오고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 전에 몽몽과 얘기했던 직관력에 대한 설명으로 어떻게 든 해야 할 것 같았다. 하긴, 얘들 같은 경우 다르 사람들처럼 극악서생이 무조건 신비로운 능력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며 나에 대해 알만큼 아는 애들이니 만큼 갑자기 도통했다는 식이 통할 리가……

“예지몽…! 곡주님께 그런 능력이 생긴 거 아닐까요?”

…있군.

“…그럴지도 모르겠네. 오라버니께서는 본래 감이 좋으셨으니까 최근 몇 년간의 충격적인 경험으로 그런 능력에 눈을 뜨셨을 수도 있지.”

나참…! 가만히 듣고 있자니까… 지들끼리 알아서 예지몽이 틀림없다는 둥 예지력을 가진 사람이라니 너무 멋지다는 둥 수다를 떨어대기 시작한다.

“저기,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그건 아닌 거 같거든?”

내가 끼어 들어 반대 의견을 말하자 녀석들은 오히려 실망하는 눈치였다.

“내가 지금 몸이 더 약해진 만큼 평소보다 예민해져 있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정말 아무 근거 없이 앞일을 미리 알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 그 중에서 평소에는 크게 중요시 여기지 않던 정보까지 무의식중에 종합하여 타당한 결론을 내리는 건데… 그런 걸 직·관·력·이 라고 하지.”

“…오라버니의 그 직관력은 예전부터 놀라웠지요. 웬만한 무당이나 도인들보다 뛰어난 예지력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거예요.”

“맞습니다. 그리고 곡주님은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사이 정말 예지력이 생겼을 지도 모르지요.”

“그래. 가능성이 있어, 대교 동생. 더구나 잠들어 있는 동안 더욱 정확하게 발휘되는 직관력이라는 건……”

지금처럼 육체 1호 2호를 오가며 활동해야 할 때 가장 설명 곤란한 부분을 지들이 알아서 꿰어 맞춰 주는 건 고마웠지만, 한편 그 동안 고민해 온 게 좀 허무하기도 했다. 게다가 각각 일가를 이룰 정도로 무공과 지략에 뛰어난 얘들이 그런 비현실적인 얘기를 하면서 저렇게 초롱초롱한 눈빛이라니… 예나 지금이나 아니 지금이나 미래나… 여자들은 왜 이렇게 초현실적이고 꿈 같은 얘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점 보러 다니는 여자가 그렇게 많은… 음… 나야 뭐, 나 자신이야말로 현재 유체이탈하여 일인 이역을 하는, 초현실 그 자체인 주제이니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하연이는 지금 당장이라도 일을 진행해 줘. 아, 근데… 그 전에 옷 좀 갈아입어라. 다 큰 처자가 뭐냐 그게.”

내 말에 하연이는 문득 얼굴을 붉히고는 약간 입술을 삐죽이며 방을 나갔다. 조금 전까지는 급한 일 전달하느라 서로 신경을 못 쓰고 있었지만, 저 녀석 계속 잠옷만 걸친 민망한 차림이었다.

“저 녀석은 여전히 잠꾸러기로군. 이 시간에 벌써 잠자리에 들었었다니……”

“…하지만 그런 분이 한 달 동안이나 저와 교대로 밤을 새며 곡주님을 간호한 적도 있는 걸요.”

“그…래?”

“2년 전 곡주님께서 천마 노괴에게 당하신 직후에는 제가 함께 있지 않았지만… 그 때는 정말 대단하셨다고 합니다. 곡주님을 되살리기 위한 준비를 하고 진행하는 동안은 거의 주무시지도 않고 곡기를 끊고 지내셔서 나중엔 암혼자가 목숨을 걸고……”

흐음~ 첨 듣는 얘기네? 보디가드 암혼자가 목숨을 걸고 설득하여 겨우 밥을 멕였다 이거지? 거참… 엄청 브라더 걸(맞나?)인 건 알고 있지만 그런 얘기 들으니 까 더 실감나네. 하연이의 대표적인 추종자인 암혼자와 삼태자가 안 되기도 하고…… 음… 자기 스스로 진하연이 못 오를 나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녀의 행복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노예 스타일의 암혼자. 그리고 엄연히 진하연과 동등하거나 위의 입장에서 대쉬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그녀가 전혀 그렇게 봐주지 않고 그저 이용해 먹을 궁리만 하고 있는 삼태자… 어느 쪽이 더 불쌍한 걸까?

“…그래도 요즘엔 하연이가 삼태자를 보는 눈이 좀 달라졌다고 하지 않았나?”

“예.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만… 진유준님이 돌아오시고 곡주님도 깨어나신 이후로는 삼태자님 얘기는 거의 하지도 않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역시나 불쌍한 남자 삼태자 조명환 전하로군. 듣자니까 이제는 반대파들을 거의 제거하여 다른 왕자들의 도전도 시들해지는 바람에 거의 차기 황제로 확정된 분위기라고 하던데, 정작 한 여자의 마음은 사로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음… 설마 황제가 되자마자 권력으로 하연이를 차지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건 오래비로서 내가 용납할 수 없… 음… 아니 그보다 내가 지금 이게 뭔 삼천포냐. 본체가 개떼 속에 포위된 상태에서 유체이탈씩이나 해서 날아 온 건 남의 연애 문제 신경 쓸려고 온 게 아닌데 말이다.

“대교. 전에 대천마가 하연이에게 보내 온 선물이 몇 가지 있다고 했지?”

“예. 아가씨께서 곡주님 치유에 정신이 없을 때 온 것을 수하들이 받아 놓기는 했지만 대부분 나중 아가씨께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이 원판 육체를 묘강(苗彊)으로 수송해 가서 십전대보… 뭐라는 부활술을 시작한 때를 말하는 거다. 그 당시 원판 육체에 함께 걸려 있던 명패… 그건 비화곡 성지(聖地)의 마지막 열쇠이다. 사갈새끼는 거기에 관심이 없어서 내가 포로가 되었을 때도 그냥 뒀었는데 나중 대천마가 계속해서 진하연에게 그 명패 반납을 요구했었던 모양이다. 진하연은 당근 생 깠는데… 아무리 비화곡이라도 이웃나라에 대규모로 쳐들어 갈 수는 없는 데다 진하연 자신도 묘강의 실세이자 진하운의 쌍둥이 여동생으로서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는 거… 그런 저런 이유로 결국 대천마 쪽에서 먼저 굽히고 들어와 교환 조건으로 여러 가지 보물까지 보내왔었다는 것이다.

“그… 남은 걸 모두 이리로 가져와 봐.”

“예. 곧 대령하겠습니다.”

하연이는 나중 마음의 여유를 조금 찾았을 때도 상대방 열 받으라고 명패는 돌려주지도 않으면서 보내온 보물들은 사신으로 온 자 앞에서 박살내 버렸다고 한다. 그래도 나중에 보내온 건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 바로 그 물건들을 한 번 검색(?)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진하연에 이어 대교도 내 명령을 시행하러 나간 후, 나는 혼자 침상에 앉은 채 잠시 상념에 잠겨야 했다. 그 동안은 얼결에 했던 유체이탈과 육체 두 개 번갈아 사용하기… 이게 점점 자리를 잡아간다고 생각하니까 기분 참 묘~하다. 편리하기는 무지 편리한 기능(?)이긴 한데… 이렇게 자꾸 정상적인 인간에서 멀어져가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중 우리 시대에 돌아가도 과연 보통의 생활에 적응할 수 있으려는지 새삼 걱정되기도 하고……

얼마 후, 대교와 진하연이 함께 돌아왔고 그 뒤로 시녀들이 몇 가지 물건을 들고 따라 들어왔다.

“천마 노괴가 보낸 건 서찰이든 보물이든 제가 대부분 없애 버렸어요. 남아있는 저건……”

진하연이 없애 버리지 못한 것들은 다름 아닌 내, 아니 원판의 물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 원판이 대천마에게 선물해 줬던 보물들… 그걸 대천마가 다시 진하연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애초에 내가 뒤통수 맞고 골로 같던 것도 그렇고… 구 수라혈불, 현 삼장대사의 경우를 봐도 난 대천마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이 많았다. 지금까지는 여기저기서 듣거나 기록만을 보고 판단해 왔지만, 얼마 전 이 원판 육체의 기억 속에서 진하연에 대한 정보를 얻었듯이 대천마에 대한 원판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의 행동 패턴을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어찌되었든 원판과 대천마는 십 수년을 같은 조직에서 생사를 같이 한 동지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우선 서찰부터 읽… 으~ 회화는 좀 되도 아직 모르는 한자가 너무 많잖아?

“음… 이 서찰… 대신 좀 읽어 줄래? 으흡! 콜록! 콜록~!”

결국 더 한층 죽을 병 환자 시늉을 하며 대교에게 서찰을 넘겼다. 제길! 한자 공부 좀 더 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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