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37-3화 : 더블드래곤(Double Drago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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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2부 – 37-3화 : 더블드래곤(Double Dragon).(3)


5-4. 더블드래곤(Double Dragon).(3)

마무리야 어쨌든, 효과적으로 적들을 따돌린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쓸만한 장소를 찾아 짱 박힐 수가 있었는데… 사실은 아까 그렇게 난리 치며 탈출했던 태운산 속의 한 곳이었다. 이런 식의 허를 찔러 등잔 밑으로 숨는다,라는 전술이 언제까지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현재까지의 적들 움직임으로 보아 둘 째 날 해가 뜰 때까지는 버틸 수 있지 싶었다.

얼마간 몽몽의 스캔 기능에다가 나 자신의 이목을 총 동원해 주변의 정황을 살핀 후에 그렇게 ‘당분간 안심’이라는 결론을 내린 나는 아까 나무 위에서와는 달리 비교적 편안한 자세로 땅바닥에 누웠다. 그리고 다시 원판 육체로의 접속을 시도해 보았는데, 이번에는 현천기공을 이용해 스스로 가사상태로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30분 후…! 나는 아까와 달리 별 성과 없이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 …역시 이렇게는 안 되는 건가? >

[ …아직 주인님의 육체와 무의식이 스스로 행한 가사상태를 ‘죽음’으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

< 그래서 외부의 조작에 의할 때만 유체이탈이 가능한 것 같다고…? 음… 하지만 스스로도 죽음을 인식해야 한다니, 왠지 기분이 좀 그러네? >

[ 죄송합니다. 표현이 적절치 못했습니다. ]

< 아니 뭐… 그건 그렇다 치자. 유체이탈을 아무 때나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해도 그리 좋아할 일은 아닐 것 같고 말야. >

으음~ 원판으로의 접속이 어려웠던 것처럼 유체이탈 자체도 그런 꺼리는 마음이 있어서 스스로는 안 되는 걸까……?

< 몽몽, 아까 문득 생각 난 건데… 이렇게 계속 유체이탈로 1호와 2호 신체를 번갈아 사용하다가 원판 육체에 대한 접속율이 더 높아지게 되면… 혹시 나중에 우리 시대로 돌아가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할 위험은 없는 걸까? 영체의 경우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기 쉽다던가… 혹시 그런 예는 없어? >

[ 저희 시대에서도 영체의 시공간 이동에 관한 지속적 실험은 없었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은 어렵습니다. 물론 제게 입력되어 있는 시간여행에 관한 데이터만으로는 우려하시는 상황의 발생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판단됩니다. 다만… 주인님의 영체가 애초에 다른 신체, 즉 원판으로의 접속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졌던 사실 자체가 이례적인 경우이기 때문에 주인님 영체의 시공간 이동에 관한 부분도 확정적이지는 않다고 추정됩니다. ]

< 그러니까 이번에도… 보통은 그럴 일이 없지만 난 첨부터 하도 특수한 경우여서 장담을 못한다, 그런 얘기로군. >

[ 요점은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

< 니가 죄송할 것까지야… 내가 원체 특이한 놈이라 그런 건데 뭐. >

전에 언젠가도 그러더니 천하의 몽몽 선생도 내 영체 이동에 관한 부분은 아리까리 하다는 얘기다. 으음~ 그렇다면 앞으로 더 완벽하게 제어 능력을 갖추거나,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내가 떠나기 전 원판의 육체를 완전히 없앤다거나… 그래야 하는 걸까…? 쯧-! 그건 그 동안 골골하면서도 용케 작동해 주던 녀석에게 너무 매정한 처사려나? 그렇다고 그냥 남겨 놓는 것도 녀석을 위하는 건 아닐 테지만… 후우~ 이젠 별 걱정 다하게 되는군.

[ 이번에는 제 보조로 접속 시도를 하시겠습니까? ]

< …아니. 좀 전엔 되나 안되나 시험해 봤을 뿐이야. 아까 대교들에게 경계령을 내리는 거까지는 했으니까 나중에 접속해도 될 것 같아. >

[ 주인님… 계속 그렇게 따블 뛰려면 힘들지 않으시겠어요? ]

뜬금없이 요정 몽이 끼어 들었다.

< 뭐…? 야, 요정 몽.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냐? >

[ 주인님 시대 표현법 중에서요. 음~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 중 능력 있는 자 만이 가능한 기법인 것 같던데… 맞죠? ]

< 그, 글세. 의미가 아주 틀린 건 아닌데… 야, 몽몽! 너 얘 교육 어떻게 시키는 거냐? >

[ 인격 부분의 독립 이후 지식 습득과 그 응용도 자체 학습토록 하고 있습니다. ]

< 그냐? 확실히 그렇지 않고서는 독립된 인격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

[ 인격 성숙 때까지 약간의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따로 ‘과외’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 것들, 둘이 나눠진 거 맞나? 원판 몽몽도 단어 선택이 어째 조금 수상하다.

< 고액… 아니 하여간 과외까지 할 건 없으니까 그냥 놔둬. 난 애들 무리해서 과외 시키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야. >

졸지에 금동이 아빠에서 요정 아빠까지 된 기분이로군.

< 그건 그렇고… 어떠냐. 네 데이터와 이 곳의 실제 지리와의 차이는? >

[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기본 지형의 데이터 정확도가 90%에 이르므로 전체적인 전략 진행 보조에 큰 지장은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세밀한 전술 수행 보조를 위해서는 정확한 지리 정보 확인이 필요합니다. ]

< 그래… 역시 체력 있을 때 빡세게 싸돌아다녀 놓는 게 좋겠지? >

마군황 시험 첫 날인 오늘까지는 비교적 무난한 출발을 했다고 자평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현재의 내 전투력이 지하무림 병력들의 평균적인 전투력에 비해 현저히 앞서기 때문이었을 뿐이고 앞으로의 전투에서는 어떤 변수가 발생하고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다. 난 어제까지 쓰지 않던 내 정글도 전용 칼집, 교룡피(蛟龍皮)로 만든 칼집을 정글도 날 부분에 씌웠다. 몇 번 가볍게 휘둘러보니 무게감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굳이 칼집으로 정글도의 날을 감싼 것은 그런 식으로 불살(不殺)의 규칙을 지키려는 게 아니고, 조용한 일처리가 필요한 상황에서 칼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 날이 밝기 한 시간 전에 현 위치를 이탈할 거야. 깨워 줘. >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야전에서 맨 몸으로 누워 있어서 그런지 부대 있을 때 매복작전 뛰던 때가 떠올랐다. 평소에는 잘 인식도 못 하던 풀벌레 소리가 너무나 뚜렷하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가오는 것도 그렇고, 간혹 멀리서 우는 밤새의 화음이 합세하여 콘서트를 여는… 그리고 무엇보다 매복 때와 같은 점은 극도로 긴장해야 할 상황임에도 너무나 잠이 잘 온다는 거……

[ 주인님! 주인님! ]

응? 어, 어?

[ 정신차리세요, 주인님! 빨리요~! ]

< 뭐, 뭐냐! 적이냐? >

[ 아뇨. 그냥 시간이 돼서요. 빨리 기상해서 일 하세요, 일! ]

빌어먹을 녀석. 따블 뛰는 거 걱정해 줄 때는 언제고……

< 알긋다, 일마야. 일나서 일하마. 일…… >

[ 와아~ 그렇게도 말이 되네요? ]

요정 몽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깔깔대며 내 주변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약간은 군대 기분으로 눈을 떴었는데 저 녀석이 분위기를 확 깨는군. 음… 아직은 여름의 끄트머리지만 산 속 새벽의 서늘함 속에서 잠들었었던 탓인지 몸이 약간 으슬한 기분이다.

[ 실은, 날이 밝으려면 아직 한 시간 이상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적이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번엔 오리지널 몽몽이었다.

[ 사냥개들의 소리가 일정한 속도로 다가오는 것으로 보아 새로운 개들이 보충된 모양입니다. ]

< 또 개라… 그럼 나도 또 약 쓰지 뭐. >

이번에는 지난밤처럼 유인하려 애쓸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한숨을 때렸던 장소에 후각 마비 약만 좀 뿌려놓고 자리를 떠났다. 사냥개를 몇 마리나 준비했는지 몰라도 약이 모자라지 않을까 조금 걱정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주변에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나는 계속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걸었다. 등 뒤 쪽, 아까 떠났던 지점 방향에서 약간의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쪽은 잠시 신경을 끄기로 했다.

[ 전방 30미터 지점에 적의 매복 병력이 감지됩니다. ]

< 음… 알아. >

사실 정확하게 알았다기보다 그냥 느껴졌다고 할까? 지금은 몽몽을 작동시켜 놓고 있지만 최근의 연습 때는 물론이고 연옥도에서의 그 무수한 실전(물론 가상 현실 속)을 몽몽 없이 치러냈었다. 그러다가 죽기도 참 여러 번 죽어 봤지만… 그 덕에 실전 감각이 상당히 키워진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지 않은 채 지형과 미미한 살기 등으로 적의 배치를 대충 가늠해보았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다닐 정도의 좁은 산길을 걷고 있으니까 양쪽에서 작게 훗-! 하는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상체를 젖히며 몇 걸음을 물러서자 작은 독침 몇 개가 내가 있던 공간을 뚫고 지나갔다. 다음 순간, 길 양쪽의 땅 속에서 벼락처럼 네 개의 인영이 솟구쳤다. 나는 미리 주워 가지고 있던 작은 돌맹이를 연속으로 날렸고 네 명의 적이 비명도 없이 비틀거리자 즉시 정글도로 놈들을 쳐 기절시켰다.

< 위험! 기습! >

몽몽의 다급한 경고음과 함께 붉은 화살표가 위쪽을 가리켰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두운 새벽 하늘을 더 어두운 무언가가 뒤덮으며 내려앉고 있었다. 공공보법을 펼쳐 단숨에 정면 몇 장 밖으로 피하자 그물을 들고 뛰어내렸던 녀석들도 즉시 그물을 놓고 날 따라붙었다. 예상 이상의 스피드로 엄습하는 적의 선두 두 명의 공격을 쳐내는 순간 그들의 머리 위로 불쑥 두 개의 다른 그림자가 튀어 나왔다. 선두의 뒤를 바싹 따라붙어 몸을 숨겨왔던 것이다. 갑자기 다급한 마음이 들어서 준비했던 두 개의 돌맹이를 여의탄(如意彈) 수법으로 날렸다. 그로서 위쪽의 기습을 막았지만 그로 인해 보법이 흐트러지는 바람에 정면의 두 명은 예상보다 긴 공방 끝에야 제압할 수가 있었다.

[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

< …그래, 괜찮아. >

몽몽에게도 내 움직임이 그리 매끄럽지 않아 보였던 모양이다. 제기…! 대단한 협공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도 조금 당황했다는 사실이 기분 나빴다. 어제 하루를 비교적 가뿐하게 넘겼다고 벌써 무의식중에 방심하고 있었던 건가……?

[ 아직 다른 병력에게 연락을 취하는 움직임은 잡히지 않았습니다만… 가급적 빨리 처리하고 이동할 것을 권고합니다. ]

< 그보다, 몽몽. 앞으로 넌 내 능력 밖의 상황, 적이 독을 쓴다거나 폭약을 쓴다거나… 그런 경우에만 알려 주도록 해. >

[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

< 그래. 아무래도… 더 이상 커닝에 맛들이면 그동안 공부해 놓은 것도 잊어버릴 것 같아서 말이야. >

나는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스윽 돌아보았다. 독침 공격과 그물의 1, 2조에 이은 매복 3조 병력들이 조금 떨어진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더니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대충 이십 여명 정도… 그리고 어제 겪었던 병력들에 비해 좀 더 조직적이고 신중한 움직임… 아니, 그 이상 뭔가 위험한 분위기였다.

“쳇! 그래도 며칠은 좀 느슨해 주길 바랐는데……”

나는 중얼거리며 다시 정글도를 어깨에 걸쳤다. 매우 긴~ 하루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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