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39-1화 : 군림하나 지배하지 않는 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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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2부 – 39-1화 : 군림하나 지배하지 않는 자.(1)


5-6. 군림하나 지배하지 않는 자.(1)

구중천 최강의 전력으로 지하무림 전체의 커다란 위기 시에만 나타난다는 보천구룡대! 그렇다면 내가 지금 지하무림에 찾아온 ‘재앙’이라는 건가?

“인사마군 휘하의 불초, 보천구룡께 인사 올립니다.”

하급자인 불초가 누구에게랄 것 없이 인사를 했지만 그에게는 누구 하나 시선조차 제대로 주지 않는다. 결국 안인 만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수고했다. 이제 물러가라.”

명령에 따라 불초가 황급히 물러가자 안인의 매서운 시선은 다시 내게로 돌려졌다. 그 사이에도 계속 나 한 사람에게 폭우처럼 쏟아지고 있는 보천구룡대 전원의 살기에 내 몸은 감전되기라도 한 것처럼 찌릿찌릿 반응하고 있었다. 이들 보천구룡대는 소문만 무성했을 뿐 실제로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적어서 몽몽에게 입력되어 있는 자료도 극히 적었는데 오늘 직접 대하고 보니 보스들뿐 아니라 구성원 한 명 한 명 장난이 아닌 것 같다.

“흐음- 벌써부터 밑천을 다 내보일 셈인가, 그대들?”

짐짓 태연하게 거만을 떨어보았지만 안인은 냉소할 뿐이었다.

“당신은 아직 지하무림을 너무나 모르고 있소. 그러면서 살수를 쓰지 않고도 우리 모두를 제압하겠다고 한 말…! 과연 오늘도 지킬 수 있을지 두고 보겠소.”

이런 제기. 또 그거야? 불초도 그러더니… 쯧! 내가 한 그 제안이 이 녀석들 모두에게 그렇게도 기분 나빴던 건가? 그럼 어디- 망가진 김에 끝까지 가봐?

“이봐, 너무 그렇게 고지식하게 굴지 마. 나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위급해지면 못 지킬 수도 있지 뭐. 그러니까 그럴 경우 자네는 내게 영혼을 바친다 해도 약간만 바치라구. 그럼 됐지?”

내 천역덕스런 대꾸에 안인은 어이없어하다 못해 극도의 분노에 휩싸이는 것 같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나름대로 쿨한 인상이었는데 의외로 열혈 사내였나 보다.

“이, 이… 이런 경박한 자가 감히! 마군황을 넘봐-?”

떨리는 말끝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안인은 이를 악물고 내게 달려들었다. 마치 영화 필름을 빨리 돌린 것처럼 순식간에 간격이 좁혀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벼락같은 검광이 내 머리 위로 번득였다. 안인의 공격보다 한 박자 늦게 내 어깨에 걸쳐져 있던 정글도가 투웅 튀어 올랐다. 먼저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리는 강검과 뒤늦게 아래에서 올려지는 박도와의 파워 대결은 보통 뻔한 것이겠지만…

따앙-!

상쾌한 종소리처럼 울려 퍼진 것은 안인의 검이 중간부터 깨져 나가는 소리였다. ‘경악과 불신’이라는 무협지 표준 문법의 표정이 된 안인이 다른 행동을 취할 틈도 없이 나는 정글도로 정확히 그의 목을 그어 버렸다.

“대주!”

안인은 부하들의 고함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뒤로 물러선 다음에야 자신의 목에서 흐르는 피를 깨닫는 것 같았다. 그는 섬뜩함에 몸을 떨며 목덜미를 매만져 보고 있었지만 내가 그에게 치명상을 입혔을 리가 없다.

“뭐어~ 확실히 까다롭긴 하군. 급소 위의 피부만 살짝 베는 건 말야.”

내 말에 비로소 안인의 얼굴이 굴욕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구룡 중 한 명이 이렇게 너무도 허무하게 당해 버려서 그런지 다른 녀석들의 살기가 조금 더 찐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결국 ‘죽은 것으로 치는 사람’이 된 안인은 힘없이 뒤로 물러섰고 바로 다른 부대의 보스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얼핏 십대로 보일 만큼 동안의 청년이었으며 비교적 잘생긴 얼굴…이긴 한데 그 얼굴이 온통 굵직굵직한 흉터투성이다.

“안인 대주가 평정심을 잃었다고는 하나, 단 2초에 제압이라니… 과연 전설의 마군황 후보자답군.”

~답다,라고 감탄하는 것치고는 말투와 표정이 너무 밝은 거 아닌가 싶었다. 자신의 무공에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건가? 아니면 어떤 경우든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오히려 기뻐하는 전사 타입인 걸까?

“삼룡대 대주 ‘적호’라고 하오.”

“너, 벙어리 아니잖아.”

“뭐요?”

“아, 아니 그냥 한 소리니까 신경 쓰지 마. 그보다 이번엔 자네 차례인 모양인데 자넨 2초를 넘길 자신이 있는가 모르겠군.”

“그야 물론…”

무심코 입을 열던 적호가 순간적으로 멈칫하더니 곧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싸우는 것은 우리 삼·룡·대·요.”

흐음- 지금 이 녀석의 망설일 때 시선이 아주 잠깐 저쪽… 그러니까 저 험상궂은 중년 사내에게 향했었지? 그럼 저 남자가 이 구룡들을 이끄는 자일까…? 전형적인 깍두기형이라 보스라기보다는 행동대장쯤의 분위기이기는 한데… 음- 분위기만으로 보자면 반대편의 노인이 더 총 보스 필이 난다. 노인네답지 않게 우람하고 당당한 체구에 긴 백발수염을 휘날리고 있는 모습이 어딘가 야후 장로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음~ 하여간 이제 더 이상은 약올린다거나 해도 안인처럼 혼자 덤비는 놈은 없을 것 같군.

“그럼! 후보자께 한 수 배우겠소!”

“…그러던가.”

난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계속 태연하게 서 있었지만 삼룡이들은 이미 적호의 명령에 따라 재빨리 진형을 갖추고 모다구리 모드에 들어가 있었다.

아무래도… 삼룡이 어쩌고 하면서 우습게 대해도 될만한 녀석들이 아닌 것 같았다.

삼룡대의 진형은 크게 두 줄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앞줄은 보통 쓰이는 것보다 상당히 긴 장검을 지닌 검사 아홉 명이었고 뒷줄의 녀석들 여덟 명은 야구공 정도 크기의 작은 철퇴를 길고 가는 사슬로 쓍쓍- 돌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보다 길거나 던질 수 있는 무기라고 해서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표준과 다른 무기들의 특징은 한 가지 장점을 강화하기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 무엇보다 다루기가 어렵다. 특히 저 긴 사슬의 철퇴, 아니 크기가 저 정도니 그냥 철구라고 해야 하려나? 하여간 저렇게 까다로운 무기를 단체로 쓰려 한다는 점이 꺼림칙했다.

“우와아아아아~~!”

장검 부대가 먼저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선두 세 명의 검 끝이 상단 중단 하단으로 나뉘어 노리고 들어오는 표준 사양에 그 세 명의 등 뒤로 각각 하나의 그림자가 더 어른거린다.

그래봐야 뻔한 이중 공격… 아니, 아니. 삼중이다. 그 사이 좌우로 퍼져 나가는 철구 부대… 포위하려는 건가?

나는 우선 단순하게 일직선으로 찔러 들어오는 세 개의 장검을 동시에 쳐냈다.

그 순간 나는 세 개의 검이 각각 바깥쪽으로 밀려나며 크게 휘어지는 것을 놓치지 않았고, 비로소 적의 병기가 연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 반격을 당한 선두의 세 명이 재빨리 옆으로 비켜남과 동시에 다시 세 개의, 아니 여섯 개의 검이 날아들었다.

상단은 그렇다 치고 하단에서 들어오는 세 개의 검은 내 발목 부근 높이를 베어 오고 있었다.

아래쪽을 쓸어 온다? 도약을 유도?

함정인 걸 알면서도 나는 결국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허공에 뜬 상태의 나에게 철구들이 대포알처럼 쏘아져 왔다.

그러나 내가 천근추를 쓰는 것이 한 발 빨랐다.

마치 발목에 굵은 고무줄 같은 것을 매고 뛰어오른 셈이랄까? 나는 뛰어오른 기세가 무색하게 급속도로 제자리의 땅으로 돌아와 착지할 수 있었고 철구들은 공연히 쌩쌩 머리 위를 날아 지나갔다.

그로서 철구는 간단히 피했지만 검사들이 다시 일제히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어…? 뭐야? 똑같은 모양의 검을 쓰는데 어떤 놈은 연검, 어떤 놈은 강검…? 젠장! 이 자식들 이런 잔머리를 굴리다닛!

짜증스럽기는 했지만 그냥 잔머리 수준이 아니었다.

아홉 명의 수준급 고수들이 휘두르는 검이 어떤 건 기묘하게 휘어지며 사각지대를 찔러오고 어떤 건 강건하게 내 정글도를 받아낸다.

공격과 방어의 포인트가 미묘하게 어긋나며 좀처럼 본래의 내 리듬을 찾기가 어려웠다.

거기다가…..

“웃!”

기어이 날아온 철구 하나가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가뜩이나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얼굴에 흠집 하나가 늘었는데도 열 받을 틈이 없었다.

놀랍게도 총 열일곱 명이나 되는 병력들의 호흡이 너무나 잘 맞는다.

검사들의 협공도 문제지만 아홉 명의 아군이 정신없이 싸우고 있는 틈을 비집고 철구를 날려 공격해 오는 철구 부대의 기습이 더욱 골치였다.

검사들은 자기들 등 뒤에서 한 방이면 부상 내지는 사망인 강철 덩어리가 날아오는지 어쩐지 신경도 안 쓰고 있는 것 같은데도 철구 부대의 공격은 한 번도 아군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다.

빌어먹을! 도대체 얼마나 오래 빡센 훈련을 해 온 놈들인 걸까?

이 빌어먹게 완벽한 협공의 흐름을 깨야 하는데 도무지 한 명에게 집중해서 절기를 사용할 틈을 주지 않는다.

삼룡대 상대만으로 더 이상 체력을 소모했다가는……

그때였다.

바로 정면에서 익숙하게 찔러오는 놈의 검을 막으려는 순간 뒤쪽에서도 파라락 연검이 펼쳐지는 소리가 역시 익숙한 각도에서 들려왔다.

왔 다! 정확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웬지 지금이다 싶었다.

정면의 검을 왼쪽으로 쳐내며 상체를 기울여 우측 뒷편에서 파고드는 연검을 피하는… 그 것이 본래의 패턴.

그러나 이번에는 정면의 검을 쳐낸 후 그대로 정면을 바라보며 한 걸음 앞으로 나가는 것으로 변경했다.

등뒤로 시악-! 소리를 내며 서늘한 검풍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정면의 녀석이 살짝 기울인 오른쪽 어깨 너머로 검은 철구가 화악 날아드는 것을 보았다.

아무리 빠르고 강하게 날 위협해 왔던 철구라도 미리 예상하고 기다린 지금은 그냥 ‘공’일 뿐이었다.

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내 정글도 손잡이에 부딪친 철구는 살짝 각도가 변경되어 날았고, 곧 바로 또 다른 철구와 부딪치며 카앙 소리를 냈다.

각각 괘도가 변한 두 개의 철구는… 아군인 검사 두 명의 안면과 가슴 부위에 둥글게 움푹 패인 자국을 남기고야 땅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솔직히 다른 철구와 부딪쳐 두 명이나 잡는 것까지 계산한 건 아니었는데… 당구로 치면 뽀록구로 두 개를 푼 셈이랄까?

어쨌든 본래 뽀록구 후에 장타라고 했다.

나는 예상 밖으로 고생한 한풀이라도 하듯 연이어 생사금마도결의 절기를 펼쳤고 놈들은 진형을 재정비할 틈도 없이 허무하게 한 명 한 명 내게 제압되고 있었다.

“멈춰!”

내게 버럭 소리친 것은 삼룡대 보스인 적호였다.

부하들의 진이 와해되고 한 명씩 제압될 때까지 왜 보고만 있나 싶었던 그가 비로소 등에서 자신의 병기를 빼 들었는데 그건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부, 즉 도끼였다.

자기 머리 두세 배는 됨직한 크기의 날이 달린 도끼를 녀석은 한 손으로 들고 있었다.

도끼의 크기나 주인의 기세나 웬지 비화곡의 상관마가 떠오르는 분위기였다.

“어디, 내 파산부도 한 번 깨보시오!”

무기 이름이 좀 거시기 하군.

그래서 그런가? 이 친구 분위기가 아까와는 달리 뭔가 좀 이상한 걸? 어째 살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고……

“후후- 안인 대주의 검은 몰라도 이 파산부를 상대로는 좀 어려울 것이오.”

적호는 겉으로 하는 말과 달리 바위처럼 굳은 표정과 무거운 걸음으로 천천히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물론 부하들이 모두 박살났으니 정말 ‘파산’한 회사 사장이라고 할 수도 있긴 하지만… 으음… 이 친구 이거 설마 정말로……

그의 어설픈 도발에 응하는 것처럼 보이긴 싫었지만 이번엔 웬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새삼 안인을 상대할 때처럼 손에 든 정글도를 어깨에 걸쳤다.

이기려 하는 건 고사하고 아까와 같은 투지는 찾아볼 수조차 없던 적호의 눈빛이 나와 가까워져 오자 일순 번쩍 빛을 발했고 입에서는 짐승 같은 괴성이 터져 나왔다.

“우오오오오~!”

내가 속은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갑자기 무서운 기세를 뿜어내는 적호의 파산부가 허공을 쪼개기 시작했다.

나는 그와 동시에 아니 그 전에 이미 생사금마도결의 수면폭결을 발동한 상태였다.

콰앙~! 하고 산이 쪼개지는 듯한 굉음이 울린 후 그의 파산부는 내가 서 있던 땅에 깊숙이 박혀있었다. 초식을 쓰면서 옆으로 비켜섰기에 망정이지 아무리 내 정글도라도 저걸 정면으로 막는 건 무리였을 것이다.

“생사금마도결 중 수면폭결… 어때, 만족해?”

내가 묻자 적호는 내 정글도에 잘려져 나간 도끼의 자루 부분만을 들고 선 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의 생사금마도결에 당했다면 어디 가서 욕은 먹지 않겠지요. 물론 나선금쇄진이 깨졌을 때 이미 저 역시 패한 것이나 마찬가지기도 하고 말입니다.”

적호는 짐짓 담담한 어조로 말하고는 휘릭 몸을 돌려 쓰러져있는 자신의 부하들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앞에 가로막듯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예쁘장하긴 한데 어딘가 기숙사 사감처럼 엄격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였다.

“생사금마도결에 당했으니 욕은 먹지 않겠다…? 흥! 이 ‘초상희’가 두고두고 욕을 해 주겠어요.”

앙칼진 음성으로 적호를 씹은 초상희라는 여자는 적호와 스치듯 지나쳐 내 앞에 나섰다.

처음부터 구룡 중에 여자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막상 싸워야 한다니까 좀… 음……

“그만두시오, 자룡대주!”

갑자기 들려온 소리는 아까 적호에게 뭔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은 소위 깍두기 풍의 사내였다.

초상희는 적호와 달리 힐끗 그를 보았을 뿐 승복할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뭐죠? 우리 구룡의 대주들에게는 본래 서열이 없는 것이 아니었던가요? 승룡대주.”

“그야 그렇지, 평소에는…! 하지만 지금은 ‘구양청’ 대주께 지휘권이 있소. 잊었소?”

구양청은 역시나 야후 장로 풍으로 보이던 그 인물이었다.

그는 초상희를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자신을 주목하자 할 수 없다는 듯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무엇이 자룡대주의 총기를 흐렸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모르지는 않을 터. 삼룡대의 나선금쇄진에 걸리면 우리들 중 누구라도, 아니 구중천의 마군들이라 해도 빠져 나오지 못하지. 그런 나선금쇄진을 저 마군황 후보자께선 마치 놀이를 즐기기라도 하듯……”

어이- 영감님. 나 별로 즐긴 거 아냐. 졸라 고생했다구.

“…알겠나? 이제 우리는 알량한 자존심 따위를 버리고 진짜 우리의 임무를 수행해야 할 때가 온 거야.”

“그, 그럼 결국……”

초상희는 역시 불쾌한 듯 입술을 깨물었지만 더 이상 따지지는 못하고 있었다.

구양청 노인은 나를 향해 정중히 인사하며 말했다.

“실례지만… 지금부터 후보자께 저희 보천구룡대 전원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쳇-!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이렇게 되는군.

아무래도 적호는 무엇보다 이런 게 싫어서 일부로 먼저 패하고 물러난 거 아닌가 싶다.

“마음대로 해. 싸움이란 게 어차피……”

나는 천천히 말하며, 새벽에 매복병들 잡을 때 빼놓았던 교룡피 집을 다시 정글도에 씌웠다.

나선금쇄진인지 뭔지 깨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그런 비슷한 패거리가 아직도 일곱이나 남았고… 그렇다면 나도 이젠 여유를 가질 수가 없는 입장이다.

“이런 거 아니겠어?”

말을 끝냈을 때 나는 이미 초상희의 바로 코앞까지 날아간 상태였다.

화들짝 놀란 초상희가 다급하게 뒤로 신형을 빼며 외쳤다.

“표, 표홀신보?”

“아니!”

나는 그녀와 거리가 전혀 벌어지지 않게 따라붙으며 삼시전결을 날렸다.

급하게 빼어든 그녀의 두 자루 검이 간신히 그걸 막았지만 막는데 급급했을 뿐이다.

나는 순간적인 틈을 노려 그녀의 머리 위를 훌쩍 뛰어넘으며 정글도로 목뒤를 쿡 짚어 주고는 그녀의 등뒤에 착지해 섰다.

“…공공보법! 청명신니가 만든 최고의 보법이지. 그리고… 삼시전결은 알지?”

천연덕스럽게 설명을 하면서도 기습으로 어이없이 당한 초상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조금 걱정되기는 했다.

정파도 아닌 초상희가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비겁하다며 인정을 못하고 계속 게기면 기습한 보람이… 어? 어랏? 저 어깨와 목의 떨림은… 이, 이봐 그렇다고 우는 거야?

여, 여자를 울리는 건 좀……

“오룡대! 아니 자룡대!”

으윽, 깜딱이야! 이 여자 별안간 소리는 지르고 난리야?

“하명하십시오, 대주!”

오룡… 혹은 자룡이라 불리는 모양인 부대의 대원들이 입을 모아 대답하자 그녀는 나나 그 쪽을 돌아보지 않은 채 계속 외쳤다.

“전투 중 대주의… 대주의 사망 시 너희들의 행동은?”

“…부대주인 제가 지휘를 맡아……”

이번엔 상당히 포악한 조폭 스타일로 생긴 남자 혼자 대답하기 시작했다.

“대주의 원수를 쳐, 그 뼈를 갈아 마시는 것입니다!”

어이구- 대답 한 번 참 생긴대로 한다.

“멍청이! 자룡대는 날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야! 구중천, 아니 지하무림 전체의 안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알겠나?”

“아, 알고 있습니다!”

“그럼… 수행하라, 이번 임무를!”

“존명!”

이번엔 부대원 전원의 복창이었다. 녀석들은 조금 전까지의 몇 배나 되는 살기와 뭔지 모를 이글거림(?)에 휩싸여 있는 것 같은… 그런 무시무시한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 상대하기 껄끄러운 여자 한 명 먼저 보냈다가 벌집을 쑤신 꼴이 된 셈이다. 차라리 총지휘관 겪인 저 구양청을 먼저 노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늙은 생강이 맵다고 저 노인네에게는 기습이 먹혔을 것 같지가 않았다.

어쨌든… 그 사이 보천구룡대 전원이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구양청과 승룡 대주의 부대가 포진, 다른 좌우 후방에도 각각 두 개 부대가 배치되어 포위망을 형성한 채 천천히 좁혀 들고 있다. 결국 지휘관과 부대원 전원을 먼저 정리한 건 적호의 삼룡대뿐인 셈인가?

어…? 하늘에 뜬금없이 웬 까마귀떼가 지나가며 까악까악~ 제기, 우라지게 운치 있는 시작종이로군.

예상대로 초상희의 자룡대가 먼저 성급하게 치고 나오기 시작했다. 선두 부대주의 살기 띤 그러나 이성을 잃은 검을 피해 뛰어 오르며 놈의 얼굴에 무릎 찍기를 한 방 먹였다. 누가 누구의 뼈를 뭐 어째…? 라는 응징의 의미가 솔직히 좀 있었다.

부대주를 넘어 뛰어 든 자룡대의 한 복판은… 뜨거웠다. 이상한 놈들이었다. 정말 초상희가 죽은 것도 아닌데 세뇌라도 된 것처럼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들고 있었다. 뭐… 나도 사양 않고(?) 정글도를 마주 휘둘러 치고 베고 찍어 주었다. 순식간에 어딘가가 금가고 깨져 피를 흘리는 자들이 내 주위에 즐비했다.

자룡대…? 아니 어느 사이 어떤 부대의 누구인지 모를 자들의 얼굴과 검이 동시에 사방에서, 혹은 발 밑의 땅바닥에서까지 날 습격해 왔다.

강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한 명 한 명의 검과 무공은 내 생사금마도결에 못 미칠지 몰라도 오랜 세월 담금질한 만큼 신념과 각오가 넘쳐흘러서 아차하면 거기에 먹혀 버릴 것만 같았다.

뜨겁다.

몽몽의 가상현실이 아무리 현실과 똑같아도 한 가지는 흉내 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처럼 뜨거운 무언가를 태우며 달려드는 적들! 그리고 어느 사이 그보다 더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나 자신!

문득, 허리께에 섬뜩한 감각이 훑고 지나갔다. 왜 당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해와는 별개로 주춤한 순간 몇 개인지도 모를 칼날이 날 베고 지나갔다. 비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어디선가 ‘잡았다!’, ‘죽엿!’ 그런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죽여? 누굴? 날? 웃-기지맛!

땅을 박차고 일어서며 월광절화결(月光切花訣)을 펼쳤다. 그리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허공에 그린 푸른빛의 반원… 1미터 정도 크기의 초승달 세 개가 서서히, 정말 느리다 싶게 적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맙소사! 지금 내가 뭐한 거야? 월광절화겨-얼?

“막지 말고 피햇!”

정작 펼친 내가 고함을 질러야 했다. 본능적으로 뭔가 느낀 자들이 황급히 신형을 날려 사방으로 몸을 피했지만 한 명의 사내가 자신의 두꺼운 철봉(鐵棒)을 믿고 초승달을 막았다. 나는 다급하게 공공보법을 펼쳐 철봉 사내에게 몸을 날렸다. 푸른 초승달이 스스슥- 철봉을 종이장처럼 베며 나아가자 비로소 사내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크와악-!”

비명을 지르는 사내의 멱살을 한 손으로 잡아채서 간신히 옆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1초만 늦었어도 사내의 몸이 반 토막 났을 것이라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내가 만든 거라도 정이 안 가는 살인 초승달, 일명 청섬백(靑纖魄)은 내게서 50미터쯤 떨어진 곳까지 가서야, 그리고 그중 하나는 커다란 바위를 반쯤 가르다가 스르르 사라지고 있었다.

“아… 저기. 미안! 그만 빡 돌아서 살수를 쓰고 말았네?”

어색한 태도로 모두에게 사과를 했지만, 이미 분위기는 완전히 깨져있었다. 청섬백의 비록 느리지만 절대적인 위력 앞에 다들 말문을 열지 못했다. 나 역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지금도 완벽하게 펼쳤다고 할 순 없지만- 생사금마도결 최고 난이도의 절기를 실현한 기쁨보다는… 그냥 좀… 벌쭘했다.

“아아- 다들 안심해. 월광절화결은 나도 아직 완성 못했는데 얼결에 나온 거니까 말야.”

으~ 이런 말도 뭔가 어색하다. 그 좋았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이런 식으로 망가져 버리다니……

“…이젠 되었습니다.”

구양청이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그나마 자기 힘으로 서 있는 사람은 구양청… 그리고 미리 죽은 거로 친 안인, 초상희, 적호까지 합쳐도 네 사람뿐이고 다른 병력들은 거의 부상으로 전멸 직전이었다. 그들 역시 다들 맥이 풀린 듯한 모습이었다.

“천하의 보천구룡대에게 주어진 임무가 단 한 사람을 상대로 제압이나 제거도 아니고 단지… ‘발목을 잡으라’는 것이었을 때, 우리는 누구도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설마 그 임무조차 완수하지 못하다니……”

“아니, 아니야. 충분히 완수했어.”

난 손을 휘저으며 제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난 지금 정말 죽을 지경이라구! 조금… 쉬었다가도 되겠지?”

내 말에 구양청과 세 명의 대주들은 깊숙이, 아주 깊숙이 상체를 숙이고는 곧 부상자들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아예 땅바닥에 길게 대자로 누워 버렸다.

<으아아~ 죽겠다, 죽겠어. 긴장이 좀 풀리니까 아주 환장하겠네.>

[상처의 지혈은 이미 시행 중입니다만, 빨리 소지한 구급약을 사용하실 것을 권고합니다.]

<에구, 그래야 하는데, 졸라 힘들다. 숨은 그리 가쁘지 않은데도 웬지 기운을 바닥까지 다 허비해 버린 것 같아.>

[전투 중에는 참견할 수 없었지만, 주인님은 전장의 분위기에 쉽게 동화되는 타입인 것 같습니다. 좀 더 냉철하게 전투를 진행했더라면 후반의 부상을 대부분 입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의 가상현실과 뭔가 다르더라구. 뭔가… 조절하기 힘든 불꽃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 실제 전장에는 말이야.>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보다 완벽한 시스템 구현을 위해서는 파악해 두어야 할 것 같군요.]

학구열(?)에 불타는 몽몽을 실망시키기 싫어서 대꾸는 안 했지만, 아무리 완벽한 인공지능이라도 인간의 정신세계를 과연 그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주인님! 새로운 적입니다.]

<으으-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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