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43화 : – 에필로그 – [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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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2부 – 43화 : – 에필로그 – [2부 끝]


  • 에필로그 –

“다녀왔습니다.”

나는 현관에서 두 달 전 집으로 복귀했던 그날처럼 무미건조한 인사를 한 다음 거실을 가로질러 내 방으로 향했다.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시던 어머니께서 또 며칠을 소식도 없이 나갔다 온 거냐며 역정을 내셨지만, 나는 간단하게 전처럼 산에 등산을 다녀왔다고만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뿐 아니라 식구들 모두 최근의 내 모습에 걱정스런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예전처럼 밝게 웃고 떠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난 방에 들어오자마자 핸드폰… 아니 최신형 핸드폰으로 가장한 미래 로봇 몽몽을 책상 위 컴퓨터(현 시대의) 본체 옆에 놓고는 땀에 절은 옷을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내 방의 컴퓨터는 제대 선물 겸 앞으로의 취업 전선에 대비하라는 명목으로 부모님이 들여놓아 주신 최신 기종의 컴퓨터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나나 몽몽이 쓸 일은 없었다.

내 방에 연결된 케이블 선을 통한 인터넷만을 몽몽이 직접 이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운기조식을 조금이라도 할까 하다가 역시 이곳에서는 별 소용없을 것 같아서 그냥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과거의 세계로부터 돌아온 이후 내가 첫 번째로 알게 된 것은… 우리 시대의 기, 즉 지구라는 행성의 에너지가 과거에 비해 너무 많이 변해 있다는 점이었다.

몽몽은 현재 지구 에너지의 양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아직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에너지 흐름이 불규칙적이고 엉망이 되어 버린 것 같다고 했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 집이 위치한 이 동네 같은 곳은 과거에 비해 3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 미약한 기의 흐름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없이 자주 에너지 흐름이 좋은 산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내공을 유지하는 걸 넘어 더욱 키우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그리고 몽몽의 기본 자료와 현 시대의 자료들을 틈나는 대로 뒤지고 분석하며 시간과 신이란 존재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지난 두 달 동안의 내 일과였다.

물론 대교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순간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미래 여자 진의 말처럼 내가 어떤 짓을 하더라도 그런 초월적인 존재에 대항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진을 기다리기만 하는 건 더욱 견딜 수가 없었다.

[ 주인님…! ]

“……”

[ 저어 주인님! ]

조금 전부터 요정 몽이 부르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로 돌아온 후 요정 몽이 인터넷에서 곧잘 찾아내 재밌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유머글이니, 쇼킹한 사진 따위에 흥미를 느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흐응- 할 수 없네. 일단 이 노래를 한 번 들어보세요. ]

귀찮은 생각에 그만두라고 하려는 순간이었다.

책상 위의 스피커에서 웬지 귀에 익은 듯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눈을 뜬 내 귓속으로 애초로운 듯한 미성이 은근히 감겨오는 듯한…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음성의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견디기 어려운 감정에 사로잡혀 입술을 깨물었다.

“요정 몽… 너… 대교의 음성으로 노래를 만든 거냐…?”

[ 아뇨. 이 것은 현 시대 홍콩 아이돌 스타의 노래예요. 조금 전 우연히 발견한 건데 몽몽 오빠가 분석해 보니 음성 파장이 93%나 대교 아가씨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사진도 여러 장 찾아냈는데… 자아 보세요. ]

몽몽이 내보내는 영상이 내 책상 위로 스윽 떠올랐다.

끔찍하도록 눈부신 시간 초월의 광채 너머로 눈물을 흘리며 멀어져 갔던… 대교의 얼굴이 내 방의 책상 위 허공에서 웃고 있었다.

대교와 같은 얼굴의 소녀가 현대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로 미소짓고, 무대를 뛰어다니며 노래 부르는 모습들…

[ 홍콩 출신으로 일본과 동남아일대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데… 그보다 중요한 건 바로 어제 오전 11시에 이 곳 한국에 입국했대요. 국내 대기업의 음료 CF모델로 계약이 되어 촬영차 방문한 건데 오늘 저녁 서울의 고려호텔에서 기자회견 후 팬 사인회가… 아, 주인님…? ]

“계속해.”

[ 아니 저… ]

요정 몽이 당황해 하는 것은 내가 갑자기 몽몽을 들어 녀석에게 연결된 줄을 목에 걸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3층에 위치한 내 방 창문을 열고 창 밖으로 몸을 날려 건너 편 4층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 주인님! 침착하십시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닌데 이런 돌출 행동을 하시는 건… ]

“닥쳐, 몽몽! 시간은?”

[ 저녁 9시입니다. ]

현재 시간은 9시 10분…!

나는 후욱- 숨을 들이키면서 예전에 몇 번 본 적이 있는 호텔 건물의 방향을 가늠해 보았다.

[ 다른 사람들이 많은 장소입니다. 제가 그녀의 숙소와 이후 스케줄을 알아낼 테니 좀더 차분하게 확인을… ]

나는 몽몽의 충고가 끝나기도 전에 발 밑의 시멘트 바닥을 박차고 도시의 밤하늘을 가로질러 날기 시작했다.

탁한 공기가 거세게 내 얼굴을 쳤고 수많은 도시의 빛들이 꼬리를 늘어트리며 내 뒤로 날기 시작했다.

나는 공공보법을 최대로 발동하여 다음 건물의 옥상에서 옥상으로, 때론 전봇대의 끝을 밟고 뛰며 미친 듯이 날고 또 달렸다.

10여 분 후.

짧은 시간이었지만, 공공보법을 한계까지 펼쳐 달린 탓에 나는 고려 호텔 바로 앞에서 조금 호흡을 조절해야 했다.

[ 주인님…! 현 시대의 사회에서 주인님의 무공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좋을 게 없다고 하신 건 바로 주인님이십니다. ]

“그래… 그랬지. 하지만……”

나는 더 말하지 않고 호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내 차림새를 흘끗거리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 로비의 안쪽 복도로 접어들자 중간쯤에 활짝 열려 있는 문이 보였다.

그곳으로부터 신분증을 가슴에 붙인 기자들이 하나 둘 빠져나오고 있었다.

활짝 열려있는 그 문 안에… 대교의 얼굴을 한 소녀가 있었다.

수많은 팬들과 번쩍이는 카메라 불빛 속에서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종이에 사인을 해주고 있었다.

[ 1차 스캔 결과, 그녀의 신체 외형은 상당부분 대교 아가씨와 일치합니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아가씨 본인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검색된 프로필 상의 나이도 대교 아가씨보다 어린 것으로…… ]

“아니, 네가 틀렸어, 몽몽.”

[ …… ]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아.”

나는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며 사랑한다고 외치는 이들이 있었다.

“어떤 이름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도 상관없어.”

줄을 서라는 사람들의 경고가 있은 후 내 앞을 가로막는 남자가 있었다.

손을 들어 가볍게 옆으로 밀어내자 곧이어 어디선가 건장한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나를 막고 내 팔을 잡아 비틀려는 시도에도 아랑곳없이 나는 그녀의 앞으로 한발 한발 다가갔다.

사방에서 비명과 욕설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그녀도 놀라 일어서고 있었다.

“나는… 알 수 있어. 네가 그녀… ‘대교’라는 것을.”

보디가드들의 등 뒤로 몸을 피하던 그녀가 문득, 멈춰 섰다.

“당신… 누구죠? 어떻게 내 아명을……”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얘기가 많았지만… 너무나 많아서 어디부터 얘기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이렇게 시작해야 할까?

난 대교 널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 그래… 천년 전의 어느 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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