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6-2화 : 만화곡(萬花谷)? 만화곡(漫畵谷)?(2)
- 만화곡(萬花谷)? 만화곡(漫畵谷)?(2)
“왜 그러십니까, 곡주님?”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궁금한 처지라 미령이의 질문에 바로 답하는 대신
마차 문을 열고 내려왔다. 그제야 대교와 다른 자매들도 말에서 내려 내게 다가왔지만
나는 잠시 샛길 너머의 마을 쪽을 올려다보며 망설였다.
“…여기 한 번 들러봐야겠다. 대교… 비연대 대장과 부대장, 수석무사 두 명만 날 따라와
다른 이들은 모두 2급… 아니, 그냥 3급 경계만 하도록.”
‘1급 경계’는 모두 흑주처럼 비밀리에 바싹 따라 오라는 뜻이고
2급은 내가 이동하려는 목적지 근처를 포위하고 대기하라는 뜻,
그리고 지금 내린 3급 경계 명령은 현 상태에서 대기하라는 의미였다.
3급 경계라는 건 사실상 그냥 대기하고 있으라는 일상적인 상황인 셈이지만
내가 직접 하는 명령이라 그런지 다들 조금 긴장하는 눈치였다.
“뭐, 별건 아닐 거야. 그냥 좀 혹시나 해서……”
내가 그렇게 말하며 먼저 걸음을 떼자 대교와 동생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샛길로 몇 십 미터 정도 걸어 들어가며 나는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쓰고 있던 인피면구를 벗어 품속에 넣었다.
최근 업그레이드된 인피면구는 전과 달리 나 진유준의 본래 얼굴과 전혀 다른 것이 조금 아쉬울 뿐,
장시간 써도 그리 불편하지 않게 제작되어 이번에 나와서는 잠자리 외에 거의 벗지 않았었다.
지금까지 지나온 다른 마을이나 성에서와는 반대로 나는 인피면구를 벗고
대교자매들은 얼굴을 가리던 면포를 쓰지 말라고 했더니
다들 궁금해하는 눈치였지만 당장 뭐라 묻지는 않았다.
이미 전방에 마을 입구가 나타났고 그 주민인 듯한 젊은 여자 두 명이
나물 바구니를 들고 선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을은… 단지 가끔 오가는 주민들의 복장이 중국 옷이라는 거 외에는
우리 나라의 시골마을과 그리 다른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저 평범한 시골 동네였다.
나는 천천히 마을을 한 바퀴 돌며 마을과 주민들을 살핀 다음 마을을 빠져 나왔다.
아니, 그 전에 작은 사고(?)가 하나 있었다.
마을을 막 나올 때쯤 한 5, 6세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 하나가
내 앞을 가로질러 쪼르르 달려가다 요란하게 자빠지더니 울음을 터트렸던 것이다.
반사적으로 일으켜 세워주자 꼬마 아이는 거짓말처럼 울음을 멈추고 멍하니 날 올려다보았다.
“괜찮냐?”
“예, 예……!”
착하구나~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일어선 나는
그 인형처럼 귀여운 꼬마아이를 뒤로하고 돌아오며 피식거리며 웃었다.
웬만하면 벌써 내 이상하고 뜬금없어 보이는 행동들에 대해 물었을 미령이조차
쉽게 입을 열고 있지 않아서 이번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령아, 넌 조금 전의 마을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못 느꼈니?”
“글…쎄요. 미령은 별다른 느낌은… 굳이 이상하다고 하면
다들 곡주님과 저희를 보고도 그리 놀라지 않는다는 정도일까요?”
“그렇지? 지금까지 지나온 모든 장소에서 너희들의 미모는
충분히 주목받곤 했는데 말이다.”
내 말에 소령이는 소교에게 ‘우리가 정말 그래?’ 하고 묻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은 남녀 모두 하나같이 너무 예쁘장하고…
아, 그리고 제대로 근육질의 체구인 사람이 한 명도 없었지?”
“아, 그곳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다들 용모가 웬지 좀 이상한 듯도 하네요.”
“전에 본 사라 코너라는 백인 여자 기억하지? 그 느낌이 좀 섞였다고 생각하지 않니?”
내 말에 이번엔 소교가 입을 열었다.
“아, 그렇군요. 다들 어딘지 이질적인 느낌이다 했더니
그 백인 여자와 어딘가 닮았군요. 어머, 그럼 이 마을은 혹시……”
“그 전설의 순정촌(純情村)……?”
대교가 대표로 먼저 놀라며 새삼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멀어진 마을 입구에는 내가 일으켜 준 꼬마아이만이 홀로 계속 이 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교 자매들은 늘 그렇듯 ‘별걸 다 알아내는 곡주님’이라는 존경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저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전설의 순정촌’이란 건 비화곡 서고에 있는 강호기담(江湖奇談)이라는 책에도 짧게 수록되어 있는 마을로
써, 분명히 색목인(色目人, 서양인)이 아닌데도 피부가 눈처럼 하얗고
남자도 여자처럼 손발이 가늘며 눈이 크고 여자처럼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고 되어 있다.
전에 심심해서 강호기담을 읽을 때는 무심코 넘어갔는데,
이건 딱 ‘순정 만화’ 등장인물들의 묘사 아닌가.
,,,나참! 여긴 그럼 정말 만화(漫畵) 속의 마을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거야, 뭐야?
“그렇다면… 저 꼬마가 나중 커서 마을을 빠져나올지도 모르지.
어릴 적 단 한 번 보고 잊지 못했던 ‘왕자님’을 찾아서…
음, 어쩌면 수많은 모험 끝에 자기 마을의 위기를 구할지도……”
마차로 돌아오는 동안 계속된 내 혼잣말에 대교 자매들은 모두 매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눈만 껌벅일 뿐이었다.
훗~ 생각을 그리 하니까 정말로 대교 자매들 머리 위에 ‘?’ 마크가 떠오르는 것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아니… 그보다, 혹시나 했던 일을 직접 보고 오니
웬지 재밌기도 했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웃을 일만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마차 안에서 다시 몽몽을 불렀다.
“야, 몽몽! 아직 못 찾았냐, 이 계곡 안의 이상한 점.”
[ …분석중입니다만, 현재까지의 특이 사항은 이 계곡 안의 에너지 흐름이 다른 곳과 조금 다른 정도입니다. 이 시대 풍수지리 이론에서 수맥과 지맥으로 표현되는 특정 에너지의 양과 흐름의 패턴이 계곡 바깥 지역과 다른 것은 분명하지만, 현 환경이 주인님과 일행의 신체에 특별한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닙니다. ]
“…그럼 기간은 어때? 이 환경에서 아주~ 오래 산 사람들은 어떨까?”
[ 50년간의 가상 시뮬레이션은 이미 실시했습니다만, 역시 특별한 변화는 없었습니다. 시간 흐름의 패턴, 조건 등을 추가하고 싶으시면 구체적인 옵션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니, 뭐… 그럴 건 없고, 그냥 기본 옵션으로 100년 단위로 1000년, 아니 그 이상도 좋으니까 계속 실험해 봐.”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오려면 좀 걸린다고 해서 나는 부드러운 등받이에 상체를 실으며 눈을 감았다. 갑자기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만화’곡이라는 지명과 ‘순정’촌이라는 마을은 분명히 특이했지만, 단지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는 걸 내가 너무 황당하게 확대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미 시간 여행이라는 매우 드문 경험을 한 번 했던 나지만, 뜬금 없이 ‘만화 나라’ 여행 같은 걸 하게 된다면… 내가 무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아니고… 응…? 갑자기 밖이 왜 이리 시끄럽지? 얼른 인피면구 쓰고 마차 창을 열어 보자.
어…? 마차 주변에 웬 집들이 늘어서 있네? 내가 딴 생각하고 있던 사이 마차가 웬 마을로 접어든 모양이다. 흠… 계곡 안 치고는 꽤 크고 번화한 마을인 모양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마차가 멈추어 설 정도로 사람이 붐빈다는 건 좀 이상하군. 아무래도 이건 앞에 무슨 일이 있어서 구경꾼이 몰린 분위기 같다.
“오늘 이 곳에 특별한 행사가 있는 모양입니다. 아, 무슨 요리 대회라고 하는군요.”
“요리 대회?”
“예, 이 지역에서는 1년에 한 번씩 다른 마을의 식당들까지 모두 참가하는 큰 요리 대회가 열리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여기서 좋은 성적을 내는 식당은 1년 내내 큰 이득을 보기 때문에 무공 대결 못지않게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그래…? 어디 잠깐 구경 좀 하고 할까?”
내가 구경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마자 혈랑대 백인 장 ‘백상'(이 친구는 또 데리고 나왔다.)이 나섰다.
“그럼,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그만 둬, 눈에 띄는 행동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막상 마차에서 내리고 보니 제대로 구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긴 했다. 현재 내 힘으로 두터운 구경꾼들의 벽을 뚫을 자신이 없어서 어디 높은 장소 없나 두리번거리다가 결국 나는 ‘혈랑대의 힘’이 아닌 ‘돈의 힘’을 쓰기로 했다.
흠… 대회가 열리는 광장 옆의 객잔 2층 방에 자리를 잡자 대회장의 전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군.
“와~ 생각보다 큰 대회인가 봐요.”
미령이가 감탄을 섞은 음성을 내더니 창가에 바싹 다가서서 소령이와 뭐라 조잘대기 시작했다. 훗~ 미령이는 지가 알아서 저렇게 여행을 즐길 줄 알았지만, 고지식 소녀 소령이도 저리 들뜬 모습을 보니 새삼 모두 데리고 나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소교, 이 하 자매들 모두 전에 나왔을 때는 혈의승에게 납치되는 등 고생만 바가지로 했으니 비화곡 밖의 세상을 여유를 가지고 보는 건 처음인 셈인가?
“대교야, 모두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으라고 해. 이 곳에서는 딱 한 명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으니까 말이야.”
나는 흑주가 어김없이 짱 박힌 천장을 눈짓하며 명령을 내린 다음 느긋하게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뭐, 흑주 녀석이 내려와 함께 술 한 잔 빨겠다고 나서면 졸지에 가장 고수인 대교가 보초 근무를 서야겠지만 그럴 리가 없으니… 음- ‘답파화미인’이라는 그 수수께끼 같은 문장의 의미를 빨리 알아내야 하는 데……
요리 대회는 곧 시작할 모양으로 대회장 중앙에 쌓여있는 요리 재료들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조리대가 원형으로 설치되고 있었다. 음… 한 쪽의 대기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참가 요리사들인 모양이지? 근데, 뭔 요리사들이 저래? 절반 정도는 정상적인 요리사 분위기의 복장인데 절반은 무슨 기인 열전에 출연한 것도 아니고… 웃통을 벗은 거구의 근육질 인상파도 있고 리오 카니발을 연상케 하는 복장의 야시시한 여자 요리사가 있지 않나, 미령이보다도 한참 어린 듯한 꼬마 소년 요리사… 어랏~? 어째 이거 무슨 요리 SF무협 만화에서 본 듯한 인물상들일세? …에이~ 설마… 이 큰 요리 대회에서 저 작은 소년 요리사가 우승하는 이변이 당연한 듯 벌어지는 건 아니겠지? 훗~! 그럼 정말 만화지, 암. 현실에서야 소년부 우승이라면 몰라도 이런 무제한 대회에서 무슨… 응? 근데 어째 소년 옆의 인물은 좀 낯이 익은 걸?
“어머머-? 저 인간을 여기서 만나네? 곡, 아니 도련님!”
긴가민가해서 시력 터보 모드를 작동시킬까 하는 참에 미령이가 먼저 그 남자를 알아보고 날 돌아보았다.
“세상에, 도련님. 저기에 그 작자 ‘식인왕’이 있어요.”
미령이가 창 밖을 가리키며 낮게 외치자 실내의 분위기가 급격히 어수선해졌다. 물론 우리 일행들이야 별 동요가 없었지만, 이 큰 객실에 먼저 든 손님들을 다 내쫓기는 뭐해서 남겨둔 일반 주민들이 놀라서 저마다 외치기 시작했다.
“마, 맙소사! 그 식인왕이란 말인가?”
“그 미친놈이 비화곡에서도 쫓겨났다고 하더니 여기 나타났단 말인가?”
“큰일이요. 어서 밖에 알립시다.”
나는 잠시 망설였으나 결국 사람들이 못 나가도록 출구를 막도록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설마… 당신들 식인왕과 무슨 관계가 있소?”
살기 등등한 혈랑대 두 명이 입구에 서 있는 것만으로 겁에 질린 사람들 중 그래도 가장 당당한 선비 풍모의 중년인이 나서더니 내게 그렇게 물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에게 포권하며 양해를 구하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본인도 물론 인육을 탐하는 작자를 좋아할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이 사실이 밖에 알려지면 저 대회 자체가 난장판이 될 터이니, 되도록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음… 저는 이 고막수촌(高膜修村)의 ‘고상하’라고 합니다. 대인께서는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방법이야~ 있지요! …백상! 가서 그 작자에게 자네 얼굴만 살짝 보여 주고 오게.”
“예! 알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한 백상은 미령이 쪽을 힐끗 돌아보며 피식 웃어 보이더니 밖으로 나갔다. 미령이도 옛날 기억이 났는지 얄궂게 웃는 표정이 되어 다시 창가로 다가섰다. 나도 그런 미령이 옆에 팔짱을 끼고 섰고 내 뒤로는 고상하라는 중년인과 다른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고개를 빼고 대회장을 내다보았다. 대회가 막 시작되는 순간이었고 다른 많은 요리사들과 함께 식인왕도 거들먹거리며 자신의 조리대 앞에 서서 칼을 집어 들고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첫 번째 요리 재료를 자르기 위해 칼을 머리 위로 치켜들던 식인왕은 갑자기 툭, 하고 칼을 놓치더니 이상한 비명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시선은 구경꾼들 사이의 한 인물에게 향해 있었는데, 물론 그 인물은 음험한 표정으로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백상이었다. 백상은 한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스윽 긋는 시늉을 해 보였고 식인왕은 어~어~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날 찾아 사방을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시선이 결국 내 쪽을 향하게 되었고 나는 ‘그래 나야~ 나!’라는 뜻으로 웃으며 살짝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얼마 후… 분위기로 보아 참가 선수 한 명이 갑자기 미친 듯 몸을 떨며 대회장을 빠져나가다가 자빠지고, 그대로 기어서 구경꾼들 사이로 사라져버린 작은(? ) 사건은 대회의 열기에 묻혀 금방 잊혀지고 있었다. 대신 아직도 무지 신기한 일을 목격한 듯 계속 웅성대고 있는 여기 객실 안의 주민들을 대표해 고상하라는 중년인이 내게 깊숙이 상체를 굽혔다.
“오오~ 식인왕은 강호인 중에도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보통 내력을 가진 분이 아니었군요. 대회 운영을 맡고 있는 분들을 대신해 제가 감사를 드립니다.”
나야 뭐, 요리 대회 자체보다도 그거 구경하는 재미를 지키기 위해 한 일이지만… 하여간 그런 목적도 이루고 가끔씩 생각나서 짜증났던 식인왕 놈이 망가지는 걸 보게 된 것도 흐뭇했다. 근데 뜻밖인 것은 식인왕의 정체를 알게 된 주민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다들 식인왕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오래 전에 이 만화곡을 떠났다가 최근 돌아온 녀석이 알고 보니 강호에서 식인왕으로 악명을 떨친 그 놈이었구나…라는 얘기였다.
식인왕이 간단하게 축출된 요리대회가 계속 진행되는 동안 고상하, 알고 보니 이 동네 촌장의 아들이라 그는 나와 동석하여 친절하게 대회 진행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근데… 대회가 계속되면서 나는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대회의 가장 큰 화제 거리는 내가 ‘설마’라고 생각했던 그 소년 요리사의 활약이었지만 내 짜증의 원인은 소년 요리사의 그런 비현실적인 천재성 때문이 아니었다. 천재 소년이야 원판의 경우도 있고… 하여간 있을 수도 있다 치겠는데, 대회를 관람하는 주변인들의 태도는 그야말로 짜증이 났다.
“하하하~ 어떻게 저런 어린 소년이 감히 대회에 출전했는지… 가소롭기 그지없는 일이로군.”
다들 이러다가 결과가 나오면……
“오오~ 진정 놀라운 천재로다. 어떻게 저런 창의적인 발상의 요리를 만들 수 있을까!”
이러다가 또 다음 경기로 넘어가면,
“뿌핫하하~ 저 어린놈은 아예 경기를 포기했구만~! 어떻게 그런 한심한 재료를 선택한 거냐, 응?”
이러다가 또……
“우와아~ 멋지다. 역시 일제객점의 어린 주방장답구나~!”
구경꾼들이 모두 바보거나 기억 상실증 환자도 아닐 텐데, 이미 몇 번의 경기로 소년 요리사의 실력이 드러난 상태에서도 이런 식의 급변하는 반응이 반복되었다. 계속 결승전까지!
“저어… 진대인께서는 이번 결승전에 남은 저 두 요리사 중에서 누가 우승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대회가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 이렇게 먼 거리에서 지켜보면서 요리는 먹어 보지도 않았음에도 계속 승자를 알아맞추는 내 능력(?)에 놀란 고상하는 아직 결승전에서도 그렇게 물어왔다. 눈치를 보니 대회 내내 한쪽에서 지들끼리 돈내기를 하고 있던 자들도 내 대답에 잔득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심사위원들이 어떤 요리를 먼저 시식하는지를 본 다음 대답했다.
“저 소년 요리사가 우승할 거요. 아마도… 처음엔 심사관들 모두 상대방을 더 칭찬하겠지만 결국 소년 요리사를 선택할 거요. 뭐… 요리 맛 외의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말이오.”
“예? 어떻게 그런 것까지……”
나는 더 지껄일 기분도 안 나서 구체적인 대답을 해 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서 버렸다. 고상하와 다른 이들이 모두 창가로 몰려갔다가 결과를 확인하고 놀라움의 탄성을 지를 때, 나는 이미 객실을 나서는 중이었다. 터덜터덜 마차로 돌아가 탑승하자 마차 뒤로 고상하와 수많은 이들이 무슨 사이비 교주를 따르는 신도들처럼 몰려들었지만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바로 마차를 출발시켰다.
“와아~ 요리를 드셔보신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렇게 다 알아 맞추시는 거죠?”
웬일로 미령이와 소령이가 마차에 함께 타고 싶다고 요청하는가 했더니 그 것이 무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건… 심사관들이 계속 소년 요리사 보다 다른 요리사의 요리를 먼저 맛보고 칭찬했기 때문이야.”
“예? 어떻게 그런… 아, 하지만 마지막에는 반대였잖아요. 그건 어떻게 된 거죠?”
“…마지막에는 그래도 ‘반전’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하기 마련이지. 결국 뻔한 거지만……”
“저… 그럼 초기에 여러 명이 동시에 겨룰 때는 어떻게 승자들을 골라 내셨습니까?”
이번에 물은 것은 소령이었다.
“그것도 간단해. 복장이나 행동이 뭔가 특이한 자들이 이기고 조용하고 눈에 뜨이지 못하는 자들이 지는 거야. 그런 자들과 소년 요리사와의 대결이 더 재미있거든.”
“아~ 그럼 혹시 저 대회의 심사관 모두가 소년 요리사를 우승시키려고 사전에 모의를 했다는 말씀인가요?”
“그건 아닐 거야.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지만.”
“예…? 우~ 미령은 전혀 이해를 못하겠어요.”
“그냥… 그 정도만 알아 둬.”
솔직히 정말 이해가 안 가는 건 나다. 전에도 가끔씩 나 자신이 20세기에서 매우 지겹게 보았던 특징 없는 무협지 속에 들어 온 거 아닌가 할 정도로 정해진 법칙의 상황을 겪은 일이 있긴 했었다. 하지만 좀 전의 요리 대회는 좀 심한 거 아닌가 싶다. 조연들의 역할과 주연의 특징 등등 모두 전형적인 무슨 ‘요리왕’ 어쩌고 하는 만화들의 특성을 따르고 있다니……
“소령아, 선발대에게… 이 만화곡을 빠져나가기 전까지 또 무슨 마을 같은 곳이 나오면 들어가기 전에 그 곳의 이름이 뭔지 나에게 보고하라고 해, 실시!”
“예, 실시!”
으음… 이봐, 몽몽! 나 진짜 만화 나라에 들어 온 거냐?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