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9-1화 : 절화행(折花行)
2-1. 절화행(折花行)
“이 천의 주인이… 네가 아는 사람이라고?”
내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렇게 묻자 진하연은 대답 대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을 꺾어든 미인이 창 앞을 지나며… 웃음 띤 얼굴로 애인에게 묻기를… 꽃이 예뻐요? 제가 예뻐요? …이에 애인이 짐짓 장난으로 말하길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갑자기 뭔 소린가 했더니 아무래도… 시를 읊는 것 같군.
“…그 말에 토라진 미인은 꽃을 밟아 뭉개며 말하기를… 꽃이 저보다 더 예쁘거든, 오늘밤은 꽃이랑 주무세요.”
어… 거, 괜찮네? 사실 나야 현대시든 고전한시든 시(詩)라는 장르와 결코 친하지 못한 처지지만 그런 내가 듣기에도 이 시는 상당히 느낌이 좋은 걸? 이른 아침 꽃을 꺾어 들고 애인 앞에 나타나 애교를 부리는 귀여운 여인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아, 이런, 이런~ 지금 시 감상할 때가 아니지?
“어때요, 오라버니. 여기 새겨진 답파화미인이란 글… 이 절화행(折花行) 속의 여인과 일치되는 점이 많지요?”
“…과연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몽몽이 방금 제공한 자료 화면을 읽어보기 위해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는 척을 했다.
[ 절화행(折花行).
모란함로진주과(牡丹含露眞珠顆) 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을
미인절득창전과(美人折得窓前過) 미인이 꺾어들고 창 앞을 지나며
함소문단랑(含笑問檀郞) 살짝 웃음띠고 낭군에게 묻기를
화강첩모강(花强妾貌强) “꽃이 예뻐요, 제가 예뻐요?”
단랑고상희(檀郞故相戱) 낭군이 짐짓 장난을 섞어서
강도화지호(强道花枝好)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미인투화승(美人妬花勝) 미인은 그 말 듣고 토라져서
답파화지도(踏破花枝道) 꽃을 밟아 뭉개며 말하기를
화약승어첩(花若勝於妾) “꽃이 저보다 더 예쁘시거든
금소화동숙(今宵花同宿) 오늘밤은 꽃이랑 주무세요.” ]
끝에서 세 번째 줄의 ‘답파화’… 그리고 전체 내용으로 보아도 답파화미인이란 말의 유래가 틀림없이 이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발견했다고 유레카~! 혹은 심봤다~!?를 외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너무 티 내기 싫어서 참고 있자니까 몽몽은 한 줄의 정보를 더 추가했다.
[ 대동시선(大東詩選)에 수록되어 있으며 저자는 이규보(李奎報) – 고려시대의 문신, 문인(1168∼1241). ]
에…? 진하연이 읊은 시를 활자화한 것이 아니었어? 이규보…? 웬지 귀에 익은 걸? 음… 자세한 프로필까지는 생각이 잘 안 나지만 나 진유준이 이름이라도 귀에 익을 정도의 시인이나 문장가면 상당히 유명한 분인 거다. 이 정도 관련 자료를 몽몽은 왜 전에는 제공하지 않았던… 아, 혹시 고려인이라서? 어랏? 그보다 저 연도는 뭐야? 고려시대는 고려시대인데 지금 내가 있는 시기로부터 거의 200년이나 뒤에 등장하는 분이란 말야?
[ 주인님이 지시하신 작업의 기본 요건인 ‘과거 자료’에는 해당하지 않아. 지금까지의 검색에서 제외되었던 모양입니다. ]
그건 이해가 되지만… 확실히 기억나는 것 만해도 한 두 번이 아니군. 이번처럼 이 시대의 문학작품이나 인물의 등장 시기 같은 ‘직접 겪게 되는 역사적 사실들’이 우리 시대에 알려진 역사와 다른 경우 말이다. 이런 경우들이 모두 역사 학자들의 실수? 아니면 의도적인 왜곡…? 흐음… 언제 날 잡아서 이런 경우들의 전후 사정을 조사해보는 것도 나름대로 흥미와 의미가 있는 작업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 내게는 눈앞에 닥친 일이 더 중요하지만……
“실은 이 시를 지은 사람은 우리 대월인도, 중원인도 아니라고 해요.”
“혹시… 고려,인이니?”
“고려…? 아, 맞아요. 해동(海東)에서 온 사람이라고 들었어요. 헌데…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나 때문에 대교나 그 동생들은 요즘 ‘고려’라고 하기 시작했지만 다른 이들은 보통 동이(東夷) 아니면 해동이라고 부른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이야.”
“아, 그러고 보니 요즘 오라버니도 해동의 문화에 관심이 많다고 했지요?”
“…그래. 그보다 그 시를 지은 사람의 이름이 뭐지?”
“그건 저도 몰라요. 본래는 이가장(李家莊)의 주인이 젊었을 때 지은 시라고 알려졌지만 나중 그가 대월을 떠날 때 자신이 지은 시가 아니라고 했다는 소문도 있어요.”
“대월을 이미 떠났다고…? 그럼 이번엔 어디로… 아, 아니. 일단 그에 관한 얘기를 처음부터 모두 들려줄래?”
“예, 음… 이가장에 대한 건 저도 남에게 들은 얘기 뿐이지만……”
해동의 이씨 성을 가진 한 남자 처음 묘강에 나타난 것은 30년도 더 전이라고 했다. 그가 어떤 이유로 고향 땅을 떠나 중원을 가로지르는 대장정을 해야 했는지는 지금까지도 끝내 정확한 사연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엔 그가 해동에서 대역죄를 짓고 도망쳐 온 것이라고 수군댔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곧 그는 그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대월의 태조(太祖)에게 등용되어 아예 일가를 이루고 월국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무공은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뛰어난 학식으로 월국이 국가 체제를 세우는데 큰 공헌을 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외국인이라 그런지 세월이 흐를수록 그의 업적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은 거의 없지만 아직도 대월의 왕실에서는 그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문제의 시, ‘절화행’으로 이 시에 등장하는 여인의 흉내를 내어 애인에게 귀여운 투정을 하는 것이 대월의 상류층 여인들 사이의 오랜 유행이기도 하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