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납량특집 : 참극의 1404호 (1)

랜덤 이미지

극악서생 3부 – 납량특집 : 참극의 1404호 (1)


  • 납량특집 << 참극의 1404호 >>(1) –

이것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항상 우리 곁을 맴도는 존재들에 대한 내 끔찍한 경험의 이야기이다. 또한 ‘그녀들’로 인해 저질러야 했던 나 자신의 죄악에 대한 고백이며… 지금도 벗어날 길 없는 죄책감과 공포에 대한 기록이다.

그날… 나는 오랜만에 연락이 된 친구의 아파트를 방문했었다. 한참을 밀린 대화와 온라인 게임으로 시간을 죽이다가 내 귀가 시간이 되었을 때… 친구는 조금씩 어두워져 가는 창밖을 확인하고는 나에게 하루 밤 자고 가라고 했다.

태평한 성격으로 소문난 친구가 이상할 정도로 초조해하는 모습이 이상했지만, 마침 집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나는 끝내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고 친구의 집인 1202호를 떠났다. 아파트를 떠나 막 큰길로 걸어가던 나는 문득 걸음을 멈춰야 했는데, 그것은 뒷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손수건을 친구의 집에 놓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거라면 몰라도 여자친구에게 받은 선물이었기에 나는 다시 친구의 아파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 아파트 단지를 덮기 시작한 어둠이 한층 두껍게 내려앉고 있었다. 1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나는 문득 낮에 친구가 해 준 ‘귀신’ 이야기를 떠올렸다.

  • 이 아파트 14층에는 귀신이 산대. 벌써 많은 사람이 목격했지, 나 또한……

그때 나는 풋~! 하고 의식적으로 웃었었다. 그러나… 혼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나는 공연히 몇 번이나 몸을 움직여야 했다. 센서로 작동되는 전등이 얼마 되지도 않아 자꾸만 꺼지며 자꾸 나를 불길한 어둠 속에 던져 넣었기 때문이었다.

난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12층 버튼을 눌렀고, 곧 문이 자동으로 닫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의 닫혀가던 문은 갑자기 멈칫하는가 싶더니 다시 스르르 열렸다. 열린 엘리베이터 바깥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난 아무 버튼도 누르지 않았고, 밖에서도 오픈 버튼을 누른 사람이 없는 것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닫힘 버튼을 눌렀지만 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사아아∼ 무언가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옆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 팔에 쫘악 소름이 돋았다. 꺼져 있던 바깥 입구의 전등이 아무도 없는데도 켜졌고, 이어 엘리베이터 앞의 전등도 다시 켜졌다.

그리고… 두 번째의 차갑고 형체 없는 무언가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난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마치 뱀의 눈앞에 던져진 생쥐처럼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엘리베이터 바깥의 전등 센서를 작동시키는 것처럼 불이 꺼졌다가 다시 켜지는 현상이 몇 번이나 반복되고 있었다. 드디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시작했을 때였다.

바깥 입구 쪽에서 한 남자가 들어오다가

  • 잠깐!

하고 소리를 쳤다. 그는 서둘러 이쪽으로 달려왔고 오픈 버튼을 눌러 날 구원해 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끝내 손을 멈추고 엘리베이터 안의 나에게 들릴 정도로 투덜거렸다.

  • 오늘따라 왜 이리 사람이 많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12층까지 숫자가 하나씩 올라가는 시간이 비정상적으로 긴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냉기로 인해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고 다닥다닥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분명히 나 자신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순간순간 여러 명의 음성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가 사라지는 것이 반복되었다. 콧속을 파고드는, 무언가가 썩는 악취 때문에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미칠 것 같은 시간이 얼마간 더 흐른 후에야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몸을 결박하고 있던 강한 기운이 갑자기 풀리며 나는 비틀, 쓰러지듯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이 아파트 복도를 달렸다. 간신히 친구의 집 현관에 도착해 고개를 돌려보니 엘리베이터의 문이 아직 닫히지 않은 채 하얗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벨을 눌렀지만 친구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가득 차 있던 어떤 것들이 다 나온 듯 엘리베이터의 문이 뒤늦게 스르르 닫히기 시작했다.

철컥∼!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구원의 종소리 같았다. 나는 문을 열어 준 친구를 밀치다시피 집안으로 도망쳐 들어가 문을 잠그라고 소리쳤다.

  • 너, 옷이 더러워. 욕실에서 닦아야겠다.

친구가 그렇게 말했고, 나는 홀린 것처럼 친구의 말에 따라 욕실로 들어갔다. 문득… 친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닫았던 욕실 문을 열어봤지만 그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다시 등줄기로 지하수처럼 서늘한 기운이 흘러내렸다. 문을 열어 준 것은 정말 친구였을까…? 달라진 것은 목소리뿐인 걸까…? 아니… 그보다 여긴 정말 친구의 집인 걸까?

나는 분명 12층에서 내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면 그 기억부터 불확실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여기가 설마… 친구가 말하던 1,4,0,4호……?

휘익~ 흰 그림자가 욕실 문 앞을 지나갔다.

  • 누구…

공포에 질린 입을 여는 순간, 발 밑의 문 옆에서 불쑥-! 사람의 손이 튀어나왔다. 여자의 손인 듯 가늘고 하얀 손이 뭔가를 찾는 것처럼 더듬거리며 차츰 욕실 안쪽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난 그 하얀 손에 발목을 잡힐 것만 같아 정신없이 욕실 안쪽으로 달아났다. 바닥을 더듬는 하얀 팔 옆으로 또 하나의 팔이 스윽 들어왔다. 두 번째의 팔은 더더욱 사람의 팔일 리가 없었다.

사람에게 불가능한 각도로 관절이 꺾이며 날 향해 휘저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문 옆으로 사람의 팔이 하나, 둘, 셋, 넷…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스륵 스륵…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와 눈동자를 돌려보니… 바로 옆 욕실 거울에 창백한 여자의 얼굴이 날 노려보고 있었다. 스륵 스륵 계속해서 여자의 머리카락이 살아 있는 것처럼 거울 밖으로 밀려나오고 있었다.

참고 참았던 비명 소리가 내 입을 비집고 튀어나왔을 때, 욕실의 불이 꺼지며 어둠이 파도처럼 덮쳐왔다.

어둠 속……

유일하게 켜진 TV 화면 속의 여자 아나운서가 긴급 뉴스를 알려오고 있었다.

  • …며칠 전 서울의 S아파트에서 일어난 참극에 대한 속보입니다. 세 자매가 모두 잔인하게 칼로 살해된 이 사건은……

아아~ 내가 어떻게… 어떻게 내 손으로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아무리 공포 때문에 미쳐 있었다 해도… 어떻게… 어떻게 그런 무서운 짓을… 하지만… 하지만 내 잘못만이 아니야! 그, 그 귀신들이… 그 귀신들 때문이야!

  • …그저 변명일 뿐……

낯익은 음성이 날 질타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머리맡의 핸드폰이

… 손도 대지 않았음에도 저 혼자 열려 푸른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낯익은 음성은 거기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핸드폰의 얼음처럼 차가운 불빛 속에 며칠 전 1404호에서 본 그 여자들의 피투성이 얼굴이 떠올랐다. 진득한 피와 함께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하얗게 뒤집힌 두 눈……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