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1-1화 : 진정한 복귀(1)
- 진정한 복귀. (1)
나! 대한민국 특공대 예비역 하사, 진유준!
난 자그마치 1000년에 걸친 길고 긴 군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그리웠던 마이 홈, 부모님께서 손꼽아 기다리시는 집의 현관 앞에 서게 되었다.
“다녀왔습니다아~!”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기쁨과 설렘이 담긴 목소리로 나의 복귀를 알렸다. 현관 앞 마루에 서 계신 어머니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뜨시며 군대에서 돌아온 아들을 반기는… 상황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얘가, 얘가~ 왜 이래, 정말?”
기가 막히시다는 반응이다.
“너 또 언제 나갔다가 들어오는 거냐? 응?”
체육복 차림으로 외출해서 다녀왔을 법한 장소는 아무래도 한정적이다.
“아, 그게, 그냥 잠깐 동네에……”
“잠깐은 무슨 잠깐! 방에 불은 다 켜놓고, 대체 언제 나갔던 거야? 응?”
으~ 아무래도 간단히 진정하실 것 같지가 않은데… 어쩐다?
“하아- 안되겠다. 얘, 유준아. 이리 와서 잠깐 엄마하고 얘기 좀 하자.”
나는 얌전히 어머니가 가리키는 식탁 의자에 앉았다.
새삼 탐색하듯 내 눈치를 살피는 어머니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냥 말없이 어머니의 말씀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께선 잠시 생각과 감정을 추스르시는 것 같더니 생각보다 조용한 말투로 입을 여셨다.
“너… 정말 괜찮은 거니?”
“예.”
“엄마 눈에는 안 괜찮아 보인다. 저녁 시간에 말도 없이 나갔던 것도 그렇지만, 너 네가 오늘 며칠 만에 집에 들어 온 건지 알긴 하는 거니?”
“…4일이죠.”
“그래. 또 산에 갔다 왔다는 건 알겠는데… 그 동안 어쩌면 전화 한 번도 없니? 그건 폼이냐?”
어머니는 손으로 내 목에 걸려 있는 최신형 핸드폰… 아니, 그런 형태를 취하고 있는 미래 로봇 몽몽을 가리키셨다.
“그게… 핸드폰이 잘 안 터지는 곳이었거든요.”
어머니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터트리셨다.
“핫~! 얘가, 얘가~ 말 같은 소리를 해라. 요즘 핸드폰 안 터지는 곳이 어딨니?”
“있어요. 그런데도.”
“참~ 얘가 당췌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너 정말 군대에서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니?”
“아뇨, 별로. 그리고……”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멋적게 웃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어머니! 생각할 게 많아서 그래요. 군대까지 다녀왔는데… 이제 정신차리고 미래를 준비해야죠.”
나름대로 그럴 듯한 설명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으신다.
“말인 즉슨, 옳다만… 엄마 보기에 넌 정신을 차린 게 아니고 오히려 얼이 빠진 녀석이 되어서 온 것 같다.”
…사실 두 시간 전까지는 그랬죠,라는 대답은 속으로만 했다.
“그리고 너 그 흉터들은 대체 다 뭐니. 제발 엄마에게만은 속 시원히 얘기 좀 해 봐라! 답답해 죽겠다-!”
난 또 뭐라 변명을 반복해야 하나 망설이느라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처음 내 몸과 얼굴의 흉터를 어머니께 들켰을 때 이미 군대에서 산악훈련 하다 굴러 다친 거라 말한 바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번과 비슷한 대화는 이미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식구들의(특히 어머니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는 좀 더 밝게 행동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그렇게 되지를 않았었다.
두 달 전… 대교를 데려오지 못하고 혼자서 돌아왔던 이쪽 세상에는 진심으로 소리 내어 웃을 수 있는 일이 없었고 꼭 필요한 용건 외에 길게 말할 의욕도 생기지 않았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기분이 상당히 많이 달라진 상태이지만 말이다.
“끄음~! 알겠습니다, 알겠어욧! 앞으로는 어딜 가든 꼬박꼬박 보고하고 다닐게요. 전화도 자주 드리고요. …됐죠?”
“되긴 뭐가 돼. 그런 건 당연한 거고…..”
아직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잔뜩인 것 같았지만, 그대로 말끝을 흐리시더니 새삼 가만히 내 표정을 응시하기 시작하셨다.
“에이- 왜요?”
“왜는 뭐가 왜요야? 엄마가 아들 얼굴 좀 보면 안 되냐?”
“나-참!”
나는 공연히 쑥스러운 기분이 되어 시선을 피했지만 어머니는 어느 틈에 감을 잡으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두 시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뭔가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문득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겪은 일을 어머니에게 모두 고백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
“왜.”
“…전 중2 때부터 어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왜 어머니는 아직도 스스로 엄마라고 그럽니까?”
“…얘 말 돌리는 것 좀 봐! 너 지금 무슨 얘기하려고 했어?”
역시 우리 어머니… 쉽게 넘어가지 않는군. 하지만… 순간의 충동 때문에 그간의 길고 긴 사연을 털어놓을 수는 없다.
‘전 사실 제대하자마자 미래에서 온 여자를 만나, 함께 시간여행을 하는 바람에 지난 몇 년 간 1000년 전의 중국 무림에서 온갖 고초와 모험을 겪고 두 달 전에야 간신히 돌아 온 겁니다.’라는 얘기는… 어…? 뭐야. 지금 간단히 줄여진 거야? 뭐 이래…? 책으로 써도 아홉 권은 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피 같은 경험, 그 줄거리가 고작……
“얘 좀 봐! 뭔가 말할 것 같더니 혼자 꿍얼꿍얼… 뭐 하는 거니?”
“아, 아뇨. 그냥. 별로 할 얘기 없어요.”
“이-씨! 엄마 궁금한 거 못 참는 거 몰라?”
“후훗~! 정말이에요. 좀 전엔 그냥 어머니, 하고 불러보고 싶었던 것뿐이라구요!”
그렇게 말하며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서자 어머니는 곧바로 따라 일어서신다.
“빨리 말 안 해? 응? 정말 말 안 할 거야?”
내 옆구리를 찌르며 추궁하는(?) 어머니를 피해 난 간신히 내 방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실제로는 두 달 전에 돌아왔던 나였지만, 이제야 비로소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는 아들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지금은 좀 죄송하지만 참기로 했다. 언젠가는 어머니께 다 말씀드릴 수 있을 때가 올 것이다.
내가 거기서 어떤 일을 보고 겪었었는지는… 에- 물론 그 얘기도 좀 전에 무심코 정리해 버린 것만큼 짧은 사연일 리는 없다. 하지만… 내가 정말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었다.
나의 진정한 복귀 일은 바로 오늘! 어쩔 수 없이 놓치고 말았던 내 영혼의 절반이 10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뒤따라온 날. 대교와 재회한 오늘이 바로 나의 몸과 마음, 영혼이 온전하게 다 돌아온 날이었다는 얘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