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13-1화 : 반쪽 짜리 슈퍼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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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13-1화 : 반쪽 짜리 슈퍼맨.(1)


2-4. 반쪽 짜리 슈퍼맨.(1)

Time is on my side, yes it is
Time is on my side, yes it is
Now you always say
That you want to be free
………………….

롤링스톤즈의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나는 서울의 밤거리를 발 밑에 두고 있었다.

But you’ll come running back, you’ll come running back
You’ll come running back to me
Yeah, time is on my side (Yes it is)
Time is on my side (Yes it is)
You’re searching for good times, but just wait and see
You’ll come running back…

‘시간과 관련된 노래’라는 나의 막연한 요구에 요정 몽이 선곡해 준 이 노래… 웬지 마음에 들었다.

< ‘시간은 나의 편’이라… 괜찮은데? 노래도… 그리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밤바람에 온 몸을 맡긴 채… 이렇게 서울의 야경 속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불빛 속에 파묻혀 식사를 하는 것도… 음…… >

[ 주인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

< …몽몽! >

[ 예, 주인님. ]

< 내가 그럴 만해서… 현실 도피 할 때는 그냥 모른체 좀 해 주라. >

[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 니가 죄송할 일은 아니고… …젠장! 역시 상상과 현실은 차이가 많군. >

영화 같은 데 보면 슈퍼 초인 계열 주인공들이 고층 빌딩이나 여하간의 높은 장소에 당당한 모습으로 서서 자신이 수호하는 도시를 내려다보는 장면이 나온다.

나 역시… 아니 나야 도시의 수호 전사가 아니지만, 하여간 여건만 되면 비슷한 상황 속에서 그 특별한 분위기와 여유를 즐겨보고 싶었었다. 뭐… 아까 호텔 옥상에서부터 천잠사(天蠶絲) 두 개에 매달려 몇 층 내려온 후 벽호공(壁虎功)을 써서 건물 벽에 발을 고정할 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몸도 안정되고 괜찮은 것 같았었다. 그런데……

“웃! 이런 씨앙~!”

마악 입으로 집어넣으려던 내가 무지 좋아하는 반찬… 수저 겸 포크 끝에 있던 무말랭이가 또 거센 바람에 날아가고 말았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아니, 이런 돌발적인 강풍이 수시로 몰아치는 곳에서는 자칫 방심하다가 반찬 통 채로 놓쳐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도시락 자체는 긴 보온 병 스타일이어서 배와 탄띠 사이에 끼워 고정시켜 놓기만 해도 괜찮은데 문제는 뚜껑 안쪽에 있던 반찬 통과 반찬이다. 통을 한 손에 계속 들고 있기도 뭐하지만 조금 전처럼 반찬을 수저 끝으로 찍어 들어올리는 순간부터 위험해지는 것이다.

< 쳇! 역시… 무리였나? 33층 높이의… 시원한 게 아니라 차츰 사람을 얼려서 혹은 당장이라도 날려 버려서 죽일 것 같은 이 바람 속에서 도시락 까먹는 건 말야. >

[ 우린 처음부터 반대했었는데… 주인님은 생각했던 건 꼭 한 번이라도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니…… ]

< 임마, 요정 몽. 그래도 뭐든 아예 안 해보고 후회하는 거 보단 나은 거야. 에… 솔직히 다소 실망이긴 하지만, 기왕에 왔으니 남은 도시락은 마저 까먹고 올라가야겠다. >

난 결국 남은 반찬을 전부 보온 도시락에 쏟아 부었다. 반찬 통은 가방에 넣어 챙긴 후 도시락을 아예 입을 대고 수저로 입안에 밀어 넣으니 먹는 거 자체는 할 만했다. 근데 이러고 있자니까 그림이 상당히 안 나올 것 같은 게… 꿈꿔오던 밤하늘의 영웅이라기 보다는 그냥 고층 노숙자 분위기랄까? 뭐, 누구 볼 사람도 없으니 상관은 없겠… 엥? 갑자기 실내 불이 켜지네?

윽! 하필 이런 때 대교가!

[ 주인님…! 대교님이 주인님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

내가 매달려(+붙어) 있는 곳은 대교의 호텔 방 바로 바깥의 벽이어서 방의 창문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베란다처럼 약간 튀어나온 구조의 거실 쪽 창에서는 보이기 쉬웠다. 현재 시간은 밤 11시 32분 정도… 이 시간에 대교가 왜 자다 말고 나왔는지는 몰라도 얇은 잠옷 위에 다시 호텔 가운을 걸친 모습이 다른 때보다 섹시한… 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 처음엔 놀라서 사람을 부르려고 하다가 곧 주인님을 알아본 것 같습니다. ]

몽몽의 설명이 없어도 대교의 태도나 표정만 봐도 그 정도는 짐작이 되었다. 대교는 내 쪽으로 가까운 창가로 와서 두꺼운 호텔 창의 유리를 콩콩 두드리며 입을 벙긋거리기 시작했다.

  • …진유준씨? 정말 당신이에요?

< 아~ 그래, 나야. 놀라게 해서 미안해. >

  • 제 말이… 들려요?

< 들리진 않지만… 알 수 있어. 입 모양이 보이도록 하고 말해. >

  • 세상에~! 거기서 뭐 하는 거예요?

기왕 들킨 거… 그냥 양손의 도시락과 수저를 들어보였다.

< …야식 먹어. >

  • 맙소사!

대교는 놀라움에 어이없이 겹치고, 거기에 저거 미친 거 아냐…까지는 아니길 바라지만, 하여간 복합적인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난 두 발로만 벽호공을 써서 한 발 한 발 그녀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미세한 굵기의 천잠사가 눈에 뜨이지 않아서 내가 아무 것도 의지하지 않은 채 건물 벽과 창문 위를 걸어서 자신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결국 나와 유리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채 마주하게 되자, 대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 또 그런 위험한 짓을 한다면… 그 때는 당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거예요.

< 그건… 그래, 알겠어. 다시는 장난으로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게. 하지만…… >

  • 하지만……?

< 널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위험이라면… 그건 네가 허락하지 않아도 어쩔 수가 없어. >

  • 전… 솔직히 진유준씨의 그런 태도를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또한 너무나 부담스럽고요.

< 그런…가? >

좋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망가지는 군. 이건… 물론 조금 전의 본의 아닌 불상사가 때문이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긴, 너에게 있어 지금의 나는 단지 낯선 남자일뿐이니…… >

  • 그, 그런 것 보다……

뭔가 반론을 펼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입을 다물고 마는 대교. 쯧…! 전생의 기억을 되찾지 못하는 한 내 행동에 대교가 부담을 느끼는 건 당연한 거다. 난 그동안 대교를 지킨다는 목적에만 몰두하느라 정작 당사자의 입장이나 기분은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기… 어차피 거지같은 원판 놈 때문에 지속적으로 대교의 주위를 지켜 줄 수 없게 되기는 했지만… 이런식으로 그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 …좋아. 앞으로 한 가지 일만 해결하고 나면… 그럼 네가 부담을 느낄 정도로 네 주위를 맴돌지 않을게. 아니… 실은 어차피… 당분간 네 곁을 지킬 수가 없는 입장이었어. >

아무래도 짧은 티타임을 끝내야 할 것 같아서 보온병을 챙겨 넣으며 말을 이었다.

< 한 가지 해결할 일이란… 여옥. 그 여자가 다시는 널 괴롭히지 못하게 하는 일이야. >

  • 안돼요! 그녀와 싸울 생각하지 말아요!

대교가 실은 여옥이 다치는 걸 원치 않는다…? 아니, 아니다. 대교는 여옥이 그만큼 위험한 여자라는 걸 말하고 싶은 거다.

< 대교… 넌 모르겠지만, 나도 오래 전부터 그녀와 그리 좋지 못한 사이야. 그러니 말릴 생각하지 마. >

  • 거짓말!

물론… 거짓말이 맞다. 여옥이란 여자를 여자 사갈로 상정한 건 어디까지나 내 편한 대로인 거고, 당사자인 여옥에게는 다소(?) 억울한 일일지도 모른다.

< 마음대로 생각해. 내가 오늘밤에 굳이 여기까지 온 건… 널 지켜 주겠다는 맹세를 한지 며칠 되지도 않아서 벌써 그… 나의 임무에 충실하지 못하게 될 것을 사과하려고… 그래서 온 거였는데…… >

이건 반쯤… 아니 반 이상 거짓말이다. 난 솔직히…

원판을 만나 심란해진 마음을 위로받기 위해… 비록 대교를 직접 만나지는 못할지라도 그녀 가까이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 뜻밖에 대교가 깨어나 준 덕분에 이렇게 대화까지 나눌 수 있어서 더 좋았는데… 그 것도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 어째 그럴 필요도 없었던 모양이군. …이만 갈게. >

내가 떠날 기색을 보이자 대교는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왔다.

  • 자, 잠깐만요! 당신은……

결국 약간의 한숨과 함께 묻는 대교.

  • 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인 거죠?

< …그냥, 대교 너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사람…… >

특별한 의미를 담아 한 말이 아니다. 지금은… 그 외에 달리 대답할 말이 없었다.

  • 그런…가요?

대교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 바로 그 보이는 측면이 매번 뜻밖이고 알 수 없기 때문에 묻는 거예요.

< …그렇겠지. 하지만… 난 아직 너에게 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

  •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 뭐? >

  • 저도 당신에게 저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전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주어야 할 정도로 특별한 존재가 아니에요. 그저… 전 그저 저의 노래로 누군가가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기만을 바라는 것뿐… 어린 시절… 아니 지금도 계속되는 꿈속에서처럼… 그런데 왜 사람들은… 오삼숙도 당신도 왜 이렇게까지……

대교는… 울고 있었다. 그런가…? 벌써 누군가가 대교를 지키려다 희생되었다는 얘긴가…? 그래서 대교는 내가 나타나기 전부터도 계속 무거운 마음의 짐을 안은 채 지내고 있었던 건가? 이렇게… 자기 말대로 몇 번 만나 본 적도 없는… 낯선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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