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18-1화 : 영남 알프스의 마군황.(1)
2-9. 영남 알프스의 마군황.(1)
사실… 나라고 키 150센티미터 정도의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노인과 굳이 싸우고 싶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작고 초라한 노인이 실은 심상치 않은 내력의 소유자이며 하필 내 친구들을 노리고 있는 이상 다소의 노인 공경 무시도 어쩔 수가 없었다. 계속 내심, 이건 어디까지나 매니저로서 계약 희망자에 대해 좀 더 짚고 넘어가는 것뿐…이라고 자기 세뇌를 해야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노인과 내가 휴게소 뒤쪽으로 돌아가 보니 다행히 그쪽으로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휴게소 식당 종업원인 듯한 남자 두 명만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들어가기 시작하자,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자네의 버릇을 고쳐 줄 늙은이는… 보통 구양 노인이라 불리운다네.”
대결을 앞두고도 이름을 뺀 성만 밝히는 건가? 혹은 풀 네임이 구양?
“음… 이 버릇없는 녀석은 진유준이라 합니다.”
일단 나도 내 이름을 밝히자, 구양 노인의 가는 눈매가 조금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진…유준? 진씨… 진씨였던 건가?”
“그런…데요?”
“…아무 것도 아닐세. 자아~ 들어와 보게.”
구양 노인은 뒷짐을 진 지극히 여유로운 자세에서 조금도 변함없이 나에게 먼저 공격해 보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시건방지고 철없는 젊은이가 나이 든 고인에게 망신을 당하는 장면의 전형적인 전개라고 할 수 있겠고, 저 구양 노인도 충분히 그럴만한 저력을 가진 고수임에 틀림이 없다. 단, 상대인 내가 시건방지고 철 없는데서 끝나는 젊은이가 아니라서 문제지만 말이다.
“조심하세요. 갑니다.”
난 포권과 함께 친절한 예고를 끝냄과 동시에 보법을 밟으며 접근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여유로움이 지나쳐 무표정하게도 보이던 구양 노인의 안색이 눈에 띄일 만큼 굳어진다.
“칠성보(七星步)?”
“정답이십니다.”
맞장구를 치며 오른 손 금나수로 구양 노인의 가슴을 노리자, 구양 노인은 재빨리 상체를 뒤로 젖혀 피했다. 그 직후 쏜살같이 뒤로 물러나는 경공 속도가 놀라웠…긴 하지만, 결국 그건 내 칠성보에 당황하여 지나치게 멀직히 달아난 꼴이기도 했다. 내가 굳이 쫓아가지 않고 조용히 웃고 있자, 더욱 굳어지는 낯빛으로 뒷짐을 지고 있던 양팔을 뺀 구양 노인은 비로소 살기를 스멀스멀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 살기…는 뭐 그렇다 치겠는데, 사실 나로서는 저 노인이 칠성보를 알아본 게 더 뜻밖이었다. 어디……
“자, 잠종보(潛踪步)까지?”
이어서 천천히 펼치기 시작한 내 보법까지 알아 본 구양 노인의 살기가 급격히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그…렇긴 한데.”
나는 구양 노인의 바로 눈앞에서 보법과 손을 멈추고, 다소 어정쩡한 기분으로 구양 노인의 어깨를 짚었던 손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설마 갑자기 아무런 반격도 없이 서 있기만 할 줄은 몰랐기에 다소… 벌쭘했 다.
“뭡니까? 갑자기 왜……”
“대체… 어디에서 전수 받은 신법들인가.”
간만에 무림 시절 분위기의 인물을 만나서 일까? 문득 비화곡의 성지와 연옥도라고 솔직히 말해 줄까, 하는 충동까지 일었다. 그러나… 정체도 모르는 노인네에게 아직 대교에게조차 안 해 준 얘기를 발설할 수는 없지.
“뭐… 노인께서 날 제압할 수 있다면 말해 줄 수도 있죠.”
애써 상대 자극용 비웃음까지 띄운 채 말했건만, 구양 노인은 다시 내게 덤벼들기는커녕 말없이 생각에 잠겨 버린다. 물론 처음부터 생사를 다투는 혈전으로 나갈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이제 기껏해야 보법만 달랑 쓴 시점에서 상대가 이렇게 나와 버리면… 으음~ 대체 어쩌자는 건지, 원. 가만있자… 내가 조금 전 평소 즐겨 쓰는 공공보법이 아닌 다른 보법 두 가지를 굳이 썼던 건, 정글도는 커녕 그냥 맨 손일 뿐인 지금으로서는 생사금마도결에 최적화된 공공보법보다 다른 보법이 나을 것 같아서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엉뚱한 결과를 낳은 건가…? 결과적으로는 아무래도 그런 것도 같지만… 대체 왜……?
< 몽몽…! 내가 주로 쓰는 절기들 중 현재까지 전해져 오는 건 없는 것 같다고 했지? >
[ 그렇습니다. 조금 전 시전하신 칠성보와 잠종보 또한 현재의 중국에 제대로 전수되어 내려와 있지 않으며 단지 명칭만 알려져 있습니다. 저의 문헌 조사와 GM의 챈이 주인님께 언급했던 바를 종합해 보면… 일단 잠종보는 확실하게 단종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칠성보로 불리는 보법은 여러 곳의 문헌에 존재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초식과 구현 형태의 부정확함으로 보아 주인님이 익히신 오리지널 칠성보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극히 일부, 그 것도 축소 변화되어 다른 무공 초식의 일부로 전락한 수준이므로, 사실상의 맥은 끊겼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판단됩니다. ]
< 그래… 그랬다고 했지. 게다가 칠성보와 잠종보는 특정 문파나 인물만의 독문절기가 아니어서 어차피 무림시절의 나와 연관시킬 근거가 될 수 없는 것도 맞지? >
[ 현재까지의 정보로는 그렇습니다. ]
근데 저 노인네는 왜 저러는 거냐구. 단지 내가 실전 된 절기를 쓰는 게 이상해서…? 아니 그전에 저 노인도 확실하게 실전 된 걸 알아보는 게 더 이상한 거다. 별의별 정보 다 수집하는 GM도 아니면서……
“구양 노인이라고 했죠? 내 쪽에서도 묻고 싶은데, 나 외에 칠성보와 잠종보를 쓰는 사람을 알고 있는 겁니까? 아니면 혹시 노인장께서……”
내 말에 구양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난 그에 대해 아무런 할 말이 없네.”
더욱 갑갑한 대답만을 고집한 구양 노인은 새삼 가만히 날 살펴보다가 문득 내 왼쪽 팔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 팔… 다친 건가?”
눈치한 번 빠르시군.
“그래요. 특기인 무기도 없고 한 쪽 팔은 부상… 훗~! 이런 핸디캡도 없었다면 당신처럼 다 죽어 가는 노인네와는 수를 겨룰 생각조차 안 했을 거요.”
다시 조금 강도 높은 도발탄을 쏴봤지만, 구양 노인은 이번에도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쳇…! 요즘 내 말빨의 약빨이 다 떨어졌나? 아니면 원판이 몰고 온 재수 없는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서 내가 웬만큼 약 올리는 거로는 까딱 안 하는 게 유행이라도 된 건지… 으~ 별 생각 다 드네.
“좋수다! 그냥은 말못하시겠다 이건데……”
노인 공경이고 뭐고 막나가 보자…라고 결심한 순간! 휴게소 식당 뒷문으로 몇 명의 여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제기~! 엉뚱한데서 찬물을 끼얹는… 윽! 구양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내 틈을 노리고 있었던 듯, 번개같은 손놀림으로 내 왼팔을 노렸다. 왼팔의 부상까지 계산한 완벽한 기습에 어이없이 왼팔의 완맥을 잡힌 나는 그 쪽의 반신이 마비되는 감각을 느끼며 한 쪽 무릎을 꿇어야 했다.
“이런 기습 정도에 당하다니, 한 순간이나마 기대를 했던 내가 어리석……”
“훗~!”
에구,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렇게 답답하게 뜸을 들여놓고 한 순간이라고 말하는 게 웃겼기는 했지만, 웃더라도 말은 끝까지 듣고 웃었어야 했는데… 에 이- 모르겠다.
난 왼팔의 상처를 지혈하느라 스스로 잡아 놓았던 혈을 일시에 풀어 구양 노인에게 잡힌 완맥을 거의 해혈함과 동시에 오른 손으로 금나수를 써서 구양 노인의 팔을 역으로 노렸다. 황급히 손을 거두고 물러나는 구양 노인의 신형을 따라 몸을 일으키며 공공보법을 발동, 순식간에 그의 등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순간 적으로 내 신형을 놓치고 당황하는 구양 노인의 등 뒤 마혈을 찍어 끝내 버렸다.
“뭐… 이 정도면 기대에 좀 부응하는 게 됐습니까? 뭔 기대였는지는 모르겠지만서도……”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전신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는 구양 노인의 앞으로 돌아섰다.
“지, 지금은 또 대체 무슨 신법을……”
이 노인도 공공보법은 못 알아보는 모양이군.
“게다가 어찌… 이미 상대에게 잡힌 혈도를 스스로 풀 수가……”
“뭐, 현천기공(玄天氣功)이라는 거에는 그런 오묘한 꼼수도 있습니다. 이번 건 그리 깔끔한 방법이 아니었지만……”
쯧…! 결국 상처가 터져 버렸군. 다행히 아직 잠바 바깥까지 피가 배어 날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음… 그나저나 좀 전엔 내가 너무 빨리 제압했나? 좀 더 끌었으면 노인의 무공이 본격적으로 나왔을지도 모르는 데……
[ 주인님! 조금 전 그 노인이 사용한 금나수를 상기해 보십시오! ]
응? 좀 전에 날 기습할 때 썼던 금나수? 금나수야 뭐, 기본은 대부분의 문파가 거기서 거기고 구양 노인이 쓴 것도 그리 특색 있는 금나수는 아니었던 것 같은… 어? 아닌…가? 내가 몸을 비틀어 피할 때 분명히 이렇게… 손이 역으로 뒤집혀 따라붙으며 도룡조(道龍爪) 비슷한 형태로… 어랏~? 이… 이건……
“도룡조 비슷한 게 아니고 도룡조 맞는 것 같은데? 조금… 뭔가 변형된 것 같기는 해도 분명히……”
난 그걸 비로소 깨닫고 구양 노인을 돌아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노인장은 도룡조를 독문절기로 쓰던 사람과 성까지 같다!
“당신 혹시… 구양청 대주의 후손인 거야?”
난 나도 모르게 그렇게 물었고, 구양 노인은 꿀꺽 마른침을 삼키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핫~! 하핫! 나 이거… 이거, 이거……”
진짜…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난 즉시 구양 노인의 마혈을 풀어 주고 그 앞에서 꽤 한참을 혼자 기막혀 하며 웃었다. 사실 그리 친할 틈도 없었던 사람, 그러나… 나이 차이는 할아버지와 손자뻘인 나와 잠깐이지만 비슷한 세대인 것처럼 동질감(?)을 나누었던 사람, 마군황 직속 호위대이자 지하 무림 최고의 엘리트 집단인 보천구룡대(保天九龍隊)의 암묵적 수장이었던… 구양청 대주. 그 사람의 후손과 만나게 되다니… 솔직히 환생자나 금동이 만난 것에 비하면 엄청 기쁘거나 놀라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거… 기분 되게 묘하네?
“아, 근데 구양청 대주의 수제자는 구양씨가 아니었는데 어떻게 지금은……”
아차차~ 난 지금 그 때의 마군황이 아니지? GM들에게 그랬듯 마군황이었던 진하사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건 몰라도… 응? 뭐야? 구양 노인이 갑자기 보도 블럭 위에 넙죽 엎드려 오체투지(五體投地) 해 버리네?
“소인… 지하무림 보천구룡대의 수장 ‘구양명’이 마군황의 존체를 뵙습니다!”
에이~ 같은 후손끼리(?) 그렇게 나올 것까지야…라고 하기 전에! 이거… 상당히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대사잖아? 우선 지하무림이며 보천구룡대, 마군황이란 명칭과 체계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단 말인가? GM의 챈에게 슬쩍 물어봤을 때, 그는 지하무림의 맥이 끊어져 나처럼 전설로 사라진 지 오래라고 했었는데 어떻게……
“이런… 저기, 일단 일어나요.”
궁금한 게 너무나 많았지만, 일단은 구양명 대주를 일으켜 사태 수습에 나서야 했다. 좀 전에 뒷문으로 나왔었던 여자들이 우리의 싸움을 목격하고 안으로 들어가 뭔 소리를 해댔는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신고(?)내용은 대충 -뭐가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파렴치한 젊은 놈이 조그만 노인네를 무자비하게 패고 있는 것 같더라- 정도였던 것 같고 아무리 갈수록 예의를 밥 말아먹는 세태로 흘러간다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노인공경과 의협심은 여전한지 날 노려보며 몰려드는 사람들의 기세는 꽤나 살벌했다. 물론… 정작 우리가 다정한 조손지간처럼 웃으며 ‘왜들 이러대?’라는 표정을 지어 주니 다들 벌쭘 모드로 들어가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서울을 떠난 후, 예상보다 긴 6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가 영남 알프스 줄기의 멋진 절경 속으로 들어가며 계곡을 끼고 오르자, 뒷좌석에 앉아 있던 새끼 용 두 마리가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야~ 정말 좋은데?”
“우와~ 좋다. 정말!”
…감탄도 단순하군. 아무래도 쟤들이 가수를 한다 해도 작사나 작곡은 다른 사람이 맡아야 할 것 같다.
“하은아!”
새끼 용 두 마리처럼 요란하지는 않지만 환상을 보는 듯한 얼굴로 무언가 중얼거리는 하은이를 불러 보았다.
“어, 어?”
“하핫~! 어때? 미국에도 이런 곳 많냐?”
“비교…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그래… 그곳에도 정말 아름답고 거대한 산이 많아. 하지만 여긴… 여긴 뭔가 달라……”
공기가 다르다고 중얼거리는 하은이. 보통 산이나 바다에 갔을 때 흔히 쓰는 표현이지만, 하은이는 뭔가 다른 뜻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고향 땅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이곳까지 데려온 보람을 느낄 것 같았다.
그렇게 흐뭇해하며 가고 있을 때, 마음속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갖다 붙이기는…! 울며 청양 고추 먹듯 데려왔으면서……
윽! 뭐지? 오랜만의 본능인가? 아니면 이성…? 어째 그 녀석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
- …나다, 양심!
허억~! 한동안 마음 깊은 곳에 감춰두었던 양심이 언제 탈출한 거지?
- 흥~! 가증스러운 자칭 대한민국 모범청년 같으니. 내가 돌아온 이상 앞으로는 행동에 에로사항이 많을 걸?
그, 글쎄… 나도 그동안 꽤 뻔뻔해져서 과연… 음… 근데 오랜만에 이중인격, 아니 본능이와 이성까지 등장하니 사중인가? 하여간 오랜만에 사중인격 놀이(?)를 하니 좀 어색하군.
“오빠!”
“어, 응?”
하은이가 부르는 통에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차의 브레이크를 밟았다.
“야! 야~!”
“똑바로 안 해? 만년 초보!”
급정거로 인해 앞좌석에서 머리를 찧은 녀석들이 뒤에서 뭐라 하건, 나는 차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야! 대체 왜……”
준엽과 성원이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녀석들도 길가의 바위 위에 앉아 우리 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소령이와 미령이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쟤, 쟤들은?”
“음… 너희가 보다시피 우리 2층집 자취 소녀들 같아.”
“그, 그건 알겠는데… 쟤, 쟤들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냐?”
“성원아!”
“응?”
“궁금하면 네가 가서 물어봐라.”
성원이 녀석이 자긴 중국어 못한다고 투덜대는 사이, 나는 잠시 소령이와 미령이, 그리고 그 녀석들 뒤쪽 작은 다리 너머 민박집을 번갈아 보며 망설였다. 역시 내가 전에 왔을 때 묵었던 민박집까지 찾아내 미리 와 있었던 것이다.
“하는 수 없겠군. 어차피 따라다닐 애들이라면……”
중국어로 중얼거리자 하은이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전에 금동이를 더 단단히 끌어안아 보이는 것도 잊지 않았고.
겨우 두 번째 온 거면서 단골이라고 우겨 숙박비를 깎고 자리 잡은 민박집의 2층 방에 짐을 풀었다. 아니, 채 다 풀기도 전에 계곡으로 달려간 새끼 용들 때문에 둘만 남은 자리에서 하은이가 새삼스럽게 나를 불렀다.
“근데 오빠!”
“응? 왜?”
“아까 휴게소에서 만났던 그 작은 노인… 대체 누구였어?”
“어… 그게, 알고 보니 예전에 알던 사람의 친척…이더라구.”
“나참…! 그런 정도의 인연일 뿐인 노인과 그렇게 사이가 좋아?”
“사이가 좋아… 보이든?”
“둘이 얘기하는 모습이 그래 보이던 걸? 그리고 오빤 그때부터 계속 엄청 기분이 좋아 보이고 말야.”
녀석, 역시 눈치가 빠르군. 아니… 내가 그만큼 티를 많이 내고 있는 건가? 하긴…! 꽤 오랫동안 감금해 놓았던 양심이(아마도 본능과 이성도) 탈출할 정도로 마음이 풀린 상태니……
“그래. 난 지금 정말 기분이 좋다. 그 노인도 노인이지만… 그를 만날 수 있었던 덕에 앞으로도 반가운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게 될 것 같거든.”
나는 하은이 앞에서, 아니 누구에게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웃음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 짐 중에서 정글도를 찾아 들었다.
“으- 그런 흉측한 칼은 왜 항상 가지고 다니는지 몰라!”
하은이가 질색을 하건 말건, 나는 정글도를 들고 방을 나와 민박집 옆의 바위 위로 뛰어 올라갔다. 깊게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하며 태고의 공기를 들이키니 어깨 부상의 아픔이나 원판에 대한 걱정까지 잠시 잊히는 것 같았다. 신불산이 마치 태운산, 내가 마군황 관문을 시작했던 천년 전의 그 산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 지하무림! 그들은 아직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보천구룡대의 대주들이 다섯 명으로 줄어들고, 일백마군들도 예전과 같은 부하들 없이 비밀리에 1인 전승으로 이어져 왔지만… 그래도 명맥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는 아직도 마군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