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19-1화 : 홍콩에서 날아든 SO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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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19-1화 : 홍콩에서 날아든 SOS.(1)


2-10. 홍콩에서 날아든 SOS.(1)

야후 장로… 아니, 이제는 핸섬한 소년 꼴통으로 변신한(?) 천음마군 앞에서 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변신도 변신 나름이지 어떻게 저런… 그, 그러니까… 야후 장로의 그 단순과격한 인상에서 수염을 제거한 다음 백발을 흑발로 물들이고 주름살까지 제거해 보면… 아니, 그 정도로도 뭔가 어색하다. 으… 세월의 칼질은 때로 저렇게 오묘무쌍한 것일까? 저 얼굴도 결국 나중엔……

으음~ 근데… 아무리 그의 변신에 충격이 컸어도 그렇지, 내가 지금 뭔 생각한 거냐. 환생 자체는 인정해도 용모와 기타 등등 다 바뀌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 환생의 의미가 있는 거라는 게(아참, 대교만 빼고) 내 평소 지론이었으면서……

“핫핫핫핫하~! 어찌 된 거요, 자칭 마군황! 조금 전까진 마군들 전원을 상대하겠다고 큰 소리 치더니만 왜 본인 한 명 앞에서는 그리도 넋이 나간 얼굴인 게요.”

어찌되었든 현재는 어린 분께서 말투가 좀… 으음… 환생자를 구분할 수 있는 것도 꼭 좋은 것만은 아닌 듯 싶군. 이 어린 양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상당히 난감한 것이……

“천음마군!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우리 마군들의 정점에 선 분일 가능성이 높은 분이니 말을 조심하시오!”

“후후~ 초사마군 어르신. 본인이야 늘 이렇지 않소. 자칭 마군황께서 기분 나쁘시다면, 직접 징계해 주셔도 좋겠고 말이오.”

보스 격인데다 나이도 다섯 배는 위일 법한 초사마군이 나서도 눈곱만치도 개의치 않는 군. 나이야 뭐, 전생의 야후 장로라면 만만치 않… 아니, 아니… 아무래도 그런 비교는 곤란하지. 모든 사람의 전생을 적용하려면 한도 끝도 없는 거니, 역시 현재의 인물이 기준이 되는 게 당연하다. 야후 장로는 워낙에 가까웠던 인물이라 무시하기가 쉽지 않을 것도 같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저 소년 마군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좋아. 그럼 어디……”

난 평소처럼 오른손의 정글도를 어깨에 걸치며 왼손을 들어 검지 손가락만을 까닥까닥~ 이리 컴~ 이라는 제스처를 보내며 말을 이었다.

“실력 좀 볼까? 애·송·이·마군!”

내 도발에 천음마군의 눈매가 대뜸 더 사나워진다. 안력을 높이고 있었더니 그가 이를 악물어 턱의 근육이 경직되는 것까지 얼추 보이는 군. 그래도… 열 받은 즉시 쳐들어오지 않고 날 노려보며 뭔가 가늠해 보는 눈치인 걸 보면 역시 개념 없는 골통은 아니지 싶다.

“뭐 하나. 난 일어나기 귀찮아.”

다시 입을 열고 손가락질을 하며 자극하는 순간, 파앗- 그의 정육점(?) 칼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기 시작했다. 정글도를 쓸 것도 없이 고개만을 돌려도 피할 수… 음, 없겠군.

까앙~! 캉~!

하는 수 없이 정글도로 막았더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경쾌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첫 수도 그랬지만, 이어지는 칼질의 위력과 변화가 지극히 맹렬하면서도 정교하다. 과연 야후 장로… 아니, 천재소년 마군답다고 해야 할까? 저 나이에 저런 성품으로도 이렇게 패기와 노련함이 조화를 이룬 검법을 쓸 수 있다는 건… 훗~! 근데 나야말로 어느 사이… 나이에 비해 꽤나 노숙한 고수 티를 낼 수 있게 된 모양이군.

어쨌든, 나는 천음마군과 순식간에 백여 초를 나누면서도 결가부좌를 틀고 앉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작고 여린 손으로 토닥이는 어린아이의 장난을 받아주는 어른처럼 그렇게 태연하게 천음마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빈틈!”

짧게 외침과 동시에 가볍게 내미는 내 정글도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천음마군의 허리께 급소를 향해 파고들었다. 정글도 끝이 그의 살을 파고들기 직전, 나는 손에 힘을 주어 정글도의 진행을 멈춘 다음 재빨리 거두어 들였다. 순간적으로 최악의 상황까지 각오하는 표정이던 천음마군이 맥없이 신형을 뒤로 물렸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씩씩대며 입을 열었다.

“다, 당신이 터무니없이 강하다는 건… 알겠소. 하지만… 어떻게 내 공격을 이렇게 힘도 안 들이고… 어… 그러니까……”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막을 수 있는가…라는 거지?”

“그, 그렇소.”

“그야. 2대 마군황부터는 지하무림의 정복자임과 동시에… 일백마군의 시조가 되었기 때문이지.”

“시…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잠시 이어졌으나, 그는 곧 뭔가를 깨닫고 탄성을 울렸다.

“아~ 그렇구나! 그래! 2대 마군황이 바로… 초대 마군황 때 실전된 일백마군들의 비전을 복원시켜 준 장본인!”

“정답!”

그랬다. 사실 몽몽 70%, 나 30% 정도겠지만… 어쨌든 그 당시 일백마군들 태반의 독문절기를 복원 전수한 게 바로 우리고… 물론 나도 그걸 구체적으로 달달 외우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충의 흐름은 기억이 난다. 그러니… 직접 대련(?)하다 보니 새록새록 더 기억이 나는 것도 당연한 일.

“크하하핫~! 그래! 그랬었구나!”

이봐, 웃는 건 좋은데 핸섬보이 얼굴로 야후 장로 웃음과 표정이 되는 건 어째 좀……

“과연… 1인 전승의 맥을 알고 있는 제 3자라면 시조인 당신밖에… 아, 실례.”

문득 웃음기를 거둔 천음마군은 갑자기 넙죽 자리에 엎드려 버리며 예의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 놈, 15대 천음마군! 마군황께 그간의 무례를 사죄 드립니다!”

으음~ 대사나 태도에 비해 표정과 목소리가 너무 박력 있어서 그런지, ‘거 좀 봐주쇼. 응?’ 거의 그런 분위기다.

“…됐어. 그만 일어나.”

“너그럽게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주.”

그렇게 말하며 일어나는 모습도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야, 남자지. 암!’ 정도로 보인다. 거참, 아무리 현재의 모습에만 집중하려고 해도 너무나 야후 장로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소년마군이다. 야후 장로는… 어, 가만…? 근데 나 이번엔 왜 이렇게 무덤덤하지? 상당히 친했던 사람과의 재회인데도…

으음… 저 변신에 대한 충격이 반가움을 희석시켰던 건가? 아니면… 그 사이 환생자 만나는 거에 익숙해진 건가? 혹은…

“댁과는 아무래도 같이 검남춘이라도 한잔해야…”

그래야 예전 기분이 느껴질 것 같다는 의미였지만, 천음마군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색하며 기뻐한다.

“그거 좋지요! 하하핫~! 제가 최고의 검남춘을 숨겨 두고 있는 건 또 어찌 아셨습니까.”

술 중에서 검남춘 좋아하는 건 여전하다…? 이거… 왠지 기쁘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하고… 저 친구도 혹시 전생에서처럼 살수 조직을 이끌고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천음마군… 천음마군의 본래 직업이 뭐였더라…? 아…! 그래, 당시의 천음마군은 술! 거대한 술도가를 운영하던 사람이었다. 그럼 지금의 천음마군도 주류업계의 인물이려나? 그럼 그나마 다행인데 말이다.

“전…”

응? 이번에는 여자 한 명이 앞으로 나서네? 차가운 보라색 정장의… 소위 캐리어 우먼?

“보천구룡대의 자룡(紫龍)을 이어받은 자입니다.”

자룡대…? 다섯 번째… 오룡대의 별칭이었지, 아마? 그럼 저 여자가 그 기숙사 여사감 분위기의 그…

“초상희! 그래, 그 여자의 전인인가?”

“…그렇습니다.”

흐음~ 전통이란 게 이런 건가? 저 여자도 천년 전의 초상희와 상당히 닮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잘 보면 양손에 두 자루의 단검을 들고 있는 모습만 닮았을 뿐 실제 용모는 많이 다른데다, 결정적으로 저 여자는 초상희와 달리 옴팡 글래머… 크흠! 음… 마군황씩이나 돼서… 음, 여자 구분 기준을 그런데 두면 안되지, 암.

“헌데… 보천구룡대 같은 경우는 내가 뭘 전수한 적은 없는데…”

“그렇습니다. 오히려 저희 자룡대에는 한 가지 빛을 지고 계시죠.”

“빛…?”

뭔 소린가 싶어서 기억을 더듬어 보려는데, 스릉~ 검을 빼는 섬득한 소리가 들려온다. 양손에 날카로운 단검을 들고 날 지긋이 노려보고 있는 저 모습…

“아, 맞다. 그 때 그…”

어떤 일을 말하는 건지는 생각이 나긴 났다. 하지만… 그건 또, 그거대로 상당히… 무서워진다. 여자의 원한이란 이렇게 집요한 거였나…? 그 정도 일을 천년이란 세월에도 잊히지 않도록 전수시키다니… 이거야 원.

나는 결국 결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고, 이어 천천히 바위 위에서 내려서는… 척을 하다가 그대로 공공보법을 발동! 현재 가능한 최고의 스피드로 자룡대주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을 텐데도 그 때의 초상희처럼 놀라는 캐리어 자룡대주에게 가벼운 삼시전결 두 방을 날려주고, 또 그 때처럼 훌쩍 그녀의 머리 위를 뛰어 넘어 뒤로 착지했다.

이번에는 그 때의 마무리와 달리 착지하기 전에 목 뒤의 혈도를 찍어 제압하지는 않았는데… 지금의 캐리어 자룡대주도 마혈을 제압당한 초상희처럼 굳어진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혹시 ‘선대에 이어 나도 당했구나’ 하고 분한 마음에 울기라도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나는 천천히 그녀의 앞으로 돌아가며 입을 열었다.

“어쩐다…? 사과는커녕 그 때처럼 또 기습을 해버렸으니…”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그, 그래?”

내가 조금 당황한 건 캐리어 자룡대주의 표정이 내 우려에서 지나치게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거였군요. 풍신(風神)의 질주와 뇌신(雷神)의 일격이란.”

기대했던 것 이상을 보았다는… 저 황홀무쌍한 표정…! 설마 초상희가 품고 있던 건 원한이 아니라… 으~ 그럴 리가 없다. 짧은 시간의 만남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초상희는 분명히 잠깐 스쳐간 내가 아니라, 벙어리 삼룡이… 아니, 같은 보천구룡대의 삼룡대 대주 ‘적호’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저기, 앞의 질주는 그렇다 쳐도… 나, 지금 삼시전결은 제대로 펼치지 않았는데…”

“어머? 그, 그러…셨어요?”

캐리어 자룡대주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민망해 했지만, 곧 살포시 미소 지으며 다가서더니 내 귓가에 살며시 속삭였다.

“그렇다면… 다음엔 꼭 보여주시기를… 뇌신의 일격.”

으… 이거, 또 싸우자는 얘기를 하는 분위기가 아니잖은가.

“저기, 이봐. 내 생각에는 뭔가… 어디선가 얘기가 잘못 전해진 것 같거든? 초상희는 분명히 내게 빛… 그러니까 원한 쪽의 얘기를 했을 텐데 어째…”

“후후~ 상관없습니다, 천주. 선대도 같은 여자인 이상 이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뭐, 뭘?”

“전설을 해석하는 것도… 여자는 본래 제멋대로거든요. 특히 저는!”

윽! 여자는 본래 제멋대로…? 이건 또 웬 명언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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