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2-1화 : 우리시대 대교의 적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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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2-1화 : 우리시대 대교의 적들.(1)


1-2. 우리시대 대교의 적들.(1)

첫… 아니 세 번째 눈이 서울에 나린 그날, 나는 대교에게 그녀만의 기사, 가디언이 될 것을 맹세했다. 그리고 그 즉시 대교의 보디가드 진영에 합류하여 그녀가 전세계 어디로 가든 지켜주며 곁을 떠나지 않게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아직 그럴 수가 없어서, 나는 일단 호텔을 나와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한 번 떠나면 무림에 있었을 때와 달리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같은 시간대로 돌아와’ 부모님과 형제들을 만날 수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내 방으로 들어가 몽몽을 컴퓨터 옆의 책상에 내려놓았다.

< 몽몽, 당분간 너의 활동제한을 푼다. 특히 대교와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무슨 짓을 해도 좋아. >

[ 알겠습니다. ]

몽몽은 대답과 동시에 예의 촉수를 뻗어 케이블 선에 접속했다.

[ 이 시간 이후로는 무선통신망도 확보하겠으며, 빠른 시간 안에 대교님의 상황을 상시 모니터링 하기 위한 경계 체제를 구축하겠습니다. 대교님의 현재 활동 영역을 모두 캐치하는데 36시간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이는 전산망이 구축된 지역만을 상정한 것이며 현 시대의 데이터 저장 양식에 의존한 기본적인 정보 수집 체제 수립만을 의미합니다. 보다 완벽한 확장 체제 구축을 원하신다면, 그 방식과 범위에 대한 주인님의 추가 결정이 필요합니다. ]

대교의 현재 활동 영역이라면 고향인 홍콩과 일본, 동남 아시아 일대… 한 두 나라가 아니다. 그걸 전부 장악하는데 36시간 정도라는 건, 전 세계 어떤 곳의 전산망을 해킹 하려 든다 해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새삼… ‘이런 가공할 능력을 가진 로봇을 쬐깐한 나라의 허접 예비역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이 시대의 강대국들은 과연 어떻게 나올까…?’라는 생각이 든다.

< 완벽한 확장 체제 구축이란 건 혹시… ‘인간’을 직접 이용하는 걸 말하는 거냐? >

[ 그렇습니다. 더 많고 구체적인 실시간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역시 현지의 인간을…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고용’하여 이용하는 것입니다. ]

< 전산망 해킹이야 너라면 절대로 추적당하지 않겠지만, 인간을 이용한다면 아무래도 언젠가 꼬리가 밟힐 위험이 있겠…지? >

[ 그렇습니다. 또한 필요인원을 고용할 만한 재원 확보도 필요합니다. ]

재원 확보라… 그 것도 시급한 문제로군. 현재의 내 유일한 재산, 부대에서 통장에 넣어 줬던 특공수당(OR 생명수당)으로는 누굴 고용하는 건 고사하고 중국 갈 여비도 안될 거 같으니 말이다.

< 확장 체제는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어떻게 든 해야지. 그리고… 대교가 말했던 ‘여옥’이란 여자에 대해서도 조사해봐. 아니, 그걸 먼저 알아봐 줘. 가급적 빨리. >

[ 알겠습니다. ]

대충 급한 지시를 끝낸 나는 비로소 책상 앞의 바닥에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운기조식을 하며 앞으로의 일을 차분하게 정리해 볼 생각이었지만, 그 전에 몇 마디를 덧붙였다.

< 네가 다 알아서 하겠지만… 최대한 조심해라. >

[ 주인님의 우려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말씀드린 36시간이란, 좀 더 신중한 방식과 루트를 찾기 위한 시간을 포함한 것이었습니다. ]

흐음-! 여차하면 더 빨리 그 많은 나라의 네트워크를 장악할 수도 있단 말이군. 그 말을 들으니 몽몽의 위험도가 더 실감난다만… 사실 대교와 재회하기 전까지의 난, 타임씨에게 보란 듯이 몽몽의 기능과 내 무공을 최대한 이용해 엄청난 짓을 벌일 연구를 하고 있었다. 미래 여자 진에게 선언했듯, 타임머신을 만든 시대로 위협을 가하려면 핵 폭탄 같은 걸 확보해 그 시대가 되면 작동되도록 해 놓고 아무도 손댈 수 없는 곳에 짱 박아 둔다거나… 하여간 별의별 생각을 다 해봤었다. 이제 그렇게 극단적인 짓은 그만둬야겠지만, 지금도 최소한 대교에 관한 일에는 방법을 가릴 생각은 없었다.

[ 뭐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주인님. 이 시대 기술로는 절대 우릴 막지 못하고, 추적 또한 어림도 없다구요! ]

요정 몽이었다. 녀석은 대다수 개인 PC 사용자들이 쓰는 윈도우 계열은 보안체계가 너무 개판이라 장난치듯 들락거릴 수 있으며 그나마 좀 나은 유닉스 계열 OS도 자기들 오버테크놀로지 남매 앞에서는 결국 마찬가지라며 큰 소리를 쳤다. 나는… 다시 눈을 뜨며 물었다.

< 너… 설마, 그새 벌써 어딘가 해킹 해 들어가고 그랬던 거냐? >

[ 그게, 너무 재수없는 놈이 있어서 한 번… 에- 하지만 그 일로는 벌써 몽몽 오빠에게 혼이 났다구요. ]

[ 요정 몽은 한 달 쯤 전, 개인 사이트를 해킹하여 모든 게시판을 폐쇄해 버린 일이 있습니다. 해당 사이트는 곧 복구해 주고 요정 몽에게 약간의 체벌을 가한 후, 3일 동안 활동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

흐음~ 요정 몽에게 가해졌던 한 번의 체벌이라는 게 그런 일 때문이었군. 내가 무심했던 두 달 동안에도 몽몽이 알아서 요정 몽이 일정선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었나 본데……

< 잘했어, 몽몽. 근데… 대체 어떤 체벌이었던 거냐? >

[ 회초리 다섯 대였습니다. ]

대답과 함께, 요정 몽의 옆 허공에 내 손가락 마디 두 개 정도 길이의 회초리가 나타났다. 요정 몽의 신체 사이즈에 맞춘 초미니 회초리라… 내가 명령을 내리면 저 회초리가 마녀의 요술 빗자루처럼 혼자 움직이며 요정의 종아리를 때리는… 그런 광경이 펼쳐지는 건가? 거참!

< 어쨌든, 그러고 보니 요정 몽이 혼나야 할 일이 또 있었지? >

내가 문득 엄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요정 몽이 히잉- 소리를 내며 울상을 지었다. 그래도 곧 얌전히 옆으로 돌아섰는데, 종아리를 모으고 있는 폼이 회초리를 맞을 자세를 취하는 모양이었다. 음- 막상 혼내려니까 좀 마음이 약해지는군. 아무래도 저러는 꼴이 너무 귀엽기도 하고……

< 인간에게 함부로 욕을 한 건 괘씸하지만… 응? >

괘씸하지만 이번만은 용서해 주겠다고 말하려던 참이었지만, 나는 잠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요정 몽 옆에 그와 비슷한 크기의 처음 보는 소년(?)이 하나 나타나 회초리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요정 몽보다는 컸지만 그래봤자 20센티가 조금 듯한 키, 날개는 없고… 검은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있는 모습은……

< 너, 그거 설마… 네 모습이냐, 몽몽? >

내 말에 정장 소년이 입을 열었다.

[ …그렇습니다. 임시지만, 저의 제 1구현 형태를 구성해 보았습니다. ]

나도 요정 몽이 독립한 이상 몽몽 만의 새로운 모습이 필요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긴 했었지 만… 으음~ 검은 정장에 빨간 넥타이를 선택한 저 센스는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그리고 무슨 만화 속의 등장인물도 아닌 것이 왜 앞머리를 내려 얼굴을 거의 다 가리고 있는 거야?

< 딴 건 그렇다 치고, 헤어스타일이 그게 뭐냐? 어디 얼굴 좀 보자. >

[ 아, 안됩니다. 아직… 얼굴 형태는 구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

< 에…? 정말? 그래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거야? >

[ …예. 그리고 전 인간이 아니므로, 머리카락 때문 에 앞이 안 보이는 일 같은 건 없습니다. ]

< 그야 그렇겠고… 그 스타일도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어 보이긴 하다만…… >

몽몽 자신의 기체처럼 빛나는 은발 사이로 언뜻 비치는 눈매와 오똑한 콧날로 봐서 얼굴을 만들지 않은 게 아니라 단지 ‘수줍음’을 타고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몽몽 녀석도 참……!

< 어쨌든 처음 등장하자마자 동생을 맴매(?)하게 할 수는 없고… 뭐, 좋아. 몽몽의 새로운 모습 탄생 기념으로 요정 몽에게 내릴 벌을 특별사면(?) 해 주지. >

[ 와아~ 감사해요, 주인님! 고마워, 몽몽 오빠~! ]

기뻐하며 매달리는 요정 몽을 난처해하면서 약간 얼굴을 붉히는 모습하며… 음, 은발의 정장소년 버전 몽몽도 괜찮군. 항상 요정 몽 혼자 있는 것도 좀 허전하다 싶었는데 말이다.

< 그러고 보니, 요정 몽 너도 처음엔 은빛 머리였지? 왜 중간에 갈색 톤으로 바뀐 거지? 길이도 길었다 짧았다…… >

[ 흥-! 이제야 그걸 알아 주시네요? ]

< 아, 아니… 몰랐던 건 아닌데. 니가 하도 변덕스러우니까 그냥…… >

[ 헤헤- 사실 그냥 단순한 변덕이 맞아요. 저도 가끔은 스타일을 바꾸고 싶을 때가 있다고요오~. ]

은발 소년 몽몽은 금방 또 까불대며 날아다니기 시작하는 동생, 요정 몽을 힐끗 올려다보더니 손에 든 회초리를 사라지게 했다. 그리고 곧 이어 자기 자신도 스륵 모습을 감추며 말했다.

[ 그럼, 전 계속 대교님 보호 체제 구축에 집중하겠습니다. ]

< 그래. 수고해라. >

[ 앗! 저두! 저두요! ]

요정 몽은 다급하게 외치며 몽몽과 케이블 선의 접속지점으로 날아가더니 그 속으로 슈욱- 빨려들 듯 사라졌다. 이젠 저런 비쥬얼 연출까지… 훗-! 갈수록 실제 요정을 보는 것 같군. 비록 네트워크 상에만 존재하는 사이버 요정이라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빙긋이 웃으며 눈을 감았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얼짱이니 뭐니 하며 저 녀석들보다 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얼굴들이 인기인 모양이던데… 만약 저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사진빨(?)을 가진 오리지널 인공지능 남매를 데뷔시키면 어떤 반응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몽몽이 네트워크 상에 대교 보호 체제 구축을 시작한 지 9시간. 나는 그 사이 잠깐 저녁을 먹고 들어 온 것 빼고는 계속 운기조식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임독양맥(任督兩脈)을 타동하기 전에도 두 세 시간만 집중해서 운기 조식을 하면 거의 바닥이었던 내공까지 본래대로 회복시킬 수 있었는데… 현 시대, 특히 우리 집에서는 택도 없는 일이었다. 9시간 동안이나 운기를 했어도 대교를 만나는 과정에서 소모한 내공의 4분의 1정도 밖에 회복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우리 동네의 에너지 흐름이 미약해도 그렇지, 대천마와 싸우느라 임독양맥을 타동 한 후로는 아예 따로 운기조식을 하지 않고… 심지어 싸우는 도중에도 빠르게 내력이 회복되곤 했던 내가 이 정도라는 건… 음…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비화곡 시대와 같은 절정고수들이 사라지고(아마도) 각파의 비전무공들까지 실전 된(역시 아마도) 건 바로 이 때문이겠지? 나의 생사금마도결에는 내공 없이 펼친다 해도 상당히 수준 높은 고실전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초식도 많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 당시 다른 상위 무공들의 대부분은 그렇지가 못했다. 비유하자면… ‘절세무공’이란 이름의 요리는 워낙 재료(?)가 풍부한 시대에 만들어진 요리라서 지금은 도저히 똑같은 맛을 재현해 낼 수 없게 된 환상의 요리라고 할까…? 그러니 생사금마도결이라는 천하일미를 만들 수 있는 요리사인 나 진유준은 거의 무형 문화재 급의… 음, 하여간.

< 몽몽. 지금 하는 작업 끝나면, 다시 ‘행성 에너지 흐름의 분포’ 조사를 계속 해줘. >

[ …죄송하지만, 지금까지의 조사로는 그 흐름이 계속 바뀌는 것 같습니다. 그 변화의 원인과 규칙을 알아내고 대처 방안을 찾아내는 일은 단기간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

< …쯧! 역시… 그런가? >

[ 다행히 한국의 산맥을 중심으로 한 흐름의 변화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며, 이후 그런 이유를 조사하는 것이 행성 에너지의 급감과 불안정의 원인을 알아내는 유력한 방법이라고 여겨집니다. ]

처음엔 과학기술의 발달과 산업화가 자연을 파괴해서 그렇다…라는 흔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지난 달에 기껏 힘들게 찾아갔었던 무인도는 자연 생태가 잘 보존된 곳임에도 내공 축적에 필요한 행성에너지는 이 곳 서울의 평균 수준이었다. 뭔가… 타임씨같은 거대한 존재가 관여된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 하여간 지금은 원인 불명인 셈이다.

< 당장의 문제는 앞으로 대교와 함께 있으려면 한국에만 있을 수도 없게 된다는 점인데… 지금으로서는 다른 나라에도 에너지 흐름이 좋은 곳이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건가……? >

[ 그렇습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

< 아니 뭐, 그게 니 잘못은 아니지. 그보다… 여옥이란 여자에 대한 건 뭐 좀 건진 거 있어? >

[ 해당 인물로 추정되는 여성에 대한 기본 데이터는 홍콩 경찰의 서버에서 발견했습니다. ]

< 어, 그래? >

곧 내 눈앞에 여옥이란 여자의 사진과 프로필이 쭉 펼쳐졌는데… 한 눈에 봐도 어디서 찍힌 건지 알 수 있는 분위기의 사진이랄까? 뭐… 경찰에 체포되어 빵간에 들어가기 직전에 방긋방긋 웃으며 사진 찍는 여자가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이건 좀 심했다. 여옥(麗玉)이란 그럴듯한 이름이 무색하게도, 올해 마흔 두 살인 그녀의 눈매는 언젠가 본 ‘미저리’란 영화의 여주인공을 연상케 할 정도로 섬뜩했으며, 아무리 좋게 객관적으로 봐주려 해도 뺀질뺀질 하면서도 독기에 찬 여자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 제기… 대천마 스타일의 멋진 악당까지 바란 건 아니었지만 인건 좀… 으… 뭐야…? 마약소지로 두 번, 살인교사죄로 기소된 것이 세 번인데 그 중 살인교사는 증거 불충분과 목격자 사망으로 인한 수사중단… 결국 불기소처분…? 이거… 서류 상으로는 마약 전과 2범이지만 실제로는 여자 살인마인 거 아냐? 아… 아니 잠깐, 직접 살인이 아니라 살인 교사……? >

[ 그렇습니다. 홍콩 경찰은 이 여자를 죽련(竹聯)이란 폭력조직의 일원이며 조직 내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간부급 인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

아아~ 대교야. 우리 대교야…! 니 팔자는 왜 이러냐? 넌 결국 이 시대에 와서도 비화곡스러운… 그 것도 더럽게 재수없는 타입의 ‘여자 사갈서생’을 만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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