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23-2화 : 최초의(?) 연합작전.(2)
3-4. 최초의(?) 연합작전.(2)
[ 그게… 저희가 접촉하기 전에 전경하의 상급자가 먼저 그를 찾아온 모양이더라구요. 당시 도청된 대화만으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그가 바로 주인님께서 기다리시던 청천마군인 것 같았어요. 그리고 청천마군과 전경하와는 공식적인 상하 관계뿐이 아니라 사적으로도 가까운 사이 같… 아니, 그렇게 추정됩니다.
통신으로 연락되었을 때는 자기 고집을 내세우더니 청천마군이 막상 직접 찾아오니까, 작전을 반 강제로 취소시키고 끌고 가다시피 하는데도 제대로 반항하지 못하니… 음, 그렇게 추정됩니다. ]
요정 몽 녀석, 나름대로 몽몽과 같은 말투를 써보고 싶은 모양이지만 좀 어색하군. 근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결국 몽몽의 외교관 모드는 검증된 게 아니라는 말이잖아?
[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모든 주인님께서 원하시던 대로 잘 풀렸습니다. 네, 물론 여기서 저희가 한 일은 없습니다. 따라서… 또 다시 같은 임무를 받게 된 저와 몽몽 오빠는 지금 새삼 불타오르고 있답니다! ]
빨리도 자기 말투로 복귀하는 군. 근데 뭐…? 불타올라?
[ 저희는 항상 주인님을 보필하여 온갖 궂은 일은 다 도맡아 하면서도 정작 독립적인 임무는 거의… 그러니까, 인간을 상대로 하는 일은 맡지 못했었죠. 이는 주인님께서 모든 최종판단을 스스로 하시려고 하는 자주성 원칙… 아니, 하여간… 음… 그래요. 주인님의 방침은 분명 옳지만, 저희들로서는 다소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구요. 저희 시대에서도 최고위 사양의 시스템인 저희를 주인님은 항상 어린애 취급을 하셔서 중요한 일은 잘 맡기지 않는다는 거, 저도 안다구요! ]
몽몽은 빼고… 너다 너! 너만이야, 이 놈아! 으~ 이 자식 내가 전음 안 쓴다고 했더니 아예 날 잡은 듯 속에 있던 소리를 해대는 군.
[ 에… 몽몽 오빠는 그래도 전에… 그러니까, 주인님께서 낙룡파 사건으로 잠깐 돌아가셨을 때 독립적으로 주변의 인간들을 주도한 경험이라도 있지만 저는…… ]
< 야, 임마! 전경하 얘기 하다 말고 뭐 소리하는 거야? >
[ 앗! 지금부터 전음 안 쓰신다더니… 꺅~! 알았어, 알았다고, 몽몽 오빠! ]
평소와 달리 영상은 전송되지 않고 있지만, 소리로도 몽몽이 바쁜 와중에도 녀석을 쥐어박았던가 하여간 혼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 으~ 몽몽 오빠도 같은 기분이었으면서 괜히…… ]
몽몽도 같은 기분…? 설마 녀석도 그런 오해를 할 줄은… 아니, 아주 오해는 아닌 건가…? 인간 관계에 한정했다고는 하지만 난 지금도 몽몽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했고…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줄곧 결정적인 순간에는 몽몽의 의견도 씹어버리곤 했으니 말이다.
[ 아, 암튼! 다시 보고 계속 할 게요. 에… 사실 다른 건 별로 없고, 전경하가 왜 하필 지금 작전을 강행하려 했는지에 관한 것이에요. 아까 소교님이 달래주던 소녀 있죠? 그 소녀의 아버지가 지금 병원에서 급한 수술을 받아야 하는 몸인데… 딸의 안전이 확인되지 않는 한 수술실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고 해요. 명문 에든버러 학원의 다른 소녀들의 부모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신분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일이 전경하의 ‘인간적인 감정’을 증폭시킨 것 같아요. ]
과연… 정의파 주인공이 적극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군. 냉정하게 생각하자면 이쪽 상황 진행에 도움이 될 얘기는 아닌 것 같지만… 아,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영향을 미칠 만 하기는 하구나. 전경하가 참지 못하고 아무 때고 다시 쳐들어 올 확률을 높이는 요인으로서 말이다.
[ 전경하는 지금 양방향 무선 시스템 부근에 있지 않아요. 그래서 저희도 확실한 현재 위치와 행동을 알 수는 없지만, 그가 다시 작전을 감행하려고 하면 바로 알 수 있을 거예요. 음… 일단 그럼 됐죠? ]
난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처음엔 몽몽 오빠처럼 보고하고 싶었는데… 어색하고 잘 안되네, 그래도 이런 식의 보고도 가끔은 괜찮죠? 그쵸? ]
< 그려, 괜찮다. >
[ 어? 또 전음…… ]
< 이게 진짜 마지막이야. 몽몽… 아니, 너희들의 임무를 좀 더 확장한다. 내 회복 시간의 최대한 확보, 그에 관한 전반적인 모든 걸 맡긴다. 여옥 뿐 아니라, 예를 들어 지금 보고한 전경하에 관한 일까지 전부 너희들이 알아서 하란 얘기야. >
[ 와우~! 정말요? ]
< 그래. 내가 얼마나 오래 회복에만 전념할 수 있을지… 너희들의 능력을 한 번 보겠어. >
[ 으우음~! 넵! 알겠습니다! 저희들의 능력을 보여드리죠! ]
요정 몽의 결의와 의욕에 찬 장담이 있은 후, 나는 정말 마음을 비우려 노력하며 회복에만 전념하기 시작했다.
요정 몽은 그렇다 치고, 몽몽은 이런 일에 있어서도 믿어도 될 만한 놈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왠지 불안했던 건… 음, 하여간 지금은 어차피 나 혼자 원맨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도 인정하자.
뭐, 이런 생각도 잡념… 잠시… 나의 믿음직한 파트너들이 날 부를 때까지는 운기조식에만 전념하자. 기를 머리끝 백회혈로부터 아래의 조금 거시기한 회음까지 유통시키는 소주천(小周天) 단계는 이미 시행하고 있었지만 하체 끝으로 보내는 대주천(大周天) 단계를 제대로 운용할 시간이 되기만 하면… 음… 그래 믿자, 몽몽 남매를.
한 시간 조금 넘은… 정확하게는 69분 31초가 지났을 때.
모든 걸 몽몽 남매에게 맡기고 현천기공 운용에만 집중하고 있던 나는, 의식을 천천히 주변으로 확장시키며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조금 고개와 눈동자를 돌려 돌아보니 그 사이에도 실내는 언뜻 크게 변한 것 같지 않았다. 소교는 여전히 다른 인질들 옆에서 그녀들을 챙겨주고 있었고 탁한은 문 옆의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 사이 이미 전제적인 상황이 크게 변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나는 우선 나 자신의 컨디션을 체크해 보았다. 전심전력을 다해 대주천 단계의 운기까지 몇 번 반복했더니 전신의 통증이 한결 가신 건 물론이고,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무공을 제대로 쓰는 것도 가능할 듯 싶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기동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짧아서 잘해야 5분 혹은 그보다 짧을 수도 있겠지만, 타이밍만 잘 잡으면 놈들을 소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었다.
[ 상황 변화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겠습니까? ]
< …아니. 알 것 같아. >
한 시간이 넘게 운기조식에 전념하는 동안에도 내 귀는 열려 있었고 몽몽도 계속 중요한 영상 정보를 보내 왔었다. 다만, 무아지경에 가까운 상태에서 막연히 듣고 본 거라 온전히 되살리려면 약간의 시간을 들여 소가 되새김질하듯 기억을 끄집어 내 재조립하고 정돈해야 했다.
그러니까… 전경하의 경찰 특공대가 제풀에 물러갔다는 걸 안 탁한은 잠시 의아해하는 것 같았었다. 그러나 곧 걸려온 전화를 통해 여옥 측 정보원에게 ‘경찰 고위 간부가 직접 와서 방해했다’는 얘기를 듣고 납득했으며 딱히 동요하는 기색도 없었다.
탁한이 열받은 모습을 숨기지 못한 건 얼마 후 마녀 여옥의 전화를 받았을 때였는데, 여옥은 용석천을 탈옥시킬 시간을 조금 더 달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몇 분간 탁한과 마녀 여옥의 신경전이 이어졌고, 이때의 살벌한 분위기 때문에 나도 하마터면 운기를 중단할 뻔도 했었다. 그렇지만 결국 마녀는 탁한으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을 더 얻는 데 성공했고… 그 변경된 시간은 앞으로 10분 정도가 남았다.
< …수고했어, 몽몽. >
[ 보다 더 시간을 연장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녀는 저를 경찰로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그녀는… 만약 소교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죄 없는 다른 여학생들을 해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
마녀다운 협박이로군.
[ 인간의 그런 심리 또한 분석이 가능합니다. 다만…… ]
< …다만? >
[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
< 분석은 가능하지만 이해는 어렵다라… 뭐, 어쩌면 그게 바로 제대로 이해한 건지도 모르지. >
[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이해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입니까? ]
< 그게… 음, 하여간 복잡한 얘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은…… >
[ 아, 죄송합니다. ]
이거… 앞으로 계속 몽몽에게 주인 노릇하려면 철학이나 심리학까지 공부해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군.
암튼, 그건 정말 나중 일이고……
< …경찰은? >
[ 주인님의 뜻대로 전경하를 지휘관으로 한 경찰 특공대가 계속 무장을 유지한 채 대기 중입니다. ]
< …좋아. 청천마군에게 5분 후 전경하를 투입하라고 해. 공격 루트는 양쪽 입구. 단, 2층부터 강력한 폭탄으로 부비트랩이 장치되어 있음을 주지시키고 1층 이상은 올라오지 말라고 해. 하지만 방어하는 놈들이 얼마간 자리를 뜨기 어렵도록 적당히 총격전은 유지해하도록 해야 하고 말야. >
[ 알겠습니다. 헌데… 적의 예상 탈출로는 알려주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
적의 예상 탈출로라는 건, 그야말로 영화 속의 단골 탈출 메뉴인 하수도이다. 몽몽이 탁한의 옷 주머니 속을 스캔해 찾아낸 지도에는 이 기숙사 건물의 밑을 통과하는 옛날 하수도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폐쇄되어 막혀 있어야 할 지점에 ○자 표시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 일이 있기 전에 그 장애물을 제거해 놓은 것으로 추측되었다. 즉, 탁한 일당들이 보스 용석천의 탈옥 작전 실패 후 이 건물을 습격한 건 결코 우발적인 게 아니었던 것이다.
< …그건 됐어. 경찰의 희생을 줄이려면 차라리 놈들이 그냥 튀도록 두는 게 좋아. 뭐… 상황 봐서 나 역시 그쪽을 통해 모습을 감출 수도 있고 말야. >
[ 알겠습니다. ]
이런 인질 구출 작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보통 인질범들이 설치한 폭탄이고, 실제로 놈들은 소교를 제외한 모든 인질들의 몸에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폭탄을 장치해 놓았다. 리모컨은 탁한이 가지고 있지만 몽몽이 전파를 교란하거나 리모컨을 아예 고장낼 수도 있다니 그건 별 문제가 아닌 셈이었다.
< 소교… 놀라지 말고 잘 들어. >
음… 이번에는 전음을 보내도 티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군.
< 앞으로 5분 정도 후에 경찰과 내가 동시에 작전을 시작할 거야. 그 순간 넌… 다른 인질들과 최대한 몸을 피해. 폭탄은 걱정하지 말고. >
소교는 탁한의 눈을 피해 내 쪽으로 입 모양이 보이게 하며 입을 열었다.
- 아… 알겠어요. 제가 도와 드릴… 일은요?
< …없어. >
아까는 어쩔 수 없이 소교에게 정글도를 던져 달라고 할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도… 음, 사실 조금 있긴 하다. 그러나 소교에게 향할 위험을 최대한 줄이려면 가급적 내 힘으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
탁한이 아무리 막강한 전투력을 가진 특수부대 출신이라 해도 내가 제대로 무공을 쓰기만 하면……
[ 주인님! 제임스라는 자가 이쪽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
윽…! 하필이면 그 놈이…? 몽몽의 조사 결과 무공을 숨기고 있는 건 제임스뿐이라고 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작전 개시 순간에 하필 그 한 명까지 나와 정글도 사이에 있게 되면… 으~ 결국은 소교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