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24-3화 : 몽몽의 위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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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24-3화 : 몽몽의 위기.(3)


으윽~! 나한테는 파편이 거의 튀지도 않았는데… 어느 정도 밀폐된 공간이어서 그런가? 무지막지한 폭발의 충격파 때문에 고막이 웅웅- 울리는 건 물론이고 잠시 잊고 있던 몸의 통증까지… 어? 어? 저거, 저거……

폭파된 통로 쪽에 있던 등불이 깨지며 쓰러져 불길이 기름을 타고 폭탄 더미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멈춰!”

탁한의 고함 소리 때문에 당장 달려가 불을 끄려던 내 생각은 생각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고함 소리보다는 놈이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기폭 스위치를 들어 보였기 때문이지만… 침착성을 되찾으려 애쓰며 흐름을 잘 보니 불길은 다행히 폭탄 더미 부근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고 있었다.

쳇~! 그러고 보니 폭탄 더미는 약간 경사진 위쪽에 놓여 있군. 하지만 불길이 저렇게 가까이서 타고 있으면 아무래도 불안한데……

“어떤가, 이제 상황이 조금 더 확실히 인식되나?”

이런 우라질 놈! 추적을 막는 것도 막는 거지만, 내가 계속 태연한 표정인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애써 표정 관리했던 게 오히려 역효과를 낸 셈이니 이제라도 솔직한 표정을… 아니, 저 놈이 저렇게 묻는 걸 보면 내가 이미 동요하고 있는 표정을 드러낸 건가? 그럼 뭐…….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어. 평소라면 몰라도… 지금의 난 당신이 뭘 어쩌든 막기가 어려운 몸이니 말이야.”

“…평소였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날 막을 수 있다는 건가?”

“글세……”

난 그가 말한 ‘이런 상황’을 새삼 다시 확인하며 가늠해 보았다. 폭탄의 양은 이 지하를 통째로 날리고 위쪽 건물까지 폭삭 주저앉히기에 충분한 양… 그걸 기폭시키는 스위치를 손에 쥐고 있는 놈과의 거리는 약 7미터… 아니 정확히 7.42미터……

“이 정도 거리에서라도 당신이 스위치를 누르기 전에 단 한 호흡이라도 주저한다면, 그 스위치 박스의 선을… 아니 아예 당신 손을 잘라 버린다거나, 그렇게 직접적으로 막을 수 있었을 거야.
만약 폭발 자체를 막지 못하게 된다 해도 당신이 스위치를 누르고 그게 폭발로 이어지는 사이… 음… 폭발의 직접적인 타격을 피하는 위치를 잘 선택하고 호신강기를 최대한 운용하면… 어찌 죽지 않을 수는 있을 것도 같아. 확실한 건 아니고 해봐야 아는 거겠지만… 여하간 뭐……”

음… 자신 있는 얘기는 아니라고 해도 역시 일반 사람들에겐 너무 비현실적인 얘기려나? 탁한도 택도 없는 소리를 들은 사람의 표정… 응? 아닌…가? 얼핏 비웃는 표정인 것 같으면서도 한편 뭔가 이해하고 있는 표정인 것 같기도……

“과연… 당신이 정말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이라면, 제임스가 말하던 바로 그 사람이란 얘기로군.”

“뭐?”

“제임스는… 자존심이 강한 녀석이야. 그런데도 언젠가 그런 얘길 했었지. 자신이 결코 넘볼 수 없는… 아니, 그런 생각을 갖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그런 남자가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이 시대, 자기 대가 끝나기 전에 말야.”

쯧~! 제임스 아니 뇌옥마군 녀석, 외부인인 탁한에게 자기 정체는 물론이고 나 마군황의 얘기까지 했었던 모양이군. 그건 금기사항 중 하나인데… 하여간 여러 가지로 벌 좀 받아야 할 녀석이로군.

“천년…! 아니 그 이상 더 아득한 옛날부터 내려온 비밀 조직이 있다는 말도 쉽게 믿을 수는 없었지. 물론 우리 중국인들에게는 기원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로 역사가 깊은 조직이 많지. 하지만… 나나 그들 스스로도 그 역사가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아. 단지 역사에서 이름을 빌려 온… 결국 이 시대만의 조직이랄까……?”

확실히 삼합회 자체도 그렇고 대부분의 조직이 그럴지도 모른다. 난 물론 그렇지 않고 정말 오리지널을 전승한 조직 두 군데를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제임스는… 어릴 적부터 나와 함께 자란 그녀석은… 아, 그래 소치나 다른 녀석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지. 제임스가 그런 인연으로 인정받고 싶지 않다고 해서 숨겨왔지. 어쨌든 나도 제임스가 설마 나도 모르는 사이 정체불명의 조직에 속하게 될 줄은 몰랐어. 더구나……”

으음…! 가만히 듣고 있자니 구구절절이 사연을 늘어놓을 기세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내 쪽에서 먼저 도발을 할 수는 없고… 일단 좀 더 준비 태세를 갖추고 얘기를 들어볼까…? 준비 태세라고 해봐야 그냥 멀뚱하게 서 있는 자세에서 정글도를 어깨에 걸치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녀석은 자신이 속하게 된 조직을… 천년 이상 전부터의 전통과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비밀 결사라고 했지. 100명의 후계자가 각각 다른 곳 다른 방식으로 살면서 일인 전승으로 맥을 잇는 방식… 그러면서도 각각의 유대가 끊기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비밀 결사의 창시자… 그가 환생할 것을 믿기 때문이라는… 그런 터무니없는……”

“저기, 하나 틀린 게 있는데, 난 창시자가 아니고 두 번째 보스였어.”

무심코 지적해 주자 탁한은 제임스에게 들었던 얘기의 기억을 더듬어 보는지 잠시 입을 다물고 침묵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심리적으로 민감한 상태라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수정해 준 것 정도로도 삐지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가만보니 그와는 별개의 이유로 뭔가 생각이 복잡해져서 그러는 것 같기도 했다.

으음… 근데, 그와는 반대로 나는 지금까지 복잡하고 조급했던 머리 속이 오히려 차츰 안정이 되고 있다.

곧바로 추적할 길은 막히고 몽몽을 가진 소치는 이미 이 지역을 거의 벗어났을 거라고 판단하면서 생긴 자포자기성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눈앞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건 바람직하다. 이대로 대화를 끌어가며 틈을 보다가 단숨에……

“…기분이 참 묘하군.”

탁한이 얼마간의 침묵 끝에 내놓은 말이었다.

“최후의 순간에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고… 궁금한 일이 많아질 줄은 몰랐어. 후후~! 나도 결국… 별 볼일 없는 놈이었던 모양이군.”

“내가 몇 번 죽어 봐서 아는데… 나도 그랬어. 다들 뭐… 사람이란 다 그런 거 아닐까?”

“죽어…봤다고? 그것도 몇 번이나?”

“그래. 당신과 달리 본의는 아니었지만, 하여간… 제3자 입장에서는 쿨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멋져 보일지는 몰라도, 사실 그럼 그게 어디 정상이야?”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보다… 한 가지 묻겠어, 교주 양반!”

교주…? 음, 마군황 전설을 사이비 종교에 비유한 건가? 다소 기분은 나쁘지만… 뭐, 솔직히 비슷한 구석이 많기는 하군.

“당신이 그런 비밀결사의 옛 주인… 그러니까 천년 전의 괴인이 환생한 자이며, 인간을 초월한 능력의 소유자라는 거… 사실로 치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애써 내 눈을 속이고 기회를 엿봤던 걸 봐서는 역시 정말 심한 부상을 입은 상태라는 것도 알겠어. 그런데 왜, 굳이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날 쫓아내려 온 거지?”

“말했잖아. 내 핸드폰 찾으러 왔다고.”

“…정말 그 이유뿐이라는 건가? 설마 소치와 내 부하들의 복수를 두려워하는 건 아닐 테고… 그 핸드폰에 그만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건가?”

눈치챘군! 그럼 난 그냥 갈 테니 자폭하슈. 비밀 유지되게…라고 할 수는 없겠지?

“제임스의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 녀석은 자신이 직접 와야 당신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그랬다가는 아무래도 그 녀석이 먼저 죽을 것 같더군.”

“제임스가… 아직 살아있다는 건가? 분명 내장까지 잘린 상태였는데?”

역시 피 색깔만 봐도 그런 걸 아는 자였군.

“그래. 당신의 판단처럼 위중한 상태였으니 지금쯤 어찌 되었는지 몰라도… 암튼 소교가 다른 소녀들과 함께 데리고 나갔어.”

겉으로는 제임스더러 다른 소녀를 부축하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아, 아차! 그보다 제임스가 아직 건물 내에 있다고 할 걸 그랬나? …쳇! 이미 뱉은 말은 할 수 없고, 그래도 제임스 얘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탁한의 눈동자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 같지? 찬스…려나?

“소교… 그 아이가 제임스를…? 역시 그 아이는……”

탁한은 다행이라는 표정과 함께 뭔가 더 매우 복잡한 감정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지금 칠까? 윽, 젠장! 으~ 타이밍 놓쳤다!

쓰…파…! 저 인간, 정신적으로 흔들리는 것 같으면서도 악착같이 스위치에서 손가락을 떼지 않고 있는 건 뭐야? 아니 그보다… 그냥 떼지 않고 있었을 뿐이라면 상관없었을지도 모르는데 스위치 위의 손끝이 갑자기 파르르 떠는 바람에 오히려… 으~ 예민해진 초감각 상태도 좋은 것만은 아니로구나. 상대의 손끝 떨림 정도에 내가 지레 놀라다니……

“정말이지… 마녀와는 너무나 닮지 않은 아이……”

그래, 그건 나도 알아. 여하간 이 양반아! 긴장 좀 풀어주라고! 그런 감상적인 표정과 대사를 하고 있으면서도 왜… 어? 잠…깐? 탁한의 저 손끝 떨림은 뭔가 이상한 걸? 긴장을 하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응? 이제 보니 부자연스럽게 떨고 있는 건 손끝뿐이 아니잖아?

저 인간… 부상을 당했나? 아니면 본래 병이라도 있는 건가? 몽몽이 있었다면 벌써 알 수 있었을… 치이! 정신 차려, 진유준! 지금 녀석의 부재를 아쉬워할 때가 아니잖은가!

“…이번엔 내가 한 가지 묻지. 탁한 당신… 왜 그렇게까지 죽으려고 드는 거지? 이 에든버러에 뭔가 원한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유가 약해. 뭔가 다른 이유… 혹시 몸에 뭔가 이상이라도 있는 거 아냐?”

“……”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 건… 아무래도 긍정의 의미인 것 같은 걸? 음, 왼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는군.

“그래… 꽤 오래 전 여기, 내 머리 속에 총알이 틀어박혔지. 제임스 녀석이 철부지였을 때의 일이고… 훗! 그딴 건 나 자신도 잊고 살았는데 말이야. 최근에야 그 알량한 쇳조각이 내 몸을 서서히, 아주 서서히 마비시키고 있다는 걸 알았지. 총조차 제대로 쏘지 못하는 몸으로 구차하게……”

말하며 자조적으로 웃던 탁한이 문득 안색을 굳히며 머리를 가리키느라 들었던 왼손에 시선을 던졌다. 그제야 자기 몸의 마비 현상을 자각한 탁한이 스위치를 쥐고 있는 오른손으로 시선을 내리며 그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움찔, 손가락이 두뇌의 명령에 작은 반응을 보였지만 그뿐이었다.

“빌어먹을!”

몇 번 더 애를 써보던 탁한이 탄식 같은 욕설을 내뱉었을 때, 나는 이미 전력을 다한 경공으로 그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탁한이 이를 악물며 왼손으로 스위치를 내리치듯 누르는 순간 내 정글도의 섬광도 번뜩였다. 다음 순간, 정글도의 서늘한 섬광이 폭탄의 거대한 화염에 묻히기 시작하는… 그런 결과가 나왔다면 나의 패배였겠지만… 내가 탁한의 바로 코앞까지 날아간 이후 얼마간의 시간이 더 흘렀을 때도 이 어두운 에든버러의 하수구 속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탁한은 천천히 전선이 잘려져 있는 스위치 박스에서 시선을 떼어 고개를 들고는 바로 눈앞에 서 있는 내게, 그리고 다시 바로 조금 전까지 내가 서 있었던 지점으로 눈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빠, 빠르군. 아까 방에서보다도… 아니, 그보다… 나 스스로도 느끼지 못했던 내 몸의 이상을 알아챘던 건가?”

“…난 죽음을 앞두었을 때 더 예민해지거든. 그리고……”

난 비로소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당연한 거 아닐까? 현실을 피해 죽음에 자신을 맡긴 자가 죽음과 싸우기 위해 현실까지 무시하는 자를 이길 수 없는 건… 말야.”

으음~ 일단 적의 보스를 제압한 기념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대사를 하긴 했지만 막상 하고 나니 좀 찔리는군. 나도 뭐 사실 큰 소리와 달리 죽음이라는 타임 씨의 친척, 내지는 타임 씨의 아르바이트 활동쯤 될 법한 현상과 만나게 되면 늘상 졸라 쫄곤 하니 말이다. …하여튼!

탁한은 자신이 자폭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가 자폭에 실패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허탈해 하느라 더 이상 다른 짓을 시도할 것 같지 않아 보였지만, 난 만약을 대비해 그의 혈도를 잡아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만든 후에 그 자리를 떠났다. 비로소 다시 몽몽에 대한 걱정이 검은 연기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후.

난 지하 하수구 밖으로 나가자마자 청천마군의 도움을 받아 건물 밖에 포진해 있는 기자들을 따돌리고 서둘러 그 구역을 벗어나야 했다.

이대로 인질이었던 소교와 작전 수행에 도움을 준 구양대주와 자룡대주, 청천마군 등의 지하무림 인들과 모여서 인질구출작전 성공기념 뒤풀이라도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마는… 불행히도 아직 범인들의 잔당은 물론이고 중요한 인질이 남아 있는 것이다.

“…놈들의 예상 도주로를 철저히 차단하고 있으니 곧 잔당들도 소탕할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얻어 탄 차를 몰아 주고 있는 운전자, 이번 사건에서 경찰 특공대를 지휘했던 전경하가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풀어!”

“예?”

“포위망 풀라고 했어.”

“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아니, 푸는 것보다는 그냥 유지하면서… 혹시 놈들이 검문에 걸려도 적당히 무시하라고 해.”

전경하는 나의 일방적인 요구에 어이없어 하는 것 같으면서도 더 이상은 반문하지 못했다. 그는 조금 전 나란 남자에게 절대 복종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 명령을 내린 인물은 당연히 청천마군이다.

청천마군은 알고 보니 그의 공적인 상관이자 사적으로는(?) 그의 사부라고 했다. 즉, 전경하는 예비 일백마군 중 한 명인 것이다.

그나저나… 젠장! 핸드폰이 안 터지는 지하에서 나오자마자 계속 몽몽과 통화를 시도해 보고 있는데 여전히 통화 불능이라는 메시지만 뜬다.

난 탁한에게서 회수한 소교 핸드폰을 아직 소교에게 돌려주지 않았고 그걸로 걸고 있는 거다. 어떤 전화로 걸어도 상관없겠지만 이 번호로 걸면 녀석도 알아보기가 쉬울 거 같아서…

[ …주인님! …주인님! ]

아! 걸렸나?

“그래, 나다! 괜찮은 거야? 어디야?”

[ 듣고 계실 것을… 상정해 다시 알려드립니다. ]

“응? 뭔 소리야? 잘 들려! 말해 임마!”

[ 현재 저의 위치는 북… ]

북… 뭐? 여기서 북쪽이라고?

“어? 야! 갑자기 안 들린다!”

[ …입니다. 만약…… ]

“어? 야!

[ 대비… 메시지…… ]

“야~!”

우이 쒸-! 뭐야? 소리가 들리다 말다 하다가 결국 끊기다니… 몽드폰의 통화 품질이 이렇게 나쁠 리가 없잖아?

그럼 소교의 폰이 무지 꼬진… 어? 그게 아니라, 방금 그건 아예 소교의 폰에서 들린 소리가 아니었잖아?

나는 뒤늦게 몽몽의 목소리가 소교의 핸드폰이 아닌 내 귀속의 수신장치, 몽몽의 하위체에서 들렸었다는 걸 깨달았다.

“차, 차 세워! 빨리!”

나는 급한 마음에 버럭 고함을 질러 차를 세우게 했고, 전경하가 의아하게 보거나 말거나 눈을 감고 조금 전의 기억을 되살리는데 온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다른 데 정신을 판 상태에서 들려 온 소리를 해석, 혹은 인식하지 못하고 ‘듣지 못했다’라고만 인식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조금 전의 나 역시 통화감이 이상하다는 생각에 마주 고함을 치다가 중요한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어쩌면 난 들었을지 모른다.

그래… 진유준, 기억 속의 테입(?)을 한 번 되살려 보자. 몽몽이 뭐라고 했었지? ‘저의 위치는… 북…어…’

응? 북어? 젠장! ‘어’는 내 목소리였다. 다시… ‘저의 위치는 북이… 북이…?’ ‘이’가 맞나? 아니, 아니야. 북야…

도 아니고… 북위…? 아, 그래. 분명 ‘위’였다. 침착하자, 침착하게 다시 한 번… ‘저의 위치는 북위… 어…’ 아니… ‘어’가 아니라 ‘오’…? 그리고 오시… 아니 ‘오십’……?

정말이지 몽몽의 필터 기능이 정말이지 아쉬워지는 시간이었다.

나는 끈질기게 몇 번이고 기억을 되살려 보며 내 나름의 필터링을 거듭해 봤지만 결국 몽몽이 자신의 위치를 경도와 위도로 알린 거라는 것만을 확신하게 되었을 뿐, 수치를 모두 기억해 내지는 못했다.

빌…어…먹을! 조금만 더 침착하게 들었어도 알 수 있었을 텐데… 으… 몽몽 녀석도 그렇지, 자기 위치를 알리려면 음성뿐 아니라 문자 메시지로 보내야 숫자 확인하기가 더 수월했을 거고, 아니면… 어, 잠깐? 메시지…? 그러고 보니 ‘메시지’ 어쩌고 라고도 한 거 같은데? 그럼 혹시… 핸드폰 전파를 쓰기 어려워지기 전에 핸드폰에도 메시지를 보냈다는 얘기?

나는 다시 소교의 핸드폰을 확인하고 그제야 메시지 도착 아이콘이 깜박이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불행히도 소교의 핸드폰에는 메시지 확인 메뉴에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다.

“이, 이봐! 오늘 인질이 되었던 소녀들 중 소교… 아니 ‘여수혜’와 연락할 수 있나?”

“다른 여학생들과 함께 병원으로 이송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어디든 바로 연락해! 빨리!”

재촉하는 내게 떠밀리듯 서둘러 차내의 경찰 무전기를 드는 전경하를 보면서도 새삼 초조해지는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어려웠다.

설사 소교의 핸드폰에 위치 정보가 보내져 있다해도 그건 현재의 위치는 아닐 것이다.

핸드폰 전파를 쓸 수 없게 된 후 조금 전처럼 다른 전파망을 이용해 수신밖에 못하는 하위체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결국 끊겼다는 사실이 너무나 불길했다.

…5, 아니 6분 후.

나는 소교와 통화해서 그녀의 폰 비밀 번호를 알아냈고 결국 그녀의 핸드폰에 남겨진 몽몽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갑자기 다시 희망이 생긴 건 메시지가 한 두 통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각 위치를 시간대별로 연결해 보면 놈들의 이동 수단과 현재의 위치도 추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전경하가 준 홍콩과 인근의 통합 지도를 펼쳐 들고 놈들과 몽몽의 이동점을 찍어가던 내 손가락은 차츰 홍콩을 멀찍이 벗어나고 있었다.

“…저기, 이 지도… 제대로 된 거 맞지?”

“물론입니다.”

“에… 내가 방금 이 위도와 경도를 이쯤으로 봤는데……”

전경하는 내가 보여 주는 핸드폰 화면의 숫자와 내 손가락을 끝을 비교해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 곳은… ‘바다 위’로군요.”

젠장…! 바다 위면 다행이게? 몽몽이 다른 모든 통신망을 쓸 수 없다는 건… ‘바다 속’이란 얘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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