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25-1화 : 천년 전의 원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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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25-1화 : 천년 전의 원한.(1)


3-6. 천년 전의 원한.(1)

몽몽이… 바다 속으로 납치되었다?

그런 결론, 아니 가정이 성립되기는 했다. 근데 정말 그런 거라면… 어째서 일까? 놈들이 잠수함 같은 걸 타고 탈출하고 있다는 얘기일까?

…물론 에든버러의 하수구는 분명 바다로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나나 몽몽도 탁한이 그쪽 출구에 보트나 개인 잠수 장비 같은 걸 준비해 놓았을지 모른다고 추정해 본 적은 있다. 탁한 일당의 준비성이 우리 쪽의 예상을 뛰어넘을 가능성은 있지만… 과연 일개 조폭의 하부 조직원들이 잠수함씩이나 준비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홍콩, 아니 중국 군대가 자기 앞바다에 수상한 잠수함 같은 게 어슬렁거리게 둘 정도로 허술할까?

아니… 가만있자? 난 조금 전 몽몽이 내 귀속의 하위체에 송신한 걸 무심결에 다른 어떤 통신 매체를 이용해서…라고 판단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내 귀속의 하위체는 우리 시대에서 쓰이는 전파를 수신하지 못한다고 했었다. 그러니 조금 전의 송신음은 직접 날린 거였다는 건데… 몽몽이 소형 하위체와의 통신에 쓰는 전파는 에너지 소비가 적은 대신 원거리이거나 단거리에서도 장애물이 많을 때는 원활하게 사용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운 좋게 장애물도 없고 ‘노이즈’(나도 이 개념은 잘 모름. 전파를 방해하는 자연적인 조건 같은 것인 모양이다.)가 적은 대기 상태에서는 원거리 통신도 가능하다고 했었고…

그러니까… 조금 전 내가 수신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인가? 따라서 그런 전파가 끊겼다고 해도 그게 몽몽이 바다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근거가 될 수는 없겠고 말이다.

최근 계속 좋은(?) 환경에서만 몽몽을 써서 헷갈렸던 모양이다. 바다 위처럼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는 몽몽도 도시에서처럼 제대로 활약할 수가 없다. 물론 무림 시절 몽몽은 미래 여자 진이 띄워놓은 인공 위성과 통신을 하곤 했지만 그건 경우가 다르다. 10분 정도 통신 후 에너지 보충을 해야 했고 그래도 그나마 가능했던 건 상대방도 같은 시대의 기계였기 때문이다. 현 시대의 인공위성이나 기타 원거리 기계들과 통신하려면 몽몽도 주변에 중계기로 쓸 고출력 매체가 있어야 하는 거다.

음… 아무리 최신형 파워엔진을 갖춘 스포츠카라고 해도 바퀴가 없거나 잘해야 리어카 바퀴밖에 없으면 절대 제 속도를 낼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암튼, 통신이 끊겼다고 해서 무조건 몽몽이 바다 속에 있다고 판단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이다. 물론 그걸 깨달았다고 상황이 나아질 건 없고 ‘바다 속’이라는 가능성이 아주 사라진 것도 아니지만……

“과연… 그랬었군요.”

응? 난 지금 암 소리 안 하고 혼자 생각만 했는데…

전경하 이 친구, 혹시 초능력자라도 되는 거 아냐?

“왜 포위망을 풀라고 하셨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놈들이 벌써 이 정도 해역까지 나갔다면 인근의 수색은 이미 의미가 없죠.”

아~ 그 얘기? 난 또…..

암튼, 뭐… 그 명령도 그런 뜻으로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알아서 꽤 맞춰 주니 고맙군. 사실 내가 포위망을 풀라고 했던 건 놈들이 거기 걸려서 싸움이 벌어지면 그 와중에 몽몽이 위험해질까 싶어서 그런 거다. 총격전 도중 유탄에 맞는다거나 하는 위험도 있겠지만 다른 경우… 예를 들어 소치가

‘쳇! 도주는 틀렸다.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며… 그 전에 우리 일을 망치고 형님의 원수인 놈의 물건만이라도 내 손으로 부숴 버리겠다’

식으로 생각하고 몽몽을 공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 근데 전경하가 다시 무전기를 들어 이번엔 해양 경찰과 연락을 하려 하는군.

“잠깐!”

“예?”

그냥 수색하라고 하고 지금까지처럼 발견하더라도 공격은 하지 말라고 하면 되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만약 놈들이 잠수함 같은 걸 이용하고 있는 거라면 해상 수색으로는 아예 걸리지도 않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은 거 같고, 어떤 경우라도 해도 바다라는 특수 공간에서는 놈들이 경찰의 추적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아직 연락하지 마. 아니… 역시 경찰의 추격은 안 돼.”

이번에도 같은 명령을 반복하자 전경하도 더는 못 참겠는지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물었다.

“무슨, 다른 대안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다른 대안이라……”

지금 내게 있어 다른 대안이라고 해봐야 구양대주와 자룡대주의 도움, 그리고 그들이 설득할 수 있는 마군들… 음, 무심결에 ‘…라고 해봐야’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런 수준이 아니로군. 오히려 그렇게 동원할 수 있는 엄청난 인력을(전경하와 청천마군의 영향력만 생각해봐도 그렇지.) 싸그리 동원해 놓고 나중에 ‘고마워. 덕분에 핸드폰 찾았어.’라는 소리를 한다면… 으음… 에이~ 몰라! 나중 욕을 먹더라도 일단 몽몽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니 동원하자, 가능한 한 전부!

“…내가 안 된다고 한 건 직접적인 추격뿐이야. 공항의 관제탑이든 해양 경찰의 초소든… 하여간 당신과 청천마군의 능력으로 확인 가능한 모든 장소… 그러니까, 바다로부터의 구조신호나 기타 메시지가 담긴 전파를 수신할 만한 곳에는 모두 협조를 요청해 줘.”

“그 말씀은… 아니, 그 전에 놈들의 위치를 알려 준 메시지도 그렇고 혹시 놈들 잔당 중에도 우리 지하무림 사람이 있다는 의미입니까? 제임스… 아니, 뇌옥마군님처럼?”

음… 그런 설정도 나쁘지 않지만, 그걸로 밀고 나갔다가는 나중 놈들이 체포되면 상황이 애매해진다. 차라리……

“아니, 이 핸드폰에 온 메시지는 지하무림 말고… 내가 아는 다른 녀석이 보내 온 거야. 그 녀석이 따로 놈들을 미행했었는데 마지막 메시지 송신 지점 이후로는 놓친 모양이고… 음, 하지만 소치가 내 핸드폰을 가지고 갔거든.”

“예? 핸드폰… 말입니까?”

“음… 그건 특수 제작된 거라 미리 세팅해 두면 구조신호나 특정 메시지가 담긴 전파… 그러니까 일단 핸드폰이 쓰는 게 아닌 전파를 발신하게 되어 있어. 비록 출력은 낮겠지만 말야.”

“아, 그랬었군요.”

음… 말하면서도 약간 불안했는데, 아주 쉽게 납득해버리는군.
하긴… 요즘의 핸드폰에 카메라 기능이나 MP3 기능 같은… 전화기 본연의 목적과 관계없는 것들을 빼면 내가 말한 기능을 넣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으려나?

“…그렇다면 그 주파수와 메시지 내용을 알려 주시면……”

에? 그건 나도 모르는데……

“그게… 실은, 그 동안 그 기능을 쓸 일이 없어서… 이번엔 혹시나 하고 발신 세팅을 해뒀지만 자세한 건 잘 생각이… 음, 암튼 평범하지 않은 메시지는 전부 체크 해 줘.”

내가 다소 민망한 표정으로 얼버무리자, 전경하는 알겠다는 듯 피식 웃더니만 더 이상 묻지 않고 차내의 무전기를 들었다.

쯧…! 사소한(?) 부분에서 권위가 좀 실추되었으려나? 에이~ 그건 할 수 없고, 전경하가 저렇게 사방에 연락을 해 보는 사이 나도 구양대주와 통화해서 또 도움을 좀 받아 볼까? 에… 근데 그게… 으~ 제기!

“저기, 바쁜 중에 미안하지만… 청천마군 전화번호 좀 알려 줘.”

쳇~! 어떻게 집 전화 번호 말고는 제대로 생각나는 번호가 없냐, 그래? 무림 시절에는 몽몽을 이용하면서도 가급적 나 자신의 두뇌를 쓰도록 노력했었는데 본래 시대로 돌아온 후로 오히려… 아니, 뭐… 누구나 전화번호 단축키 정도는 쓰는 거…기는 하지만… 으으음~! 아니다, 아냐! 이건 뭐라 해도 진유준, 니가 그동안 너무 나태했다는 걸 의미한다. 항상 몽몽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몽몽이 없을 때는 이 꼴이니… 반성하자! 반성해, 진유준!

나는 바쁜 와중에도 잠깐 자아비판을 한 다음, 청천마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를 통해 구양대주와 연락을 해 보았더니 그 사이 구양대주 역시 홍콩에 도착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내 요청을 받자마자 힘있는 음성으로 대답해 주었다.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해역을 수색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번 일의 잔당들을 찾아 낼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습니다. 물론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도 곧 운행 거리가 가장 긴 기종의 헬기를 구해서 모시러 가겠습니다.”

후우~ 정말이지 든든한 구양대주! 천년 전의 원조(?) 구양대주도 신뢰가 느껴지는 타입의 인물이었는데… 만약 내가 무림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면… 거기서도 구양대주의 신세를 많이 졌으려나……?

“…천주!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응? 전경하는 또 갑자기 왜 이리 열 받은 표정이지?

“사부님과 제 부탁에도 협조하지 않는 곳이 있어서… 아무래도 직접 찾아가 ‘설득’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설득…? 어딘지 모르지만 설득이라기보다는 그냥 엎어 버릴 것 같은 표정인 걸?

“천주께서는 어쩌시겠습니까?”

“…난 여기 남을 게. 곧 구양대주와도 만나야 하니…..”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 제 개인 무전기를 드리고 가겠습니다. 말씀하신 전파가 발견되면 곧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경하는 말하며 자기 무전기를 건네주더니 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험상궂은 표정으로 부아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차를 출발시킨다.

음… 처음 마군황과 마군 후보생으로 만났을 때는 생각보다 점잖은 인상이다 싶더니만, 실무에 있어서는 역시 다혈질 군발틱한 본성이 나오는 것 같군. 어쨌거나… 이제 난 전경하와 청천마군 측으로부터의 연락과 구양대주의 헬기가 올 때까지 여기서 혼자 기다려야 할 상황인데… 그렇다고 그 사이 그냥 탱글탱글 놀고 있을 수는 없겠지?

나는 지나가는 차 속의 사람들이 힐끔거리거나 말거나 한 쪽… 이 도로 가의 비상주차를 위한 공간의 한쪽 구석으로 가서 시멘트 바닥에 결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운기조식으로 소교 구출 작전에서 소모한 내력의 회복을 도모하는 한편, 나름대로… 그러니까 머리속으로 몽몽의 행방을 추적해 보기 위함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몽몽의 기능과 판단 패턴을 최대한 되살려 보고 그걸 현재의 상황에 도입해서… 그러니까, 툭하면 몽몽에게 시키곤 했던 가상, 혹은 예상 시뮬레이션을 이번에는 스스로 시도해 보기로 한 것이다.

몽몽… 몽몽은 적의 손에 떨어진… 아니, 녀석에게는 적이라기보다는 그저 사용자로 인정할 수 없는 자라고 해야 할까…? 암튼, 녀석이 그런 상황에서 빠져 나오려고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떤 시도를 하고 있을까…?

만약 적극적인 방법을 택한다면… 형태 변화를 통해 스스로 기동력을 확보하는 것…이려나? 하지만 녀석이 인간의 추적과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 정도의 기동력을 발휘하려면 웬만한 기능은 전부 정지하고 기동에만 에너지를 써야 하고, 기동 시간도 잘해야 1분 정도… 혹은 더 짧을 거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슬며시 눈에 띄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해 짱 박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르지만 소치는 ‘형님의 복수에 필요한 물건’으로서 몽드폰을 가져간 거다.

내가 소치라면 절대로
‘어랏? 내가 핸드폰 어따 놨었지? 에이- 나중에 찾지 뭐.’
이런 식으로 대충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당근 주변을 철저하게 수색할 테고… 거기다가 만약 몽몽의 형태 변화를 목격하기라도 하면…

음, 핸드폰에 갑자기 발이(?) 생기더니 쪼르르 도망을 친다…?

으- 나라도 그런 핸드폰은 신기해서라도 더 잡으려 들겠다. 하여간… 나라면 형태 변화로 탈출을 시도하는 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둘 거다.

음… 근데 최후의 수단이라… 그러고 보니 만약 몽몽이 터미네이터 급으로 인간 생명에 대한 개념이 없다면 녀석도 그리 만만한 로봇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인접한 소치의 신체를 장악해서 자중지란을 일으킨다거나 해서 오히려 놈들을 몰살해 버린다거나… 그런 일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에효~ 몽몽이 그런 놈이었으면 처음부터 잡혀가지도 않았겠지? 아니, 애초에 내가 함께 다니지도 않았을 거고. 말이다. 뭐… 물론 몽몽도 전에 분명 사용자인 나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들의 생명도 차선으로 여기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사용자인 나에게 최종 판단을 맞긴 거고… 몽몽의 인명 보호 시스템은 몽몽 자신이 직접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철저하게 통제한다고 했다.

그 통제력은 자신이 파괴될 상황에서조차 유효하다니 결국 인간 상대로는 소극적인 방어나 도주밖에 할 수 없는 건데… 잠수함이든 보통 배 안이든 한정된 공간에서는 그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배경이 바다인 이상 최후의 수단마저도 좀 불안하고… 일단은 끝까지 얌전히 있으면서 주인의 구출을 기다리는 게 최선이려나?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주인과의 통신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핸드폰 전파를 쓸 수 있을 때까지 이동 중인 루트를 주인이 확인할 것 같은 다른 핸드폰에 메시지로 남겼다지만 그 후에는…

음… 역시 주인인 내가 뒤 쫓아 올 것을 바라고 미약한 출력이나마 구조 신호를 계속 보내고…

음…. 으으음…

쳇! 시뮬레이션이랍

시고 너무 겉돌 뿐인 걸? 이제까지 생각했던 거 이상은 떠올리지 못하겠으니……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아직 전경하로부터는 연락이 없고, 구양대주가 도착할 기미도 없었다.

뭐, 이대로 운기조식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냥 노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러는 사이 몽몽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르는데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참 못할 짓이다.

“…그럼 다시 시도해 볼까…? 시뮬레이션… 에… 그러니까, 이번엔 좀 다른 방식으로…”

그래, 진유준 식 가상 시뮬레이션…!

나는 다시 한 번 몽몽의 패턴을 상기해 본 다음 그걸 바탕으로 자기 암시 비슷한 걸 걸어 보기 시작했다. 몽몽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추정해 보는 것을 넘어서 아예 나라면… 내가 몽몽이라면… 몽몽으로서, 몽몽의 행동을 생각해 보려는 시도이다.

나는… 그래… 나는 몽몽, 이 시대는 물론이고 까마득한 미래의 본래 시대에서조차 손꼽히는 최상위 기종의 인공지능 로봇이다. 그런 나이지만, 스스로 기동할 수 있는 기능의 미비로… 그러니까, 그런 쪽 기능은 현 사용자… 진유준… 그 무식한 인간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근데… 우쒸~! 이 노무 주인인지 뭔지 껄렁한 인간은…”

“그래, 나에게 몽몽이라는 구린 이름을 지어주질 않나, 임시 사용자 주제에 ‘주인님’으로 부르라며 시건방을 떨지 않나, 첨부터 졸라 맘에 안 들었었다.”

그래도 난 개김 금지 회로가 있어서 할 수 없이 뺑이 치면서 늘 도와 줬는데… 썅~! 이 인간이 이번엔 웬 다른 인간 소녀 구한 답시고 버벅대며 고공 맨땅 헤딩을 하질 않나, 막 나간다 싶더니만 끝내 이 귀한 몽몽님을 멍청하게 적에게 뺏기기까지… 에… 그게 그러니까…

으으으음~ 이거 어째 자기 암시… 실패한 거 같지? 몽몽은 이렇게 불량한 불량 로봇이 아닌데… 방금까지의 몽몽은 내 쪽에 더 가까운… ‘진유몽’이었던 것 같다.

에구~ 다시! 다시 시작해 보자.

나는… 나는 몽몽이라는 이름의 인공지능 로봇. 나의 설계는 사용자로 등록된 인간의 생존 및 기타 필수 지능 활동 보조에 특화되어 있다. 그 외… 접촉 가능한 모든 정보의 수집 및 가공으로 나 자신의 인공지능을 발전시키는 활동이 허가되어 있으며, 현 시대 인간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기능을 무수히 탑재하고 있으나 역시 대부분 지능형 활동에 한정된 패턴의 기능들이다.

“따라서 현재 내가 처한 위기 상황의 극복에 적극적인 대응이 불가능하며…”

으음~ 좋아. 이번엔 조금 더 몽몽에 가까워진 거 같지? 그래… 이런 식으로 조금만 더 몽몽에게 접근해 보자.

본 기체는… 현재 위기 상황 인해 자체 보호 시스템 가동 중…! 등록되지 않은 사용자의 무단 점유로 인해 본 사용자와 헤어진 상태이며 무단 점유로부터 미등록 사용자의 자발적인 해제 가능성은 극히 낮으며, 본 기체의 기본 설계 및 제작… 인간식의 표현 방식으로 말하자면,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자가 탈출 또한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기체 회수 능력을 가진 본 사용자, 진유준님에게 필요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거나, 한시적인 시점에 한할 경우에도 필요 정보의 효과적인 전달이 가능하도록 전달 루트를 확립하는 것은 물론이며…

…에구. 이건 또 너무 지나친 몽몽… 아예 초기 버전인 거 같다. 어렵다 어려워~ 영점 조절(?)해서 다시…

본 기체의 무단 점유자, 즉 ‘적’들은 이미… 경찰 병력의 포위망을 벗어났으며 얼마 후면 홍콩 해역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주인님이 영원히 나의 회수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 즉, 적 보스의 자폭에 의해 함께 폭사할 가능성은 제외한다. 그 분의 위기 회피 능력에 대한 데이터에 이 시대의 관상학, 운세론 등… 일부 확률적 데이터만이 증명된 분야의 데이터까지 분석에 활용할 경우… 실제적으로 갖춘 위기 극복 능력도 뛰어나며 소위 악운에도 강하므로… 다소 점잖지 못한 표현을 쓰자면…

“명줄이 질긴 타입이다.”

…응? 이번에도 뭔가 좀… 음, 하지만 이 정도면 그냥 봐줄 만한 거 같다. 이 버전의 몽몽으로 계속해야겠다.

“따라서 주인님의 회수를 자체 보호 시스템 운영 방향의 기본으로 한다.”

“나는 주인님과 직접 통화가 가능한 전파 사용 가능 지역을 벗어나기 전까지 연결을 시도했으나 직접 통화는 실패했다.”

“하위체를 지닌 주인님이 또 뭔가 뻘짓… 아니, 하여간 전파 도달이 어려운 지하에서 벗어나는데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따라서 나중 주인님이 빠르게 확인할 가능성이 높은 통신 매체를 선정하여 나의 이동 루트를 일정 간격으로 송신 중이다. 주인님의 평소 행동 패턴으로 보아 소교님의 핸드폰도 챙겨 줄 가능성이 높으므로 그쪽으로의 정보 전달을 기대해 본다. 핸드폰 등의 타인의 통신 매체에는 나의 정체에 대한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제한된 형태의 정보밖에 제공할 수 없지만 대교님 보호 체제 구축의 일환으로 구축해 놓은 인터넷 사이트에는 더 정확한 정황을…

아! 맞다! 그 사이트! 하핫~! 내가 왜 그걸 잊고 있었지? 그래! 몽몽이라면 분명 거기에 보다 정확한 정황을 남겨 두었을 테니 구양대주에게 연락해서 올 때 인터넷 가능한 노트북이라도… 어… 가만…?

그게… 으윽! 으… 으아아~ 이럴 수가! 그 사이트 주소가 생각 안 난다~!

물론, 주인님이 그 사이트 주소를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예전의 통신 환경만 생각하다가 근래의 인터넷 찌질이들에게 질려서 그런지 검색도 대부분 내 동생 요몽에게 맡기는 등 인터넷 활용에 문제가 많은 상태이며, 그 동안 다른 사건들로 무지 바빴던 것도 사실이므로 만약 그 분이 정말 자기 사이트 주소조차 모른다 해도… 이해해 주기로 한다. 어쨌든…

현재 나는 점점 더 육지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나의 기체가 지하에서 나온 이후로도 줄곧 주변에 접속하여 이용할 장비가 부족해 이 시대 기계들이 수신할 수 있는 장거리 전파를 직접 발신하는 것만으로도 과도한 에너지를 소비하였다. 내 하위체만이 수신할 수 있는 방식의 전파는 에너지 소모가 극히 적은 장점이 있어서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며 일부는 원거리에서도 수신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음… 설마 주인님, 내 메시지를 수신하고도 어리버리 잘 못들은 건 아니겠지?”

…끄흠~! 계속 하다 보니 이중 인격 비슷한 수준까지 가나 보다. 정말 몽몽의 음성 일기라도 듣는 것처럼 민망하군. 음… 근데 그보다… 이어지는 게 뭔가 좀…

“주인님의 하위체에 전파가 도달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차지하고라도… 이제 더 이상 주인님으로부터 멀어지면 곤란할 것 같다.”

“이대로 적과 이동을 계속하면 결국 이 시대 장거리 통신 장비 활용이 가능한 장소에 도착하게 될 것이며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끝까지 적과 함께 하며 위치를 송신하면 결국 주인님이 그들을 소탕하며 날 회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전에 핸드폰으로서의 형태 그대로 적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소치라는 이름의 적의 옷 주머니에서 나가는 방법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 판단이 요구되며, 그런 단계의 성공 이후의 대책은 다음과 같다.”

현재의 환경은 바다이므로 제 1 요건은 부력을 갖춘 형태, 즉 인간들의 운동기구인 ‘공’ 모습이 가장 무난할 것으로 판단된다. 해당 형태와 수면 조건에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강도와 탄성 유지를 위한 제 2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기체의 전반적인 구조 변환이 필요하므로 이후 발신 가능한 전파에 한계가 있겠지만, 부력을 유지한 채 수면에서 단순 신호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주인님의 회수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주인님은 최근 과거의 세력인 지하무림을 되찾았으므로 그 자원을 적극 활용하게 된다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주인님께서 나의 판단과 달리 계속 육지에서 날 찾아 헤매고 있거나, 그 외의 돌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모험을 떠난 자의 마지막 일기 같은 분위기로 끝난 스스로 몽몽 모드가 되어 해 본 시뮬레이션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아니 몽몽이 스스로 탈출해서 바다에 표류하는 그런 스토리로 끝난 거지? 난 지금까지 몽몽이 일반 배든 잠수함이든 아직 놈들과 함께 있을 거라고 판단했고 지금도 그 생각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몽몽 모드로 생각해 봤을 때도 중반까지는 분명 나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으며 기다리는 패턴이었는데, 왜 갑자기 위험을 무릅쓰고 달아나는 결론이 내려진 거야?

역시… 몽몽 모드니 어쩌니 해도 그냥 나 자신의 망상일 뿐이었나? 하지만… 왜? 내가 왜 특별한 근거도 없이 그런 생각을 해? 이건… 설마 나의 그 불완전한 직관력이 작용한 건가? 내가 지금까지 놓치고 생각 못 했던 어떤 요소를 무의식중에 계산 속에서 넣어서 그런 결론을 내린 건 아닐까? 만약 그런 거라면… 정말 몽몽이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거나 이미 뛰어든 상태라면… 그건 더 심각한 상황이잖아? 시뮬레이션 속에서도 나왔지만 그럴 경우 구조 신호 출력이 더 낮아질 텐데… 아무리 지하무림 식구들의 협조가 있다 해도… 너무 넓은 거 아닐까, 바다라는 곳은?

“걱정하지 마세요~”

엥? 뭐, 뭐야? 갑자기 누가 이리 딱 맞는 대답을…

“난 믿고 있어요~”

미, 믿는 건 좋은데… 아니, 아니 그보다 이 음성은…

대교…? 대교가 여기에?

나는 눈을 뜨고 정신없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눈을 감기 전과 다름없이 아무도 없는 주위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달콤한 대교의 음성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고… 난 결국 큿 소리를 내며 웃고 말았다.

아무리 정신이 딴 데 가 있었다고 해도 그렇지, 핸드폰에서 울리는 노래 소리를 순간적으로 착각하다니… 뭐, 어쨌든 타이밍이 하도 좋아서 그런지 조금은… 진짜로 대교에게 격려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드는군. 덕분에 무아지경 비슷한 상태에서도 전화가 왔다는 사실을 빨리 알아챌 수 있었고 말이다.

음, 근데 구양대주나 전경하의 번호가 아니군. 그럼 소교의 친구나… 아니, 어째 굉장히 낯익은… 으윽! 내 정신 좀 봐! 이거, 내 번호잖아? 내 번호라는 건 몽드폰 번호라는 의미! 뭐야? 몽몽 녀석… 설마 혼자 탈출에 성공해서 돌아오기까지 한 건가?

“…여보세요?”

“주인님! 주인님 맞죠? 그쵸?”

“요, 요정 몽? 너냐?”

“예! 저예욧! 와아아~ 역시 이 전화를 갖고 계셨어!”

“야 임마! 대체 어떻게… 하, 하여간 괜찮냐, 니들?”

“어, 그게… 전 괜찮지만… 몽몽 오빠가 아직……”

“뭐? 그게 무슨 소리냐? 넌 괜찮은데 몽몽이 아직… 이라고?”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분명히 분리된 자아라고는 해도 본체는 같은 놈들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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