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26-1화 : 연옥도(煉獄島)(1)
3-7. 연옥도(煉獄島)(1)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원점이랄까…?
나는 처음에 우려했던 대로 몽몽이 혼자 이 넓은 바다 위를 표류 중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나도 표류하자’였다.
“천주의 의지는 충분히 알겠습니다만, 이제 저희들에게 일임하시고 쉬시는 편이……”
내가 몽몽이 떨어진 해역에서 혼자 내리려 했을 때는 줄곧 군소리 없던 구양대주까지 반대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자존심 문제랄까…? 난 내 걸 되찾기 전까지는 결코 이 바다를 떠나지 않을 거야.”
내 고집스런 태도에 구양대주는 결국 혼자 육지로 돌아가야 했다. 난… 본래 몽몽과 최대한 비슷한 조건을 갖추려고 작은 구명보트 같은 거 하나 얻어서 타고 표류해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수준의 배에는 보고를 받을 통신 장비조차 제대로 실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대신 오늘 모인 배들 중 그나마 가장 작은 배를 택하게 되었는데, 갑판에 낡은 그물이 쌓여있고 배 전체에서 비린내가 배어 있는 어선이었다.
“정말 이대로 엔진을 끄고 그냥 있기만 하면 되겠습니까?”
배의 본래 주인이라는 중년의 남자가 그렇게 물었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헬기에서 내리기 얼마 전에 요몽이 계산 뽑아온 루트… 몽몽이 떠내려갔을 만한 해역에는 이미 수색조를 보내놨지만 그쪽에서 발견하지 못할 경우에는 나도 이대로 계속 표류해 볼 생각이었다.
“그는… 어부인가? 나 때문에 한동안 일을 못하게 되었군.”
“한동안 일을 못하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단순한 어부는 아닙니다.”
내 말에 대답한 이는 자룡대주였다. 구양대주와 함께 가라고 했는데도 끝내 남은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 배도 평범한 어선으로 보이지만 주로 밀항과 밀수… 그리 밝은 쪽 일을 하는 배가 아닐 겁니다. 해룡방(海龍幇) 소속이라니 말입니다.”
“해룡방이라면……”
“간단히 말하자면 해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홍콩의 본토 복귀 이후 세력이 많이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인데… 흑해마군(黑海魔君)의 영향력으로 오늘 일에 참여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어째 어부치고는 분위기가 좀 거시기하다 싶긴 했지만 해적이라… 음… 흑해마군은 천년 전에도 분명히 바다를 주무대로 한 마군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어업이나 무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연합을 주도하면서 해적들과 싸우는 입장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나중에는 자신이 해적이 되어 버렸던 건가? 그리고… 홍콩에 아직도 해적이 존재한다는 것도 좀 뜻밖이군. 성룡 영화같은 데서도 최소한 몇십 년 전을 배경으로 했을 때만 나왔던 것 같았는데 말이다.
“그보다, 이제 부상부터 살피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자룡대주의 걱정스런 시선이 내 어깨와 허벅지를 번갈아 오가고 있군. 하긴, 고공에서의 맨땅 헤딩으로 생긴 중상… 전신에 소위 골병이 든 건 겉으로 보이지 않으니 어깨의 총상과 제임스에게 칼질 당한 허벅지의 상처가 터져 피가 옷 바깥까지 배어있는 경상(?)만 눈에 띌 것이다. 구양대주가 쉬라는 권유를 한 것도 이런 몰골 때문일 테고… 암튼 치료를 받기는 받아야겠지?
나는 결국 얌전히 선실로 내려가 겉옷을 벗고 자룡대주의 응급치료를 받았다. 붕대를 갈며 상처를 다시 소독하고 항생제 주사를 맞는 정도였지만, 항생제를 맞을 때 비로소 나는 내가 그 동안 너무 미련 맞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력과 정신력으로 출혈을 최소한으로 막고 통증은 참아 낼 수 있어도 상처에 세균이 침투하는 건 못 막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버티기만 한 것이다.
총칼 맞은 상처에 항생제 주사 맞으며 미련 맞은 걸 깨달았다…? 훗~! 과정이 말장난 비슷하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어리석었던 건 맞다(또?). 몽몽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제대로 대처하려면 나 자신의 몸을 빨리 회복시키는 게 선결 과제이다.
만약의 경우… 그러니까 ‘몽몽이 이미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다’는 최악의 가정이 사실이기라도 할 경우에는 그 바다 밑까지 들어가 뒤져야 할 테니 말이다. 그래… 아깐 잠시 약해지기도 했지만, 나는 몽몽을 되찾을 때까지 결코 약해져서는 안 된다. 몽몽과 원본 요정몽은 지금……
“…죄송합니다, 천주.”
“응?”
잠시 생각을 멈추고 돌아보니, 구급약 상자를 정리하던 자룡대주가 새삼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되어 있었다.
“저희 보천구룡대는 지하무림과 마군황의 그림자이며 수호자… 그런데 전 도리어 천주께 해를 끼치고 말았으니……”
내 상처들을 보다 보니 새삼 부담을 느낀 건가? 음…
사실 고의도 아니었는데 계속 저렇게 스스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식의 태도를 보이니 내 쪽에서 좀 민망하군.
“뭐… 사실 처음은 아니야.”
“예?”
“생각해보면 내가 죽음에 이를 정도의 타격을 입은 건 대부분 여자 때문이었던 것 같아. 낙룡파에서 살해될 때는 ‘호초’라는 여자 시비의 배신이 결정적이었고… 그리고 또… 이름이 은… 어, 그래 ‘은비’, 공주의 의녀인 은비라는 여자 때문에 주화입마에 빠진 적이 있었지.”
으음~ 더 심했던 경우를 얘기해 주며 위로 비슷하게 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말하다 보니 뭔가 좀 이상하군. 가장 막강(?)하지만 밝힐 수 없는 미래 여자 ‘진’에 대해서는 빼고 말했지만… 죄질로 따지면 배신녀 호초가 그다음 악질이고 어이없기로는 옷자락 한 번 잡아당겨서 날 골로 보냈던 은비의 경우가 더 심했으니 예를 들기는 잘 든 것 같은데… 뭐야, 이거? 지금까지 내게 치명타를 먹인 건 전부 ‘나와 별 상관없는 여자’들이었잖아?
“여난(女難)…! 시대를 초월하여 영웅들은 본래 여난에 휩싸이기가 마련이지요.”
“아니, 그건, 그게……”
“천주를 따르는 여자들이 많을 테니… 어쩔 수 없겠지요.”
“그, 글쎄…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크흠~! 음! 암튼, 그 일은 이제 그만 서로 잊자구.”
“알겠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룡대주는 다시 고개 숙여 사죄의 태도를 보인 다음 선실을 나갔고 나는 잠시 더 내게 닥쳤던 그 여난이란 것을 생각해 보았다.
보통 여난이라고 하면 자룡대주 말처럼 누군가 자길 좋아해서 달라붙는 바람에 생기는 사고를 말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미래 여자나 호초, 은비… 이번의 자룡대주까지도 나와 전혀 상관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코 반해서 쫓아다닌 여자들이 아닌데… 이거, 난 여난이라도 어째 질이 더 안 좋은 종류만 당한 거 같은걸?
내가 무슨 ‘여자들의 적’도 아닌데 우째 이런 일이… 으음~ 설마 내가 전생에… 그러니까, 시간여행으로 간 거 말고 더 옛날의 진짜 전생에서는 여자들에게 몹쓸 짓을 하고 다녔던 놈이었던 건가…? 에이~ 설마…
설마…라고는 생각하지만, 매우 껄쩍지근한 현상을 깨달은 셈이다. 대교나 소교처럼 내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사건에 뛰어든 케이스를 빼고도 여자들 때문에 당한 일이 그렇게 많았다니… 이 것도 일종의 징크스 같은 건지도 모른다. 굳이 따지자면 해남파의 홍초명 같은 여자도 나와 대교를 힘들게 한 사건의 시발점이었고 말이다.
이거, 이거… 아무리 바빠도 한 번 따져보고 넘어 가야 할 것 같은 걸? 어디… 굵직한 사건의 주모자들만이라도 다시 정리해 보자.
- 진.
미래에서 날아온 특이 신분을 가졌으며 진짜 전혀 상관없었던 여자가 뭔가 상관 있기도 전에 날 고난의 길로 몰아넣기부터 시작한 여자다. 최근(?)에는 원판까지 우리 시대에 끌어들이는 등 최악의 사고뭉치로서의 아성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마도 미래에서조차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트러블 메이커인 듯한… 악연의 여왕!
영화 속의 등장인물에 비유하자면 처음부터 주인공을 괴롭히는 역할에 끝까지 죽지도 않는 주연급 악역… 야구로 치자면 강속구 투수가 스트라이크보다 빈볼이 더 많고, 타석에 설 때는 타율, 도루율 모두 높아서 상대팀에게는 그야말로 지긋지긋한 선수…랄까?
- 호초.
전 비연대 대원이자 소령이의 친구였던 그녀는 어느 정도 시점까지는 미래 여자 진에 비해서는 가까운 사이였으나 그리 친하지도, 아주 모르지도 않았던 어중간한 여자다. 그러나… 자신의 연애 전선을 위해 낙룡파에서 느닷없이 배신을 때리는 바람에 흑주도 잃고 나 자신까지 대천마에게 맞아 죽게 하는 등… 한 방에 만루 홈런을 날려 경기를 뒤집은 강타자(?)! 거기다가 나중에는 소령이에게도 용서받고 애인인 대천마의 대제자와 어디 산 속에 은거한다고 했으니… 저지른 일에 비해서 엄청난 해피엔딩까지 챙겨간… 은근히 얄미운 실속형 조연?!
- 은비.
신수성녀의 제자이자 전속 의녀 둘 중 한 명. 나와는 그 때나 지금이나 얼굴조차 희미할 뿐인 무수한 조연들 중의 한 명이지만, 자기가 모시는 공주님 옷 입혀 드리는 매우 일상적인 활동만으로 가뿐하게 이 몸을 거의 골로 보냈던… 그 한 방의 적시타 덕분에… 이렇게 진유준의 무림 리그 명악연(?) 선정에 뽑히는 영광까지 누리는 여자.
- 자룡대주(미스 제이?)
현 시대 지하무림의 큰 축인 보천구룡대의 한 명.
초음속 제트기 화룡까지 동원하여 날 홍콩까지 빠르게 데려다 주는 등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기는 하지만… 그와 중에 은비처럼 악의 없이(!) 날 골로 보낼 뻔했던 여자. 아직은 은비 수준의 텍사스 성 안타뿐이지만 은비나 호초와 달리 앞으로도 나와의 접촉이 계속될 것이니만큼 현 시대 리그에서 악연계 팀이 준비한 대(對) 진유준 전용 병기일지도…?
에~ 영화나 야구에 비유한 건 좀 그랬지만, 어쨌든 흐름 상 자룡대주가 바로 자기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날 걸고 넘어갈 가능성이 높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까지는 은비 수준이지만 만약 나중에 미래 여자 수준의 대선수(?)로 성장한다면… 으으음- 아무리 근거가 미약하다고는 해도…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군.
새로운 불안감을(?) 안은 채 선실을 나와 보니 문제의 자룡대주는 갑판의 그물 더미에 앉아 구양대주의 노트북을 쓰고 있었다.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는 어선 위에서 노트북을 다루는 현대적 미녀 캐리어 우먼의 모습은 상당히 언밸런스 하면서도 CF 속의 한 장면처럼 독특하고 멋진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매력적인 모습으로 유혹하지 마라, 이 악연계의 다크호스!” …라고 하면 추가 범행(?)을 저지를 생각도 없는 저 여자에게 좀 미안한 노릇이려나…? 쯧…!
그래…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만약 정말 내게 그런 여자 징크스가 있다 해도 좀 전에 정리해 본 대로라면 징크스의 강도가 점점 약화되는 추세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번 고공 맨땅 사건은 그냥 액땜한 셈 치자. …뭐, 물론 앞으로도 내가 알아서 조심은 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긍정적으로 고쳐 먹으며 자룡대주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내 등 뒤의 햇빛에 눈이 부신 듯 손을 들어 눈가를 가리며 입을 열었다.
“천주… 바람이 찹니다. 그런 복장으로 나오시면…”
난 지금 특별한 복장이라기보다, 치료를 위해 벗었던 겉옷 중 전투복 바지만 다시 입었을 뿐이다. 확실히 겨울 바다의 바람은 윗통을 벗고 맞이할 만한 게 아닌지도 모르지만…
“…괜찮아. 열이 나서 오히려 좀 식히고 싶어.”
나는 자룡대주를 뒤로하고 갑판 앞머리 쪽으로 나가 결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상처에 바른 약 때문일까?
아니면 먹은 항생제에 이런 작용을 하는 성분이 있는 건가…? 언제부터인가 약간 후끈할 정도로 몸이 달아오르고 머릿속도 몽롱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딱히 나쁘다고 하기도 그렇지만, 그리 좋은 기분도 아니었다.
“자룡대주!”
“예, 천주!”
“뭔가 발견했다는 소식이 아니면 날 부르지도, 건드리지도 마.”
“존명!”
난… 분명 원치 않고 있지만, 그런 바램과 달리 몽몽 수색은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경험상 이런 상황에서는 지나친 흥분이나 이완 어느 쪽도 좋지 않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냉정하게… 아니 그마저도 아닌… 눈앞의 저 물결처럼 잔잔하게 앞일을 대비해야할 필요가 있다.
상대가 바다라면 나 역시 바다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훗~! 상대가 바다라면 나도 바다가 된다…?
그럴듯한 생각을 떠올리고 말았군.
그럼 한 번… 돼 볼까, 바다……?
나는 눈을 감고 천천히 바다 바람을 호흡하며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운기조식의 초기에는 주변의 작은 변화에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라 그런지 배와 내 몸이 출렁이는 감각은 운기를 방해하고 호흡을 흐트러트리는 방해물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시간이 갈수록 출렁임과 흔들림에도 적응하고 맞춰져 가서 한결 운기가 수월해지기 시작했지만…….
쯧…! 바닷가 되느니 어쩌느니 하는 건 역시 주제넘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육지에서와 달리 끊임없이 흔들리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니…
음… 근데 내가 전에는 이런 환경에서 운기조식했던 경험이 전혀 없었나…?
연옥도에서는… 거기서도 당연히 섬 안에서만 생활했었군.
나중 연옥도를 탈출할 때… 도중에 금동이가 술에 취해 바다에 빠졌고…
그 녀석을 구하느라 생사금마도결까지 써야 했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 정도 내력 소모 때문에 따로 운기조식을 할 필요도 없었지.
그랬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쫌만 정글도를 휘둘러도 골골하는 신세가…
에구, 내가 지금 뭔 생각을 하는 거냐.
운기조식 도중 부정적인 생각은 삼가! 금지라구!
잠깐의 삼천포 행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기조식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더 지났을까?
어디선가 치직…하는 파열음 같은 것이 작게 들린 것 같았다.
그게 선실 쪽에 있는 무전기에서 난 소리라는 것을 깨닫고 눈을 뜨는 순간, 자룡대주의 외침이 들려왔다.
“천주! 드디어 연락이 왔습니다! 청천마군의 제자에게서요!”
자룡대주도 나 못지 않게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지 반가운 표정으로 무전을 받고 있었다.
난 운기조식을 중단하고 서둘러 달려가 무전기의 헤드폰을 썼고, 곧 전경하의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오늘 홍콩 항구로 들어온 배 중에 구조 신호를 받은 배가 있답니다! 모르스 부호였다는데, 내용은……”
SOS… 그리고 JYJ…? 진유준…? 구해줘요, 뽀빠이…
가 아니라, ‘구해줘요, 주인님’?!
하핫! 드디어 발견됐구나!
“그런데, 신호가 곧 끊겼답니다. 선원들이 잠시 근처를 돌아보다가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 하자 그냥 돌아와서 신고한 모양입니다. 그들이 신호를 받았던 곳은……”
어…? 뭐야? 홍콩에서 겨우 30분 거리…? 그것도 우리가 지금 있는 곳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그렇게 엉뚱한 지점이라고?
“화, 확실한 거야?”
“틀림없습니다.”
뭐야, 이거? 몽몽이 해류를 거슬러 헤엄쳐서(?) 돌아가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건 불가능했을 텐데 어떻게……
“천주! 배를 출발시키겠습니다.”
“아, 아니 잠깐!”
“예?”
나는 의아해하는 자룡대주 앞에서 잠시 더 생각을 해 보았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진유준!
발견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다.
몽몽의 대표적인 약점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작은 몸체와 그로 인한 저용량이다.
물론 몽몽이라면 내가 모르는 방법으로 고효율의 동력을 만들어 낼 가능성도 있지만… 만약 그런 거라면 그 에너지로 전파 발신 출력을 높이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나?
설마 내가 이렇게 찾아다니고 있다는 걸 모르고 혼자서 어떻게든 돌아가려 하는 중…?
아니, 아니… 요정몽을 내보내고 자신의 행방을 소교의 핸드폰이나 우리 사이트에 남겼던 녀석이 별안간 그런다는 건 또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젠장! 모르겠다, 일단은!
“다른 배들은 모두 전경하가 알려 준 지점으로 이동시켜.”
“다른 배들…만 입니까?”
“…그래. 우린 아직 여기 남는다.”
자룡대주는 의아한 표정이면서도 충실하게 내 명령을 다른 배들에게 전달했고, 나는 노트북을 들고 배의 선미 쪽으로 돌아가 보았다.
전경하의 보고대로라면 저기 저… 반대편에서 구조 신호가 잡혔었다는 건데…
해류의 흐름을 완전히 무시한 건… 일단 그렇다 치자.
어디… GPS의 지도에 해당 지점을 찍어보면… 윽! 두 시간쯤 전에 몽몽이 떨어졌다는 지점으로부터도 7, 8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그럼 몽몽이 지금 시속 3, 40KM의 속력으로 이동 중이라고…?
아니, 그건 직선거리일 경우이고 처음 떨어진 지점과 구조 전파가 잡혔던 지점, 그리고 육지 방향을 생각하면 더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는……
“천주! 20분쯤 전, 다른 곳에서도 전파가 잡혔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뭐? 어딘데?”
나는 자룡대주가 불러주는 위치도 찍어 보았다.
뭐시여, 이거.
몽몽이 이번엔 다시 육지와 반대편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거야?
그것도 10분 만에 10KM가 넘게 이동했다고?
직선으로 갔다고 쳐도 시속 60KM가 넘는 속도…?
이게 지능형 로봇이야, 배야? 물고기야?
…어? 가만…? 물…고…기?
서, 설마……
“천주…? 괜찮으십니까?”
자룡대주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물었다.
“저기, 바다에서 어떤 물체를… 그게 먹잇감인지 뭔지도 모르고 삼켜 버리는… 그런 짓 할 만한 놈이라면……”
“그, 글쎄요. 고래나… 혹은 상어?”
자룡대주는 무심결에 대답하다가 문득 내 질문의 의미를 깨닫고 아-하는 탄성 소리를 냈다.
“그럼 천주의 핸드폰을 설마……”
나는 대답 대신 노트북을 자룡대주에게 내밀어 보여주었다.
“이런 이동 속도와 그 동안 전파 탐지가 안됐던 점을 생각하면 정말……”
그래, 자룡대주의 말처럼 몽몽은 고래나 상어… 혹은 다른 어떤 대형 바다 생물에게 먹혔고 그 놈이 바다 깊숙이 들어가 있는 동안에는 해상에서 전파를 잡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물론 이 것도 아직 가정이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얼추 앞뒤가 다 맞는 가정이었다.
“맙소사!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어떻게 하긴, 잡아야지!”
“하, 하지만……”
난감한 표정이 되어 있는 자룡대주 못지않게 나 역시 ‘갈수록 태산이다’라는 기분이기는 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알 수도 없는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다’는 가정에 비해 최악은 아닌지도 모른다.
“동원된 배 중에서 가장 빠른 쾌속정에 연료 채워놔. 그리고 구양대주에게도 연락해서 다른 건 취소하고 수중 전파 탐지기나 레이더… 하여간 뭐든 수중 탐색 장비를 빨리 준비해서 와 달라고 해.”
“…존명!”
자룡대주는 다소 회의를 느끼는 표정이면서도 결국 내 명령을 충실하게 시행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몽몽의 행방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 조금은 뚜렷해졌기 때문일까? 나는 문득 내 손이 허리춤의 정글도를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