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연옥도(煉獄島).(2)
“천주! 다른 배들도 같은 구조신호를 수신했다고 합니다. 위치는……”
몽몽을 삼킨 문제의 ‘뭔가’는 계속 수면 가까이에서 이동 중인 모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곳에서도 너도나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바쁘게 무전을 받아 전달하는 자룡대주의 말에 따라 나도 계속 노트북에 발견 시점과 위치를 입력했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움직임을 감 잡기가 어려웠다.
그야말로 중구난방,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이랄까? 대체 어떤 놈인지 이 매우 빠른 속도로 넓은 바다를 제멋대로 싸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자룡대주! 이젠 다들 각자 알아서 추적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우리는요?”
“…우린 계속 대기해! 구양대주가 오면 움직인다!”
- 요몽. 위치 정보 받고 있는 거지?
- 옙! 그리고 말씀대로 해당 해역에 서식 가능한 육식 어종의 행동패턴, 먹이가 되는 어종의 분포와 이동루트… 하여간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주인님이 보내주시는 움직임과 대조해 보고 있습니다!
나는 아직 직접 추적도 못하고 지휘 캠프 노릇만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차츰 가슴의 두근거림이 빨라지고 있었다.
좋아, 좋다구. 어떤 놈인지 이대로 얼마든지 니 꼴리는 대로 다녀도 좋으니까… 제발 이젠 전파 추적이 불가능할 정도로 깊은 바다 속이나 먼 대양으로 튀지만 말아다오!
“천주! 지금… 조금 전부터 모든 배들로부터 신호를 놓쳤다는 연락이……”
이런~ 썅! 말뿐이 아니라 생각까지 씨가 된단 말인가? 으~ 이 방정맞은 머리야?! 어쩌자고 또 불길한 생각을 해 가지구~!
- 행동 패턴의 일치율 72%로 예상 순위 첫 번째의 어종은……
“천주! 여기! 이번엔 우리 쪽에서 신호가 잡혔습니다!”
“뭐?”
나는 요몽이 보내는 메시지를 읽다 말고 노트북을 내려놓았다. 즉시 자룡대주 쪽으로 달려가 보니 그녀 앞의 기기에서 수신 받은 전파의 내용이 타이핑된 종이가 뽑혀 나오고 있었다.
아까 전경하에게 들은 것과 같은 ‘SOS JYJ’…? 몽몽의 신호가 맞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 쪽으로 왔다는 건가? 어디! 어디냐?
나는 경공으로 단숨에 배에서 가장 높은 장소인 선실 지붕 위로 뛰어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자룡대주가 망원경을 가져다주는데도 받지 않은 건, 내력을 눈에 집중하면 평소의 몇 배나 되는 거리의 파도와 거품 모양까지 확인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바람이 잔잔해 물결도 그리 거칠지 않건만… 어? 저기 방금… 아, 아닌… 가? 물결 모양이 순간적으로 이상했을 뿐… 웃! 지금이 소린? 뭔가 퉁-하고 뱃전을 친 듯한… 아… 그 것도 그냥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였나? 으~
극도로 끌어올린 감각도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물결의 사소한 모양 변화에 몇 번이나 현혹되었다가 실망하고 파도 소리에 섞인 잡음 같은 것에 흠칫흠칫 놀라는 일이 반복되는 동안 점점 더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으으…! 내가 놓치고 있는 거냐? 아니면 여전히 수면의 한참 밑인 거냐? 으쒸~ 구양대주는 왜 아직도 오지 않는 거야?
그 동안 나는… 불안한 가운데에서도 애써 감정을 조절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전까지와 달리 바로 가까운 곳으로 몽몽을 삼켜 버린 놈이 지나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도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디냐…! 어디 있는 거냐, 몽몽! 대체! 대체……
“우이 쒸~! 이 빌어먹을! 대체 어딨는 거얏-!”
갑갑한 마음에 고함을 질러봤지만 대답이 돌아올 리가 없으니 더욱 열이 치밀어 오른다.
“으아아아아아~!”
< 고, 고정하세요. >
응…?
< 고정하세요, 천주. 제발…… >
자룡대주의 전음…? 근데 왜 그렇게 괴로운 표정으로… 에? 설마 내 고함소리가… 그렇게 컸나?
< 그, 그런 파공성(破空聲)을 쓰시면…… >
에구구! 내가 무심코 고함소리에 내공을 실었나 보다. 그 것도 왕창.
“미, 미안! 내가 그만 흥분해서… 미안! 쏘리!”
“전 괜찮습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보통 사람…? 아, 어부를 가장한 해적인 이 배 주인?
“지금 구양대주가 고성능 장비를 구해서 오고 있다니 부디 고정하시고……”
[ …주인…… ]
“응? 자, 잠깐!”
“예?”
“조용히!”
나는 자룡대주의 입을 막고 다시 귀를 기울여 보았다.
[ …주인… 님……? ]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희미하지만… 확실히 내 귓속의 몽몽 하위체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 몽몽! 너냐? >
[ …예. 주인님. …저 여기있습니다. ]
내 전음을 듣고 대답까지 한다? 그렇게 가까운 곳이란 말야?
< 어, 어디냐! 어딘 거냐, 임마! >
[ 서남방… 추정 거리 50미터… 수면 상승… 제어 시도…… ]
5, 50미터…? 수면?
나는 즉시 몽몽이 말해 준 방향을 다시 한 번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느 사이 어둡게 채색되어 가는 수면 위… 여전히 작은 괴물무리처럼 넘실대는 물결 사이로… 조금 더 이질적이고 기분 나쁜 뭔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삼각… 지느러미? 이제 요정몽의 메시지는 끝까지 읽을 필요도 없겠군.
< 역시… 상어였냐? >
[ …그렇습니다.. 에너지 부족으로… 더 이상 제어는… 무리…… ]
하긴, 상어의 뱃속이면 계속 태양력을 얻기가 힘들었겠지.
< 알겠다…! 기다려! 이제 내가 어떻게 든 해 볼게! 무리하지 말고 그냥 기다려! 알겠지? >
[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
좋아! 좋다구! 이젠 침착하게… 그래, 진유준. 침착하자! 침착하게… 어떻게… 할까…? 즉시 배를 출발시켜 추적에 들어가? 으음… 역시 그건 아니다. 이 배로는 순식간에 놓치고 경계심만 높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설마……”
내 옆에서 망원경으로 상어를 확인하고 있는 중인 듯한 자룡대주가 입을 열었다.
“저렇게 먼 곳에 있는 상어의 등장을… 소리로 아신 겁니까?”
으음, 조금 전 내가 갑자기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겠군.
“그럴 리가 있나. 낌새… 랄까? 그냥 느낀 거지 뭐.”
소리를 들었든 낌새를 느꼈든 비인간적인 능력이라는 건 마찬가지려나?
“과연 천주다우신… 아! 왜, 왜……?”
망원경에서 눈을 떼던 자룡대주가 놀란 것은 내가 어깨의 총상 때문에 감았던 붕대를 풀어 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따로 어쩔 것도 없이… 전신의 관절로 두둑두둑 소리를 내며 가볍게 준비운동을 하는 사이 상처가 다시 터져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마, 맙소사! 안되욧!”
나는 자룡대주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몸을 날려 바다로 뛰어 들었다. 얼음 같은 겨울 바다의 냉기를 온몸으로 실감하며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가 서서히 떠오르며 상처를 돌아보았다. 수중 특유의 음산한 귀 울림소리 속에서 몇 번이나 터졌다 멈췄다를 반복했던 자신의 상처에서 새어 나온 선혈이 실타래처럼 꾸물거리며 번져 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웬지 소름이 끼쳤다.
어쨌든… 상어란 놈은 단 한 방울의 피 냄새를 몇 킬로 밖에서까지 맡을 수 있다고 들었으니 이 정도로도 충분 하려나…? 그래도… 조금 더 내 쪽에서 적극적으로 나가 볼까나?
나는 해류의 흐름을 가늠해 보며 조금 전의 그 기분 나쁜 삼각 지느러미 방향으로 내 피가 실려갈 수 있을 만한 장소로 헤엄쳐가기 시작했다. 자룡대주의 비명 같은 고함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얼마 간 배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지점으로 헤엄쳐 간 나는 이동을 멈추고 다시 위치를 가늠해 보았다.
이 정도면 된 것도 같은데… 놈이 다시 보이지 않는군. 훗~! 아무래도 좋다. 그 섬뜩한 지느러미로 수면을 가르며 쳐들어오건, 바다 속에서 소리없이 다가오건…
하여튼 오기만 해라! 자아~ 와라! 이 몸의 피 냄새가 제법 달콤하지 않니? 어서… 어서 와라. 컴온 베이비~ 컴온… 오… 오잉? 뭐, 뭐야? 이, 이 놈들아! 그렇게 떼거지는 말고오!
어느 틈에 나타난 지느러미가 하나 둘, 셋, 넷… 보이는 것만 최소한 일곱 마리였다. 천근추 수법으로 약간 물밑으로 내려가 확인해보니 벌써부터 삼각 지느러미마저 물 속으로 감추고 접근하기 시작한 놈들도 있었다.
제, 젠장! 주위를 좀 더 확인해 보고 시비를 걸걸 그랬나? 으~ 여긴 무슨 연옥도 앞 바다도 아닌데 저 놈들이 이렇게 떼거지로… 아, 아니 물론 상어 떼가 거기에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지금 컨디션으로 이 놈들을 모두 상대할 수 있을까? 일단 어떻게든 배로 후퇴하는 편이 나으려나…? 하지만… 퇴로도 이미 막혔고… 그리고……
< 몽몽…! 거기 있냐? >
[ …주인…님. ]
쳇…! 아까보다도 감이 멀다. 내 피가 엉뚱한 놈들만 불러들인 건가? 문제의 놈은 오히려 멀어져 가는 모양인… 썅! 그렇다면 여기서 물러날 수 없지. 이번엔 더 많은 피… 네 놈의 동족들 피 냄새를 맡게 해 주지!
나는 각오를 굳히며 정글도를 들어 올렸다. 스으윽- 불길한 물결과 함께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몇 미터 옆을 스쳐 지나갔다.
탐색…인가? 지금 지나간 놈이 뒤에서 선회하여 돌아오는 느낌이… 그리고 다른 놈들도 천천히 내 주위를 맴돌기 시작하고… 좋아, 누구냐. 누가 먼저냐.
세 번째로 다가오던 놈이었다. 놈의 작고 새카만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고 느낀 순간, 쿠왁~ 끔직한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들었다. 그 직전 먼저 움직인 내 정글도는 물 속임에도 순식간에 가속도를 붙여 상하 일직선으로 물보라를 일으켰다.
물 속… 임에도? 아니, 물 속이라서 그런가? 생각보다 제대로 자른 느낌이 아닌… 웃-! 놈이 멈추지 않는다!
놈이야말로 내 정글도를 맞았음에도 입이 상하 반으로 쪼개 진 상태 그대로 악마처럼 나를 덮쳐 왔다. 나는 급히 전신을 비틀어 회전시키며 놈의 돌격을 옆으로 흘려 보내며 재차 놈의 몸통을 그었다. 거친 투우처럼 날 지나쳐간 그 놈은 그제야 고통이 느껴지는지, 발악을 하며 피와 함께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와 함께 다른 놈들의 움직임도 급격히 달라진다. 살기…?
혹은 바다 괴물들 특유의 흉폭함과 광기…?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끔직한 기운들이 사방에서 격렬한 속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첫 번째 놈을 피하느라 좌우로 회전하던 몸을 가누고 있을 때, 어느 틈에 다른 놈의 입이 다리 쪽을 물어뜯으려 하고 있었다. 재빨리 놈의 머리를 손으로 짚으며 하체를 끌어올려 피하며 몸을 웅크렸다. 공중제비를 돌 듯 빙글 도는 내 목뒤를 뭔가가(등지느러미?) 부딪치고 지나갔다.
웅크렸던 몸을 펴며 고개를 드는 순간 눈앞에 엄청나게 크고 어두운 동굴 같은 것이 화악- 다가오고 있었다. 좌우로 톱니 같은 이빨 수백 개가 돋아있는 그 것은 당연히도 초대형 백상어의 아가리였다.
“처, 천근추!”
옆으로 입을 벌려 날 통째로 물어뜯으려 했던 살육기계가 바로 내 얼굴 위에서 다물어 졌다. 놈은 내가 아슬아슬하게 피한 것도 모르는 듯 으적으적 되새김질을 해 보고 있었다. 급속도로 몸을 밑으로 가라앉힌 것이… 아니 그와 함께 고개를 젖히는 게 조금만 늦었더라도 내가 저렇게 씹히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새삼 쫘악- 소름이 끼쳤다.
그런 공포때문이었을까? 나는 한동안 천근추 수법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빠르게 바다 밑으로 떨어져갔다. 빠르게 멀어져하는 하늘, 아니 수면 쪽의 물 속에서 나에게 상처를 입은 놈을 다른 놈들이 달려들어 무자비하게 잡아먹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상어는 위에서 아래로는 공격을 못한다’라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아래쪽으로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일단은 옳은 판단인 것도 같았다. 그러나 난 얼마 가지 않아 더 깊은 잠수를 하지 못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얼마 못 가 물 밖에서 숨을 쉬어야 하는 인간이니 언제까지 바다 속으로 도망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이미 너무 어두운 곳까지 들어 온 것 같았다.
바닷가에서 미끼를 이용해 낚시질하듯 녀석들을 잡던 때와는 다르다는… ‘여기, 이 바다 속은 놈들이 주인이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문득, 뭔가 있는 것 같아 옆을 돌아보았다.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다시 다른 쪽을, 그리고 발 밑으로 불안한 시선을 던지는 행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그대로…였나? 아니… 어렸을 때 무서워했던 바다 속은 어디까지나 상상… 실제로 이만큼 깊은 바다 속으로 잠수해 들어 온 건 처음이니… 그러니 이렇게 긴장하는 것도 당연… 어, 어쨌거나 이제 슬슬 호흡도 가빠오니 다시 올라가는 편이… …으~ 제, 젠장! 그게 아니야! 그건 변명일 뿐!
나란 놈은! 나 진유준은 지금 그저 겁을 먹고 있을 뿐이잖아! 보라구! 떨고 있잖아! 내가! 싸나이 진유준이!
천천히…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을 향해 눈을 떠보았다. 여전히… 금방이라도 뭔가 끔직한 것이 내쪽으로 솟아오를 것만 같았다. 아니, 저 암흑의 공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하고도 소름끼치는 무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내가 상어의 아가리에 공포를 느꼈던 건… 어쩌면 상어 그 자체보다 이런 공포의 연상 작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좀 전에 호흡이 가쁘다고 생각했던 건… 거짓이기도 하고 진실이기도 하다. 현천기공의 만와침수법(慢 寢睡法)을 제대로 운용한다면 앞으로도 25분쯤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만 공포 같은 감정에 휘둘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곧바로 한계를 느낄 수도 있겠고 말이다.
어쨌든… 내려 왔을 때를 생각하면 수면 위로 올라가는 데 필요한 시간도 약 3분… 단순 계산으로 22분의 여유가 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나가지 않고 더 버티기로 결심했다. 몽몽이 있었다면 비효율적인 짓이라고 했을 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등을 보인다면 끝내 이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나의 이 심해에 대한 공포는 상당히 뿌리가 깊다. 어린 시절,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무엇이 존재하는 지도 모르는 이 공간을 상상하며 잠을 설친 적도 많았다. 나이를 먹어가며 차츰 이런 공간이 나와 아예 관계가 없다는 의식을 굳히기도 했고… 연옥도에서 지내며 상어를 사냥하게 되었을 때 이후로는 간접적이나마 상상 속의 심해와 그 공포를 극복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보니 그건 얄팍한 자기만족이었던 모양이다. 심해 속에 존재하는 미지의 공포는 커녕 단 몇 마리의 상어에게조차 겁을 먹고 달아났으니 말이다.
나 자신에게 ‘내가 조금 전 정말 그렇게 위기였을까?’라고 냉정하게 반문해 보면… 대답은 역시 ‘아니다’이다. 상어의 이빨이 눈앞에서 게걸스럽게 우물거리는 것을 보았다고…?
근데 그게 어쨌다는 거지? 서슬 퍼런 칼날이며 총알이 내 눈앞을 스친 적이 한 두 번이던가? 그런 것들이 내 몸을 파고들었던 상처가 아직 채 아물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것들에게 겁을 먹었었나? 누가 칼을 들고 달려들면 무조건 두려움에 떨며 달아날 만큼…?
아니… 아니잖은가! 훗~! 그래, 너희들… 지금 내 머리 위에서 까불고 있는 상어놈들, 조금만 기다려라. 돌아가면 조금 전과는 다른 나… 연옥도의 난폭자이며 포식자를 만나게 해 줄 테니 말이다.
음… 얼마나 지났지…? 5분…? 10분…? 바다 속이라고 생체 시계가 망가졌을 리도 없는데 헷갈린다는 건 그만큼 아직도 정신적인 동요가 남아있다는 증거겠지…?
음… 7분…! 그래, 대략 그 정도가 지난 것 같다. 그 정도밖에…라는 생각이 들 만큼 참으로 지루하고 초조한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그 사이 조금은… 조금은 이 불쾌한 암흑과 물 속 특유의 압박감에 익숙해 진 것도 같다. 다만… 정적 속에서 가끔씩 들려오는 우웅- 우웅- 소리가 여전히 거슬렸다. 그 것은 마치 어떤 짐승의 심장이 뛰는 소리 같기도 했다.
…문득, 다시 고개를 들어 가만히 수면 쪽을 올려다보았다. 빛이 남아있는 공간에서 벌레들처럼 꼬물대는 상어 떼들의 움직임으로 보아… 아직 놈들은 그 근방을 떠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몽몽을 삼킨 놈도 남아있으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음… 미안하다, 몽몽. 하지만 난 괜한 오기만으로 이러는 게 아니야. 이대로는 널 삼킨 놈과 직접 맞닥트릴 때도 실수를 할까봐… 그래서 더욱 지금 이 짓거리를 해야 하는 거라구. 널 되찾는 길 앞에 그 어떤 게가로막는다 해도 망설이지 않고 뚫고 나갈 수 있도록…
그러니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다오.
…아! 뭐지? 이 따듯한 느낌은… 난류…인가?
‘바다속에도 강이 흐른다’는 말… 어디서 들었었는지는 몰라도 하여간 그 말이 실감 나는 군. 해류에 따라 조금 움직였을 뿐인 것 같은데 갑자기 이렇게까지 기온이 다른 흐름을 만나다니… 으음… 어쨌든 이 건… 느낌이 그리 좋지 못하다. 따듯한 만큼 자잘한 물고기들이 더 선호하고 그 물고기를 잡아먹으려는 더 큰놈들도 있을거라는… 음, 그 말도 사실일까……?
‘바다 속의 강에는 괴물이 산다’
흠칫, 소름이 돋았다. 얄팍한 지식에서 파생된 상상때문에…? 아니, 아니다…! 이 느낌… 이 기운은… 진짜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점차 다가오고 있는 회색의 그림자를 보았다. 암흑 속에서도 희미한 빛을 발하며 소름끼치는 정적과 함께 악마처럼 다가오는 놈은… 아까의 그 거대한 백상어인가? 날 아깝게 놓치고 입맛을 다셨던 놈… 음… 다른 놈들보다 유난히 거대한 놈이어서 그런 생각이 든 거지만 그건 알 수 없는 노릇이려나…? 어쨌든 저거 한 마리일까? 여기까지 내 피 냄새를 쫓아 온 놈은……?
훗~! 상관…없나? 아깐 놈들의 든든한 빽에 쫄아서 창피한 꼴을 보이고 말았지만… 이젠 확실히 감이 온다. 아까는 나도 모르는 가운데 몸이 굳어져 있었을 뿐, 내가 발도술 연마를 처음 시작했던 것도 본래 물속이었고… 그래, 다시 알려 주마. 물가에서든 이 바다밑에서든, 천년 전처럼 지금도… 네 놈들 보다 내·가· 더· 강·하·다!
나는 땅 위에 서 있듯 몸을 펴고 정글도를 어깨에 걸쳤다. 아까의 아픈 기억 때문인지 오히려 더 뜨거운 살기와 투지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차츰 다가오는 놈과의 거리는 이제 겨우 3미터 정도였지만 나는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바로 코앞까지 와서 그 추악한 아가리를 벌렸을 때 반격을… 응? 뭐..야? 방향을… 튼다? 또 아까처럼 탐색전을 하고서야 덤비겠다는 거야? 쳇! 덩치는 산만한게 신중한 척은…! 그럼 내가 먼저 쳐들어가는 수도…
에…? 저 멀어져 가는 꼬리의 움직임은… 뭐야? 너, 정말 그냥 튀는 거야? 크으~ 내가 지금 그렇게 위험하고 극악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건가…? 그렇다고 명색이 바다의 꼴통 백상어라는 놈이 도망을 가?
으음~ 웬지 허무하다. 뭐… 상어는 시력이 나쁘다니 날 못 보고 지나갔을 수도 있는 거지만… 그러나 분명히 방향을 돌리는 놈의 움직임은 부자연스러웠다. 살금살금 다가왔다가 후다닥 튀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나는 그래도 혹시나 하여 얼마간을 더 기다려 보았다. 한 번 탄력 받으면 다소(?) 막가는 게 내 스타일이라 그런지, 기왕에 이렇게 된 거 놈이 다시 돌아와주거나 정히 선수가 없으면 다른 어떤 바다 괴물이라도 한 마리 대타로 나타나 줬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랬다.
그러나… 내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더이상은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만와침수법과 비슷한 계열의 호흡법에 대성한 어떤 도사는 단 한 호흡으로도 수십 일을 버텼다는 전설이 있기 하지만 그건 내게도 아직 까마득한 경지의 얘기다. 나는 별 수 없이 아래로 내렸던 기운을 위로 올려 몸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쯧~! 심해 깊숙한 곳의 ‘어떤 것’ 선생…! 아쉽지만 오늘은 이 정도에서 돌아가야겠어. 다음에 또 언젠가…
지금보다 좋은 컨디션과 정신력으로 만나러 오겠수다.
그 때는 정말 제대로 한 번 어울려 보자구!
멋대로 인사 비슷한 걸 남긴 채, 나는 점차 스피드를 올려 수면을 향해 솟구쳐 갔다. 잘해야 손톱 크기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던 배의 밑바닥이 점점 커져 가는 건 물론이고 그 주위에서 꼬물대던 벌레들이(?) 차츰 송사리(?)… 그리고 얼마 안가 본래의 상어 모습으로 확실해지고 있었다. 사실 내가 가라앉아 있던 지점도 심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왜 그리 어두웠는가 했더니, 수면 근처도 그리 밝지 않은 걸 보니 어느사이 해가 져가고 있는 모양이다.
음… 그런데 그보다… 뭔가 이상한 걸…? 배가 한 대더 늘어난 건 그 사이 내가 부탁했던 고속정이 도착했기 때문이겠지만… 어째서 상어들의 수가 이렇게 더많아 진 거지? 저 떼거지를 뚫고 배 위에 오르는 건 만만찮은 일… 응? 우웃! 뭐, 뭐야, 방금? 뭔가 작은 것이 피리릿~ 소리를 내며 내 부근의 물을 관통했…
에? 빠르게 헤엄치는 수준이 아니고 관통…? 으~ 이제보니 그건… 총알이잖아?
아무래도 ‘총알’이 맞는 것 같아서, 나는 다시 천근추 수법으로 떠오르는 걸 멈춘 후 재빨리 아까 내렸던 배 밑 쪽으로 헤엄쳐 가야했다. 이쯤이면 사격 각도에서 벗어났다 싶은 곳에서부터 다시 떠오르며 상황을 살펴보니… 자룡대주가 배 위에서 상어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있는 듯했다. 그로 인해 상처를 입은 상어가 피를 흘리고 그 피에 이끌려 다른 상어들이 모여들고… 그런 악순환으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새로 도착한 고속정 쪽에 바로 타려고 했었는데 자룡대주의 사격을 피하다 보니 다시 이 쪽으로 와야 했고… 쯧! 하는 수 없지.
< 뭐 하는 거야! 멈추지 못해? >
나는 일단 전음을 버럭(?) 보내 봤다. 대답은 없었지만… 그건 자룡대주가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의 사람에게 전음을 보낼 공력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결국 곧 사격이 멈춘 걸 보니 말이다. 어쨌든… 이제 내 숨도 한계이니 얼른 올라가야 한다.
나는 서둘러 몸을 움직여 그나마 상어들이 적은 쪽 갑판 쪽의 수면으로 떠올랐다.
“푸핫~! 핫! 하앗! 하아아아~”
아아~ 버틸 수 있었다고는 해도 말 그대로 버틴 거였을 뿐… 후으읍~! 후우~ 그래. 역시 육지 동물은 이렇게 공기를 직접 마셔야지. 하아아~ 정말… 공기 맛이 죽인다.
“천주-! 천주! 무사하신 겁니까?”
< …그려. 보시다시피…… >
“아아~”
쯧~! 그렇게 감격에 찬 얼굴로 기뻐해 주는 건 좋고, 자동소총을 든 누님(?) 스타일도 제법 멋지긴 한데 말야. 당신… 이번에도 또 나에게 위협적인 짓을 한 건 아는 거야?
“아! 천주! 뒤! 뒤에 아직 상어가……”
< 멈춰!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총은 그만 치워, 좀! >
“아, 예, 옛!”
그래… 지금 뒤쪽에서 접근 중인 상어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이 더 겁난다구. 지금의 난 주위의 상어들이 어떻게 움직이며 접근해 오는 지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지만, 당신이 또 어떤 식으로 날 위험하게 할지는 알 수가 없으니 말야.
“처, 천주!”
안 대두. 이젠 내 바로 등뒤까지 와 있다는 거. 하지만… 그 놈보다 한 지느러미 빠른 놈이 있어, 바로… 발 밑!
나는 흐읍! 한 호흡을 삼킨 후 두 팔을 들어 수면을 장력으로 때렸다. 그 반탄력으로 단숨에 수면 위로 날아올랐고, 그런 나를 따라 발 밑에서 덮쳐오던 상어도 아가리를 벌린 채 수면 밖까지 솟구쳤다.
황혼 속으로 울려 퍼지는 자룡대주의 비명소리까지 포함해서… 상어 영화의 전형적인 인간 습격 장면처럼 보일 만한 상황이었지만, 불행히도(상어에게) 나의 양발은 상어의 입 속에 들어간 게 아니라 위아래의 턱을 밟고 벌리듯 선 상태였다. 물 위로 솟구친 상어의 상체(?)가 다시 물 속에 떨어지기 직전, 나는 놈의 콧등을 밟고 도약하여 배 위로 몸을 날렸다. 그로서 가뿐하게 갑판에 착지한 나는 조금 전의 상어를 향해 작게 중얼거렸다.
“…봐 줬다.”
처음엔 연옥도에서처럼 한방 먹여 주고 올 생각이었지만 문득 공연한 살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솔직히 상어를 대상으로도 자비로운 마음이 생겼다기보다는 그냥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 몽몽…! 몽몽! >
나는 배의 기기 쪽으로 가면서 다시 몽몽을 불러 보았다. 하위체로의 답신도 없었고 무전기 쪽에도 아무 신호가 잡히지 않고 있었다. 또 놓친 건가 싶긴 했지만… 마지막 수신된 시간을 보니 멀어지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얼추 필요한 준비도 된 것 같고… 이젠 조금 스마트하게 쫓아가 볼까?”
그렇게 여유 있게 중얼거릴 수 있는 건 내가 올라온 걸 알자마자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고속정의 갑판 위에 그렇게 기다리던 장비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 그 배의 구양대주에게 건재함을 강조해 보인 다음 자룡대주 쪽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자룡대주는 맥이 풀린 표정으로 난간 옆에 주저앉은 채 아직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지저스… 뭐, 어쩌고 이런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는 그녀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뭐해, 자룡대주?”
“예? 아… 아닙니다! 그냥 좀, 잠시……”
아직도 좀 버벅대는 태도로 몸을 일으키던 자룡대주가 문득 고개를 숙여 내 시선을 피하며 선실 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자기 눈가의 화장이 번져서 피눈물 흐르는 귀신같은 모습인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음… 근데 그럼… 저 여자가, 눈물을 흘렸었던 건가?
흐음… 하긴, 아무리 당찬 여자라도 자기가 모시는 사람이 상어 밥이 되는 상황에는 꽤나 놀랬겠지? 조금 전의 내 ‘상어 입 밟고 뛰기’에도 조금(?) 놀랐을 테고 말이다.
“천주! 역시 무사하셨군요!”
바싹 옆으로 대기 시작한 배 위의 구양대주는 자룡대주와 달리 침착한 태도로 날 맞이했다. 그는 내가 그 배로 옮겨 타자 즉시 자신이 준비한 장비 앞으로 안내했고, 기기 상단의 레이더 같은 모니터 두 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수중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와 전파를 추적할 수 있는 기능도 갖춘 것입니다. 자룡대주의 말을 듣고 탐지 대상은 상어로 조정했으며 수신된 전파도 이미 등록해 놓았습니다. 탐지 거리가 기존의 두 배가 넘는 만큼 목적을 이루시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뭐… 기존 장비들의 탐지 거리도 잘 모르니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상당히 우수한 장비라는 얘기로군. 왼쪽 모니터에는 작은 물고기 모양의 아이콘으로, 오른쪽 모니터의 보다 단순해 보이는 화면에서 반짝이고 있는 흰 점이 몽몽의 위치라는 건데… 둘 다 현재 모니터의 중심에서 절반 정도 벗어난 곳에서 움직이고 있다.
“좋아! 고마워! 출발하지!”
말하고 보니 좀 너무 했나 싶기도 했지만, 구양대주는 내 압축한 만족, 감사, 재촉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는 듯, 그 역시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보인 다음 배를 출발시켰다. 이미 바다 위로 내려앉은 어둠이 점차 짙은 장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리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좋은 추적 장비보다도… 심해의 괴물에 대한 공포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나 자신과 저 고마운 구양대주를 비롯한 지하무림인들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