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27-1화 : 연옥도(煉獄島) II.(1)
3-8. 연옥도(煉獄島) II.(1)
위로 들어올려지는 순간 숨을 들이키고… 가라앉을 때 내 뱉는다. 옆으로 기울어지면 호흡을 붙들고 세워지면서 놓는다. 규칙적이면 나도 규칙적이고 거칠어지면 나도 거칠어진다. 크게 움직이면 길게 내 뱉고 작게 움직이면 짧게 마신다. 그렇게 바다에 적응하고…
바다가 된다…? 음… 조금 변칙적인 호흡법 정도 가지고 해석이 너무 오버 같지만… 의미는 둘째치고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밤새 반복해도 그리 지루하지 않았을 정도로 말이다.
…난 천천히 눈을 뜨고 눈앞의 여명을 보았다. 어쩌면 난 밤새 그저 흔들리는 배의 갑판 위에서 끄덕끄덕 졸고 있었을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몽에 대한 걱정은 여전했지만 그마저도 어딘가 꿈 속 같기도 했다.
음… 근데 아까 배가 멈췄을 때부터 선원들이 배의 앞머리에 뭔가 설치하기 시작하는 것 같더니… 저거였나? 약간 잠이(?) 깨는 기분이군.
나는 결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을 마무리 중인 듯한 이들 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새로 자리를 잡은 기계식 ‘작살’ 옆에 서서 작업을 지켜보는 구양대주에게 말했다.
“어쩐지 영화 ‘죠스’ 생각이 나는 군.”
“아, 예. 그 영화에서도 이런 식의 방법이 쓰여졌죠.”
그래, 이걸로 작살을 쏘고… 작살은 저 작살 장치 옆에 정렬된 항아리 모양의 통(부유물)과 줄로 연결되어 있다. 몽몽을 삼킨 상어에 이 작살을 맞추기만 하면 그 상어는 작살과 연결된 통의 부력 때문에 깊은 바다 속으로 달아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와 차이가 있다면… 거기서 주인공들이 사용한 건 엽총 스타일의 작은 발사장치로 쏘는 소형 작살이었던 반면 이 작살은 고래 사냥용이라니 제대로 맞으면 통을 매달고 달아나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골로 가 버릴 정도로… 그러니까, 작살내기 용 작살이라고 할까……?
“…단점이라면, 연속 발사가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경험 많은 선장이 자신있다니 믿어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돌아보니, 우리 얘기를 듣고 있던 선장은 정말 작살 사격에 자신이 있는 듯 여유 있게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얼굴에 비해 람보처럼 근육질인… 바다 사나이들의 강인함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남자였다.
“혹시… 직접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사격은 자신 있지만 작살은 한 번도 안 쏴봤으니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아.”
솔직히 지금이라도 연습 몇 번 해보고 내가 쏘고 싶기도 하지만 참기로 했다.
“그리고… 난 말야, 평소에는 나름대로 준비성이 철저한 타입이라고 자부하지만 열 받은 상황에서는 역시 빠트리는 게 많아. 정말… 구양대주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저도 제가 더 늙어 쓸모 없어지기 전에 천주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훗~! 정정한 걸 보니 내가 은퇴하기 전까지, 아니 나보다도 장수할 것 같은 걸?”
“허허헛~!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늙은이는 빨리 뒷방으로 물러나 줘야 후기지수(後起之秀)들에게 욕을 먹지 않습니다.”
“에이- 그건 일부 젊은 싸가지들이 하는 말이고 역시 노련한 맛은… 음……”
나는 문득 뭔가를 깨닫고 새삼 구양대주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구양대주의 후기지수는 역시… 그 녀석들을 말하는 건가?”
“예. 천주와의 인연도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인재들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천주께서는 그들이 보천구룡대의 재목이 못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딱히 그렇다기보다… 그게… 준엽이와 성원이는 내 친구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쓸만한 녀석들이긴 해. 하지만 친구를 수하로 둔다는 건 좀… 게다가 그 녀석들은 둘 다 구양대주와는 타입이 너무 달라.”
“죄송하지만, 저와 타입이 다르다는 말씀은……”
“하아~ 난 아무리 생각해도 녀석들이 구양대주처럼 꼼꼼하고 차분하게 일 처리를 할 것 같지가 않아. 굳이 말하자면 야후 장… 아니, 천음마군(天飮魔君). 그와 같은 계열이라고 할까?”
“예. 저도 그들의 자유분방한 기질은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더욱 그들을 탐내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세계는 바로 그들처럼 패기와 창의력이 뛰어난 자들이 이끌어야 한다고… 부족한 저의 생각은 그렇습니다.”
“아니, 그건 부족하거나 그런 생각은 아닌데……”
딴 건 몰라도 창의력이라… 그 녀석들에게 그런 게 있었던가? 확실히 ‘춤과 노래’에서 만큼은 그런 것 같기는 하지만… 음, 어쩌다 보니 내가 친구들을 깎아 내리려는 입장이 된 것 같군.
“어쨌든… 결국 역사는 반복되는 건가……?”
“그 말씀은……”
“훗~! 천년 전의 선대 구양대주 생각이 나서 그래. 그 사람도 지금의 구양대주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지 소패룡(少 龍)이라고, 자신과는 전혀 다른 타입의 녀석을 제자로 삼았더라구. 아, 구양대주도 알고 있겠군.”
“…패룡군( 龍君)을 말씀하시는 군요.”
“나중엔 그렇게 개명했나? 하긴 내가 만났을 때는 아직 어렸으니… 음, 어때? 그 녀석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그, 글쎄요.”
응? 구양대주가 처음으로 대답을 망설이며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네? 그 녀석… 역시 커서도 문제가 많았나?
“그에 대한 평가는 워낙에 극과 극으로 나뉘어지는지라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허어~ 역사는 현세를 비추는 거울이라 했으니, 저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군요.”
이런, 이런… 소패룡 녀석. 이 몸이 친히 손봐서 싸가지를 잡아 주었건만 전혀 갱생(?)하지 못한 모양이군.
“그렇게… 안 좋았어?”
“으음- 패룡군은 평생에 걸쳐 일신의 고강한 무공으로 보천구룡대의 위상을 어느 시대보다 높이는 업적을 이루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외곬의 성품이었기 때문에 보천구룡대의 분열을 초래… 결국 지하무림이 당시의 정부에 탄압 받을 때 더욱 위기를 자초한 인물로도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랬었군.”
나는 기억하고 있는 소패룡 녀석을 떠올려 보았다. 비록 내게 굴복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상당한 무공 재능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작은 멧돼지… 음, 비유가 좀 이상한가? 하여간 그만큼 저돌적인 타입인 녀석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녀석을 잘 다루는 윗사람이 있었다면 전체 분열까지 가지는 않았을 텐데……
“그럼, 천주의 금과옥조를 새겨 후계자 선정에 더욱 신중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어… 그게, 난 그냥 참고 삼으라고 말 한 거야. 소패룡과 내 친구들은 엄연히 다른 녀석들이고… 암튼, 난 대주들이나 마군들의 인사권에 관여할 생각은 없어. 그러니까 그냥 구양대주 마음대로 하라구.”
“넓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넓은 배려는 무슨… 마지막에 한 발 빼기는 했지만 결국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건데… 이거, 내가 친구들의 출세길을 막은 건 아닌가 모르겠다. 구양대주는 상당한 재벌이고 영향력도 큰 인물인 것 같으니 말이다. 으음… 하지만 역시 난 친구들을 부하로 쓰는 건 영 껄끄럽고 그 녀석들도 나를 이렇게 철저한 상하 관계로 모셔야 하는 건 싫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돈과 권력이 좋아도 결국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도 많을 테고… 쯧! 그래도 어쨌든 나중에는 녀석들에게 사정을 알려주고 자신에게 판단을 맡기는 게 가장 옳은 방법이려나……?
“아- 그리고 아직 조금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지만… 이번 일로 자룡대주를 비롯하여 많은 지하무림인들이 천주의 부활을 실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 그건… 음… 다들 뭐라고 하진 않나? 내가 내 핸드폰 하나 찾으려고 이렇게 많은 지하무림의 인력과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걸 말이야.”
“…송구스럽지만, 일부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는 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천년이란 세월은 보통의 인간들에게 너무 긴 공백이니 만큼……”
쯧…! 당연히 그렇겠지. 뭐, 이번엔 하는 수 없었으니 그렇다 치고… 다음에는 좀더 그럴 듯한 이유가 아니면 동원을 삼가야겠군.
“하지만 너무 우려하지 않으셔도 좋을 것입니다. 그들도 곧 부활한 마군황의 권위를, 그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야 뭐… 다른 때라면 권위니 뭐니 내가 먼저 거부했겠지만 앞으로 원판의 세력과 한 판 뜨려면 우리 쪽도 단결된 힘이 필요하고, 그러니……
“다행히 자룡대주는 빨리 깨달은 것 같습니다만, 다른 이들도 늦든 빠르든 알게 될 것입니다. ‘마군황에게 명분은 필요 없다’라는 것을 말입니다.”
응…? 지금 어쩐지 굉장한 말을 들은 기분이… 에… 마군황에게는 명분이 필요 없다…? 이건 아무래도 일반적인 아부성 발언이 아닌 것 같은데? 이거 혹시……
“구양대주. 당신은 지금… 내가 찾으려는 물건이 어떤 가치를 지닌 거라 생각하고 있지?”
“…글쎄요. 그저 길거리에서 파는 핸드폰의 하나일뿐일 수도 있고, 그 안에 천금의 가치가 있는 정보나 추억이 간직되어 있는 보물일 수도 있겠고… 결국 천주의 말씀에 따라 결정되겠지요.”
“그런…가?”
새삼 구양대주의 얼굴에 떠오른 단호한 의지의 표정 같은 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이 양반은 내가 지금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는 물건으로 ‘수하들 길들이기’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으으음~ 나도 본래 어느 정도 군기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으니 멋대로 그렇게 해석해주면 고맙긴 한데…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새삼 부담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군. ‘마군황에게 명분은 필요 없다’라…
솔직히 내가 정말 그렇게 명분이고 나발이고 없어도 ‘까라면 까는’ 수하들을 거느릴 자격이 있는지도 자신이 없고… 무엇보다 나는 원판 놈과 어떤 식으로든 결판을 내고 나면… 에… 막말로 나중엔 지하무림도 필요 없는데… 그런데 이렇게까지 나오면 좀……
“천주!”
자룡대주로군.
“다시 신호가 잡혔습니다! 예상대로 가깝습니다!”
좋아. 다시 이 쪽에 집중할 때다.
“다시 추적 개시. 가능하면 최대한 거리를 좁혀 봐.”
“존명!”
한동안 멈춰있던 배가 다시 시동을 켜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 어제 바다 속에서 돌아 온 이후로는 내가 차분해진 반면, 저 여자가 더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변해 버렸다. 내가 밤새 운기조식하는 동안 혼자 선원들과 교대로 레이더 장비에 붙어 있는 거 같더니 지금도 잠 못 자서 핏발 선 눈을 번뜩이며 선원들을 진두 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자룡대주는 곧 레이더를 다른 선원 한 명에게 맡기고 내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레이더도 탐지할 수 없는 깊숙한 심해로 들어갔었을 뿐, 지역적으로는 멀리 벗어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 역시 그랬군.”
“…이제 날도 밝았고, 슬슬 우리 쪽에서 놈을 유인하는 건 어떨지……”
그야 당연하지. 하지만 그 전에……
“…놈의 크기가 상당히 큰 편 이랬지?”
“확실하진 않지만… 어제 목격했던 상어들 평균의 두 배 정도로 추정됩니다.”
“…그럼 어제처럼 다른 놈들이 몰려 온다 해도 밀리지 않겠군. 좋아.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 싶었을 때 미끼를 뿌리기 시작해 줘.”
“존명!”
구양대주가 미리 챙겨온 박스 속의 생선들과 어제 죽은 상어의 살점들이 유인용 미끼가 될 것이다. 어제는 배가 부른 상태였는지 어쨌는지 내 피의 유인을 씹었었는데, 오늘은 어떨지 모르겠다. 작살의 사정거리까지 끌어들일 수만 있으면 거의 게임 끝일 텐데 말이다.
“음… 그리고 말야.”
“하명하십시오, 천주!”
“별건 아니고… 한국말로 할 때는 그 존명이라는 말은 좀 빼 줄래?”
“존… 아니,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게… 자룡대주는 이미 한국말을 잘 하지만… 속어나 은어까지 알게 되면 이해하게 될 거야.”
“발음상 어떤 나쁜 말과… 존명… 존, 명… 조… 아, 그러고 보니……”
갑자기 살짝 얼굴을 붉히는 걸 보니 감 잡은 모양이군.
“이해해 줘. 보통은 그렇게 연상 안 하는데, 내가 그 발음 들어가는 말을 무지하게 쓰는 사람들 틈에서 몇 년 살았더니 좀……”
“쿳! 알겠습니다.”
흠, 얼굴을 붉히기는 했지만 별로 민망해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오히려 보일 듯 말 듯 야릇한 미소를 머금고 있군 그래.
“아,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뭔데?”
“새벽 무렵 추적 대상이 레이더에서 사라졌다는 보고를 드렸을 때도 그렇고… 천주께서는 어쩐지 갈수록 침착해지시는 듯합니다.”
“침착한 것도 잘 못인가?”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어제는……”
그런 뜻으로 물은 게 아니란 거야 알지. 어제와 오늘, 아니 바다 속에 들어가기 전과 후가 너무 틀리다 이거지? 뭐, 그렇다고……
‘사실… 난 계속 내가 몽몽을 되찾기 위해서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는 내가 바다 깊숙이 들어가야 할지 모른다는 걸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야. 몽몽을 삼킨 놈이 내가 쫓을 수 없는 곳으로 도망칠지도 모른다는… 아니, 쫓을 수 있어도 망설이거나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그런 나약한 마음을… 바다에 뛰어든 다음에야 확실히 깨달았지. 하지만 그 후 새삼 깨닫게 된 건 나란 놈도 이미 평범함에서 많이 벗어난 인간이라는, 나 역시 ‘괴물’이라는 사실이야. 그건 그리 유쾌한 깨달음만은 아니지만… 그럼으로써 이제는 몽몽을 삼킨 놈이 어디로 달아나든 진짜 끝까지 쫓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어. 그게… 내가 침착해진 이유지.’
…이렇게 시시콜콜 내 속마음을 털어놓을 필요는 없겠지?
“…솔직히, 지하무림인들이 이 정도까지 협조해 줄 줄은 몰랐거든. 난 아직 정식으로 모든 지하무림 사람들에게 공인된 것도 아니니 만큼… 음… 그러고 보니 아직 자룡대주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 했군. 난 잘 모르지만 소속된 회사에서 뭔가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 날 도와주고 있는데 말이야.”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응…? 뭐야? 왜 갑자기 실망한 듯이, 풀죽은 표정이 되는 거지? 내가 무슨 실언이라도 했나? 진심이었는데… 맘에도 없는 인사치레로만 들렸나?
“자룡대주님!”
갑작스런 고함소리! 레이더를 맡은 선원… 아니, 키를 잡고 있는 선장인가?
선장이 손을 치켜들고 정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대략 40미터 정도 떨어진 수면 위로 이제는 반갑기까지 한 삼각 지느러미가 보인다.
“배를 멈춰욧! 시동도 끄고! 준비해요!”
자룡대주가 다급하게 선원들에게 지시하는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아침 햇살이 보석처럼 흩뿌려진 바다를 향해 섰다. 이런 멋진 바다 위를 섬뜩한 상어의 지느러미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광경도 나름대로 운치가……
…나란 놈도 참. 이젠 별 생각 다한다. 에… 그보다, 오늘은 이렇게 빨리 따라잡았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걸? 심해 속에서 배를 채우고 느긋한 상태로 돌아온 건가? 아니면… 우리 배의 집요한 추적을 느끼고 놈이 스스로 접근해 오는 거라던가… 뭐, 그럴 경우에도 영화 죠스와 비슷한 전개로 갈 일은 없겠지? 이 배는 영화 속의 배보다 두 배 정도는 더 크고 화력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니 말이다.
나는 차분하게 다시 한 번 컨디션을 점검해 보았다.
밤새 운기조식을 하는 동안 점점 더 운기가 수월해지며 가속도가 붙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내력만큼은 연옥도 시절의 상태이다. 전신의 부상도 고통만 참아낼 수 있다면 단시간의 움직임에는 큰 지장을 주지 않을 것 같고… 이 정도면 베스트라고 하긴 어려워도 근래 들어 가장 괜찮은 컨디션인 셈이다.
복장은… 구양대주가 준비해 준 잠수복도 한 번 입어 보고 싶긴 하지만, 싸움을 앞두고는 역시 전투복이 더 어울릴 것 같으므로 패스… 결국 어제 전투화를 벗어서 맨발이라는 것 빼고는 별로 바뀐 건 없고, 바꾸고 싶은 것도 없고… 전투장비 역시 정글도 하나면 족하고… 음, 컨디션 및 복장, 장비 점검 완료!
< …몽몽! 몽몽! 들리냐? >
[ …주인님……? ]
< 그래. 이렇게 가까운데도 수신 상태가 더 나쁜 걸 보니 네 에너지도 이제 한계인 모양이지? >
[ …저는 인체에… 특화된 설계…… ]
< 음… 어쨌든 그럼 이제 한 가지만 알려주고 더는 음성도 보내지 말고 기다려. 너의 현재 위치, 그러니까 상어 몸의 어디쯤이지? >
[ …아직… 위장…… ]
< 알겠어. 조금만 더 기다려 줘. 이번엔 정말 놓치지 않을 게. 알았지? >
[ …예… 부탁 드립… ]
으음~! 몽몽의 가냘픈 소리를 들으니 새삼 심란하고 미안해지는 군. 상어 뱃속에 삼켜져 있는 녀석의 기분은 잊고 나 혼자 평온을 찾아 여유있는 시간을 보냈으니 말이다. 암튼 이번엔 정말… 어…? 뭐시여, 이건 또?
이… 사람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음향은……
“꺼, 꺼욧! 뭐하는 거예요?”
자룡대주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자 선원 한 명이 민망한 표정으로 휴대용 카세트 스위치를 눌러 껐다.
“…괜찮아. 분위기 좋은데, 뭐.”
내가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곧 두둥~ 두둥~ 아니, 바방~ 바방~인가…? 하여간 다시 죠스의 주제음악이 울려오기 시작했다.
음… 먹거리 냄새를 풍기며 자기 주제곡까지 틀어줘서 그런가…? 놈이 곧장 이리로 다가오고 있다. 예상대로 상당히 큰… 응…? 이거 어째… 아무래도 예상을 뛰어 넘는……
영화 속에서는 물 속에 있는 상어의 크기를 가늠해보기 위해 주인공들 중 한 명의 몸으로 비교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 놈은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내 눈대중으로는 대략 십여 미터…? 평균의 두 배가 아니라… 죠스의 두 배…? 영화에서는 죠스를 3톤 정도 무게일 거라고 하던데… 그럼 저 놈은 최소한 6톤이란 얘기다. 최종 보스(?)다운 위용이라고 할까?
“맙소사! 저런 건 저도 처음 봅니다.”
놈이 다가옴에 따라 작살 사격을 준비하며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이던 선장이 먼저 질린 듯한 표정이 되어있었다. 너무나 알기 쉽게 압도적인 크기의 괴물이 정면으로 미끄러져 오는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바다 사나이인 선장도 긴장했는지 쉽게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있었다.
“뭐, 뭐해요? 어서 쏴욧!”
자룡대주의 날카로운 재촉과 함께 쿠왁~ 작살이 발사되었다.
“아~! 빗맞았……”
“뭐예욧?”
선장은 다급하게 재장전을 시작했고, 자룡대주는 그 뒤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쳇! 바다 사나이는 개뿔… 아니, 그보다는 놈이… 젠장! 빠르다!
크기 때문에 실감하지 못했지만 놈은 속도도 빨랐다. 선장이 재장전을 끝냈을 때는 이미 놈의 거대한 몸체가 배 옆을 스아악- 지나가고 있었다. 선장이 쏜 작살이 등지느러미 부근에 꽂혀있기는 했지만 매우 어설프게 박혀 있어서 살짝이라도 당겨지면 바로 뽑혀질 것만 같았다. 영화에서는 상어가 몇 번이고 배 근처로 와서 작살에 맞아 줬지만 과연 이놈도 그럴까?
“젠장! 비켜!”
나는 재빨리 작살 쪽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자룡대주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를 거칠게 옆으로 밀어내고 그녀 뒤에 놓여있던 작살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투창술은 거의 수련한 적 없는데… 썅! 몰라!
배의 후미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하며 오른쪽 팔에 내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놈이 벌써 멀어져 가고 있었기에 내력은 물론이고 온 몸을 이용해 달려간 힘까지 실어 작살을 던졌다.
으윽~! 제기! 탄성을 죽이지 않으려고 멈추는 동작을 생략했더니 꼴사납게 자빠지고 말았다. 어쨌든 맞았어야… 웃!
피잉~! 소리와 함께 작살에 연결된 줄이 눈앞을 달리고 있었다.
“모두 조심해-!”
다급하게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줄에 연결된 통이 튀어 오르며 자룡대주를 쳤고, 결국 그녀가 비명과 함께 바다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보천구룡대의 대장씩이나 되는 여자가 그것도 못 피할 줄은… 어, 어쨌든 괜찮은 건가? 어…? 왜 안 떠오르지? 설마, 의식을 잃은 건가?
“뭐 하는 거냐? 어서 자룡대주를 구해라!”
구양대주가 드물게 흥분한 음성으로 명령했지만, 선장과 또 한 명의 선원도 발이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작살과 연결된 통이 딸려 간 건 당연히 내가 던진 작살이 상어에게 적중되었다는 의미이며, 그 통이 지금 이쪽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젠장! 한방 먹었다고 열 받았나 보다. 덩치도 큰 놈이 선회 한 번 더럽게 빠르네.
나는 하는 수없이 직접 바다로 뛰어들었다. 막상 들어가 보니 자룡대주는 다행히 수면에서 그리 깊이 가라앉은 상태가 아니어서 곧바로 잡아서 수면까지 끌어올릴 수가 있었다. 그녀는 공기를 접하자마자 쿨럭 거리며 물을 토해 냈다.
“기, 기혈이……”
“말하지 마!”
의식을 잃지는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충격에 기혈이 뒤틀린 모양이었다. 나는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몸을 더듬어 응급조치에 필요한 혈을 잡아 주었다.
“처, 천주……”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하, 하지만, 저기……”
“알아. 놈이 오고 있다는 거. 걱정하지 말고 두 팔로 내 목을 꼭 잡아.”
“조, 존명.”
“우이 쒸~ 그거 하지 말래두!”
나는 투덜대면서도 어제처럼 두 팔에 장력을 모아 수면을 내리쳤고, 그 반탄력으로 수면을 박차고 솟구쳤다. 배의 갑판을 넘어 거의 선실 위까지 날아오른 건, 2인분의 무게를 의식해 조금 오버한 것도 같지만…
그 덕에 나는 공중에서 자룡대주의 몸을 보다 안전하게 고쳐 잡으며 착지할 수가 있었다.
“자룡대주를 선실로… 윽!”
젠장! 놈이 헤엄쳐온 기세 그대로 배 옆을 들이받았다. 그렇다고 배가 이렇게까지 크게 기울어질 줄은…
에?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선장이 떨어졌어? 이 사람들이 지금 교대로 뭐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