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30-1화 : 비행소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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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30-1화 : 비행소녀(?).(1)


4-1. 비행소녀(?).(1)

이틀 전(기분은 어째 최소 두 달은 지난 것 같은 기분이지만.) 소교를 구하기 위해 산을 나섰었던 나는 그때처럼 별다른 시간을 들일 것도 없이 다시 준비를 마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몽몽, 왜 자꾸 뭔가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 …탁한 일당들에게 빼앗긴 구급약과 천잠사(天蠶絲) 등의 소소한 장비들을 되찾지 못하셨습니다. ]

“아! 맞다! 구급약은 아무대서고 다시 구하면 되지만 천잠사는… 아니, 천잠사도 경찰이 증거물로 회수해 갔을 테니 전경하나 그의 사부인 청천마군(靑天魔君)에게 가져다 달라고 하면 되겠군. 출발하기 전에 연락해 둬야겠다.”

[ 정글도와 그 외의 전투 장비도 아직 차에 실려 있는 채입니다만…… ]

“그건… 지난번에는 가는 길 자체가 하도 빡세서 두고 갔던 건데 이번에는 어떨지… 음, 하여간 그건 아니고… 그 밖에 또 필수적인데도 빠트린… 그런 거 또 뭐 없나?”

[ 혹시… 금동 옹(翁) 아닌가요? ]

“윽! 맞다! 요정 몽, 네 말이 맞아! 지난번에는 하도 급히 편법으로 가는 거라 두고 갔지만 이번에는 녀석도 데리고 가야지. 그래… 금동이도 소교가 보고 싶을 거야.”

사실 다른 자매들에 비해 금동이와 소교는 그다지 친할 틈이 없었던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요즘 그렇듯, 금동이도 천년 전에 알았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일이 싫지는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시간이 되면 금동이와 잠깐이라도 해저 연옥도에 가볼 수도 있는 문제고 말이다.

“…금동이 지금 저 방 안에는 없었지?”

[ 그렇습니다. ]

“그렇다면 당연히 하연이와 있는 거고… 하연이가 술자리에서는 소령이들과 잠깐(아마도 술김에) 화해 모드에 들어갔었는지는 몰라도 아직 금동이를 양보할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겠지? 뭐… 어쨌든.”

나는 즉시 차를 출발시켰고, 몽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 하연이가 퍼질러 자고 있다는 호텔로 향했다.

“음… 여긴가?”

꽤 깔끔하고 나름대로 신경을 쓴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그리고 분명히 ‘호텔’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곳이었다. 서울의 호텔들, 특히 최근에 대교가 묵고 있는 호텔을 접해봐서 그런지 내 눈에는 호텔이라기보다 모텔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하연이가 핸드폰을 꺼놨기 때문에 나는 로비에서 지배인인 듯한 남자에게 정식으로 객실 방문을 요청해야 했다. 그는 상당히 예의바른 태도로 객실 내의 전화를 통해 내 신분을 확인한 다음 자신이 직접 마스터키를 가지고 쫓아오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약간의 문제는 내가 돌아서서 객실로 올라가는 도중에 있었다.

“야, 야! 저 것 좀 봐라! 저 남자가 어제 밤의 그 기가 막힌 여자의 이건가 봐!”

“오빠라고 했잖아.”

“오빠는 개뿔이… 저렇게 생긴 게 수준 차이 나는 남매 봤냐?”

“하긴……”

그렇게 들려오는 소리에 돌아보니, 호텔 직원 두 놈이 내 쪽을 보며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이며 하는 소리들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지배인이 그렇게 물어서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보통 사람인 지배인으로서는 상당히 먼 거리에서 낮게 말하는 중인 그들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나는 평소에도 상당히 귀가 밝아져 있는 탓에 그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 문이 닫힐 때까지 계속 그 놈들이 수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부잔가 봐.”

“아냐! 타고 온 차 봤는데, 졸라 썩어가는 국산이더라.”

“그래…? 그럼 다른 게 죽이는 모양이지.”

빌어먹을 놈들…! 내가 정말 그렇게 빠지는 타입이야? …물론 하연이에 비하면 지극히 평범한 용모에 아직도 전투복 바지에 싸구려 점퍼 차림만 고집하는 썰렁한 패션 감각에… 차도 굴러다니는 게 용한… 젠장…! 빠지긴 빠지는 구나. 그렇다고 명색이 서비스 업계에 종사한다는 놈들이 사람을 겉으로만 평가해?

“이 호텔 지배인…이죠?”

“예, 그렇습니다.”

“밑의 직원들 교육 좀 잘 시켜야겠소.”

“예? 저희 직원들이 무슨 잘못이라도……”

“…좀 전의 놈들에게 내가 ‘상당히 귀가 밝은 사람’이라고 알려주면 알게 될 거요.”

지배인은 내가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운 듯했지만, 일단 그 정도만 얘기해 두기로 했다.

그나저나, 씨이~ 하연이 이 기집애. 왜 그렇게 이쁘고 귀티 나게 생겨 가지고 그렇게 비교되는 거야?

나는 엉뚱한 방향으로 열받음을 전가하며 하연이 방을 찾아 들었다.

“야! 넌 무슨 계집애가 겁도 없이 술 먹고 혼자 이런 데서 잠을 자고 그러냐? 게다가… 뭐야? 오래비 오셨는데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도 안 해? 응?”

짐짓 인상을 긁으며 큰 소리를 쳐봤지만… 녀석은 금동이를 쿠션 베개처럼 안고 게슴츠레한 눈을 슬쩍 한 번 뜨더니, 도로 감아 버린다. 추가로 기껏해야 배시시 웃으며 손만 살짝 까닥까닥 움직인 게 인사의 전부인 것으로 보아 오래비가 직접 호텔까지 찾으러 온 건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야, 일어나 봐! 할 얘기가 좀 있어서 온 거야.”

“응~ 왜 그래애~ 나 진짜 지금 무지 졸려. 졸립고 머리도 핑핑 돌고……”

우쒸~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새삼 열 받고 싶어지네. 이걸 그냥… 전에 경고한 대로 회초리 찜질로 버릇을 고쳐 놔…? 으음… 하지만 난 여행지에서 여동생을 늑대 두 마리와 있도록 방치하고 사라진… 오빠 자격이 없는 주제니… 쳇…! 하는 수 없군.

“…야. 그럼 네 쿠션… 아니, 금동이나 내 놔. 실은 그 녀석하고 갈 때가 있어서 온 거야.”

“…응? 뭐?”

“금동이 데리러 온 거라구.”

내가 다시 한 번 진짜 용건을 밝히자, 그제야 녀석은 번쩍 눈을 뜬다. 조금 전에는 게슴츠레했던 그 두 눈에 약간의 총기… 내지는 살기(?)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금동이 얘기가 나오니까 정신을 차리는군. 하여간 내일… 혹은 늦어도 모레까지는 돌려줄 테니, 좀 빌리자.”

말하고 보니 좀 치사한 생각이 드는군. 굳이 소유권이란 걸 따지면 내가 최우선인데, 중간에 주워간 녀석에게 이런 부탁을 해야 하니 말이다.

“…무슨 일인데?”

“글쎄… 금동이도 만나고 싶은 사람, 가고 싶은 장소가 있다는 정도만 말해 두지.”

“…그게 누구고 어디지? 아니, 그보다 금동이 생각을 어떻게 안다는 거지?”

“훗! 얘기했었잖냐. 내가 누구보다 금동이를 잘 안다고 말야.”

“그건……”

“말했듯, 금동이와 나는 내일… 혹은 아무리 늦어도 모레까지는 돌아올 거야. 함께 여행을 와서 자꾸 너 혼자 둬서 미안하지만……”

“그건, 됐어. 아무래도 상관없어!”

음… 이번에는 확실히 내 쪽에서 미안해지는군. 그 부분은 분명히 내 잘못이니……

어쨌든 하연이는 이제 완전히 정신이 든 얼굴로 금동이를 내려다보며 뭔가 생각을 해 보는 듯했다. 그리고는 재빨리 자신이 덮고 있던 이불자락을 잡아 걷어 올렸고, 훌쩍 날아오른 이불은 정확히 내 머리 위를 덮었다.

“야!”

“가만있어! 나 옷 갈아입을 거야!”

젠장. 영화나 만화… 어디서든 몇 번 본 듯한 장면이로군. 보통은 여자가 이렇게 남자의 눈을 가린 후 기습공격을 해 온다거나 몰래 튀어 버리곤 하지만… 음, 아무래도 하연이는 그냥 순수하게 옷을 갈아… 아니, 그냥 입을 뿐인 것 같다. 들려오는 소리나 기척으로 보아 녀석은 지가 무슨 마릴린 먼로라도 되는 양 향수만 달랑 입고(?) 있었던 듯 이제야 속옷을……

“훔쳐보는 거 아니지?”

“개뿔이… 언능 갈아입기나 해.”

상대가 여동생이니 만큼 엉뚱한 생각은 전혀 없지만, 말만 한 계집애가 옷 입는 걸 이불 뒤집어쓰고 기다리자니 기분이 다소 묘하긴 하네. …쩝! 이 기집애는 대체 어떤 환경에서 자랐기에… 아니, 가만? 5년 전까진 이모님이 살아 계셨을 테니 그때까지는 조신하게 기르셨을 텐데… 그럼 그 후에 곧바로(?) 이렇게 대담하고 자유분방한 애가 되어 버린 걸까? 쳇! 이모님이 지하에서 통곡을… 하실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좀 씁쓸하긴 하실 것 같군.

“오빠.”

“응? 왜?”

“나도 따라갈래.”

“…뭐?”

“금동이 혼자는 못 보내. 어딘지 나도 함께 가겠어.”

“야!”

나는 나도 모르게 녀석 쪽으로 몸을 돌렸고, 그 순간 머리 위의 이불이 스륵 흘러내렸다.

“임마! 내가 금동이를 빼앗아 가려고 들었으면 벌써 하고도 남았어. 왜 그렇게 날 못 믿는 거냐?”

“…못 믿는다기보다……”

“못 믿는다기보다, 뭐?”

내가 인상을 긁으며 반문하자 하연이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추궁하는 쪽이 바뀐 거 아닐까? 오빠는 지금 나와 여행을 와서 어딜 그렇게 혼자만 다니는 거지?”

“그, 그건… 중요한 일이 있었다는 건 너도 이미 알잖아. 원… 아니, 니네 화이트가 다 가르쳐 줬다며?”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오빠에게 어떤 사정이 생겼든, 난 오빠와 여행을 떠난 순간부터 일행인 오빠의 행방에 관여할 자격이 있는 거 아닐까?”

쳇! 이렇게 나오니까, 잠이 덜 깼을 때가 더 귀여운 것 같네.

“그야, 그건 그렇기는 하지만… 그게, 넌 어차피 여기서 더 자려고 했으니 그 사이……”

아참. 내가 아예 못 왔다면 몰라도, 왔으면서 동생을 이런 곳에서 계속 혼자 재울 수는 없잖아?

“아, 일단 여기서 나가긴 하자. 하지만 넌 다시 산에 데려다 줄 테니 거기서 쉬고 있어.”

“…싫어. 오빠 따라갈 거야.”

“에이 쒸~ 진짜!”

물론 이 녀석이 순순히 금동이를 내줄 거라고는 생각 안 했었다. 그래도 잘 얘기하면 납득해 줄 줄 알았는데… 근데 이렇게 대뜸 따라오겠다고 나설 줄은…

가, 가만? 이 녀석 이거 혹시… 원판에게 날 따라붙어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은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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