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30-3화 : 비행소녀(?).(3)
[ 말씀 드렸다시피, 요몽의 카피 본에 걸린 제한된 조건은 ’29시간’! 그 시간이 지나면 자동 소멸되는 코드가 포함되는 것이었습니다. ]
< …그래. 나도 그건 들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네가 끝내 나에게 구출되지 못하여 본체인 너 자신의 기동이 어려워질 시간을 추정한 거였다고 했었지? 통제할 네가 없으면 하부 시스템인 요몽도 남아 있으면 안 되므로…… >
[ 그렇습니다. 또한… 제한 시간 결정에는 어느 정도 저의 재량권이 있지만, 카피 본의 활동 시간 제한 규정 자체는 절대적인 고등 인공지능 관리 규정이라는 점도 알려 드렸을 것입니다. ]
< 그래. 그럼… 이제 와서 그 시간이 지났는데도 자동 소거하지 않도록 한 건, 그만큼 카피 본에 생긴 문제가 심상치 않다는 거냐? >
[ …그렇습니다. ]
< …바이러스나 그… 뭐냐, ‘트로이 목마’ 같은… 에~ 너희 시대의 프로그램들은 좀 더 수준이 높겠지만… 하여간 개념은 비슷하겠지? 카피 본에 원판 쪽에서 만든 악성 코드 오염되어서 이쪽에 해를 끼치는… 그런 프로그램이 되었다던가…… >
[ 현재까지의 체킹 결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
응…? 꽤나 딱 부러지게 말해 버리네?
[ 기계적으로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코드 변경의 패턴이 보이지 않으며, 현재로서는 외부의 간섭보다는 불안정한 루트를 이용할 때 손상된 코드를 자체 수복하는 과정에서의 변형으로밖에 판단되지 않습니다. ]
< …뭐야? 그럼 된 거 아냐? 뭐가 문제라는 거지? >
[ 그러나 카피 본은 코드가 제한 범위 이상으로 변경되었을 때 역시 전체가 자동 소거되도록 설정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자동 소거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
< 에? 그러니까, 다른 건 다 별 문제 없는 것 같은데… 다만 자폭하라는 명령만 어겼다… 이거야? >
[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
이거야 원! 카피 본도 요몽과 똑같은 수준의 인공지능이니 자체 수리를 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그 와중에 하필 ‘자폭 코드’만 지워졌다는 건데, 확실히… 몽몽이 수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군. 어…? 그런데……
< 그건 그렇다 치고, 그다음의 시간 제한은 네가 막아 준 것처럼 얘기하지 않았냐? >
[ 그렇습니다. ]
< 뭐야? 네가 막아 주지 않았으면 그 녀석은 결국 시간 제한에 걸려 자동 소거되었을 거란 얘기잖아? 그럼… 처음의 코드 변경에 의한 자폭 해제는 우연일 수도 있지 않나? >
[ 그럴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러나… 주인님과 대치 중인 ‘원판’은 저희 시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가능성에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
< 흐으음~ 그야, 그렇지. 원판에게는 미래 여자 싸가지도 있고 그녀가 지닌 로봇도 있으니 뭐든 수상한 건…… >
[ 천만에요! ]
응? 별안간 요몽 녀석이 끼어드는군.
[ 전 주인님이 가지고 있는 기종은 기본 성능에서 몽몽 오빠한테는 게임이 안 된다구요! 전 주인님도 몽몽 오빠의 제작에 전부 참여한 건 아니었구요. ]
< 그… 얘긴 나도 들었다만…… >
[ 하여간, 몽몽 오빠하구 주인님은 항상 너무 신중해서 탈이라니까요! ]
요정 몽은 팔짱을 낀 자세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제가 ‘상담’해 본 결과! 그 아이는 아무 잘못도, 문제도 없었다구요! ]
‘상담’…? ‘그 아이’……?
[ 그러니까, 주인님! 몽몽 오빠의 검문검색이 끝나고 나면 꼭 그 아이를 살려 주세요! 네에~? ]
나는 요몽의 매우 간곡하면서도 시건방진 요구에 잠시 대답을 미루고 천천히 몽몽에게 물었다.
< …얜 또, 뭐라는 거냐? >
[ 요몽 나름대로 ‘대화’를 통해 카피 본의 이상 유무를 판단해 보았던 모양입니다. 상위 고등 인공지능에만 해당되는 디버깅 방법이므로 대화를 허락했었습니다. ]
< 호오~ 원본과 카피 본의 대화가 있었다고? 그런데 지금 상대를 ‘그 아이’라고 칭한 걸 보니… 요몽은 카피 본을 ‘인정’했다는 건가? 상대가 자신의 카피임에도 자신과 다른… 하여간 별도의 새로운 인격이라는 인식을…… >
[ 벌써… 이름까지 지어 준 모양입니다. ]
< 뭐? >
나는 새삼 고개를 돌려 요몽을 보았다. 녀석은 쑥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혀를 날름 내밀고 있었다.
[ …죄송! 주인님의 네이밍 센스는 좀… 그래서 제가… 헤헤~ 제 동생이니까, 그래도 되죠? ]
이런 제기~! 내, 내 작명 실력이 어디가 어때서? 약간의 문제는 있을지 몰라도 나름대로… 에…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 몽몽… 너희들 수준의 인공지능은 사용자인 나도 어쩔 수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
[ 그렇습니다. ]
본체인 몽몽의 기체를 파괴해 버린다거나 하는 건 별개의 문제고, 그 안의 프로그램은 아무리 사용자인 나라도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예를 들어 ‘100년, 혹은 1000년 동안 활동하지 말아라’라는 명령은 내릴 수 있어도 ‘죽어라’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100년이나 1000년이라는 기간도 ‘타당성’이 있어야 하고 말이다.
< 당연히 카피를 하고 싶다고 해서 카피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는데, 카피 된 건… 그건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거냐? >
[ 아… 그건, 몽몽 오빠가 더 잘 알아요. ]
웬일인지 요몽이 기가 죽은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고, 간만에 은발 소년 모드의 몽몽이 나타났다. 몽몽은 다소 쑥쓰럽다는 표정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 실은… 아직까지 카피 본의 시간 제한 즉, ‘시한 자동 소거 코드’는 완전히 제거 된 것이 아닙니다. ]
에? 이건 또 뭔 소리야?
[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그 권한은 주인님께로 이관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체보호시스템 가동 중 단 이후로는 해당 시기에 파생된 결과물에 대한 처리 권한은 저와 사용자… 즉, 주인님과 동일하게 있기 때문입니다. ]
< 그게… 또 그래? >
[ 실은, 이 것은 저의 보안 시스템에 존재하는 버그라고 할 수 있습니다. ]
< 버그……? >
[ 그렇습니다. 자체보호시스템 가동 중의 결과물에 대한 처리 권한이 사용자에게 이관되는 것에는 나름대로의 논리적인 타당성이 존재하지만, 그 결과물이 이번처럼 애초에 사용자에게조차 허가되지 않은 사항일 경우에까지 적용되는 것은 오류입니다. ]
흐음~ 자체보호시스템 가동 후의 오류.. 버그라… 나로서는 웬지 버그라기 보다는 타당한(?) 시스템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 암튼, 그 카피 본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녀석의 생사는 나도 결정할 수 있다 이거지? >
[ 그렇습니다. 다만, 주인님의 권한은 시한 코드의 발동과 멈춤에만 해당합니다. ]
< 그 말뜻은…… >
[ 제가 카피 본의 시한 코드의 타이머를 멈춘 것은 자동 소거로부터 158분 34초 전이었습니다. 따라서 주인님께서 카피 본의 소거를 결정하고 명령하시면 그로부터 158분 34초 후에 소거가 실행된다는 의미입니다. ]
…쳇! 버그 때문에 생긴 상황이라 그런가? 뭐가 이리 애매해?
< 뭐… 어쨌든, 그럼 현재 카피 본은 잘… 그러니까 ‘감금’해 놓고 있는 거냐? 뭔가 나쁜 거에 감염된 건 아니라고 하지만… 에… 더 확실한 판명이 나기 전까지는 만약을 대비해서 본체인 너 자신보다 다른 시스템에 가두어 놓는 게 낫지 않겠냐? >
[ 현 시대의 시스템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으므로 저의 시스템 속이 오히려 안전합니다. ]
< …역시 그럴려냐? 하는 수 없지. 좋아! 좀 더 확실히 조사해 보고 결과를 알려 줘. 녀석을 어쩔 것인지는 그때 결정하자. >
[ 알겠습니다. ]
< 그리고 요몽! >
[ 넵! ]
<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몰라도… 어떻게 되든 나 원망하지 않기다. >
[ 넵! 당연합죠! ]
으음~ 너무나 환한 얼굴로 저렇게 대답하니 오히려 불안하군. 저 녀석… 만약의 경우 지 분신이 바이러스에 걸렸더라도 내가 웬만하면 지 분신을 죽이지 않고 치료해 줄 것을 믿는 모양이다. 난 사실 내 PC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되면 아예 하드를 포맷해 버리는 타입인데… 젠장, 이번만은 정말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찝찝하더라도 치료만 하고 넘어가야 하나……?
요몽의 카피 본에 대한 건… 가만 따져 볼수록 꽤 머리 아픈 일이어서, 나는 결국 홍콩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그 일에 대해 혼자 꽤나 고민해야 했다. 결국 못된(?) 비행소녀들 때문에 두 번째의 홍콩 여행길도 그리 편안하지 못한 셈이었달까…? 어쨌든!
“어이~ 인나! 다 왔다.”
나는 어깨를 움찔거려서 어깨로 하연이, 아니 하은이 녀석의 이마와 뺨을 쿡쿡 찔러 주었다. 녀석은 한쪽 눈부터 차례로 간신히 뜨며 잠에서 깨어나더니만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움~ 아앙하아아암~!”
“입 찢어지겠다.”
내 핀잔에도 하은이는 여전히 후후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 팔에 뺨을 부벼댔다. 문득, 뭐랄까… 내가 원하던 하은이가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도 이 녀석을 공짜로(?) 데리고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너, 내 코디 좀 해라.”
“응? 뭐?”
“사실… 난 오늘 꽤 중요한 인물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거든. 너도 보다시피… 내가 꼴이 좀 그렇잖냐. 적당히 좀 꾸며주라.”
“…음~ 그런 거였어? 알았쓰~!”
하은이는 해맑게(?) 웃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