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32-2화 : 옛날 옛적 금동이와 소교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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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32-2화 : 옛날 옛적 금동이와 소교는……(2)


4-3. 옛날 옛적 금동이와 소교는……(2)

연옥도에서 지낼 당시… 나는 자주 연옥서생 사부가 머물었던 동굴에서 밤새 운기조식을 하곤 했었다. 물론 자연적으로 공청석유(空淸石乳)라는 영약이 생성될 정도로 기가 충만한 장소였기 때문이었지만, 내가 그 동굴을 좋아했던 건 동굴 입구를 통해 볼 수 있는 그곳만의 독특한 풍경 때문이기도 했었다.

그곳에서 연옥서생 사부도 이용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아있으면 멀찍이 떨어진 입구가 작은 원형의 창문처럼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원형의 창은 달이 뜨는 위치와 달의 크기까지 거의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래서 그곳에서 월출(月出)의 순간을 맞게 되면 마치 달이 서서히 문을 닫듯 밀고 올라와… 결국에는 달이 완전히 하늘을 가리고 달빛이 하늘이 되는 광경을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광경을 볼 수 있는 동굴이나 기타 장소가 꼭 그곳뿐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달빛이 하늘 그 자체’라는 짧은 표현 역시 누구나 생각하고 쓸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한 표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소교의 막연한 꿈 얘기만으로 천년 전의 소교가 연옥도에서 지낸 시간이 있었을 거라는 가정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구나 소교의 꿈이 대교처럼 전생의 기억이라는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만약 정말 소교가 그 동굴에 간 적이 있는 거라면… 그렇다면 대체 어떤 상황이었던 걸까…..?

내가 떠난 후 유일하게 연옥도의 위치를 아는 자는 천우신뿐이다. 그 천우신도 강호에서 완전히 은퇴한 후 은거의 장소로서 비밀리에 연옥도에 가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연옥도의 위치나 가는 방법이 알려진다면 천우신이 아무리 ‘이제는 없다’고 증언한다 해도 그곳에 있을지도 모를 소위 무공비급을 얻기 위해 날뛰는 무리들이 몰려들 테니 말이다. 소교가 아무리 소령이의 언니라 해도 심심하면 놀러 갈 수 있을 정도의 장소가 못 되는 것이다. 소교까지 아예 세상을 등지고 그곳에 은거해 버린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니까… 만약 소교가 정말 연옥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거라면… 소교는 대체 왜……

“…오빠!”

“으, 응? 어… 왜?”

“후후~ 봤죠?”

하은이 녀석,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뭘 봤냐는 거야?

“정말 몇 번이나 불러야 겨우 알죠? 우리 오빠가 글쎄 아무 때나 수시로 이래요, 수시로!”

알고 보니 내가 대답한 이후로는 내가 아니라 소교에게 하는 소리였다. 내가 그 사이 또 나만의 세계에 빠졌었던 모양이다.

“흐응~ 이번에는 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했을까?”

“어… 글세, 그냥 뭐……”

“수혜 양의 꿈 얘기가 그렇게 흥미로웠어?”

쯧-! 소교 얘기를 들은 직후였으니 전혀 다른 생각 했었다고 하는 변명은 곤란하려나?

“으음… 사실 난 어릴 적부터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꾼 적이 없어서 좀 신기한 얘기라고 생각 하긴 했어. 하지만 바닷가 동굴에서 하늘의 달을 보는… 그런 꿈 내용 자체는 아주 드문 경우라고 할 수는 없을 거고… 아무래도 어렸을 적의 어떤 경험이 무의식중에 기억에 남아서……”

응…? 뭐야? 나름대로 일반론을 펼쳐 보는 것뿐인데, 왜 소교가 흠칫 놀라는 표정이 되는 거지?

“어, 내가 뭐… 실언이라도 한 건가?”

“아, 아뇨. 그게 아니라……”

뭐지? 왜 저렇게 새삼 심각한 표정이 되는 거야? 난 별 얘기 한 게 없는 거 같은데……

“…오빠! 수혜 양은 꿈속의 장소가 ‘동굴’이라고 한 적이 없어.”

윽! 그, 그랬나?

“하지만…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 먼 곳에서부터 전해진 파도소리가 희미하게 메아리 치는 듯한 느낌… 차분하게 가라앉은 공기와 서늘한 흙과 바위의 풋풋한 내음… 아, 그래요. 역시 거긴 동굴 안이었던 것 같아요.”

소교는 새롭게 깨닫게 된 사실에 대한 기쁨으로 자신도 모르게 환해진 표정으로 날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 얼굴에는 곧 나에 대한 의아함이 떠오르고 있었다.

“호오~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수혜 양! 그 꿈 얘기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주 했던 거야?”

하은이의 질문에 소교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 그게……”

이런 제기…! 어쩐…다? 쳇! 소교는 그렇다 치고 하은이 녀석까지 왜… 아니 저 녀석이 더 적극적으로 추궁의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는 거야?

“난 그냥 떠오른 데로 말한 것뿐인데… 사방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시야가 트인 곳이 정면뿐인 장소라면… 그렇다면 동굴 안에서 밖을 보는 상황이라고……”

일단 애써 변명해 보긴 하는데… 어째 반응들이 그리 신통치는 않은 눈치… 쳇! 그래도 할 수 없지. 그냥 우기는 수밖에!

“난 그냥 그렇게 느꼈는데… 보통 그렇게 연상하지 않아? 넌 안 그랬니?”

나는 태연을 가장하며 오히려 하은이에게 반문했다. 그러자 녀석은 쓴웃음 지으며 말했다.

“글세… 사람에 따라 그런 연상을 할 수도 있는 거지만, 남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 ‘확신’할 정도로 연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젠장, 이 녀석 이거 누구 편이야?

“그건… 글쎄, 어쩌면 내 최근 몇 년간의 경험 때문인지도 모르지. 하은이 너도 알다시피 난 군대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됐잖아. 군대에서는 매복이나 침투 작전 때 땅속에 숨거나 동굴처럼 좁은 통로를 지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도 아주 흔하거든.”

물론~ 거짓말이다. 우리가 뭐 무장간첩도 아니고… 훈련으로 잠깐 매복하는데 누가 맨날 동굴처럼 깊숙이 땅을 파고들어 앉아 있겠는가. 게다가 하수구나 여타 동굴 형태의 구조물을 통해 어딘가 침투하는 것도 대항군(가상 적군 역할) 뛸 때나 가끔 하는 일이고… 평소에는 우리도 보통 길로 다닌다. 뭐, 그렇지만……

“그…래?”

녀석, 아직 완전히 수긍한 눈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따지고 드는 기세가 어느 정도 죽는 것 같군. 흐~ 역시 여자들은 군대 얘기에 약하다니까.

“뭐… 그건 그렇다 치겠어.”

“야. 그렇다 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나한테 뭔 얘기를 더 기대한 거냐? 난 꿈 해몽가나 심리학자가 아니란 말야.”

의식적으로 조금 퉁명스런 어조로 내뱉자, 하은이 녀석은 그제야 피식 웃으며 내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건 타깃을 바꾸는 것이었을 뿐인 듯, 녀석은 다시 소교에게 물었다.

“수혜 양 자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꿈속의 장소가 지금도 전혀 생각나지 않아요? 우리 오빠 이론대로라면 수혜 양은 아주 어렸을 때 금동이… 아니 최소한 비슷한 원숭이와 함께 지냈던 적이 있는 게 아닐까요? 알레르기도 어쩌면 그때 생긴 거고 말예요.”

이 녀석이 왜 당사자인 소교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가 했더니… 역시 금동이 때문이었군.

“알레르기는 그게… 아, 아무튼 잘 기억이 나질 않아요. 꿈속의 금빛 형체도 그게 원숭이였는지 아닌지조차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소교는 힐끗 금동이가 사라진 문 쪽을 본 다음 말을 이었다.

“제가 기억도 잘 못할 정도로 어렸을 때 본 거라면 저도 작았을 테니 좀 전의 금빛 원숭이 정도라도 저와 비슷한 크기로 기억하지 않았을까요?”

호오- 나름대로 과학적인 분석을?

“그런데 꿈속의 금빛 형체는 항상 아주 작았어요. 게다가 실은… 꿈속의 저는 항상 지금 아니 어쩌면 지금보다도 성숙한… 그런 느낌이었어요.”

음, 바로 비과학(혹은 초과학?) 영역으로 복귀하는군.

“…어렸을 때 꾼 꿈속에서도 말예요?”

“예. 그때부터 항상 똑같았던 것 같아요. 거울 같은 걸로 비추어 본 건 아니지만 그냥… 웬지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흐음~ 설마 자신의 미래를 본 예지몽(豫知夢)이나 그 반대로 ‘전생의 기억’ 같은 것도 아닐 텐데……”

윽! 하은이 이 녀석, 지금 뭔 얘기를 꺼내는 거야?

“전생의 기억…이요?”

“후후- 그런 얘기도 많잖아요. 하지만, 난 역시… 그런 얘기는 믿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의 경우처럼… 결국 소혜 양도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trauma)가 관계된 꿈이라고 생각해요.”

트라… 뭐? 음… 하여간 잘 한다, 정하은. 빨리 전생 얘기에서는 벗어나 다오.

“그렇다고 정신병적인 개념을 아니니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요. 게다가… 누군가에 비해서 수혜 양은 축복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응? 누군가에 비해…? 어…? 하은이 녀석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네?

“실은… 나 역시 어렸을 때 자주 꾸던 꿈이 있었어요. 수혜 양처럼 항상 똑 같은 내용의 똑 같은 꿈… 하지만 다른 점은… 내 꿈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도, 아름답지도 못했어요. 위로해 주는 금빛 요정 같은 것도 없는 지옥……”

뭐…야? 설마 하은이도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건가? 그런데 지옥이라고…? 대체 무슨 기억이기에……

나는 물론이고 소교까지도 굳어져서 하은이로부터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정작 하은이는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아- 다들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한때의 악몽이었을 뿐이니까. 그리고 그런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가지 충고를 해 주자면… 사람의 꿈이나 무의식 속의 기억은 결코 정확하지 않다는 거예요. 나 역시 그 끔찍한 기억이 나중에는 결국 착각이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구요. 그러니까… 알아둬요! 사람은 때로 자신이 목격했을 뿐인 걸 직접 겪은 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은이의 확신에 찬 어조에 질린 듯 소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곧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어… 하지만 전 제 꿈이… 단순한 착각이라고는……”

“아니, 아니… 난 소혜 양이 나와 똑같은 경우라고 한 말이 아니었어요. 사람의 기억이란 그렇게 불확실성이 많으니까, 소혜 양도 자신의 꿈을 좀 더 폭넓게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언제고 진실을 알게 될 때가 올 테니까 말이죠.”

“말씀… 고마워요. 그래요. 정말 언제든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왜 그런 꿈을 꾸게 된 건지……”

소교는 진심으로 그 때를 기다리는 표정으로 미소지었지만… 난 그런 그녀가 너무나 안쓰럽고 복잡한 기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내가 떠난 후의 상황이 궁금하기는 했다. 내가 현 시대로 복귀한 후 남은 그들은 어떻게,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소교의 얘기만은… 그건 더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어- 그런데 하은 언니가 꾸었던 꿈이란……”

음, 그래. 하은이. 저 녀석도 뭔가 있다고 했지?

“아… 제가 공연한 질문을 했나요? 죄송해요.”

“아니, 괜찮아요. 내가 궁금하게 했으니 말예요. 그렇지만… 얘기 해주긴 좀 곤란하네. ‘기업비밀’이라서……”

기업비밀…? 남자들이야 전혀 상관없는 일에도 곧잘 ‘사업상의 비밀’ 같은 표현을 쓰곤 하지만 여자애가 저런 표현 쓰는 건 첨 보는 것 같다. 어쨌거나… 하은이 얘기는 지금 꼭 듣지 않아도 상관없겠지? 소교와 달리 계속 함께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소교에 비해 몇 배나 다루기 어려운 녀석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저희들끼리만 얘기하고 있어서 어쩌죠?”

흠. 하은이 녀석, 소교의 꿈 얘기하는 동안 왕따(?) 당하던 여옥까지 챙겨 주는군.

“아니요. 전 젊은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심심하지가 않네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요.”

하은이에게는 일단 대범한 척(?)하는 여옥. 그러나 이어 소교에게 고개를 돌렸다.

“다만… 네게는 미안하구나. 난 네가 아직도 그런 꿈을 꾸는 지조차 몰랐구나.”

“아, 아니에요. 말씀 드리지 않은 건 제가 요 몇 년간 같은 꿈을 꾸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그럼 며칠 전 밤에는 혹시……”

여옥의 부드러운 추궁 아닌 추궁에 소교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호홋~ 역시 그랬구나. 진대가를 만난 후 다시 그 꿈을 꾸었단 말이지?”

응? 이건 또 무슨 얘기야?

“이 아이가 어렸을 때 그런 꿈을 꾸고 난 다음,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기에 이렇게 말해 주었답니다. 그건 ‘그 달빛처럼 너의 하늘이 되어 지켜 줄 사람이 있기 때문이란다’…라고 말이죠. 실은 그게 바로 ‘엄마인 나란다’라는 의미로 한 말이었는데… 그런데 이제 보니……”

여옥은 갑자기 날 향해 그윽한(?) 시선을 보내기 시작하며 말을 이었다.

“…어쩌면 그건 제가 아니라 ‘달의 기사’님인지도 모르겠군요.”

으윽~ 여옥, 댁은 또 왜 이러슈?

“달의… 혹은 달빛 기사라… 그것도 역시 멋진 걸? 역시 부러워 수혜 양.”

얼씨구- 하은이 너까지 거드는 거냐? 어, 어? 소교 넌 또 왜 그렇게 부끄러운 태도로 내 시선을 피하는 거냐? 으… 이런 전개는 정말 곤란한데……

<모, 몽몽. 그리고 요몽. 내가… 니들이 보기에도 어딘가 좀… 그러니까 매력적인 구석이 있는 거냐?>

[아아~ 그거야 우리 주인님은 천하에서 제일 핸섬하고 버라이어티한 매력 덩어리에……]

<헛소리 말고!>

[에… 그야 뭐. 겉으로 봐서는 그냥 별로… 아니, 그래도 평균 이하는 아니니까 자신을 가지세요. 게다가 대교님의 경우도 있듯이 짚신도 짝이 있다잖아요.]

<…됐다, 이 놈아.>

쳇…! 괜히 물어봤다. 어쨌든… 내가 혼자 착각해서 오버하는 게 아니라면… 소교 저 녀석, 전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또 내게 호감을 느낀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 같은데… 젠장! 어쩌지?

[…주인님. 구양대주로부터의 연락입니다.]

음, 마침 잘됐다.

“저,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나는 몽드폰을 들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입구 쪽으로 향하며 전화를 받았다.

“…천주. 주의하십시오. 지금 아무래도 위험한 자들이 그 쪽으로 향한 것 같습니다.”

“위험한 자들?”

“예. 저도 그 동안 소문으로는 들었었지만… 이건 소문 이상인 것 같습니다.”

대체 어떤 녀석들이기에 구양대주쯤 되는 사람이 이런 소리를 하는 거지? 어, 지금… 저기 입구에 나타난 저 친구들인가?

<몽몽. 송화음 외부 재생을 중지하고 내게 따로 전달해 줘.>

내 지시에 따라 몽몽은 즉시 핸드폰으로서의 송화음을 끊고 구양대주의 음성을 중계하기 시작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나에게밖에 들리지 않는 구양대주의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앞으로 소위 ‘위험한 자들’ 세 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 명은 약간 긴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삼십대 중반쯤의 남자로 외견상으로는 크게 특징지을 것이 없는 평범한 인상이었다. 그리고 그의 조금 뒤쪽의 두 남자는 그와 대조적으로 머리카락 한 올 없이 민머리여서 일견 옛날 개그 콤비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도 하는 사내들이었다. 외견상으로는 그 정도였지만… 구양대주가 새삼 소개하는 그들의 프로필과 내 눈에 직접 보이는 그들의 절제된 발걸음과 서늘한 안광은 그들이 결코 흔한 마피아의 졸개들이 아님을 알려 주고 있었다.

세 명의 남자가 드디어 바로 내 앞까지 접근했을 때, 올백 머리 사내의 시선이 송곳처럼 내게 날아들었다. 나는 무심을 가장한 채 전화 통화를 계속하는 척을 했고, 놈 역시 멈칫하는 기색도 없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놈의 시선과 마주친 그 찰나의 순간으로도 나는 온몸에 냉수가 들이부어진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해야만 했다.

[1차 스캔만으로는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지만……]

몽몽의 보고를 끝까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코드명 원판, 진하운의 수하들과 같은 강화조직의 패턴이 감지된 것은 확실합니다.]

그래. 소위 생체강화전사라는… 더구나 저들 세 명 중 올백 남자에게서 내가 느낀 위기감은 거의 ‘도홍’이나 ‘론’을 만났을 때의 수준… 설마……

나는 새삼 마른침을 삼키며 놈들을 돌아보았다. 이미 놈들은 우리 테이블에 도착해서 일제히 여옥에게 상체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사장님. 일 처리가 예정보다 늦게 되어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이실장. 이제라도 도착했으니……”

여옥의 대꾸에 올백 머리… 이실장이란 자는 다시 한 번 정중하게 고개 숙였다. 그리고는 곧 바로 ‘내일 회사에서 뵙겠습니다’라는 일상적인 인사와 함께 몸을 돌렸다.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들은 밖으로 나가는 상황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놈들과 마주쳐야 했다. 놈들은… 조금 전과 달리 여자들 쪽으로부터 등을 보인 상태에서 마음놓고 내게 웃고 있었다. 양쪽의 쌍라이트 형제(?)는 아주 노골적인, 그리고 리더인 듯한 올백 머리 이실장은 어느 정도 절제된 미소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지나쳐 가기 전, 이실장의 입이 소리 없이 움직이며 입 모양만으로 내게 몇 마디를 남겼다.

반갑습니다, 진유준님. 줄곧 기다렸습니다. 이 ‘사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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