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33-1화 : Confidential Raiders.(1)
4-4. Confidential Raiders.(1)
결코 달갑지 않은 만남… 아니,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상황이었다. ‘사냥’이라고 하는 기분 나쁜 표현에 담긴 뜻부터 시작해서 이 급변한 상황에 대한 생각들이 일시에 머리 속에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선 내가 선택해야 할 것은 지금 내 옆을 스쳐간 녀석들을 돌려세워 정체를 밝히도록 해야 하는가 아닌가였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길은… 결국 놈들을 그대로 보내고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사냥…? 날 사냥하게 되기를 기다렸다고? 그 것도 오랜 세월의 기다림이었다는 어조…! 그렇다면 역시 원판이 양성한 생체강화전사들이라는 얘기지? 하지만… 그런 녀석들이 어째서 여옥의 수하가 되어있는 거지? 이 것 역시 오래 전부터 준비된 원판의 안배…? 혹은 원판을 배신한 녀석들…? …젠장! 생각할 시간이 너무 짧다.
나는 나름대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결국 세 여자가 날 기다리고 있는 자리로 돌아가 앉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당장 파악해야 할 것은 여옥에게서 알아내는 길 밖에 없었다.
“…여사장님 회사 직원들인 모양이군요.”
“예. 제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들이랍니다. 출장 다녀 온 인사를 하려고 굳이 이 곳까지 들렸네요.”
“과연… 회사와 사장님께 무척 충실한 사람들인 모양입니다.”
내 말에 여옥은 다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 탓일까…? 일견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 보이는 여옥의 모습 어딘가에서 ‘여유’가 묻어나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여옥은 그들을 정말 자신의 충실한 부하로 여기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저도 최근에 작은(?) 회사를 맡게 되긴 했습니다만… 여사장님처럼 곁에서 ‘오랜 충성’을 다한 자들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작전 멘트라고는 하지만 구양대주와 자룡대주를 비롯해 날 마군황이랍시고 기다려 온 모든 지하무림식구들에게 다소 미안하군.
“호호~ 진대인이라면 틀림없이 훌륭한 수하들을 많이 거두었겠지요. 저 같은 여자와 비교할 수나 있을까요.”
의례적인 대응…? 아니면 비꼬는 걸까? 어쨌든 내가 처음으로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를 언급했는데도 반응이 애매하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 적지 않은 ‘세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 쳇, 그런 건 이렇게 묻지 않아도 마녀가 아래층에 끌어 모아놓은 대가리 수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사항이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의 올백과 쌍라이트 형제가 여옥의 수하가 된 시점 또한 최소한 10년 가까이 되었다는 사실도 이미 보고서에 있었다. 공연히 물을 필요도 없었는데… 젠장! 침착하자, 진유준. 침착해. 냉정을 잃고 버벅 댈 때가 있을 때가 아니다!
보통의 경우…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인사말이나 대화 중에는 자신의 직업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늘의 만남 같은 경우 다들 서로의 직업을 확실하게든 어렴풋이 짐작이든 하고 있는데다가 양 쪽 다 별로 자랑스런 직업인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꽤 오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요새 하시는 일은 잘 되시나요?’처럼 너무나 흔한 질문조차 서로 회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제 언급이 시작되긴 한 건데… 계속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면서도 놈들과 여옥의 관계… 즉, 지금 놈들에게 통하는 명령의 우선권자가 원판인가 여옥인가를 알아내야 한다. 그에 따라 내 행동도 달라져야 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하은이였다. 뜻밖에 녀석이 먼저 고개를 조금 갸웃하며 여옥에게 물었다.
“조금 전의 사람들… 특히 이실장이라는 사람은 어쩐지 낯익은 것도 같은데… 무슨 일을 하는 분들이죠?”
낯이 익을 법도 하지. 바로 니네 화이트 놈이 양성한 자들이니……
“아가씨에게 낯이 익다고요? 그럴 리가…….”
여옥은 별 소리 다 들어본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러나 곧 뭔가 다른 생각이 떠올랐는지, 새삼 하은이의 얼굴을 가만히 살피며 말했다.
“음… 우리 이실장은 회사 내의 전반적인 일을 모두 관리하고 있어요. 그 중에는 연예계와 관련된 파트도 있으니… 혹시 아가씨도 그 쪽 계통에 있는 건 아닌가요?”
“아뇨. 전……”
하은이는 대답을 망설이며 날 돌아보았다. 난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하은이에게 녀석의 신분을 밝힐 것임을 얘기했었고 그 의미에 대해서도(싸움 억제 효과) 설명해 두었었다.
“실은… 제 동생에 대해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여사장님께서는 혹시… DP, Delight Present라는 기업을 아십니까?”
내 말에 여옥은 조금 움찔하는 기색을 보인다.
“…그럼요. 그런 세계적인 기업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 아이는 그 곳의 총수 일가… 정확히는 회장 ‘잭 크라우드’의 딸입니다.”
생각보다 놀라는 여옥의 얼굴… 하지만 그밖에… 그러니까 뭔가 더 복잡한 표정은 떠오르지 않는 듯……
“이 아가씨가… 설마 진짜… 아, 그렇다면……”
여옥의 시선이 새삼 내게 향한다. ‘그럼 하은이의 오빠라는 너는… 네 정체는 뭐냐’라는 뜻이 담긴 표정과 눈빛이다. 내가 잘 못 읽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 여자는 아직 하은이의 친오빠(?)인 원판을 만난 일이 없다는 얘기다.
“…아니, 전 아닙니다. 집안 얘기라 좀 그렇지만… 이 아이는 본래 저와 사촌지간이고, 그 쪽 집안에 입양된 거죠.”
여옥의 지금 표정은… 약간의 안도감….? 혹은
“DP라면 저도 알아요! 제가 쓰는 노트북이 그 곳의 계열사에서 만든 거 거든요. 와아~ 언니가 정말……”
조금 들뜬 듯한 태도가 된 소교…는 그렇다 치고, 문제의 여옥도 놀라기는 한 것 같지만, 계속 내가 주목하고 있는 반응까지는 읽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하은이가 자신과 구체적으로 얽힌 인물(원판)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당황한다거나 하는 기색은 없는 것이다.
“오빠도 참. 그런 얘긴 뭐 하러……”
하은이는 자신의 신분 때문에 특별한 취급을 받는 건 싫다는 기색을 보이며 날 흘겨보았다. 다른 건 몰라도 ‘입양’ 얘기까지 꺼낸 건 나도 미안했지만 사과하는 건 나중으로 미뤄야 할 상황이다.
그건 그렇고… 쳇! 이렇게 여기까지 알아냈다고 쳐도, 그 것만으로는 결국 올백과 쌍라이트 형제가 언제 날 습격해 올지… 그러니까,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부터 일을 벌이기 시작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원판의 안배는 당연히 날 노리고 진행 된 걸 테고… 그렇다면 내가 나타난 이 시점에서 올백 일당은 여옥을 배신하여 여옥과 여옥의 딸인 소교는 상관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으니 말이다. 더구나 현재 대기하고 있는 여옥의 수하들과 우리 지하무림 식구들을 생각하면, 놈들은 얼마든지 엄청난 혼전양상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 속에서 하은이와 소교를 동시에 보호하는 건 나로서도 무리다. 물론 놈들도 자신들의 공주님인 그레이스 W 크라우드, 정하은이 있으니 함부로… 아… 아니지. 그런 판단도 아직 이르다.
“…어쨌든 하은아! 넌 최근 들어 드물지만 DP에서 주도하는 파티 같은 곳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지? 그러니까 그런 자리에서 여사장님의 직원들을 목격한 적이 있었던 건 아닐까?”
물론 실제로는 택도 없는 소리다. 적어도 겉으로는 건전한 성향이며 초국가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기업이 DP다. 그런 DP가 주도하는 파티에 홍콩 마피아의 조직원이 어슬렁거릴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이건 그냥 하는 소리고……
< 하은아. 아까 그 놈들… 널 알아보는 기색이 있었니? >
갑자기 전음을 보내니 조금 놀라는 눈치. 하지만 하은이는 전부터 내 능력을 알고 있어서 그리 큰 내색은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가씨의 착각이 아닐까요? 저희 회사는 아직 일천해서 DP같은 거대기업과 인연이 닿을 정도도 못된답니다.”
마녀, 이제 당신 대답은 필요 없다오.
“글세… 아무래도 여사장님 말씀대로 내 착각이었던 것 같아. 그러고 보니 그 쪽에서도 날 알아본 기색이 없었고 말야.”
“호호호~ 만약 그들이 아가씨를 만난 적이 있었다면 결코 잊을 리가 없었겠죠. 이렇게 매력적인 아가씨를 어느 사내가……”
아 글쎄, 지금은 좀 끼어 들지 말래두?
“아… 어쩌면 DP본사에서 만난 사람과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
“…그랬구나. 세상엔 닮은 사람이 많지.”, < 역시 니네 화이트의 사람인 건 맞다 이거지? >
“…응. 그런 것 같아.”
실제의 말과 전음을 이어서 보냈는데도 잘 대답해주는 군. 으음- 어쨌든, 놈들이 하은이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건… 아니, 아니… 놈들도 그냥 그런 척을 한 걸 수도 있겠지? 하은이의 관찰력과 눈치는 믿을 만하지만… 그래도 이런 일에는 보다 철저한 확인이 필요하다. 역시… ‘놈’에게 직접 따져 보는 게 가장 빠르려나? 쳇! 또 그 놈에게 묻는 건 싫은데……
“이런, 이런… 오늘따라 왜 자꾸 전화가……”
나는 또 전화가 온 것처럼 모두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 몽몽. 원판에게 연락해 줘. >
그래. 아무래도 마녀는 원판의 장기 말에 불과한 것 같으니 놈에게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할 것이다.
“…여보세요? 진유준님?”
역시 그 여자, ‘란’이 먼저 전화를 받는 군.
“그래요. 납니다. 원판 좀 바꿔줘요.”
“마스터께선 지금 식사 중이십니다. 잠시 후에 다시 연락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요. 나보다 하은이에 대한 얘기고, 급하니까 빨리 바꿔줘요.”
“…저희 그레이스 아가씨 말씀입니까?”
“그렇다니까? 얼른 원판 좀 바꿔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무리 진유준 님이라도 가급적 마스터께 이상한 호칭을 쓰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젠장. 바쁜 데 별 걸 다 가지고 딴지 거네.
“알았소. 그럼 하운이 녀석 좀 바꿔줘요. 빨리.”
“…나참. 정말 어쩔 수 없는 분이로군요.”
란은 불만스럽게 대꾸하면서도 결국 원판에게 수화기를 넘기는 것 같았다.
“당신… 생각보다 연락을 자주 하는 군. 내가 끔찍이 싫다고 할 때는 언제고……”
“젠장! 누군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냐? 너, 내가 지금 어디에 있다는 거 알지?”
“아니.”
뭐야…? 놈이 이제야 란에게 나에 대해 묻는 소리가 들려 오잖아? 이거 쇼야? 진짜야?
“음… 벌써 삼합회의 마녀와 접촉한 건가? 그래… 마녀와의 식사는 즐거운가? 아니 그 보다는 마녀의 딸과 만난 것에서 더 감회를 느끼고 있겠군.”
빌어먹을 놈! 역시 소교까지 알고있다.
“…헛소리 말고! 너… 대교를 인질로 잡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내게 약속했었지?”
“그야 물론… 왜, 무슨 문제라도?”
“당연하지! 대교를 해치려는 마녀에게 힘을 빌려주면 그게 곧 대교를 해치는 거 아냐?”
“음… 굳이 따지자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굳이 안 따져도 그래!”
“너무 흥분하지 말고 잠깐만 기다려 줘.”
너무나 성능 좋은 몽드폰의 성능 덕분에 놈이 또 란에게 묻는 소리와 그에 대한 그녀의 대답도 어느 정도 들려왔다. 란은 분명… 그 올백과 쌍라이트 형제를 ‘Confidential Raiders’라고 표현한다. 비밀… 습격자…? 특공대? 급습자? 대충 그 정도의 의미인가?
“흐음~ 그랬었군. 거기에도 그 친구들이… 아, 미안. 나도 지난 세월 동안 해 온 일이 많다보니 기억하지 못하는 일도 있거든.”
“…너, 정말 마녀의 일을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처리했던 거냐?”
“그렇게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지. 하지만 확실히 그들 소위 CR은… 좋게 말하면 장기적인 포석, 좀더 솔직히 말해 내 변덕의 소산물이라고 할 수 있어. 즉흥적인 기분에서 결정한 일도 많고… 뭐, 공통점이라면 그들 모두 현재 내 통제하에 있지 않다는 정도랄까?”
“야, 너……”
“생각해 보면… 그 중에는 정말 하찮은 돌멩이도 있었고 때로는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다운 흉기도 있었던 것 같아. 그 중 어느 정도 수준의 사냥꾼에게 걸리느냐는 당신의 운… 즉, ‘복골복’이지.”
“보, 복골복? 네가 무슨 길에서 컵 돌리는 야바위꾼이냐?”
“훗~ 그건 아니지만 어쩐지 어감이 맘에 들어서……”
“제, 젠장! 어쨌든, 그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그럼 대교에 대해 했던 약속은? 그건 어떻게 하고?”
“이번 경우는 당신도 이해해 줘야 해. 난 분명 당신과 약속한 것처럼 앞으로의 모든 계획에서 대교를 제외했다. 하지만… 그 약속 이전에 깔아 놓은 포석까지 일일이 회수하거나 소거해야 하는 걸까? 그들이 대교를 해칠 가능성은 어떻게 판단하지?”
“야! 적어도 이번 마녀의 경우는 누가봐도 확실하잖아!”
“과연… 그럴까? 여옥이란 여자가 그들에 의해 좀더 쉽게 현재의 힘을 가지게 된 건 사실이겠지. 또한 그 힘이 대교에게는 분명 위험한 창일지 모르겠지만… 그 반면 소교를 보호하는 방패인 것도 사실 아닐까?”
윽! 그… 그건 그렇다. 그 놈들이 마녀의 부하가 되기 전에도 마녀는 이미 삼합회에 몸담고 있었다고 하니……
“이… 치사한 새뀌!. 어째 순순히 대교를 인질로 삼지 않겠다고 장담한다 했더니, 결국 이런 꼼수를 쓰려는 거였냐?”
“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긴 한 것 같군. 그럼 뭐… 쏘리! 미안해~!”
우쒸-! 뭐 이렇게 징그럽게 얄미운 놈이 다 있냐? 상대를 스팀 받고 혈압치 상승시키는 건 내 전공이건 만, 왜 이 놈에게는 자꾸 내 쪽에서… 으으……
“자아- 또 궁금한 점이 있는가? 없으면 난 그만 식사를 계속했으면 좋겠는데……”
“결국 그 놈들… 네 놈의 무책임한 포석들이 조금 전 선전포고 비슷하게 하고 갔어. 이 상황에서 지금 나와 하은이가 함께 있는 건 어떻게 생각하냐?”
“아… 그렇군. 하은이가 당신과 함께 있었지? 그건… 확실히 문제로군.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해.”
“야, 이 쒸팍 시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너, 대체 하은이를 뭘로 생각하는 거야?”
“그야 당연히… 영원한 나의 여동생… 나의 사랑스런 분신이지.”
“…그,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째서……”
“그래서 믿는 거야. 그 아이는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살아남아 다시 내게 돌아 올 것이라는 걸 말이야.”
“야, 너… 너 정말……”
치이~ 여기서 이걸 어떻게 물어야 한다지? 인간의 영혼, 영체를 스캔하여 판별할 수 있는 기능은 미래의 로봇 중에서도 몽몽급이나 되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몽몽은 지난 번 만났던 미래 여자 진이 장착하고 있던 로봇 장비에는 그런 기능이 없었다고 했고… 그렇다면 진이 이번에는 그런 장비까지 가지고 왔다가 빼앗겼던 것일까? 아니면 원판은 하은이가 단지 진하연과 닮았다고 해서 진심으로 자신의 여동생으로 생각하는 걸까…? 혹은… 내가 대교를 알아보았듯 원판도 진하연의 영혼을 알아보았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더 타당하려나? 내가 원판의 육체를 차지하고 있었을 때 느꼈던 진하연과의 동조현상(?)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너 실은 알고 있었던 거냐? 하은이의 전생을.”
“……”
응? 뭐지…? 왜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지?
“…물론이지.”
뭐…야. 단지 대답이 늦게 나왔다는 것만으로 판단하는 건 무리인지 모르겠지만……
“‘물론이지’라고?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지금 거짓말했지?”
“…거짓말은 아니야. 단지… 일말의 다른 가능성조차 지금 당신이 증언해 주었을 뿐.”
“훗~! 그…으래?”
“…이만 끊지. 어쨌든 내 동생은 잘 부탁해.”
전화는 바로 끊겼고, 나 역시 더 이상 통화할 마음은 없었다.
< …몽몽! 아무래도 그 동안 우리가 우려했던 거 하 나는 이제 안심해도 될 것 같다. 그… 너의 옛 주인이 이번에는 너와 같은 수준의 로봇을 가지고 왔을 가능성 말이야. >
[ 그렇습니다. 인간의 영체를 스캔할 수 있는 기능을 저와 유사한 급으로 소형화된 기체에 장비하는 것은, 현재 저의 기체를 이루고 있는 금속을 바탕으로 해야만 가능합니다. ]
< 뭐… 미래 여자 진, 그녀 자신과 지난번에 본 장비만으로도 장난이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조금 안심은 되는 군. >
[ 아 글쎄에~ 본래 우리 몽몽 오빠를 능가하는 기종은 미래에도 거의 없다니까요! ]
< 시끄러, 요몽. 싸움은 항상 모든 가능성을 염두 해 두어야 하는 거란 말야. >
그건 그렇고… 가만있자, 원판 녀석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얻고 마지막에 작지만 반격의 편치까지 먹인 기분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지금은 올백과 쌍 라이트 형제가 큰 문제로군. ‘Confidential Raiders’…! 원판이 과거에 멋대로 사방에 뿌려놓은 특수 부대이며 각각 지들 멋대로 움직이는 놈들이라고…? 그럼 결국 정체를 알아도 소용없다…는 결론인가? …쳇! 난 다시 테이블로 돌아가며 원판과의 통화에서 확인된 두 가지 사실에 대한 기분을 저울에 달아 비교해 보았는데… 결국 저울은 ‘짜증’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원판은 CR놈들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번에 걸린 놈들은 CR중에서도 씨알이 굵은 놈들인 것 같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