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34-1화 : 사냥꾼의 밤(The Night Of The Hunter).(1)
나는 전화를 끊고 건너편의 마녀 여옥을 보았다.
거짓으로 웃고 있는 두 눈, 쥐잡아 먹은 듯이 붉고 얇은 입술로 짓고 있는 비웃음, 두껍고 번들대는 얼굴 가죽…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천년 전 가장 재수 없었던 사갈서생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소인배 악당 스타일이었다면, 이 여자는 그 비열함과 추악함을 감추고 카메라를 향해 웃는 비리 정치인 같은 느낌… 이랄까?
물론… 당장에라도 저 뻔뻔한 낯짝을 요절내고 싶은 기분이기는 하지만……
“아, 왔니? 둘이서 뭘 하고 온 거야?”
나는 태연하게 웃으며 하은이와 소교를 맞았다.
“후후~ 글쎄? 비밀.”
간단히 대꾸하며 앉는 하은이와 소교는 지들끼리 눈을 맞추며 웃기에 바빴다.
“한참 재밌는데 미안하지만… 하은아, 우린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다.”
“응? 왜? 무슨 연락 왔어?”
“…그래. 너희 회사에서 보낸 물건에 문제가 있다는군.”
“음… 그럼 빨리 가봐야겠네? 중요한 거래였으니 말야.”
“그렇지?”
소교의 아쉬워하는 표정은 약간 부담스러운 정도지만, 여옥의 기름기 있는 웃음은 말할 것도 없이 날 빡돌게 하기 충분했다.
그래도 나는 정중한 태도와 함께, 마녀에게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라고 자부하는 사교성 웃음을 가득 담아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돌아서는 즉시 출구로 향하며 몽드폰을 들었다. 당연히 구양대주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해서였지만, 그건 잠깐 미뤄야 할 것 같았다.
“저, 저어……”
소교였다. 녀석이 뒤따라 나오며 머뭇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혹시 저의 어머니께 무슨 실례되는 말이라도 들으신 건 아닌지… 그래서 가시는 거라면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지금은 달라지셨지만 전에는 대교 언니와 정말 사이가 좋지 못했었기 때문에……”
하아아~ 정말 새삼 거듭, 따블 곱빼기로 한숨 나오네.
이건 정말 삼박 사일 대가리 박고 유전학적 고찰과 그에 따른 철학적 사색의 끝을 향해 몸부림쳐도 답이 나오지 않을 미스터리 아닌가!
얘가… 우리 소교가 어떻게 저런 여자의 딸로 태어났단 말인가!
“…그런 거 아냐. 나 개인적인 일로 바빠서 가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새삼 안쓰러운 마음에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예전 그 언제인가처럼 소교의 고양이털처럼 부드러운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또 보자.”
잠시 후.
8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하은이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납치당한 모양이야, 자룡대주가.”
“에~? 미스 제이가? 대체 누구에게… 아, 혹시 아까 그 자들에게?”
“눈치 빨라 좋다.”
“그, 그 여자 뭐야? 부하가 보스를 곤란하게 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그건 뭐, 그렇다 치고. 너 정말 아까 그 놈들 얼굴이 낯익디?”
“어… 그게, 다시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 봤던 것 같아. 하지만 설마……”
하은이는 원판에게 물어볼 생각인 듯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들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벌써 물어봤다. 니 화이트 오라버니에게.”
“그랬어? 정말 우리 DP 사람이었대?”
아직 하은이는 나와 원판의 적대관계를 모른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내가 말해 주기도 좀 그러니 일단……
“그래. 하지만 벌써 10년쯤 전에 떠난 놈들이래.”
“말도 안 돼! 일반 직원도 아니고, 마피아가 될 정도면 화이트 오빠가 양성한 자들일 거라구. 그런데 어떻게 배신자가 있을 수가……”
하은이의 말이 이어지지 못한 것은 그때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 밖에는 구양대주가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꾸벅 상체를 숙였다.
“천주, 송구한 보고를 드릴 것이……”
“자룡대주 얘긴가요?”
“예? 그럼 벌써 놈들이 천주께……”
구양대주의 주름진 얼굴이 더욱 깊게 패이며 다른 사람처럼 일그러지고 있었다.
“면목이 없습니다. 지하무림의, 아니 저희 보천구룡대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천주께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처리하겠습니다.”
“…아니. 이건 나한테 맡기고 이젠 모두 해산시켜요.”
“천주!”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아, 그렇지. 오토바이나 하나 빨리 구해 주면 좋겠네.”
오토바이를 쓰려는 건 몽몽이 이미 목표지점까지의 도로 중 상당 구역이 정체 중이라고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빨리 가는 것만이라면 지난번처럼 헬기를 동원하는 편이 낫겠지만, 놈들은 날 혼자만 오라고 했기 때문에 곤란했다.
“오토바이라면… 만약의 경우 탈출용으로 대기시킨 것이 있긴 합니다만……”
정말 준비성 하나는 철저한 양반이군.
“그럼 됐어요. 그리고 내 동생 좀 부탁해요.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래, 쇼핑이라도 시켜주면 좋겠군.”
다시 얼마 후.
나는 구양대주로부터 받은 오토바이에 타고 홍콩의 낯선 거리를 달렸다.
몽몽이 미리 알려 준 정보대로 차가 줄지어 늘어선 시내에서는 역시 오토바이가 최고인 것 같았다. 물론 약간의 문제는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20여 분 만에 도심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 후에 몇 블록인가의 주택가를 더 관통해 지나가자 잘 포장된 길이 갑자기 끊기며 허술한 흙길이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오늘의 험난한 밤을 예고하듯 가파르고 거친 길이었다.
[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전방의 언덕 위까지만 오르면 목적지가 보일 것입니다. ]
몽몽 말대로였다. 기어이 언덕 위까지 올라가 멈춰 서 보니, 멀찍이 떨어진 아래쪽으로 놈들이 알려준 폐쇄된 공장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밤중인데다 아직은 상당히 멀리 떨어진 상황이지만, 꽤나 밝은 달빛과 내공으로 끌어올린 시력 덕분에 전체적인 윤곽은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공장지대’라고까지 하기는 좀 작겠지만, 웬만한 중고등학교 두 개를 합친 정도의 규모는 되는 것 같았다.
그 중심에 자리한 기역자 모양의 메인 건물은 대략 4층 정도의 높이로 추정… 그밖에 그 주위로도 크고 작은 단층 건물들이 조화롭지 못하게 멋대로 세워져 있다.
그 뒤쪽의 야트막한 산은 비참하게 반쯤 도려낸 형상이었고, 거기서 파낸 듯한 흙더미가 건물과의 사이에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거기에 방치된 공사 자재들이 아무렇게나 쌓이고 뒹구는 추태가 더해져, 이미 폐공장이라기보다 버려진 공동묘지처럼 황량하고 을씨년스럽기만 한 풍경이었다.
저곳이 바로 원판이 날 위해 준비한 악의의 선물, 생체강화전사로 구성된 CR 멤버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놈들이 인질과 함께 그 어떤 함정을 파놓을지 짐작할 수도 없는 미지의 전장인 것이다.
< 몽몽, 시간은 정확히 얼마나 남았지? >
[ 현재 5분 31초 전…입니다. ]
< 치이- 현장을 제대로 정찰할 시간도 없겠군. >
나는 다시 출발하기 전에 간단히 장비를 확인해 보았다. 옷은 물론 전투복으로 갈아입었고 휴대용 장비들도 새로 산 작은 배낭에 어느 정도 챙겨왔고… 특별히 빠트린 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오늘의 주역인 이 오토바이… 날 이곳까지 태우고 달려 온 이 녀석도 건재한 듯했다.
아니… 지금까지 자신의 바퀴가 닿는 곳이라면 그 어떤 도로나 산길조차 폭풍처럼 질주했던 녀석의 본능 때문일까? 잠시의 휴식조차 필요 없었다는 듯 흥분된 엔진음으로 오히려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 …주인님! ]
< 뭐냐, 요몽. >
[ 오토바이 첨 타시는 거죠! 그쵸? ]
으윽~! 이 웬수가 갑자기 분위기를 팍 깨는구나!
< 아, 아냐 임마. 전에 한 번… 그때도 금방 배웠단 말야. >
[ 에이~ 근데 달리면서 기어도 제대로 못 바꾸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계속 휘청휘청~ 바들바들… 완전히 초보 아줌마 버전이었다구요. 그러니까 지금 시간이 모자라죠. 본래는 넉넉했는데! ]
< 그, 그만해라, 응? >
[ 우웅~ 그치만…… ]
스윽-하고 요몽의 영상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것은… 지하고 똑 같은 사이즈의 비율로 축소된 오토바이에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 출발할 때 제가… 저도 실제로 오토바이 타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고… 그래서 주인님의 감각에 접속해서 동조하겠다고 했을 때는 허락하셨잖아요. 근데 이게 뭐예요! 너무 재미없었어요. ]
< 그, 그건… 그게, 저…… >
제, 제기…! 더 반박할 말이 없긴 하군. 사실… 난 몇 년 전 시골에서 삼촌 스쿠터 몇 시간 몰아본 경험밖에 없는 놈이다.
그래도 일단 출발하면 대충 남들 정도는 몰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무래도 착각이었나 보다.
무심코 제일 디자인이 뽀대 나는 놈 골라 탔더니 예전의 그 스쿠터와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줄은……
[ 제가 차라리 맨 끝의 기종 타자고 했잖아요. ]
구양대주가 보여 준 기종 중에서… 네 바퀴 짜리를 말하는군.
얼핏 애들 장난감 같아 보여서 웃고 말았지만, 사실 내 주제에는 그게 딱이었는지도… 음, 어쨌든!
< 크으~! 그렇다고는 해도 이 주인님께서 전투를 앞두고 분위기 좀 내보고 있는데 고춧가루를 뿌리다니… 요몽, 너 자꾸 그러면 혼난…… >
[ 주인님. 하은님의 전화입니다. ]
< 몽몽, 너 역시 한 패… 쳇, 아니다. 일단 바꿔봐. >
“여보세요? 유준 오빠?”
“넌 왜, 또?”
“그냥 걱정이 돼서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 얌전히 기다리고 있기나 해.”
“하지만 오토바이 타고 가는 것부터가 영 불안해 보여서… 오빠, 탈 줄은 아는 거야?”
허컥~! 그, 그래도 출발은 무난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얘한테도 뽀락났구나. 당연히 같이 있던 다른 지하무림사람들에게도… 으……
“어, 큼! 흠, 음… 그게, 하도 오랜만에 타서 좀 어색하긴 했는데… 이젠 괜찮아. 하핫-! 홍콩 오토바이도 쓸만하네, 뭐.”
“…오빠. 오빠가 타고 간 거 일제였어.”
“…응? 그, 그런가?”
[ 주인님…… ]
< 됐다. 넌 암말 마라, 요몽. >
[ 하지만, 그 사이 시간이 더 지났는걸요. 지금까지의 평균 속도로는 현재 남은 거리를 시간 안에 주파하는 것조차 힘들지도…… ]
으~ 이 놈이나 저 놈이나… 아니 둘 다 놈이 아닌가? 하, 하여간 전부 날 뭘로 보고!
“뭐-어~야! 이게 일제였단 말야? 어쩐지 오토바이가 뭔가 이상하다 했어! 난 일제 싫어! 그러니까, 하은아! 이 오토바이 주인한테, 내가 만약 이 일제 오토바이를 열 받아서 부셔버려도 이해해 달라고 전해라! 알았지?”
난 그렇게 외치고 하은이가 더 뭐라거나 말거나 재빨리 전화를 끊어버렸다. 스팀이 삐익- 울려버린 나는 즉시 오토바이를 출발시켰고, 그때까지보다 과감하게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 주인님! 내리막길인 점을 감안하여 속도 조절을…… ]
[ 어, 어…? 옴마나! 이게 진짜인가 봐! ]
요몽 녀석 이젠 별 감탄사를 다… 윽! 근데, 제, 젠장! 저, 정말 자, 장난이 아닌데? 순식간에 가속도가… 가속도가아아~
[ 무립니다! 속도를 줄이세요! ]
[ 아아~ 이건 좀- 이젠 지나쳐욧! ]
몽몽과 요몽까지 동시에 위험하다고 난리가 아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감이었다. 지난번의 고공 낙하 때 못지 않은 바람의 직격… 아니 공기의 벽을 전신으로 부숴버리며 나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때와는 달리 산길의 굴곡으로부터 전해오는 무자비한 충격이 여과 없이 온몸을 강타해 온다.
으으~ 나도… 아주 믿는 구석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나도 나름대로 감이 잡혀가는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이렇게… 이렇게까지……
< 크하학~! 이렇게 잘 될 줄이야! >
[ 운전에만 집중하십시오! ]
[ 히이잉~! 주인님 제가 잘못했어요~! ]
< 음뿌왓핫핫핫~! 어떠냐 요몽! 맘껏 즐겨봐라! >
[ 아앙~! 이제, 이제 그마아안~! ]
요몽의 비명소리를 BGM으로 삼으며 미친 듯이 달려가던 내 눈에 위쪽으로 비스듬히 세워진 널빤지 같은 것이 들어왔다. 한 몸이 된 나와 오토바이는 그 널빤지를 발판으로 밤하늘을… 날았다. 제트기처럼 날아가는 내 눈앞으로 화악- 확대되어 엄습하는 저 것은 벽…? 아니, 벽은 아니다. 아까 언덕 위에서 보았던 공장 건물의 정문이다.
[ 싫다! 싫어엇~! ]
요몽의 의미 없는 투정(?)과 함께, 나는 핸들을 놓고 오토바이와의 짧은 만남에 종지부를 찍었다. 오토바이로부터 떨어져 나옴과 동시에 좌석을 발로 짚어 밀며 공공보법(空空步法)을 펼쳤고 당연히 안전하게 착지했다.
이 몸은 그렇게 나름대로 만족스런 마무리를 지었지만 오토바이는… 녀석은 불행히도 날아간 기세 그대로 건물 정문을 들이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착지한 후에도 황급히 더 뒤로 물러서며 몸을 낮추었고, 그 직후 엄청난 굉음과 불꽃이 튀는 폭발이 이어졌다. 휘잉-하고 부서진 부품 중의 하나가 날아와 내 앞에 떨어졌다.
난… 비로소 일어나 어둠을 밀어내고 일렁이는 불꽃을 향해 짧게 경례를 붙였다. 그리고 짧고 광적인 스피드의 끝을 화려하게 장식한 저 오토바이의 명복도 빌어 주었다.
…특히 일제여서 부셔버린다 어쩐다고 했던 건 진심이 아니었단다. 난 분명 일본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네가 뭐 어디서 만들어지고 싶어서 만들어진 것도 아닐 텐데… 그러니 공연히 너까지 미워할 마음은 없단다. 더구나 나 때문에 이렇게 장렬히 산화했으니… 너에게는 진심으로 ‘통석의 염’을 금치 못하겠… 음… 말하다보니 표현도 일제가 되었군.
[ 이제 다시는 주인님하고 오토바이 안 탈래요! 비교체험 극과 극도 아니고 너무 하잖아요. ]
나와 똑같은 승차감(?)을 느꼈던 요몽은 계속 칭얼댔지만, 간만에 은빛 소년 모드로 나타난 몽몽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 걱정했습니다만, 주인님의 변칙적인 움직임에 대한 대응력은 역시 뛰어나군요. 다만 평상 모드에서는…… ]
< 안다, 알아. 차분하게 하려고 들수록 오히려 이상하게 못할 때가 많지. 난 그… 뭐냐, 야구에서 수비 볼 때 존내 빠른 땅볼은 잘 처리하는데 높이 뜬 플라이 볼에는 버벅대는 타입이라고나 할까? >
[ 역시 자신을 잘 아시는군요. 하지만 예의 ‘존내 빠른 땅볼’ 처리를 또 연습도 없이 하셨다가는…… ]
< …그래, 안 할게. 사실 나도 좀 쫄았었거든. >
나는 순순히 인정하고 다시 아직도 불타고 있는 오토바이와 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 그런데… 몽몽. 영화에서 하도 폭발하는 거 많이 봐서 무심코 피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 폭발은 좀 지나친 거 아냐? >
[ 그렇습니다. 폭발 형태와 규모로 보아 출입문에 폭약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
쳇…! 역시 그랬군. 이 자식을… 인질까지 잡아 놓고 사람을 불렀으면 먼저 인사라도 좀 나누고, 이런저런 악당들의 전형적인 대사도 좀 치고… 그런 다음에 시작하는 게 보통 아닌가? 그런데 다짜고짜 문에서부터 이 지랄이라니……
[ 주인님. 적의 리더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
꽤나 빨리도 인사를 하려는 모양이군.
“하하하~ 과연, 정확히 도착하셨군요. 게다가 화려한 퍼포먼스까지……”
“멈추는 건 자신 없어서… 아, 아니. 하여간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제 말해봐. 어쩔 거냐?”
“후후~ 문에 설치해 놓은 유치한 함정에 화가 나신 모양입니다. 그건 그저 인사……”
“…상관없어. 준비된 대사나 읊어 봐.”
“준비된… 대사?”
“그래. 정말 혼자 왔느냐, 인질을 살리고 싶으면 그래야지, 이젠 여기까지 와서 인질을 구해봐라… 따위의 대사 말야.”
“후후~ 생각보다 성질이 급한 분이군요. 그럼 바로 진행해 볼까요?”
“야, 야! 일단 인질의 안전부터 확인해 줘야지.”
“아, 그런가요? 인질극은 처음이라… 진행에 서툰 점이 있어도 이해해 주십시오.”
잘도 처음이겠다 싶었지만, 더 뭐라 하지 않고 잠시 기다렸더니 곧 희미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조금 더 기다려도 뭐라 말이 없었다.
“자룡대주? 당신이야?”
“처… 천주……”
“그래, 나야. …어때?”
“오신… 겁니까?”
“당연하지. 어떠냐니까?”
“……”
쯧, 왜 대답이 없는 거야?
“…죄송합니다. 전 아무래도 보천구룡대의 자격이 없……”
“아아~ 안 들려! 여보세요?”
음, 이건 좀 썰렁한가? 암튼!
“거…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죄송한 줄 알면 내가 가는 데로 혼날 것도 각오해 놓고 말야.”
“……”
“근데, 지금 상태는 괜찮은 거겠……”
“여기까지!”
“이런 제기! 고새를 못 참고 수화기를 뺐냐?”
“제가 대신 대답해 드리죠. 사실, 진유준님을 기다리는 동안 조금 지루해져서 말입니다. 이 여자의 탐스러운 육체를 저희들이 돌아가며 즐겼답니다. 그래도… 잘 버티고 있군요. 대견한 부하를 두셨습니다.”
뭐가… 어쩌고… 어째? 흔한 마피아 똘마니도 아니고… 나 하나 잡겠다고 10년이나 기다려온 전사들이란 놈들이 그런 양아치 짓거리를……?
“후후후~ 어쨌든 부디… 오늘의 ‘밤 사냥’을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불행히도 사냥꾼은 저희들 쪽이지만 말입니다.”
“그,럴,까아~?”
[ 진정하십시오! 혈압을 비롯한 모든 신체 조직이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적의 도발에 넘어가는 것밖에…… ]
나는 몽몽의 말을 무시하고 말없이 등에서 정글도를 빼들었다. 나의 분신 격인 정글도가 파르르 떨며 발산하기 시작한 것은 분노보다 구체적인 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