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34-2화 : 사냥꾼의 밤(The Night Of The Hunter).(2)
[ 주인님! ]
난 본능적으로 상체를 숙였고, 그 직후 내 귓가로 섬뜩한 바람소리가 지나갔다. 이어 등 뒤의 땅바닥이 퍼억- 비명을 울렸다. 몽몽의 음성을 듣고 피했다면 이미 늦었겠지만, 그 전에 먼저 허공에 들어온 붉은 경고등(?)에 내 몸이 반응했기 때문에 위기를 모면했던 것이다.
[ 이어집니다! ]
다시 옆으로 몸을 날리자마자, 내가 서 있던 지점의 땅바닥이 퍽- 퍽- 패이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몇 바퀴를 구르며 간신히 엄폐물 뒤로 몸을 숨기자 그 엄폐물(흙과 시멘트가 뒤섞여 쌓이고 굳은)에 계속해서 총탄이 날아들었다.
[ 저격수 위치는 동남방 42도 방향, 거리는 147미터로 추정됩니다. ]
방향은 그렇다 치고, 거리가 147미터라……
[ 주인님. 뭔가 이상합니다. 조금 전의 위치 추적은 총탄의 탄착 각도와 발사음 등으로 추정한 것뿐, 해당 위치에서 인체가 감지되지 않고 있습니다. ]
< …뭐? >
[ 적들이 저의 스캔 기능을 차단하는 장비를 갖추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
< 너, 전에 하은이의 여행가방 안과 원판의 집 벽의 뒤도 스캔하지 못했었지. 놈들이 그런 기능을 하는 재질로 된 방어복 같은 걸 입었다는 건가? >
[ …지금까지 확인된 스캔 차단 장비는 현재 모두 분석이 끝나 스캔이 가능합니다. ]
< 그럼 또 다른 종류라고? >
[ 그렇습니다. 적의 장비가 미지수인 이상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하실 것을 권고합니다. ]
빌어먹을 원판 놈! CR들이 자신의 손을 떠난 것처럼 지껄이더니만 최신 장비만큼은 지급해 줬다는 건가?
< …상관없어. 결국 통상의 전투와 마찬가지일 뿐이야. >
[ 그러나 적은 주인님을 정확히 탐지하고 저격하고 있습니다. ]
< 상관없다니까. 넌 지금부터 현재 사격 중인 놈과는 다른… 그러니까 지금 당장 추가로 날 노릴 수 있는 방향으로 스캔 기능을 집중시켜. >
[ 알겠습니다. 계속 저의 영상 신호에 유의해 주십시오. ]
아까 초탄을 피할 수 있게 해 주었던 붉은 경고등… 그건 물론 몽몽이 만든 영상이었다. 이런 전투 시에 일일이 말로 경고하는 건 비효율적이라 채택한 신호 방식 중의 하나인 것이다.
< 자룡대주의 위치는? >
[ 탐지에 실패했습니다. 위성 탐지를 대비한 장비 역시 갖추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
당연한 거겠지만… 대비께나 하셨군.
[ 그런데 주인님… 적은 아직 통화를 종료하지 않았습니다. ]
< 뭐? >
[ 확인된 적들의 음성은 없고 계속해서 녹음된 것으로 추정되는 노래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
< …들어보자. >
몽몽이 전달하기 시작한 노래는 어딘가 슬프고 애잔한 느낌이 드는 노래였다. 영어인 것을 몽몽이 해석한 내용은…..
…옛날 옛적에 멋있는 새가 있었지…
…어여쁜 암컷과 함께…
…멋있는 새…
…그러던 어느 날…
…암컷이 멀리 날아갔지…
…아주 멀리……
…예쁜 새끼가…
…두 마리 있었는데…
…어느 날 밤…
…두 마리 예쁜 새끼가 멀리 날아갔지…
…하늘 멀리 달 속으로……
[ 1955년 발표된 사냥꾼의 밤(The Night Of The Hunter)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에 나오는 노래입니다. ]
< …의미는? >
[ 현재로서는 영화 속에서 살인자인 계부와 그에게 쫓기는 남매의 관계를 자신들과 주인님과의 상황에 대입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른 의미가 있는지 좀 더 분석해 보겠습니다. ]
분석…? 그딴 게 필요 있을까? 썅! 지들 멋대로 분위기를 잡고 있는데… 어디 두고 보자구. 누가 사냥꾼이고 누가 하늘 멀리 달 속으로 달아나야 할 새끼 새인지……
나는 정글도를 잠시 놓고 배낭에서 금속으로 된 둥근 링(?) 하나를 꺼냈다. 얼핏 손오공 머리에 씌운 머리 테처럼 보이기도 하는 물건이지만, 물론 크기는 그보다 훨씬 크다. 현재 둥글게 말려진 형태의 이것을 펴면서 역으로 더 휘게 하면 전혀 다른 모양의 어떤 ‘무기’가 되는 것이다. 이 무기를 이루고 있는 몸체의 재질은 오하철(烏夏鐵), 역으로 휘어진 상태를 유지케 하는 줄은 천잠사이다.
오하철의 어마어마한 탄성을 내력으로 제압해 본래의 ‘활’로 되돌린 나는, 간만에 천천히 천잠사로 된 시위를 당겼다가 놓아 보았다. 가볍게 퉁겨진 것만으로도 위이잉- 소리와 함께 특유의 강력한 진동이 손바닥을 주인의 손까지 저릿거리게 한다.
[ 주인님! ]
이번에도 붉은 신호가 먼저였다. 나는 재빨리 상체를 옆으로 기울여 새로운 방향에서 날아온 총탄을 피했다. 반쯤 누운 자세로 활에 화살을 매겨 정면을 겨냥했다. 보일 리가 없는 적의 경악하는 표정이 눈에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시위를 놓았고, 활은 맹렬하게 어둠 저편으로 날아갔다.
[ …작지만 분명한 비명 소리가 감지되었습니다. ]
좋아. 어디쯤 맞았는지 몰라도 한 놈은 일단 반쯤 잡은 걸로 치자.
한 놈이 연속 사격으로 나를 한 장소에 묶어 놓고 다른 놈이 반대 방향에서 노리는 작전… 뭐,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 기본 패턴은 나도 안다. 덕분에 반격에 성공했고, 처음에 사격을 시작했던 놈의 사격이 지금 멈춰 있는 걸로 봐서 놈도 당황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다시 한 발의 활을 화살에 매기며 호흡을 가다듬은 후, 엄폐물로부터 순간적으로 뛰쳐나갔다. 곧바로 총알이 퍼부어지기 시작했지만 내가 펼치는 경공의 뒤를 따랐을 뿐이었다. 내 활이 다시 한 번 투앙! 포효하며 화살을 날렸다. 놈과의 거리는 147미터, 그러나 현재 내 활의 유효 사거리는 420미터이다.
[ …적중된 징후는 없는 듯…… ]
쳇! 경공을 펼치는 도중의 사격은 아직도 미완성인가?
[ 위험합니다! 그 곳은! ]
이번의 경고 신호 색깔은 노랑! 폭탄 설치를 뜻한다는 건 알지만 건물을 향해 펼치던 경공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엄폐물을 버리고 반격도 실패한 이상 일단은 어디로든 몸을 숨겨야 했기 때문이다. 문 앞에는 아직도 아까의 오토바이 잔해가 불타고 있었고, 난 그 불길을 넘어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씨앙~! 하필!
내가 착지하려는 지점을 가로지르는 실선이 몇 개나 있었다. 난 등의 정글도를 쥘 틈도 없어서 손에 든 활을 내밀어 흰색 실선 사이로 찔러 넣었다. 선 사이의 땅바닥을 짚은 활을 잡고 거꾸로 선 자세로 내력을 반대로 발치로 돌렸다. 그러나 활은 이미 내가 떨어져 내리는 힘에 눌려 굽어지며 실선 하나를 건드려 버렸다.
[ 일반 폭탄이 아니….. ]
일반 폭탄이 아니면?
몽몽의 말에 의문을 표할 틈도 없이 활이 다시 펴지는 탄성에 경공을 더해 몸을 날렸다. 건물 내의 좀 더 깊숙한 지점으로 착지하는 순간 사방에서 강렬한 폭음과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폭음도 폭음이지만 터무니없이 강렬한 그 백색의 광채는 실내를 가득히 메우고… 그리고 내 눈 속에도 찔러 들어왔다.
제기…! 말 그대로 섬광탄(閃光彈)인가? 눈감는 게… 조금 늦었다.
[ …죄송합니다, 주인님. 폭탄의 종류와 규모 파악이 늦었습니다. ]
< …그보다 다른 부비트랩은? >
[ 현재로서는 스캔되지 않고 있습니다. ]
나는 천천히 눈을 뜨고 입구의 불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두 눈 다 상당히 흐릿한 것이 환한 불길조차 도깨비불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일 뿐이었다. 귀 역시 몽몽의 목소리만 뚜렷할 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지이잉-하는 울림이 심했다.
[ 청력과 시신경의 기능 저하는 일시적인 현상입니다만… 죄송합니다. 저의 경고 신호 채택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
본래 노란색이 깜박이는 정도는 ‘위험하지만 처리 가능’인 정도를 의미하고 진행 방향 전체를 노란색의 벽으로 처리할 경우가 ‘무조건 진입 금지’ 신호였다. 나는 몸에 활을 끼우듯 활을 걸어 차고 대신 다시 정글도를 잡으며 말했다.
< …아니, 너보다 내 판단 미스야. >
그랬다. 2중 트랩까지는 의심을 했지만 그 규모는 한정적일 거라고 예상했다. 10년을 기다려왔던 사냥을 시작한 놈들이 폭탄으로 간단하게 전부 날려 버리는 것으로 끝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데… 확실히 그 부분은 맞은 셈이다. 하지만 섬광탄을 이렇게 잔뜩 설치해 놨을 줄은 몰랐다. 순간적으로 눈을 감고 내력으로 고막을 보호하려 했지만 1초를 몇 개로 나눈 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결국……
< 몽몽. 네 말대로 내가 놈들의 도발에 넘어가서…… >
응…? 갑자기 쿠웅~!하는… 소리는 둘째치고 온몸으로 느껴지는 이 묵직한 울림은 뭐지?
[ 출입구 위에 매달려 있던 소형 콘테이너 박스가 떨어져 내리며 출입구를 막았습니다. 출입구가 막힌 것은 물론이고… 이로서 유일한 ‘불빛’도 사라졌습니다. ]
그런…가? 역시 철저한 어둠 속의 사냥이 놈들의 목적인가?
[ 주의하십시오 주인님. 저 콘테이너를 지탱하던 줄이 해제된 것은 기계 장치가 아니라 수동으로…… ]
웃! 온다! 뭔가!
머리 위였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섬뜩함에 정수리가 찌릿하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상체를 틀며 위쪽을 향해 정글도를 휘둘렀다. 허무하게 허공을 그었을 뿐인 내 정글도와 달리 상대의 무언가는 내 왼쪽 팔을 긋고 동시에 이마의 바로 위 머리카락을 날려 버렸다.
전혀 다른 각도로 두 방향의 공격… 두 명? 아니면 쌍검…? 암튼!
탁, 탁, 미세한 인기척을 향해 삼시전결 한 방을 날렸다. 기대했던 결과는 나오지 않은 것 같았지만 최소한 탁, 틱, 하고 인기척이 멀어지고 있었다.
역시 한 명…? 쌍라이트 형제 중 한 명일까? 아니면 올백 놈?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겠고… 일단 알게 된 건 다행히 시력에 비해 청력은 그래도 조금 나은 상태인 것 같다는 점.
[ 왼팔의 절상(切傷)으로 인한 약간의 출혈을 포함해, 피해는 경미합니다! 하지만 적의 움직임을 예측하기가 힘듭니다! 통산 스캔 외의 인체 감지 기능을 모두 동원하여 현재의 위치를 파악할 수는 있지만, 적의 운동 능력으로 보아 고속 운동을 시작하면 대응할 시간적 여유가 없…… ]
< 몽몽! >
나는 길게 이어지려는 몽몽의 상황 설명을 막고 말했다.
< 미안하지만, 더 헷갈린다. 잠시만 조용히 해 줄래? >
[ …알겠습니다. ]
< 미안해, 몽몽. 걱정 끼쳐서. 하지만… 이제 괜찮아. 조금 전의 공격 덕분에 머리가 조금 식었어. >
사실이었다. 난 평소에는 피를 보면 빡 돌아 버리지만, 흥분이 극에 달했을 때 피를 보면 오히려 차분해졌다. 물론 이미 함정에 빠진 후라 다소 늦은 감이 있었지만 말이다.
“…모두 이 안에 있지? 잘 들어…! 날 계속 돌게 만드는 건 원판, 너희들의 보스 화이트 녀석이나 가능할까? 너희 정도로는 안 된다구! 알겠냐? 너희들은 역시 2프로 부족하단 말야.”
2프로 부족…? 쯧! 너무 어설픈 도발인가? 좀 더 화끈하게 도발할 만한 말… 뭐 없나?
“뭐하냐? 내 눈과 귀는 이미 회복되어 가고 있어. 더 꾸물대면……”
아, 아니 잠깐. 도발은 정말로 회복된 다음에 했어야… 에구! 뒤쪽… 아까와 같은 느낌!
등 뒤의 서늘함을 느끼며 나는 짧게 도약했다. 불과 1미터 정도의 공간에서 몸을 뒤집는 비연회선(飛燕回旋) 수법! 이로써 적의 후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대로 놈의 등에 일격을 가한다면…
좋아! 아, 아냐! 뭐, 뭐야?
나는 찔러가던 정글도에서 힘을 빼며 목적을 바꿔야 했다. 칼끝으로 적을 꿰뚫는 대신, 단순히 밀어버리는 식으로 말이다. 결국 나는 놈을 밀치고 나 자신도 더 뒤로 몸을 날려 거리를 두고 말았다.
제, 젠장! 뭐냐? 어째서 등을 돌리고 있는 놈의 양쪽에서 칼이 날아들었던 거냐? 다른 두 놈의 협공? 아니면 지금 녀석의 자세가 그렇게 빠르게 전환된 건가? …아니, 둘 다 아닌 것 같았는데…
[ 주인님! 아무래도 지금의 적은 양팔의 운용 범위가 일반인을 초월한 것 같습니다. 즉, 적의 양팔은 관절을 무시하고 360도 어떤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
썅…! 기본 신체 강화도 모자라 그런 웃기지도 않는 능력까지 있는 거냐?
“야, 너! 이제 보니 ‘문어’였냐? 젠장! 그래도 먹물은 쏘지 마라, 응?”
쯧! 이런 유치한 도발 말고 좀 더 수준 높은 건 좀 생각 안 나나?
“이런, 이런!”
응? 아직 귀가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지만, 지금 들린 목소리는 올백 머리 CR이지?
“당신… 실수했어.”
실수? 흥? 그건 지금 목소리로 위치를 드러낸 네가 한 거지! 이대로 단숨에 네 놈부터… 웃!
살기였다. 내 등 뒤로 엄청난 살기의 소용돌이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누구일까? 조금 전의 문어는 아직 정면에 있을 테고 올백 머리의 목소리는 좀 더 먼 곳에서 들려왔었다. 그렇다면 다른 쌍라이트, 두 번째 문어? 하지만 놈은…
윽! 간신히 막았… 우웃! 으크크크크~
터무니없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와 파괴력의 공격이었다. 살기… 이 살기의 흐름이 없었다면 도저히 막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도발이 성공한 셈이지만… 어쨌든 당장에는 정신없이 놈의 칼날에 밀려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 눈을 감으세요! ]
뭐?
눈을 감기 직전, 나는 다시 번쩍하는 빛을 보았다. 하지만 아까의 섬광탄과는 느낌이 다른… 보통의 형광등 불빛인 듯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음에도 적의 공격이 멈춘 덕분에 비교적 여유롭게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과연… 10년의 기다림이 허무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남자로군요, 진유준님.”
“칭찬은 고맙지만……”
나는 올백 머리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난 눈곱만치도 안 반가워. 난… 네 놈들 따위에게 날 기다리라고 한 적도 없고 말야.”
“네에, 그게 다소 섭섭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사냥꾼을 기다리는 사냥감은 없을 테니까요.”
“너… 아직도 그 얘기냐? 아직 감이 안 잡혀?”
“후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상대로는 달아나야 할 어린 새는 오히려 저희들 쪽인지도 모른다는 거 정도는… 그렇지만……”
청력이… 이제는 거의 다 회복된 것 같다. 놈의 목소리며 미묘한 어조의 변화까지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어떻습니까. 진유준님이 보기에는 저희들이 쓸만한 사냥감으로 보입니까?”
어떻게… 보이냐고?
나는 천천히 눈을 떠보았다. 아직 흐릿함이 남아있고 아릿한 통증도 사라지지 않은 상태지만… 그래도 보이긴 보였다. 건물 내부는 내 생각보다 넓었고, 밖에서 보기엔 4층 정도의 건물일 뿐이었지만 내부는 천장까지 하나인 단층 구조였다. 대신 안쪽 벽에는 철재 계단과 좁은 간이 복도가 잔뜩 설치되어 있고 그중 3층에 해당하는 곳의 난간에 올백 머리 녀석이 서 있었다.
“뭐… 넌 아직 그렇다 치고.”
놈은 아까 저녁 식사자리에서 봤을 때와 똑같이 양복 차림이었으며 그밖에도 그리 달라진 점은 없어 보였다.
“이 친구들은……”
대머리 쌍라이트 형제는 각각 나로부터 좌우로 20여 미터 떨어진 지점에 서있었다. 얼굴에 쓰고 있는 괴상한 모양의 물안경 같은 저건… 아무래도 적외선 탐지 장치 같은 것인 모양이다. 거기에 몽몽의 스캔 기능을 막아주는 전신 슈트 같은 걸 입었을 거라고 예상했었지만, 복장은 생각과 달리 중국식 검은 도복 바지에 웃통을 벗은 차림이었다.
나보다도 약간 작다 싶은 키와 벗은 상체에 드러난 근육 같은 것도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저 몸이… 저 조금은 빈약하게도 보이는 팔이 멋대로 휘어지며 칼을 휘둘러대는 것이다. 공격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면 끝에 칼이 달린 채찍이 날아드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게다가……
[ 저의 탐지를 막는 것은 허리의 작은 장비 같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
놈들 허리춤의 저… 구닥다리 삐삐 같은 모양의 장치가 실은 몽몽의 눈을 가릴 정도로 최첨단 장치란 말이지? 그렇다면 올백머리도 같은 걸……
내가 다시 돌아보자 놈은 양복 윗도리를 조금 젖혀 자기 허리춤의 장치도 보여 주었다.
“저희들이라고 별다른 건 없습니다. 이 기계는… 당신이 가진 특수 탐지 장치를 무력화하는 거라고 들었고… 그래서 당신을 상대할 때는 항상 장비 하도록 명령받았었습니다.”
뭐? 그럼… 원판은 몽몽에 대해서 전부 알려 준 건 아니란 말인가?
“당신을 제거하고 나면, 증거로서 그 특수 탐지 장치라는 걸 마스터께 가져가게 되어 있습니다만……”
“…이거야.”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몽드폰을 꺼내 들었다.
“휴대폰 기능은 물론이고 각종 폭약 류, 그리고 너희들의 그 장치만 아니라면 인체를 탐지하는 기능도 끝내주지.”
“흐음~ 확실히 꽤 특이한 휴대폰이로군요. 마스터께서 탐내는 건 그 정도 기능이 아니라 당신만이 가진 물건이라는 의미겠지만……”
기능 탐내는 거 맞아, 임마. 단 니가 상상할 수도 없는 부가기능(?)이지만 말야.
“어쨌든 조금 실망이군요. 설마 첨단 장비에 의존하는 사람이었다니……”
“야. 니들의 저 적외선 스코프…인가, 하여간 저건 뭐고.”
“후후~ 저희들이야 상대적으로 ‘약자’ 아닙니까.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강하면서도 그런 장비를 쓰는 걸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요?”
“…뭐, 별로 안 부끄러워. 게다가 조금 전과 같은 근접 전투에서는 탐지 장치가 뭔 소용인가.”
“그런…가요?”
응? 뭐야? 당연히 자기도 알고 있다는 저 표정은… 흐음~ 역시 대화 내용보다는 다른 거… 시간 끌기 자체가 목적인 건가? 싸움 도중에 갑자기 불을 켜고 말을 걸어 온 것도 그렇고……
“어쨌든 생각보다 빨리 이성을 찾아서 조금 놀랐습니다. 그 여자, 상당히 쓸 만 하던데… 당신 취향은 아닌 모양이죠? 차라리 아까 그 자리의 소교 아가씨나 그레이스 아가씨를 택할 걸 그랬네요. 뭐, 여옥님이 아직은 우릴 믿고 있으니 소교 아가씨 같은 경우는 지금이라도……”
“소용없어.”
“……”
“난 화내는 걸 뒤로 미루어 두었거든. 어차피 네놈들을 제압하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니까. 네놈들의 그 재수 없는 낯짝을 짓밟는 것도, 더러운 XX를 잘라 버리는 것도… 말이야.”
쯧! 말은 그래도 얘기하다보니 조금 울컥하기는 했다. 진정하자, 진유준. 진정해.
“…분노를 뒤로 미룬…다? 무서운 사람이군요.”
“칭찬은 됐고, 바로 리턴 매치! OK?”
“…원하신다면. 그런데 한 가지… ‘문어’는 그 마편동(魔鞭童) 형제가 가장 싫어하는 별명이니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응? 진짜 얘네 별명이었어? 문어가?”
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언급해 버린 건가? 과연… 바로 놈들의 살기가 용솟음 치기 시작하는 군.
쌍라이트 문어 마편동(별칭을 너무 많이 붙였나?) 형제는 즉시 내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양팔을 들어 올렸다. 처음엔 뱀처럼 천천히 휘적휘적 흐느적거리듯 싶었던 두 팔이 차츰 가속도를 붙이며 휘잉- 휭-! 섬뜩하게 공기를 가르기 시작했다. 새삼 소름이 끼친 것은 언젠가 봤던 TV에서 본 ‘채찍 소리의 정체’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채찍이 허공에서 쫙! 소리를 내는 것은 어딘가 부딪쳐서가 아니라… 채찍 끝이 순간적으로 음속을 넘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게다가 저 두 놈의 팔에는 길이 30CM 정도의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칼이 들려져 있다. 다시 말해… 나는 음속이상으로 날아드는 네 자루의 칼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치이… 한 놈이라면 몰라도 똑 같은 수준의 두 놈이라면 나도 멀쩡하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어? 가만…? 두 놈이 똑 같다…고?
“그러고 보니… 너희들 중 적어도 한 놈은 내 화살에 맞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군.”
아까 갑자기 한 놈 더 뒤에서 나타났을 때 놀랐던 이유도 그 것이었다.
“아아~ 그거 말이죠? 사실 당신은 실수하지 않았습니다.”
문어 놈들은 말을 못하는 건지, 입이 무거운 건지, 또 올백 머리가 대신 말한다.
“정확히 오른 쪽 쇄골 부근에 적중하여… 반대편 심장에까지 박혀 버렸더군요. 그런데… 이제와서 말이지만, 그 마편동 형제는 신체 훼손의 회복이 굉장히 빠르답니다.”
맙…소사! 심장이 뭐가 어째? 그건 회복이 빠른 차원의 문제가 아니잖아! 저 칼 든 문어 다리 채찍도 빡신 판국에… ‘불사신’이기까지 하단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