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35-1화 : CR의 또 다른 의미(1)
4-6. CR의 또 다른 의미(1)
“괴물……”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그럴지도 모르죠.”
올백 머리가 피식 웃으며 동의했지만 정작 나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취소!”
놈들도 불사신에 가까운(설마 완전히…겠어?) 인간 문어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란 놈도 엄청 비 현실이고 반칙적인 메가울트라 신체능력과 아스트랄한 유체이탈 합체변신 다반사의 영혼을 가진 놈이 아닌가. 굳이 괴물지수(?)를 따지자면 내가 한 수위인 셈이니……
“뭐… 적어도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그래. 뭐… 그건 그렇다 치겠는데, 이제… 어쩐다? 휘잉- 촹! 소리를 내며 음속을 넘나들기 시작하는 저 네 자루의 칼… 저걸 전부 막아낼 수 있을까? 더구나 아직 나서지도 않고 있는 올백 머리, 저 놈은 또 어떤 능력과 작전을 가지고 있을까? 그래… 칼 든 문어 형제도 문제지만 저 놈이 더 신경 쓰인다.
나는 정글도를 어깨에 걸치며 생각해 보았다.
조금 전 저 놈은 굳이 싸움을 멈추게 하고 불을 켰다. 그리고 다시 어영부영 말로 날 광분시키려다 실패…한 건, 어디까지나 속임수! 놈은 내가 시력을 되찾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계산하고 다시 불을 켠 것일 거다. 대화로 시간을 끈 것은 물론이고 저 문어 형제와 싸우다 보면 당연히 내 눈은 다시 이 밝기에 익숙해질 테고… 놈은 어느 순간 또 불을 끌 것이다. 내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 전까지의 짧은 틈에 문어 형제의 칼날이 적어도 수십 번은 더 날 난도질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웃!
드디어 공격이 시작되었다. 나는 살짝 고개를 젖힌 것만으로 첫 번째 칼질을 피했다. 1초? 혹은 그 절반쯤의 다음 순간 두 번째 칼을 옆으로 피했다. 또 몇 분의 1초… 아니, 시간은 무의미하다. 그냥 동시에 라고 해도 무방한 순간에 무수한 칼질이 이어진다. 바로 이 스피드가 문제다! 이런 공격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 눈을 감거나 어둠에 대비할 수 있겠는가.
윽! 벌써?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어둠이 덮쳐왔다. 깡! 요란한 파찰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놈들의 칼과 내 정글도가 부딪치며 생긴 불꽃이다.
그렇다면 이 불꽃을 이용해서… 빌어먹을! 우라질 만화에서 이런 불꽃을 이용해 적을 공격했었더라? 난 번쩍번쩍 하니까 더 헷갈린다. 윽! 썅!
다시 환하게 불이 밝혀졌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눈살 찌푸리며 뒤쪽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문어 형제는 한참 휘둘러지고 있는 자신들의 팔 때문인지 곧바로 따라 붙지 않고 있었다. 이로서 저 공격 법이 발동했을 때는 문어 형제의 기동력이 현저히 저하된다는 걸 알게 된 건 좋은데… 그렇지만 이걸 어떻게 이용한다? 아웃복싱 방식으로 치고 빠지기를 해…? 내가? 겨우 저 씨빠빠 문어 대가리들을 상대로? 아무리 지금의 나라도 그건……
“혹시… 짜증이 나시나요, 이런 싸움 방식?”
“쓰~ 뭐가 ‘혹시’냐! ‘당연히’지, 새꺄!”
“후후~ 하긴, 마편동 형제의 저 공격은 정말 빠르고 무섭죠. 거기에 제가 언제 불을 끄거나 켤지도 모르고… 당연히 마편동 형제는 현재 쓰고있는 특수 나이트 비젼(Night Vision) 덕분에 그런 영향을 받지 않는 데 말입니다. 게다가 마편동 형제는 불사신! 확실한 공략법도 떠오르지 않겠죠? 그렇다고 겨우 두 명의 적을 상대로 어떤 편법을 쓰기에는 당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
“…너, 변사 캐릭터냐?”
“변사……?”
“그래. 본래 의미는 그렇다 치고, 만화에 보면 꼭 한 발 뒤에 물러서서 독자에게 상황을 미주알고주알 설명해 주는 캐릭터가 있지.”
“훗~! 전 다만 말로써 당신을 압박하는 첩보 활동에 충실하고 있을 뿐입니다만……”
…그래, 너 말한 번 잘했다. 딱 걸렸어.
“…아무래도 상관없어. 난 이미 저 놈들 공략 법을 결정했으니까 말야. 그러니… 곧 네 놈도 각오해.”
내 선언에 비로소 올백이 조금 움찔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대단한 공략 법을 찾아 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내가 먼저 마편동 형제에게 성큼성큼 다가서기 시작했다. 확실히 난 놈의 말대로, 아니 놈의 말에 말려들어 지나치게 저 문어 형제의 ‘회복력’을 의식했었다. 하지만……
너희들은 아까… 왜 처음부터 이렇게 둘이서 협공하지 않았지? 내가 진짜 완전히 시력을 잃고 어둠 속에 있었을 때 협공을 받았다면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는 데 말야? 그건 내 화살에 맞은 놈이 아직 회복 중이었기 때문이겠지? 너희들의 회복력은 절대적이지 못하지? 그리고 네 놈들은 왜 내가 뒤로 물러선 후에도 팔을 휘두르고 있는 걸 멈추지 못하지? 이제 밑천 다 떨어진 거지? 내 칼에 부상당하는 게 두렵지?
나는 그 모든 질문을 말 대신 정글도로 묻기로 했다.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것만으로 조금 굳어지는 기색이 있었지만, 그래도 다시 무서운 기세로 칼날의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음속을 초월한 스피드였지만, 내 정글도 역시 맘먹으면 그 정도는 달린다. 세 개는 피하고, 나머지 하나의 칼만을 노리고 전력으로 정글도를 휘둘렀다.
커엉~!? 부딪치는 소리가 좀 이상했지만 내 귀에는 더할 수 없이 상쾌하게 들렸다. 세 개의 칼날을 피하다가 두 개에 살짝(?) 베이긴 했지만 보람이 있다. 내 정글도에 추월 당해 일격을 당한 칼이 패액 제켜지며 그 것을 쥔 문어 다리 하나가 지금까지의 흐름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 것을 회복하기 위해 부자연스러워지는 놈의 모습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예의 초감각 모드…? 아니,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놈들의 채찍 움직임에 감이 잡히기 시작한 것은 확실했다. 차츰 익숙…해진 져가고 있다고 할까?
나는 계속해서 세 개를 피하고 하나를 치는 박자와 리듬을 반복했다.
‘원, 투, 쓰리, 포!’
그런 리듬이 몇 번 반복되는 사이 나의 리듬은 차츰 빨라져갔다.
‘원, 투, 쓰리! 포!’
‘원, 투! 쓰리! 포!’
놈들의 공격은 좀처럼 질리지도 않고 빠르며 강력했지만, 결국 나는 놈들의 채찍 칼 네 개를 모두 쳐내게 되었다. 치고 받는 리듬이 어느 사이 내 것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다음 타이밍이다! 벤다! 되살아 날 틈도 없이 몇 번이고!
내 마음이 놈들에게도 전해졌을까? 드디어 놈들의 눈동자에 공포라는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팟하고 어둠이 놈들과 나를 동시에 덮쳐왔다.
올백 머리. 멋진 타이밍에서 또 놈이 딴지를 건 것이다. 그러나 내 정글도는 멈추지 않고 어둠을 갈랐다.
정글도의 날에 아무 것도 걸리는 느낌이 없었다. 그럼에도 눈앞의 적이 분쇄되었음이 전해져 오는 이 느낌!
이상적으로 적을 베었을 때의 감각이다.
좋아! 그리고!
눈앞의 적을 쓰러트린 기쁨은 잠시 접으며 머리 위의 허공에 두 줄기 검기를 날렸다. 퍼퍽-!하고 적중되는 소리가 확인되었고, 이어 내 옆의 땅바닥에 챙! 챙! 하고 금속성 물건(아마도 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다시 한 타임 후에는 몇 미터 밖의 바닥에 누군가 불안전하게 착지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말할 것도 없이… 내가 쌍라이트 문어 형제를 쓰러트리는 순간을 노렸던 기습에 실패한 올백 머리였다.
놈에게서 크릭, 총으로 예상되는 금속성이 들려왔다.
난 천천히 놈 쪽으로 몸을 돌리며 다시 정글도를 어깨에 걸쳤다.
“…뭐해?”
“……”
“안 쏠 꺼야? 내가 먼저 갈까?”
“……”
나는 조금 더 기다려 주었다. 그러나 놈은 결국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불… 좀 켜지?”
내가 담담한 어조로 말하자, 곧 다시 환하게 불이 밝혀졌다. 한 손에 총을, 다른 한 손에는 리모컨 같은 것을 든 올백 머리가 두 가지를 동시에 내려놓았다.
내 정글도에 몸이 거의 반 토막 나다시피 한 쌍라이트 문어 형제보다는 양반인 상태지만, 올백 머리 역시 가볍지 않은 부상으로 어깨와 복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까? 내가 마편동 형제가 당하는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냥, 뭐… 네가 말할 때 자꾸 자신은 빼고 저 녀석들만 강조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다음 차례는 너다’라고 굳이 말했었군요.
…완패입니다.”
“너, 삼합회에서는 야황(夜皇)이라고 불릴 정도로 암습에 능한 자라고 들었는데… 차라리 처음부터 함께 협공하지 그랬어?”
“…그랬다 하더라도 이길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수고스럽겠지만, 이제 마무리까지 부탁합니다.”
제기…! 지금까지와 달리 왜 이렇게 깔끔하게 나오냐? 맘 약해지게스리.
“…너, 그렇게 나온다고 봐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난 같은 남자라도 여자를 강제로 범하는 놈은 혐오한다. 그런 놈은 정말 XX를 XX해서 XX에 XX를 삐~ 삐~하는 것도 감지덕지… 으~ 생각하니까 역시… 그래…! 이제는 마음놓고 빡 돌아도 된다. 그러니까……
“마편동 형제의 약점은 여기……”
올백은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들을 죽이려면 두뇌의 3/1 이상을 일시에 날려야 합니다. 아니… 그건 초기 프로토 타입의 경우니까, 확실히 하려면 전부 날려 버리는 게 가장 확실하겠군요.”
나는 놈의 말을 들으며 문어 형제를 돌아보았다. 아직은 널 부러진 채 쿨럭거리며 피를 토하고 있었지만, 허리쯤부터 어깨까지 대각선으로 잘려졌던 신체가 벌써 움찔거리며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고 있었다.
“…그럼 너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시면 됩니다.”
“…자룡대주는 어딨지?”
“이 건물 지하입니다. 출구는……”
놈은 자신이 서 있던 난간 밑의 작은 철재 출구를 턱짓했고, 나는 정글도를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