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35-2화 : CR의 또 다른 의미(2)
4-6. CR의 또 다른 의미?(2)
확실히 나의 생사금마도결(生死金魔刀訣)에는 인간의 두뇌를 통째로 날려 버릴 수 있는 초식도 몇 가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놈들의 머리 대신 허리춤의 장치(몽몽 스캔 회피용), 정확히 말하자면 그게 허리띠와 연결된 줄을 잘라 버렸다. 그리고 떨어진 장치들을 모두 주워 배낭에 챙긴 후 놈에게 말했다.
“…일어나.”
“예?”
“일어나서 네가 안내해.”
“…보시다시피 전 지금 움직이기가 곤란합니다만……”
“너도 저 녀석들과 똑 같은 몸이라며? 엄살 피우지 말고 일어나서 안내하란 말야.”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그녀에 대한 얘기는 사실… 아니, 그보다……”
“닥치고 일어나. 그녀의 상태는 내가 직접 확인할 꺼야.”
“…알겠습니다.”
올백 머리, 아니 삼합회 소속의 살막파 도수 야황은 내 앞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복부의 상처를 부여잡고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얼굴의 그를 나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격통으로 인한 몸의 떨림과 식은땀이 결코 엄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지만 그는 결국 똑바로 버티고 섰다.
“개인별 차이가 있는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저의 회복력은 마편동 형제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다만… 마편동 형제의 회복력도 완전하지는 못하죠.”
“…혹시, 심장 부활 얘기도 거짓말?”
“훗- 맞습니다. 심장까지 상했다면 그렇게 빨리 이 곳까지 돌아와 전투를 벌일 수는 없었었을 겁니다.”
쳇! 막판에 어느 정도 간파하고 결과적으로 이기기도 했지만, 계속 이 녀석의 심리전에 당한 것도 사실인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의도적으로 죽음에 초연한 모습을 보여 내 살기 를 흐트러트렸고, 나아가 자신들이 실은 ‘자룡대주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쯧, 그런데 그래서 어쩌겠다는 걸까? 여기서 더 반격책이 남아 있는 걸까?
“…어쨌든 가자.”
나는 일단 다시 놈을 재촉해 자룡대주가 갇혀 있다는 장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물론 놈들이 자룡대주를 어쨌다는 말이 날 도발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면 가장 좋은 상황이다. 그러나 만약 놈들의 말이 사실일 경우… 난 자룡대주가 원하는 대로 이 놈들을 처리할 생각이다. 아니 그녀가 뭐라 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그런데.”
가는 도중 놈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마편동 형제를 방치하고 오신 건 후회하지 않으십니까?”
“상관없어. 회복되어 다시 덤비든 이대로 달아나든 처리할 자신이 있으니까.”
“과연… 그럴 경우 완전히 진유준님 쪽의 ‘사냥꾼의 밤’이 되는 되겠군요.”
“헛소리 말고, 아직 멀었나?”
“아뇨. 바로 저 곳입니다.”
놈이 가리킨 곳은 그 때까지 계속되던 지하 복도 끝의 철재 문이었다.
“너무 놀라시거나 비……”
놈은 문을 열며 말했다. 하지만 뒷부분의 말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열려진 문 사이로 새어나오기 시작한 여자의 커다란 신음소리때문이었다.
이 것들이 자룡대주에게 중상을 입혔나?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건… 이건……
아흑! 아흑! 흑! 흐윽~
고통이라기 보다 희열에 찬 신음이며 비명이었다. 나는 놀라움과 기타 여러 가지 감정에 사로잡혀 잠시 굳어진 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틈에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흑! 아흐으~! 흐윽~ 흐으~
여자의 신음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두운 실내, 최소한의 조명 속에서 꿈틀대는 남녀의 정사는 너무나 끈적하고 퇴폐적이었다.
“자, 자룡대주……?”
겨우 진정한 내가 자룡대주를 부르자 그녀는 그제야 내가 온 것을 깨닫고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처, 천주. 이, 이건……”
“자룡대주! 당시~인!”
“아, 아닙니다, 천주! 이건 제 뜻이 아니라……”
“더 이상 말하지마!”
나는 비로소 실내로 들어가 자룡대주 앞에 서며 정글도를 들었다. 올백, 아니 야황 놈이 그제야 실내등을 켰고, 그러자 실내의 모든 정황이 더욱 뚜렷하게 밝혀졌다.
“내가… 내가 당신을 잘 못 봤군. 설마 당신이……”
난 계속해서 고개를 젓고 있는 자룡대주를 무시하고 정글도 끝으로 무자비하게… TV전원을 껐다.
“여기서 영화나 보고 있을 줄이야! 난 밖에서 당신 구한다고 뺑이치고 있었는데! 그 것도 저렇게 야한 영화를!”
“아, 아니라니까요! 그 대머리들이 멋대로 틀어 논 거예욧!”
“여하튼! 게다가 아주 제대로 감상 자세가 되어 있군, 그래!”
“이, 이 것도 전부… 전부 그 대머리들이……”
자룡대주는 비록 두 손과 발이 묶여 있기는 했지만, 길고 편안해 보이는 간이 침대에 누운 자세였고 TV는 그녀가 가장 보기 좋은 위치에 놓여 있었다. 더구나 그녀의 오른 손에 채워진 수갑과 연결된 쇠사슬은 길이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서 침대 옆의 탁자 위에 쌓여 있는 초컬릿, 과자 등의 먹거리들을 집어 입까지 가져 올 수 있는 상태였다. 실내에는 그 밖에도 두 대의 TV와 게임기, 한 대의 컴퓨터 등이 더 놓여 있었지만 그 것들까지는 자룡대주를 위한 게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이 곳은 전부터 이들 삼인조의 아지트였었던 모양이었다.
“전… 저도 어떻게든 탈출해 보려고… 노력을… 그렇지만……”
조금 울먹이기 시작하는 자룡대주의 피멍든 손목과 발목을 보니 장난을 친 것이 조금 미안해지기도 했다.
“훗~! 미안! 진정해. 무사한 거 보니까 반가워서 공연히… 암튼 괜찮은 거지?”
“…예. 하지만 전……”
“됐어. 자세한 얘기는 여기서 나가고 나중에 하자.”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야황 놈을 돌아보았다. 놈은 미리 열쇠를 꺼내 들고 있다가 곧바로 다가와 자룡대주 의 손과 발의 수갑을 풀어 주었다.
짜악~!
자유를 되찾자마자 자룡대주가 야황의 뺨을 때리는 소리였다. 고개가 휘익 돌아간 야황이 비틀거리며 쓰러지자 놀란 것은 오히려 자룡대주였다. 야황은 엉거주춤 주저앉은 자세로 웃었다.
“하핫~ 역시 무서운 누님이군요. 다시는 납치 같은 걸 꿈도 꾸지 말아야겠어요.”
흐음… 정말이지 알 수 없는 놈이다. 원판은 물론이고 마녀 여옥과 같은 여자의 수하로서도 10년 가까이 악명을 떨친 놈치고는 웬지 좀… 음… 뭐… 날 습격한 일련의 과정에서는 확실히 킬러의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어째……
“…자룡대주, 그 녀석 응급조치 좀 해줘. 출혈이 심해.”
“예? 하지만……”
“해줘. 뭐, 결과적으로 그렇게까지 죽을 짓을 한 건 없는 것 같아.”
“…절 납치했던 건 몰라도 천주께… 천주께 저 자들 은……”
“별일 없었어. 보다시피 당한 건 저 쪽이야.”
“하지만……”
“이번만은 그냥 넘어가고 싶어. 만약 또… 음, 특히 오늘처럼 여자를 괴롭히거나 하면……”
나는 말하며 야황을 돌아보았다. 놈은 내 말에 가타부타 대답없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여기에 오는 동안 내가 생각한 것은 놈들의 처분은 ‘자룡대주의 결정에 맡긴다’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자룡대주도 말만 그렇지 반드시 놈들을 제거하겠다는 살기 같은 것이 없는 듯했다.
“그렇…지만, 전, 전……”
살기까지는 몰라도 역시 분하기는 했는지, 자룡대주는 입술을 깨물며 야황 녀석의 앞에 섰다. 야황은 비로소 고개를 들고 자룡대주를 올려다보았다.
“미안합니다. 아마 마편동 형제도 그런 영화인 줄은 몰랐을 겁니다. 그 DVD의 표지는 제 눈에도 아름다운 멜로 영화로 보였거든요.”
“그, 그 얘기가 아니라……”
자룡대주가 다시 이를 악물며 주먹을 쥐었을 때였다. 철재 출입문이 폭발적인 소리와 함께 부서지듯 열려졌다. 그 뒤로 모습을 드러낸 두 개의 그림자는 쌍라이트 문어 형제였다.
쯧…! 벌써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된 건가? 아니… 저 몰골로는 아직… 그렇지만 저 눈동자… 회복 도중에 이성을 잃은 채 깨어 난 건가? 아무래도 야황과 달리 대화도 안 통하고 위험한 상태인 것 같은…… 나는 즉시 다시 정글도를 고쳐 잡으며 앞으로 나섰다. 아니, 그러려고 했었다. 내가 말리거나 어쩔 틈도 없이, 자룡대주가 먼저 뭔가를 놈들을 향해 집어 던졌던 것이다. 암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둔하게 날아간 그것을 쌍라이트 문어 형제는 가볍게 피했다. 그녀가 던진 것은… 어이없게도 그녀의 구두 한 짝이었다.
“이봐, 자룡대……”
물러서라고 말할 참이었지만, 그녀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지 다시 뭔가 던질 것이 없는가 찾는 기색으로 두리번거리며 씩씩댈 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쌍라이트 문어 형제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선다. 마치 그녀가 또 다른 한 짝의 구두를 던질까봐 두려워하듯이 말이다.
“너… 너희들! 이, 이……”
결국 정말로 그녀는 다른 한 짝의 구두도 마저 던져 버렸다. 자룡대주는 이어 더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마구 집어 문어 형제에게 던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도 분에 못 이겨 격렬한 욕지거리까지 쏘아댔다. 주로 ‘F’로 시작되는… 나도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삐리리~하고 거시기한 욕을 그녀는 거침없이 놈들에게 쏟아 부었다.
“저, 저기… 좀 진정하지, 응?”
조심스럽게 말리려 해 봤지만 이미 그녀의 귀에는 내 말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알아서 조금씩 진정하는 것 같기는 했는데……
“…여, 여자를 기습해 납치하고… 그 것도 모자라 인질로… 그런 비열한 수단으로 강자를 이기려 드는… 그런 네 놈들이 사내냐! 응? 네 놈들도 당당한 사내라고 할 수 있겠냐고!”
“아, 그건……”
문어 형제의 대변인(?) 야황이 입을 열었다. 그런 직후, 그는 자룡대주의 맨발에 걷어 차였다. 이어 그는… 밟·혔·다·!
“네 놈에게 물은 게 아니야!”
“어… 쥐, 쥐승.”
머리를 밟히고 있어서 발음이 불확실하긴 했지만 ‘죄송’이라고 말한 것 같았다. 나는 그로부터 얼마간… 야황의 참견(?)에 더욱 흥분해 버린 자룡대주가 야황의 머리를 짓밟고 선 채 문어 형제를 닥달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나… 참! 사실 자룡대주가 놈들에게 유린당한 상태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광경보다는 나은 거지만… 그렇지만… 솔직히 같은 남자 입장에서 저런 장면도 좀… 음… 물론 저런 ‘여왕님 모드’가 자룡대주에게 어울리는 것도 사실이기도 하지만… 그러니까… 난 좀 거부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