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37-1화 : 재밌냐? 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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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37-1화 : 재밌냐? 응?(1)


4-8. 재밌냐? 응?(1)

우리 일행이 신불산의 민박집에 복귀한 건 친구들의 소식을 알게 된 후 약 1시간 10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공항에서부터 상당한 난폭 운전으로 달려왔지만, 옆자리의 하은이는 별다른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민박집 앞에는 소령이가 초조한 표정으로 날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날 맞았다. 함께 날 기다리던 미령이는 조금 머뭇거리는 것 같다가 결국 말했다.

“미안… 해요.”

녀석은 내 시선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오토바이가 갑자기 고장나는 바람에… 끝까지 쫓지 못했어요.”

미령이가 민박집의 오토바이를 무단으로 빌려서 추격전을 벌인 일도, 결국 실패했다는 얘기도 오는 도중에 들었었다. 난 그렇게 나름대로 수고한 미령이를 외면하며 지나쳐 간 후, 그 뒤의 소령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휴대폰… 내가 돌려줄게.”

소령이가 건네주는 휴대폰의 줄에 작은 십자가가 매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성원이의 휴대폰이었던 모양이다. 그 녀석 자신은 평소 스스로 신앙심이 없다고 자부(?)하지만, 그래도 어머니께서 달아 준 십자가는 결코 떼어는 법이 없었다.

“저어- 저야말로 죄송해요. 제가 조금만 더 빨리 달려갔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훗~! 넌 사과할 필요 없어. 네 잘못이 아냐. 오히려 빨리 알려줘서 고맙다, 소령아.”

“아뇨. 전 별로 한 일이 없는 걸요. 그보다… 그 오빠들은 무사히 구해낼 수 있겠죠?”

“물론이지.”

나는 웃으며 소령이의 팔을 가볍게 토닥여 준 후 돌아섰다.

“자, 잠깐만!”

미령이였다. 돌아보니, 녀석은 조금 억울해하는 표정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뭐, 뭐예요, 그 태도는! 내가… 내가 뭔가 잘못했다는 건가요? 오토바이가 고장 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게다가 어차피 이미 놈들의 위치도 알게 되었다면서요!”

“…그래. 어디 있는지 아는 건 물론이고 약속 시간까지 정했어. 하지만 그건 놈들이 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니, 관두자.”

나는 말을 맺지 않고 다시 돌아서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령이 녀석이 씩씩대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뭐, 뭘 관둬요! 왜 나한테 잘못이 있는 것처럼 구는 거죠? 난 그 사람들이 당한 일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구욧!”

“알아. 원인은 오히려 내게 있으니까.”

“그, 그런데 왜……”

“이기적인 발상인지도 모르지만… 난 너에게 좀 실망했어.”

“……”

“GM이 너희들만 이곳에 보냈을까? 금동이 문제는 차지하고라도, 최소한… 만약의 사태에서 너희들을 보호할 자들은 언제든 달려올 수 있는 곳에서 대기하고 있겠지. 안 그래?”

“그, 그건……”

“…물론 네가 나름대로 애썼다는 건 알고, 그건 고맙게 생각해. 하지만… 넌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 비록 하루 이틀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웃고 떠들었던 사람들을 외면했던 거야.”

“어, 억지야! 당신 친구들이지 내 친구들이 아니에요! 왜 우리 GM까지 나서서 그들을 도와야 했다는 거죠?”

“…그래. 억지야.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나는 다시 미령이를 지나쳐 차에 올라탔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하은이 녀석이나 소령이도 내가 금동이를 트렁크에 태워 데려가는 걸 반대하지 않았다. 출발하여 차츰 멀어지는 뒤쪽을 백미러로 슬쩍 살피니, 미령이는 소령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중에 고장났다는 오토바이를 발로 걷어차고 있었다.

< 역시… 내가 너무 억지였나? >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묻자. 요몽이 먼저 스윽 모습을 드러냈다.

[ 우웅~ 미령이님이 잘못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데 주인님이 공연히 신경질… 아니, 죄송. 전 잘 모르겠어요. ]

[ …주관적인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으나, 이미 발생한 일에 대한 사후처리 측면에서 조금 지나치게 부정적인 언행이었다고 판단됩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

< 아니, 니들 말이 맞아. 녀석 입장에서는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는 건 당연한데도 내가 공연히 씹은 거야. 하지만 난 미령이가 그렇게 매정한 녀석이라는 게… 아니,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지어졌다.

< 미령이가 내 친구, 나 진유준의 친구를 무시했다는 게 기분 나빴던 것 같아. 아직 미령이와 다시 친해지지도 못했으면서… 훗-! 이로써 녀석과 예전처럼 지내는 길은 더 멀어졌겠지? >

[ 그야 아무래도… 그런데 그 전에 지금…… ]

< …왜? >

[ 미령님이 쫓아오고 있어요. ]

에…? 어디… 어, 진짜네? 그 사이 오토바이를 고쳐놨던 걸까? 그보다 저 녀석, 헬멧도 안 쓰고……

[ 오토바이가 미령님 신체에 비해 커서 어쩐지 불안해 보여요. 하지만… 와아~ 무지 잘 타는 거 같아요! 주인님보다 128배쯤! ]

우쒸! 요몽, 이 자쉭.

[ 속도로 보아, 바로 따라잡을 의사는 없는 것 같은데… 어쩌실 거예요? ]

…내가 봐도 그런 것 같다. 열 받아서 더 따지러 오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현장까지 따라오겠다는 건가? 이제서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느끼고… 음… 다름 아닌 미령이니 오히려 반대로 깽판을 놓으려고 쫓아오는 걸 수도……

빡 돌아서 쫓아오는 폼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세우고 못 따라 오게 하기도 좀 뭐해서 난 결국 미령이의 미행(치고는 너무나 노골적인)을 묵인한 채 갈 길을 재촉했다.

친구들을 납치한 전직 종업원이자 현직 양아치들이 지정한 약속장소는 신불산에서 조금 더 북쪽이었다. 놈들에게 들은 대로 35번 국도를 따라 20분 정도 달린 후 준엽이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자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가 받았다. 난 아까 통화한 놈보다 더 어린 티가 나는 음성이 지시하는 대로 ##목장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해야 했다. 국도를 벗어나 산길에 들어서자마자 차를 세운 것도 놈의 지시였다. 그리고 놈들은 거기서 몇 분 정도 더 날 기다리게 했다.

“…일단 시키는 대로 짭새는 안 달고 왔나 보네? 좋아, 정면에 보이는 언덕까지 차로 올라와.”

그런 전화를 받기 전부터 언덕 위의 나무 사이에 두 놈 정도 숨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내가 다시 차를 몰고 언덕 위까지 올라가자 길옆에서 놈들이 뛰어나와 내 차를 가로막았다. 놈은 준엽이 휴대폰의 줄을 손가락에 끼우고 빙글빙글 돌리며 차에서 내리는 나에게 히죽거렸다. 저 놈이나, 그 뒤의 조금 더 어려 보이는 놈에게서도… 제대로 단련된 느낌은 없었다.

“이야~ 이 새끼, 그래도 의리파네? 정말 혼자 온 거야? 어?”

놈들은 오토바이로 따라 올라와 멈춰서는 미령이를 보며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야 이거, 정말 지 깔치까지 데려왔네? 근데 어째 듣던 거보다 너무 어린 거 같은……”

놈의 말은 거기서 더 이어지지 못했다. 성큼 보법을 펼쳐 다가선 내가 왼손으로 놈의 목을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목을 잡힌 놈이 꺽꺽 숨을 쉬려 애쓰는 사이 조금 뒤에 있던 놈이 짧은 욕지거리와 함께 달려들었다. 그러나 놈은 제대로 달려들기 전에 행동을 멈추고 굳어져야 했다. 놈은 고개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눈동자만을 움직여 자신의 목에 겨누어진 정글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첫 번째 놈의 목을 쥐고 있던 손가락 중 하나에 조금 더 힘을 주어 놈의 의식을 빼앗아 버렸다. 기절해 버린 놈을 길옆의 풀숲에 던져 버린 후 다른 놈의 목에서 정글도를 치워 주었다. 놈이 곧바로 달아날 기색을 보이는 순간, 번쩍! 머리 위쪽을 날려 버렸다.

“…튀면 죽는다. 안내해.”

이발소에 앉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머리카락이 상체에 덮인 모습으로, 놈이 간신히 겁먹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사오정 수준으로 윗머리가 허전해진 몰골로 놈은 10분 정도를 더 산길로 날 안내했다. 문득 뒤에서 따라오는 미령이의 오토바이 외의 엔진음이 앞쪽 어딘가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다시 몇 분이 더 지나 사오정 놈과 함께 커다란 미루나무를 낀 커브 길을 돌아서자 눈앞의 산길은 갑자기 가파른 경사를 이루며 아래쪽을 향했다. 그 언덕 길 아래에는 널찍한 공터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놈들이 거기 있었다.

소령이가 얘기했던 봉고차 한 대와 꽤 많은 수의 오토바이가 공터 한쪽에 세워져 있었고, 놈들의 숫자는……

썅!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저 XX놈들이 지금! 내가 들은 엔진음은 놈들의 오토바이 중 한 대가 달리는 소리였다. 자갈밭에 가까운 공터를 경주 트랙이라도 되는 양 달리고 있는 오토바이의 뒤로 길게 줄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줄 끝에 양팔이 묶여 질질 끌려가고 있는 것은 분명 준엽이와 성원이였다.

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정글도를 들어 던졌다. 정글도는 회전하며 날아가 오토바이와 친구들 사이의 줄을 끊었고, 그 후로도 힘이 줄지 않은 채 건너편 나무 숲 사이로 날아 사라져 버렸다. 순간적으로 너무나 빡 돌아서 실수를 한 셈이었고, 놈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난 아랑곳없이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야! 야, 임마들아! 괜찮냐? 엉?”

다급하게 외쳤지만 살펴보니 둘 다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인 것 같았다. 그런데……

“개…쉑! 일찍…도 온다.”

“씨…파. 종니, 굼뜨긴……”

반가워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피투성이의 몰골로도 두 녀석은 기어이 조금 더 뭐라 투덜댄 끝에야 안심한 듯 의식을 잃었다.

[ 1차 스캔 결과, 두 분 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전문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

< 그래. 빨리 구급차 불러. >

나는 일단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서둘러 두 녀석의 혈도를 짚고 나의 내력을 흘려 넣었다. 난 아직 다른 사람의 부상까지 내 몸처럼 치유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응급처지나 기력을 되살리는 건 가능했다.

“백원이 형! 저 새끼! 저 새끼가 영권이 형을… 그, 그리고 내 머리 좀 봐아~”

날 안내했던 사오정 놈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놈은 백원이라 불린 놈에게 붙어서서 정신없이 나에게 당한 일을 떠벌이고 있었다. 그런 놈을 귀찮다는 듯 옆으로 밀쳐 버리고 내게 다가오기 시작한 백원인지 하는 저 녀석이 바로 어제의 호텔 종업원이었다.

“씨~팔 XX! 그래. 너도 어디서 좀 놀았다 이거지? 이 XX야!”

백원이라는 놈은 여전히 입에는 걸레를 물고 손에는 쇠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야, 승주야! 우리 어떻게 할까? 저 새끼 어떻게 죽일까? 응?”

놈이 승주라 부르며 돌아본 오른 쪽의 녀석은 역시 어제 호텔에 함께 있던 놈이었다. 승주란 놈도 어깨에 야구 방망이를 걸치고 선 채 삐딱한 자세로 웃고 있었다.

“죽이긴… 야 새꺄! 넌 걸려도 우리처럼 맘씨 좋은 형님들한테 걸린 게 ‘축복’인 줄 알아. 딱 반만 죽일 거니까! 지금부터 어금니 악물어라, 응?”

난 놈들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내가 준엽이와 성원이를 살피고 응급조치를 하는 사이, 각자 무기를 든 다른 패거리들도 날 중심으로 모여들어 포위한 상태였다.

“…내가 오기 전까지 친구들을 더 손대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

“아, 그랬나? 하지만 기다리는 게 존나 지루하잖아! 그래서 좀 데리고 놀았다. 꼽냐?”

아아~ 그래. 놀았다 이거지? 내 친구들을 이렇게 만들며 즐겁게, 신나게……

“너 이 새끼야, 니가 빨리 왔으면… 어, 가만? 저 년은 뭐야? 어제 그 쌔끈이가 아니잖아?”

백원이란 놈은 그제야 조금 떨어진 곳의 미령이를 발견하고 인상을 구겼다. 그러나 곧 미령이도 만만찮게 매력적인 외모의 소녀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탐욕스럽게 웃으며 다른 놈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두 놈 정도가 미령이 쪽으로 가기 시작했지만 미령이의 손이 슬며시 자신의 등 뒤로 향하는 걸 보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난 말야……”

내가 입을 열자 놈들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너희 둘에게 아주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나 때문에 직장에서 짤렸다고 하니 말이야.”

“이 X! XXXXX야! 그걸 말이라고 씨부려?”

내 사과 비슷한 말에 백원이란 놈은 더욱 광분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 동안 얼마나 서럽게 살았는지 알아? 지배인 새끼 같은 X도 아닌 새끼한테 굽신거리면서! 그래도 썅~! 손씻어 보겠다고 존내-! 근데 니… XX한 XX! 너 솔직히 까발려봐! 너 지배인 새끼 따가리지? 우리 짤린 건 다 그 새끼 음모였지?”

나는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백원에게 천천히 고개를 저어 보이며 말했다.

“스파이? 음모…? 잘 들어. 종업원에게 뒷다마 까이지 않아야 할 사람… 잘못한 종업원에 대한 불만을 말할 수도 있는 사람… 그런 게 당연한 사람을 ‘손님’이라고 부른다. 이 등신 새꺄!”

말을 마침과 동시에, 무릎도 굽히지 않은 채 무탄력 경공을 펼쳤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뻗은 나의 오른 손 주먹이 정확히 백원 놈의 안면부에 찍혔고, 우직! 기분 나쁜 감촉이 느껴졌다. 백원 놈이 진흙덩이처럼 함몰된 얼굴과 함께 뒤로 날아가 버린 직후, 내 상체와 손은 급격히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손등 치기로 이어지는 연속기로 승주라는 놈까지 노린 것이었다. 그때, 놈은 얼결에 뒤로 물러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게 오히려 놈에게는 불행이었다.

나는 그 찰나의 순간에 놈의 얼굴이 내 공격 괘도에서 벗어나는 걸 느끼고 순간적인 판단과 함께 주먹을 뒤집으며 손가락을 세웠다. 그 결과, 공교롭게도 나의 검지와 중지가 놈의 입에 갈고리처럼 걸려 버렸던 것이다.

“엌-!”

낚시 바늘에 입이 꿰인 생선처럼 놈의 몸이 공중에 떴고, 나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아래로 찍어 내렸다. 놈의 입을 축으로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버린 것이다. 땅바닥에 거꾸로 떨어진 충격도 충격이겠지만, 자기들 만난 건 ‘축복’이라고 뻔뻔하게 지껄이던 놈의 입은 특히 무참하게 찢겨져 있었다.

2초…? 잘해야 3초가 채 되기도 전에 두 명을 날려버린 후 주위를 돌아보니 열 명이 넘는 놈들 중에 절반 정도가 일제히 주춤 뒤로 물러섰다. 나머지 절반도 덤벼들지는 못하고 망설이는 수준이었다.

“난 사실… 사람 때리는 거 싫어해. 거기 너! 너만 남고 나머지는 돌아가도 좋아.”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조금 전까지 준엽이와 성원이를 오토바이에 매달고 달리던 놈이었다. 놈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하다가 기어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썅! 씨-팔! 다들 뭐 하는 거야? 저 새낀 혼자잖아? 매, 맨손이고! 전부 덤벼!”

결국 놈이 먼저 들고 있던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며 덤비기 시작했고, 이어 다른 놈들도 하나둘 용기를 되찾는 것 같았다. 사실… 말이 그렇지, 나도 이걸 더 바라던 바였다.

생사금마도결은 말 그대로 도법. 권각법이 따로 있지는 않다. 그러나 당연히 이런 사방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체술을 바탕으로 한다. 게다가 난 어쩌다 보니 쌈박질 경험이 무지하게 쌓인 놈이다. 이렇다… 제법 빠르게 휘둘러지는 야구 방망이도 피하며 파고들어 상대의 명치에 팔꿈치를 박아 넣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아… 그렇지. 마침 날아든 쇠파이프! 이걸 손으로 직접 막는 척하다가 교묘하게 빼앗는 도룡조… 이건 구양대주의 독문절기지만 나도 대충 비슷하게 쓸 줄은 알지. 어랏? 그러고 보니 내 손에도 무기가 들어왔네? 옴마나! 이걸 어째? 쇠파이프로도 생사금마도결이 그럭저럭 펼쳐지네 그려?

“[ 주인님! ]”

< 알아, 알아! >

내가 뭔가 좀 이상한 상태가 된 것을 눈치챈 몽몽이 제동을 걸어왔다. 나도 입으로만 안다고 한 건 아니어서 일단 손발을 멈추고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서였지만… 문득 돌아보니 그 사이 내 주위에는 거의 대부분의 놈들이 땅바닥에 누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시끄러웠다. 감정 조절 실패!

“왜들 이러실까~ 재미없어? 응?”

떨어트린 각목을 다시 잡기 위해 더듬대는 놈이 보여서 그 손을 전투화 발로 밟고, 비틀었다.

“재미없니? 이렇게 노는 거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응?”

남은 세 놈이 힘없이 무기를 떨구고는 자기들 오토바이가 세워진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땅바닥에서 세 개의 자갈을 집어들고 하나씩 던지기 시작했다.

자아- 신인 진유준 투수~ 구속은 박찬호, 컨트롤은 선동렬이라죠? 제 일구! 예쓰~! 제 이구! 오 예! 쉬지 않고 제 삼구! 예! 옛! 예쓰~! 잡았습니다! 남은 타자 세 명 모조리 아작! 게임 셋!

“[ 주인님! 진정하십시오! ]”

< 하아아~ 그래, 그래! 진정해야지. >

나는 지금 막 내가 던진 돌에 다리를 맞고 쓰러진 놈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몽몽 말대로 진정해야 한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돌아버린 꼭지는 아직 빙글빙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으아아~ 내 다리! 내 다리! 부, 부서진 것 같……”

“…그게 뭐.”

나는 유독 더 비명을 지르는 놈의 다리를 먼저 걷어차 버렸다. 정말이지 시끄러운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왜? 남의 다리, 내 친구들 다리는 상관없고… 니들 다리는 부서지면 안돼? 응? 응? 말해봐! 설득력 있게 말하면 용서해 주지! 말해봐! 응? 응?”

나의 친절한 배려에도 놈들은 내가 차이고 밟힐 때마다 설득력 없는 비명만을 내지를 뿐이었다. 난 계속 놈들에게 물었다.

“재밌냐? 응? 이런 게 재밌디? 재밌냐? 응?”

“[ 주인님! 제발 진정하십쇼! 제발! ]”

음? 어… 이번엔 나도 좀 놀랐다. 몽몽이 하도 볼륨(?)을 높여 고함을 질렀기 때문이었다.

“[ 주, 주인님 같지 않아요! 무섭단 말예요! ]”

쳇~! 요몽까지 나서서 울먹이니까 더 이 짓을 하기도 좀… 하아아~ 하아~ 하~ …그래, 진정해야지. 진정하자 진유준. 나도 놈들과 똑같은 놈이 될 수는 없잖은가. 하아~ 이미… 이미 조금(?) 늦은 것 같긴 하지만서도……

나는 두 녀석의 만류에 겨우 마음을 조금 안정시키며… 비로소 미령이를 돌아보았다. 미령이는 처음에 도착했을 때와 같은 위치에서 오토바이 핸들에 상체를 기댄 채 태연히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미령이에게 향했던 두 놈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오토바이 옆의 핏자국으로 보아 미령이의 단검에 어딘가를 베인 후 달아난 모양이었다. 피 색깔이나 양으로 보아 그렇게 심각한 부상은 아닌 것 같고 말이다.

“넌 뭐 하러 왔냐, 좋은 구경도 아니었을 텐데.”

내가 다소 민망한 기분으로 묻자 녀석은 피식 웃으며 쓰러져 있는 놈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좋은 구경거리는 아니었어요. 게다가… 뜻밖이었구요.”

“뭐가?”

“난 진유준씨, 당신이 인질들 때문에 가진 힘도 제대로 못쓰고 당하는 꼴을 보고 싶어서 온 거예요. 그런데 저 녀석들은 자기들 머리 수만 믿고 인질 관리를 포기했죠. 상대의 역량을 파악하는 눈도 없고, 당연히 자신들의 힘과 저울질 할 줄도 모르고… 결국 유리한 입장을 조금도 살리지 못한 채 전멸이라니… 한마디로 쓰레기! 당한 채 버러지처럼 꿈틀대며 울부짖어 봤자 동정심조차 얻지 못할 자들이에요.”

음… 내가 이렇게 만들어 놓고 할 생각은 아니지만… 녀석들이 새삼 조금 불쌍해지는 군. 정신이 든 녀석이 있었다면 미령이의 독설 공격에 더 치명상을 입지 않았을까?

“그런…데, 친구들을 빨리 병원에 보내지 않아도 되겠어요?”

“이미 구급차 불렀어. 그리고… 저 녀석들, 본래 터프한 놈들이라 괜찮을 거야.”

“그, 그래요? 근데 늦…네요, 한국의 구급차는.”

“[ 실은, 주인님이 싸우시는 동안 미령님도 따로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

< 그러냐? >

훗~! 녀석. 말로는 표독스럽게 내가 당하는 꼴을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역시 준엽이와 성원이를 걱정하고 있었군.

나는 준엽이와 성원이에게로 돌아가 다시 녀석들의 상체를 살피며 말했다.

“한국 119도 빨라. 사실 이렇게 늦을 리가 없는 데……”

“[ 그렇습니다, 주인님. 도중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

< 뭐? >

“[ 구급차의 연락에 따르면 부근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나 통과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

< 제기! 하필! >

“[ 우~ 정말 나빠요, 구케위원! ]”

< 엥? 넌 또 뭔 소리냐, 요몽? >

“[ 전화가 끊기기 전에요. 구급차 사람들끼리 대화하는 것도 들렸는데요. 사고를 낸 차가 현직 국회의원의 차래요. 누가 봐도 그 쪽 과실인 사고를 내놓고도 달아나 버렸는데… 구급차 사람들은 아무래도 사고를 당한 차가 오히려 덤태기… 그거 전부 책임진다는 뜻 맞죠? 하여튼 그럴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어요. 전에도 그랬었다고요. ]”

이런 니미럴! 모든 정치인들이 다 그런 건 아닐 텐데도, 어떤 작자인지… 꼭 그런 인간들이 있어서 나의 ‘정치인 혐오증’이 낫지를 않는다니까? 조금 나아지려던 기분이 다시 상해버려서 인상을 긁고 있자니까 다시 미령이가 물었다.

“…한국 119, 정말 빠른 거 맞아요?”

“빠, 빨라! 이번엔 순전히… 썅~! 불가항력의 상황이… 그래, 있어서 그럴 거야.”

“흥~! 그러면 그런 거지, 왜 화를 내고 그래요?”

“아, 미안!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내가 순순히 사과를 하자 미령이는 별일이라는 듯 조금 표정을 푸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물론 기분이 더욱 나빠져 몽몽에게 명령했다.

< 몽몽. 그게 누군지 알아내서 이번 일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확인해 둬. >

“[ 알겠습니다. ]”

그 빌어먹을 작자! 난 솔직히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내 일에 바빠서 당신 같은 사람들 일일이 응징하고 다닐 시간도 없어. 하지만… 하지만 만약의 경우… 그러니까 구급차가 늦어진 탓에 내 친구들에게 더 나쁜 영향이 있으면… 그땐 당신도 끝장일 줄 알아!

내가 아직 얼굴도 모르는 자에게 적의를 불태우고 있는 사이, 우리가 왔던 길 쪽에서 희미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좁은 산길이었던 것 같지만 놈들의 봉고차가 통과했던 걸 보면 구급차가 오는데도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금동이가 늦네요.”

응?

“그러고 보니… 그러네?”

나는 미령이 말을 듣고서야 금동이와 내 정글도를 떠올렸다. 정글도가 아쉽지 않을 정도의 싸움이어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내가 아까 정글도를 저 반대편 숲 너머로 날려버리는 바람에 운반책 금동이는 그걸 회수하러 달려갔었다.

< 몽몽. 정글도가 떨어졌을 예상 지점이… 그렇게 머냐? >

“[ …추정 거리와 금동의 평균 기동력을 계산해 보면 약 5분 정도 전에 복귀했어야 합니다. ]”

< 그래? 그 정도 오차야… 뭐, 금방 오겠군. >

“[ …그런데 주인님. 뭔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

< 심상치가… 않다? 넌 그런 애매한 표현은 잘 안 쓰잖아. >

“[ 그렇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저로서도 정확한 판단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

또 뭐야, 이거?

“[ 다만… 더 이상 금동의 복귀가 늦어지면 금동과 정글도의 소재에 비상사태가 발생했음을 기준으로 한 상황분석을 권고합니다. ]”

< 저기… 지금 니 말은 지금 금동이가 무슨 일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예를 들어 ‘납치’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냐? >

“[ 50% 이하의 가능성이지만, 그렇습니다. ]”

돌아버리겠네~! 납치라고? 또?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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