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38-2화 : 3대 마군황 후보.(2)
4-9. 3대 마군황 후보.(2)
[ 주인니임! ]
구양대주와의 통화가 끝나자 요몽이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 반성하신다더니… 결국 또 화나신 거예요? ]
< 아니, 나 별로 화 안 났는대? >
[ 에이~ 화나신 거 맞는 것 같은데요? 정글도도 잃어 버리셨고, 컨디션도 좋지 못하신데 무조건 옛날 방식 을 하시겠다고 하시면 어떡해요? ]
< 훗-! 걱정해 주는 건 고맙다만, 이 것도 다 작전이다, 작전! >
[ 예? 정말요? ]
< 그래 임마. >
나는 요몽에게 피식 웃어 보이며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위에 있을 때 봐두었던 평평한 바위로 가서 결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솔직히 전혀 열 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몽몽 남매가 우려할 정도로 흥분한 건 결코 아니었다.
< 사실… 초사마군이 뒤로 음모를 꾸미고 있었긴 해도, 그가 전에 한 말만은 맞다고 생각해. 2대 마군황이었던 내가 다시 3대에 도전하는 건 어폐가 있다는 거 말이야. 물론 가장 먼저 날 인정한 구양대주는 누구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테고… 그런데도 난 조금 전 빡 돌았음을 강조하며 ‘오늘밤 옛날 방식으로 간다’고 못박았지. 그건… 그 시간까지 모두가 모이지 못할 거기 때문이야. >
[ 예? 그럼 왜…… ]
< 분명히 오늘 밤 나는 그들과 싸우거나 여하간의 형태로든 무력을 쓸 거야. 하지만 예전처럼 내가 평가를 받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돼. ‘내가 2대 마군황인 건 당연한 일’이며, 따라서 오늘 일은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징벌’이 되어야 하는 거지. >
[ 아~ 저도 이제 알겠어요. 원래 주인님이 원하시는 건 지하무림의 군기 잡기! 그러니 엎어치나 메치나 아무 핑계나 대고…… ]
< 야, 야~ 업어치나 메치나가 아니지! ‘내가 마군황인 건 당연하다’라는 개념이 더 중요한 거라니깐 두루! >
[ 음,음. 저도 정말 알겠어요. 역시 주인님은 잔머리… 아니, 하여간 머리가 좋으세요. ]
< …어째 니 칭찬은 듣기가 부담스럽다, 이 녀석아. >
[ 헤헤- 죄송. 조심하는데도 자꾸 무례한 표현이 튀어나오려고 해서…… ]
< 암튼… 그런 분위기로 몰고 가려면, 우선 내가 지정한 시간까지 전부 집합하지 못하는 게 필요해. 물론 쌈이 났을 경우 머리수가 하나라도 적은 게 좋은 거고 말야. >
[ 그렇겠네요. 그래서 시간을 짧게 잡으신 거군요? ]
< 아니. 본래 내 신분 확인을 위한 물건들은 오늘쯤 도착하게 되어 있었어. 그러니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자들도 이미 한국에 와 있거나, 오늘 중에 도착할 수 있도록 오는 중일 거야. >
[ 에? 그럼…… ]
< 그러니… 몽몽과 요몽, 니들이 수고 좀 해줘야겠다. 무슨 뜻인지… 알지? >
[ 알겠습니다, 주인님. ]
[ 저희들이 방해공작을 펴라는 말씀이시죠? 와아~ 그거 재밌겠다! ]
< 재미로 하는 거 아니니까, 신중하게 잘해라, 응? >
[ 헤헤~ 알겠습니다! 대교님 보호협회 산하 인터넷 감시 및 쫄따구 양성 특별 부서의 미소녀요정부장, 저 요몽! 즉시 임무에 착수하겠습니닷! ]
음… 요몽 녀석이 촐싹대는 걸 보니 조금 불안해지기도 하는 군. 뭐, 그래도 몽몽이 알아서 잘 관리해 줄 테니 믿어도 되겠지? 그럼 슬슬… 나도 내 할 일을 시작해야겠군. 사실… 내가 할 일은 약속시간 전까지 열심히 운기조식을 해서 최대한의 내력을 확보하며 컨디션 조절을 해 두는 것밖에 없지만 말야.
[ 아, 아참! 정글도하고 금동이는 어쩌고요? 지금 바로 찾으러 가지 않아도 될까요? ]
< …초사마군 일파의 편지에는 ‘당신의 실체를 밝히겠다’고만 써있지, 언제라는 시간은 없어. 아마… 내가 흥분해서 바로 쫓아 올 거라 생각했겠지. 지금 신불산에는 놈들 일파만 모여 있을 테고 말야. 뭐… 그러니 지금 가봤자 나한테 좋을 건 없어. 그래도 놈들은 내가 나타나기 전까지 정글도나 금동이를 어쩌지는 못할 거야. 걱정하지마. >
둘 중에서 정글도는 마군황의 상징이니 놈들도 오히려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솔직히… 금동이 같은 경우는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정글도를 되찾으려고 놈들에게 덤비다가 다쳤을 가능성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금동이는 나와 천우신에게 단련된 (같이 논?) 연옥도 파의 중간보스이며 행동대장 겸 운반책이다. 상대가 누구든 결코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암! …음, 솔직히 조금은… 음……
일말의 불안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그래도 비교적 차분하고 꾸준히 운기조식을 계속했다. 그리고…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갔다.
[ …주인님. 약속시간을 두 시간 남았습니다. ]
몽몽의 말에 천천히 눈을 떠보니… 그 사이 해가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대신 연옥도에서 보던 달이 여전히 고고한 자태로 밤하늘을 거닐고 있었다.
< 그 사이 너희들의 활동 결과는? >
[ 구양대주와 자룡대주의 통신을 도청한 결과를 통해 현재까지 위치가 확인된 일백마군과 보천구룡대는 총 40명. 그 중에서 오전에 이미 신불산에 도착해 있던 인원을 제외한 10명의 대상자를 확보하여 이동을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방식을 통해서는 더 막기 어려운 케이스를 제외하더라도 최소한 7명은 신불산 집합에 늦도록 할 수 있을 거라 추정됩니다. ]
< 좋아. 끝까지 부탁한다. 그리고 하은이를 비롯한 우리 일행은? >
[ 그 분들은 전원 신불산에서 철수하여 준엽님과 성원님이 입원한 병원에 있습니다. 또한 이미 구양대주와 자룡대주를 중심으로 한 지하무림인들이 신불산 전체의 민간인들이 산을 비우도록 공작 중에 있습니다. ]
< …좋아. 전부 예정대로 군. >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결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불산 만은 못해도… 이 곳 역시 같은 산맥에 속해 있어서인지 기의 흐름이 좋은 편이었고, 그 덕에 난 최근의 며칠동안을 기준으로 가장 가쁜한 몸 상태가 되어 있었다. 물론 부상으로 인한 껄끄러움은 여전했지만… 뭐, 난 천년 전에도 멀쩡한 몸으로 마군황에 올랐던 건 아니다.
“이제 난 슬슬 신불산으로 갈 건데… 그대들은 어쩔 셈인가?”
내가 말을 걸은 대상은 내 뒤쪽 30미터 정도 지점에 숨어있는 자들이었다. 나는 몇 초 정도 기다려 주었다가 땅바닥에 내려와 돌멩이 두 개를 주워 들었다.
“대답…안 하지?”
난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몸을 돌리며 어둠 속을 향해 돌멩이를 던졌다. 내력이 실린 돌멩이가 쌔액- 날아간 직후, 퍼퍍!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다시 몇 개의 돌멩이를 더 주워들며 말했다.
“실수로 빗 맞췄다고 생각하지마! 이제 진짜 간다!”
“자,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 후, 곧 풀숲을 헤치며 두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둘 다 이미 낯이 익은 삼십대 중반 정도의 젊은 마군들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왼쪽의 동그란 얼굴과 대조적으로 찢어진 눈매를 가진 남자부터……
“혈지마군(血指魔君)과 한사마군(寒邪魔君)… 맞나?”
내가 묻자 그들은 꽤나 불편한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운기조식에 들어가고 얼마 안 돼 바로 접근을 시도해서는 조금 전의 위치에서 계속 짱박혀있던 자들이다. 그 동안의 인내와 노고는 칭찬해 주고 싶지만… 당연히 그럴 기분은 아니다.
“지난 천년 동안 지하무림은… 썩었군.”
“마,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차분한 학자풍의 용모를 가진 한사마군이 반발했고, 나는 쯧쯧 혀를 찼다.
“그런 반응부터가 그래. 하긴… 감히 나 외의 자에게 명령을 받아 날 감시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또 실행할 정도면 더 말할 것도 없겠지.”
“다, 당신이야말로… 아직 마군황이라 판명된 것도 아닌데… 그… 그러니 벌써부터 우리의 하늘을 자처하지 마시오.”
“마군황이… 내가, 수하들이 판명하고 말고 할 존재인 줄 안다 이거지?”
나의 시니컬한 대꾸에 둘 다 동요하는 기색으로 머뭇거리더니 다시 혈지마군이 입을 열었다.
“어, 억지!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이오. 판명되지도 않았는데 어찌 그런 믿을 가지라는……”
나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태도로 손을 저어 말을 끊었다.
“마군황에게, 나에게는 수하들의 판명 따위, 어떤 명분 따위도 필요 없어.”
구양대주의 표현을 살짝 표절한 말을 남기고 돌아선 나는 즉시 공공보법을 펼쳐 자리를 떠났다. 따라붙을 것을 생각해 처음부터 속도를 높였지만, 일찌감치 포기했는지 아예 그런 기색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긴… 환한 대낮에 개방된 장소였다면 몰라도 밤에 공공보법을 펼친 내 종적을 쫓을 수 있는 자가 있을 리 없긴 하다.
[ 주인님…! 전에는 ‘마군황에게 명분은 필요 없다’는 말에 부담을 느끼시는 것 같더니…… ]
< 상황이 달라졌잖아, 임마. 그런 건 그때 그때 다른 거야. >
[ 그야 뭐.. 음, 암튼 이대로 신불산까지 달려가실 거예요? ]
< 그럴…리가 있나. 좋은 차 놔두고 뭐 하러 힘을 낭비해. >
그래, 현대의 마군황에게는 승용차도 있다. 고행 중이라는 분위기의 스님이 자기 차 몰고 절에 출근(?)하는 모습처럼 다소… 뭔가 어울리지 않는 구도라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두 명의 감시역 마군들의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만 공공보법을 쓴 후, 내 차 키트1호를 몰고 신불산으로 복귀했다. 민박집 앞에 주차를 시키고 천천히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전처럼 몇몇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나타나 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들 중 가장 가까운 거리로 다가오는 이는 역시 구양대주와 자룡대주였다.
“…구양대주.”
“예, 천주.”
“이 곳은 훼손되기엔 너무 아까운 산이야. 설마 천년 전처럼 천라지망(天羅地網)에 독진(毒陣)도 포함되
어 있는 건 아니겠지?”
“마, 만부당한 말씀입니다. 독진은 고사하고 감히 천주께 펼칠 천라지망이 어디 있겠습니다.”
땡쓰- 구양대주. 당신이라면 내가 뭐라 해도 그렇게 나와 줄 줄 알았어!
“그런데, 보고 드리기 송구합니다만… 전에 말씀드렸던 보천구룡대의 세 명은 아직도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오늘도 합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천년이라는 세월은 정말이지 길고 긴 세월이다. 그세월동안 지하무림도 온전히 옛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건 아니어서 보천구룡대의 두 명과 여섯 명 정도의 마군들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백년 이상 행방불명 상태라고 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지하무림의 마당발 구양대주도 잘 몰라서, 후계자를 찾지 못해 대가 끊긴 것이거나 현재 집중적으로 양성하느라 짱 박혀있을 거라는 추측을 할뿐이라던가……?
“…그들은 일단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마군들의 집합은 확실하겠지?”
“예. 그게……”
내가 몽몽 남매라는 메가하이테크 네트웍 해커들을 동원해 방해공작을 펼치고 있는 걸 모른채, 몇 몇 마군들이 운 나쁘게 기기 고장을 일으킨 비행기나 배에 탑승해 있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겠지만……
“변명은 필요 없어.”
슬쩍 돌아보며 다시 못을 박자, 구양대주는 조심스럽게 시선을 회피하며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나는 곧 며칠 전 떠났던, 신불산 내의 내 전용(?) 수련장에 도착했다. 그 사이 고생을 바가지로 퍼먹고 다니는 바람에 며칠이 아니라 몇 달쯤은 지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인지 낯익은 바위며 나무들 하나 하나가 반가웠다. 물론 그런 감상을 즐길 틈이 없는 건… 오늘 이 자리에 모여든 저 수많은 병력들… 그들 중 최소 절반은 현재 내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역시 내 전용자리인 바위 앞으로 가 서서 스윽 전체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흐음… 초사마군을 중심으로 좌측에 모여 서 있는 자들이 소위 반대파인 건가…? 구양대주와 자룡대주가 우측으로 서고 그 뒤에 선 자들 중에 홍콩 경찰간부인 청천마군과 그의 제자 전경하가 보이는 걸 보니, 자기들이 알아서 알기 쉽게 편갈라 섰나보다. 어디… 나중에 보복인사를 단행할거라던가 하는 치사한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어디 반대파 인간들이 누군지는 좀 봐둘까?
나는 새삼 찬찬히 반대파의 면면을 살피기 시작했고, 그런 나의 흉흉한(?) 눈빛에 대다수 반대파 마군들은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역시 선두의 초사마군과 그 주위의 몇 몇 마군들은 나름대로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려, 그려. 어디 두고 보… 음, 흠! 아니지 아냐! 난 그렇게 쪼잔한 보스가 아니라구. 나에 대한 재인식 과정이 끝나고 나면 전부 너그럽게 받아들여야지. 암! 설사 저 사람처럼 유독 더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라도… 에… 그러니까… …응? 뭐시여? 그, 그러고 보
니… 저 노인네, 뭐야?
나는 내가 잘 못 본 거 아닌가 싶어, 반대파 중의 한 명을 몇 번이고 다시 살펴보았다. 그러나…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으~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저 노인네… 아니, 환생한 지금은 꽃돌이 청년이지? 하여간 저 천음마군(天飮魔君)…! 야후 장로의 환생자께서는 왜 반대파에 서있는 거야? 지난번에 나와 가볍게 칼을 겨뤄 본 후 인정파의 대열에 누구보다 먼저 합류했던 사람이 대체 왜 배신을 때린 거지? 설마… 초사마군에게 술 한잔 얻어먹으며 설득 당했거나, 구하기 어려운 귀한 술 몇병 뇌물로 받고 넘어간 건 아니겠지? …이유는 어쨌건, 제기…! 더럽게 섭섭하네.
난 뜻하지 않은 인물의 배신에 뒤통수가 쓰라려 인상을 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얄밉도록 침착하게 응시하고 있던 초사마군이 문득 내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디선가 반가운 괴성 소리가 들려왔다.
[ 주인님! 금동이에요! 하이~ 금동 옹! ]
요몽이 먼저 반갑게 인사하자, 내 뒤의 바위 너머에서 뛰쳐나온 금동이도 끼약~! 꺅! 정신없는 소리를 질러댔다.
[ …1차 스캔 결과 별다른 상처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
다만…? 쯧, 그 정도야 뭐… 하여간, 후우우우~ 다행이다.
역시 우리 연옥도 파의 영원한 넘버 3, 금동이! 난 내심 계속 걱정하던 녀석의 무사복귀가 무지하게 반가웠지만 사람들 앞에서 티를 내기가 뭐해서 조용히 웃어 주기만을 해야 했다. 그런데… 금동이도 재회를 반가워하기에 앞서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았다. 녀석은 내 바지 옷자락을 붙잡더니 다른 손을 들어 초사마군 쪽을 가리키며 몇 번이고 불쾌한 소리를 질러댔다. 나도 금동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이번엔 대충 왜 이러는지 알 것 같았다.
“…이 녀석은 지금 내 칼을 훔쳐간 자가 누구인지 꼰지르, 아니 신고하는 거야. 초사마군, 당신…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조금 비꼬아 물었지만, 초사마군은 여유있는 미소로 받아넘기며 입을 열었다.
“어찌 할 말이 없겠습니까. 전 오늘 낯… 어떤 이름 모를 숲을 산책하고 있었죠. 거기서 땅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칼을 한 자루 줍게 되었는데… 허허~ 그게 설마 마군황을 자처하는 분의 애병기일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려.”
어이~ 이봐, 이봐. 왜곡 보도하지 말라구. 내 정글도는 나무 위에 이쁘게 박혀 있었는데 굳이 ‘땅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이라는 표현을 쓰다니… 당신이 황색언론 기자라도 되는 거야?
“음… 한 번 말씀해 보시지요! 정말 그 칼, 마군황의 상징인 신병(神兵)을 함부로 아무 곳에나 떨구어 잃어 버린 것이 맞습니까?”
쳇~! 그렇게 굳이 목소리를 높여 내 실수를 모두에게 강조하겠다 이거지? 그렇다면 난……
“…응. 맞아. 열 받아 집어 던졌는데, 생각보다 좀 멀리 날아갔더군.”
내 뻔뻔한(?) 대꾸에 반대파는 물론이고 우리 인정파에서 까지 낮은 탄식 소리가 새어 나왔다.
“허허~ 그… 군마도(君魔刀) 혹은 지천도(至天刀)라 불리는……”
“그만하지?”
“…허허헛! 본인도 부끄러운 건 아시는 군요.”
“내가? 내가 왜? 내 칼 내가 던진 게 뭐 어때서.”
“그, 그런 뻔뻔한……”
“나참~! 이 양반 이거 웃기네?”
나는 허허- 거리던 초사마군을 비웃어 주며 말했다.
“당신이 훔쳐간, 아니… 주웠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그건 그냥 칼이야. 적을 벨 수도 있지만, 때로 장작패기에도 좋고, 숲에서 길을 뚫을 때도 필요한… 아주 유용한 칼이지. 하지만… 그 뿐. 당신은 그냥 칼을 주웠을 뿐인 거야. 그냥 칼 몰라?”
“지금 무슨 말을……”
“당신이나 다른 누군가의 손에 있어도 그건 그저 평범한 칼에 불과해. 내 손에 있을 때 풍운진패도(風雲震 刀)! 내가 어깨에 걸치고 있을 때 군마도! 내가 휘두를 때 지천도! 알겠나?”
“그, 그건……”
초사마군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 …얘들아. 어땠냐? 그럴 듯했어? >
나는 몽몽 남매에게 물었고 요몽이 먼저 맞장구를 쳐준다.
[ 예! 멋져요, 주인님! 천상천하유아만세! 우기기의 지존! 할렐루야~! ]
< 야, 야~ >
[ …감지되는 대상 인체들의 반응 패턴으로 보아, 다행히 군중의 동의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마군황 캐릭터의 특징을 잘 잡아내신 것으로 판단됩니다. ]
흠, 그런…가? 다행이다. 운기조식 도중 주화입마에 빠질 뻔한 위기에 빠지면서까지 그럴듯한 연설문(?)을 작성해 놓은 보람이 있군.
“허, 허험! 음… 과연 마군황을 자처하는 자 다운 허세로군요. 하지만 그런 신병을 함부로 내팽개친 변명으로는……”
애써 다시 분위기를 일으켜 보려는 초사마군. 그러나 그런 그의 말을 막은 것은 같은 편의 ‘누군가’였다.
“하하하하~! 제가 뭐라 했습니까! 저 사람은 이런 장난에 흔들릴 인물이 아니라고 했잖습니까, 사부님!”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등장이었다. 초사마군과 그 일파의 그림자 속에 서있던 젊은 청년 하나가 크게 웃으며 모습을 드러내더니 곧 초사마군 옆으로 나서고 있었다.
나이는 나와 비슷한 이십대 중반쯤…? 그리고 그… 이름이 뭐더라? 홍콩영화에 자주 나오는 미남 배우… 정, 정… 아, 정이건! 그래. 얼굴 자체의 인상과 긴 머리채를 여자처럼 휘날리는 헤어스타일까지도 배우 정이건을 닮았다. 생긴 건 뭐, 아무래도 좋은데… 짜식! 기분 나쁘게 남의 정글도를 지꺼처럼… 그 것도 자연스럽게 어깨에 걸치고 있다. 그리고 저 녀석이 나서니까 금동이가 드물게 크르르~(네가 개냐?) 소리를 내며 흥분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아까 정글도 찾으러 갔다가 시비가 붙었던 건 초사마군이 아니라 저 녀석이었던 모양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 이 분의 제자인 소군황(小君皇) ###이라고 합니다.”
별호가 소군황…? 아주 미리 노골적으로 지어 놨구만.
“실은… 당신께서 실수로 이 ‘보통 칼’을 잃어버리신 것 같아 제가 소중히 보관 중이었습니다. 사부의 농에 너무 화내지 마시고… 지금 바로 돌려 드릴 테니 받으시지요.”
쳇! 비꼬는 솜씨는 오히려 사부보다 나은 것 같군. 게다가 저 녀석 지금 돌려준다는 폼세가……
“주의하십시오, 주인님! 상대의 내력이 현재의 주인님 못지 않습니다!”
몽몽의 경고 내용은 나 역시 놈이 앞으로 나서기 전부터도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본래의 만땅 내공이 아니라지만 현재의 나와 비슷할 정도라는 건… 웃! 저 시키! 기어이 던져? 게다가 시건방지게!
소군황 ###가 던진 정글도는 내가 즐겨 쓰는 방식과 같이 무서운 기세로 회전하며 날아들었다. 그러나… 난 최근 몇 년 동안 이 정글도를 밥숟가락이나 젓가락, 아니 그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는 시간동안 손에서 놓지 않았던 몸이다.
이 기세, 이 각도, 이 회전력… 좋아, 여기… 쯤! 나는 누가 먹으라고 귤이라도 하나 던져 준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뻗었다. 모터 보트의 스크류가 연상될 정도의 무시무시한 회전에도 불구하고, 정글도의 손잡이 부분은 어렵지 않게 내 검지 손가락에 걸렸다. 나는 팔과 손목 놀림을 정글도의 회전에 맞추어 회전력은 유지하면서 전진력 만을 상쇄시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글도 움직임의 모든 통제권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 난 손목의 탄력과 내력을 실어 정글도를 다시 소군황 놈에게 날려보냈다.
어떠냐, 임마! 이건 내 독문절기인 ‘스크류졸트크로스카운트어택’이다. 결코 특정 용어를 이어 붙인 건 아니… 음, 흠… 하여간 저 녀석… 그냥 슬쩍 피해 버리는 군.
내 기대에 못 미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반격에 녀석이 재 반격을 못한 셈이라 나는 다시 여유있는 자세로… 아까와는 달리 허공에서 선회하여 내 손으로 돌아 온 정글도를 접수했다.
“하하하~! 전 그저 돌려드리려 했을 뿐이니, 너무 화내지 말아 주십시오.”
쫘식이 느물대긴…! 으음… 그렇지만, 기분이 좀 나빠도 우선 참자. 아무래도 놈이 내 스크류졸트…하여간 도로 던진 정글도를 피한 건, 다시 잡을 자신이 없어 서라기보다… 발끈해서 반격한 나와 비교해 자기 쪽이 더 여유있는 보스의 풍모를 보이려는 잔꾀인 것 같으니 말이다.
“…화를 냈다고? 난 그저… 손잡이에 수하의 손때가 묻은 걸 털어 냈을 뿐이야.”
“그러셨군요. 제가 그만, 마군황을 자처하는 분의 손을 더럽힐 뻔했군요.”
말로 하는 도발에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반격해 오는 군. 역시… 곱게 말로 끝내기 싫다 이거지?
“소군황! 자네 오늘 대체 왜 이러는가! 천주께 계속 무례를 범한다면 나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네!”
드디어 나서는 구양대주. 그러나 소군황은 역시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미소 지을 뿐이었다.
“좌시하지 않으시겠다면… 어쩔 생각이십니까? 구양 노숙께서 저 천년 전의 마군황을 대신해 저를 치시겠습니까?”
“자네, 정말!”
구양대주는 급격히 살기를 내뿜으며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지만, 곧 나의 쯧쯧~ 혀를 차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나도 기분 같아서야 구양대주 편을 들어주고 싶기야 한데… 오늘은 그럴 때가 아니다.
“잘-들 한다. 내 앞에서.”
나는 되찾은 정글도를 어깨에 걸치며 말을 이었다.
“초사마군을 비롯한 나를 아직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자들은 물론 괘씸하지만, 구양대주 당신과 인정하겠다 는 자들도 마찬가지야. 내가 지시한 약속 시간은 이미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도착하지 않는 자들이 있지 를 않나……”
“처, 천주!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까 내가 구양대주에게 뭐라고 했었지?”
“옛 방식으로 저희들 모두를 힘으로 굴복시키시겠다 고……”
“그래. 맞아. 하지만… 의미는 옛날과 다르지. 난 마군황 테스트 따위를 받겠다는 게 아니라, 모두를 ‘재교육’ 시키겠다는 거야! 알겠나? 양 쪽 모두 각오해!”
나는 차갑게 내뱉으며 성큼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겉으로는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방향이었지만, 물론 내 레이더는 소군황 놈의 움직임에 가장 많은 비중을 두고 있었다. 그 소군황 놈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하하~ 이거, 정말 전설 속의 마군황과 다르지 않은 분이로군요. 그 성격 급한 면까지 말입니다.”
“너, 계속 깐죽대지?”
나는 놈에게 슬쩍 몸을 돌림과 동시에 삼시전결을 날렸다. 실험적으로 날려 본 거긴 하지만… 놈은 얄밉게도 비교적 어렵지 않게 그것을 피해냈다.
쳇! 어디, 언제까지 피할 수 있나 보자!
“잠깐! 잠깐, 진정하시지요! 우리도 당신을 무조건 인정하지 않겠다는 게 아닙니다!”
이제와서 김새게… 그럼 기껏 정글도로 전달한 내력을 거둘 수…는 없지! 나는 놈의 말 태클에 아랑곳 없이 잠종보(潛踪步)를 펼쳐 거리를 좁히며 다시 삼시전결을 날리기 시작했다. 놈은 다급하게 자신의 칼(정글도와 유사한 형태의)을 꺼내 방어하며 연신 외쳐댔다.
“멈추라니까요! 그만! 그만!”
잠깐 사이 놈의 “그만!” 소리가 대여섯 번 정도 울렸다. 그 사이 내 정글도는 그 두 배가 넘는 회수로 놈을 친 끝에 공격을 멈추었다.
“하아- 하… 핫! 이거 너무 하시는 군요. 싸울 생각도 없는 사람에게……”
놈은 여전히 여유 있는 태도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내 정글도에 베인 곳이 총 다섯 군데였지만 모두 옷자락만이 잘렸을 뿐, 놈은 작은 찰과상 하나 입지 않은 상태였다. 기분 나쁜 타입인 것과 별개로, 나 역시 이 놈의 무공 수위가 현 시대에서 만난 사람들 중 최고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린… 말입니다. 당신을 무조건 거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우리 모두를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터무니없이 강한 남자라는 것도 알고 말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지금은 천년 전이 아닙니다. 무공으로 아무리 강함을 과시한다 해도… 현대에는 말입니다. 인간의 무공으로 어쩔 수 없는 무기가 너무나 흔합니다.”
이 시퀴가, 날 아예 천년 전의 구닥다리로 취급하는 구먼. 내가 시대초월의 첨단 장비까지 갖추고 있다는 걸 모르고 말야.
“…그래, 그래서 힘은 인정 못하겠다는 건가?”
“후후~ 일단은 예정대로 우리 지하무림에 전해 내려오는 귀물로서 신분의 진위 여부를 가려야겠죠. 물론 당신이 2대 마군황임이 증명된다면… 우리는 모두 군말 없이 당신을 인정할 것입니다.”
이걸… 그냥 무시하고 계속 공격해, 말아?
“다만 한 가지 알아두셔야 할 것은, 당신이 2대 마군황이 확실해지는 순간부터 전 3대 마군황 후보가 된다는 점입니다.”
과연… 마군황은 당연히 다음 대 후보의 도전을 존중하고 거부할 수 없다. 후보자는 보통 그 도전에 실패한다 해도 다른 마군들로부터 ‘존경’을 받기 마련이고 말이다. 게다가 나의 2대 마군황 증명은 곧 ‘마군황 시험 중에 한 명도 죽이지 않은 인물’이라는 증명이기도 하니… 끝까지 가도 손해 볼 일은 없겠다 이거로군. 게다가 지금 이러고 있는 모든 과정도 2대 마군황인 내 권위에 흠집 내는 걸 겸하고 있는 거고 말이야.
“어떻습니까, 먼저 자신이 2대 마군황임을 증명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대로 계속 그 잘난 칼로 우리를 핍박해 보시겠습니까.”
이 놈… 할 말은 다 해 놓고 또 도발을 해 오는 군. 아까 내가 기껏 만들어 놓은 ‘마군황으로서의 징계’라는 분위기를 ‘마군황을 자처하는 자의 난동’ 정도로 만들겠다… 이거지? 그럴 경우 설사 반대파의 모두가 여기서 내게 깨지더라도 계속 조직 단위로 저항할 명분이 생길 테니까.
“…그래. 이제 네 놈… 아니 네 놈 일파의 뜻은 잘 알겠어. 천년이란 세월이 길긴 길었나 보군. 지하무림이 마군황이 이전의 원점으로 돌아가 분열하기를 원하는 걸 보니 말야.”
“이건 원점으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춰 순응하기 위함입니다. 요즘 세상에 누가… 독재자를 바란답니까?”
“호오~ 그럼 네가 마군황이 되면 독재가 아니고?”
“그야 물론… 전 다만 상징적인 존재가 되려는 것뿐, 당신이나 초대 마군황처럼 지하무림 식구들을 일시에 사지로 몰아 넣는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이 놈, 말은 참 잘 한다.
“그으래? 훗~! 좋아! 알겠어! 일단 네 놈들 말을 따라 주기로 하지. 얌전히 전해 내려오는 귀물을 먼저 확인해 보도록 하겠어.”
내가 선선히 웃으며 선언하자, 소군황은 오히려 조금 당황한 듯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사부를 돌아보았다.
“나도 한 가지 말해 두지.”
나는 다시 내게 돌아오는 소군황의 눈동자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씨익- 웃어 주었다.
“내가 조금 전 왜 너에 대한 공격을 멈추었는지 알아? 그건… 칼을 부딪쳐 보니 네가 아주 시시한 놈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야. 넌 네 사부가 붙여 준 과분한 별칭에서 영원히 소(小)자를 떼어내지 못할 거야.”
“훗~! 멋진 오만함 하나는 확실히 2대 마군황이 맞으시군요.”
“계속 깐죽대 봤자 소용없어. 난 상대도 안 되는 놈이 지껄이는 소리는 듣는 도중에 잊어버리거든.”
놈의 얼굴에 비로소 동요의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과 달리 진심으로 자신을 하찮게 여긴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야.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해도 그렇지, 저 같은 것이 다음 대의 마군황 후보자라니!”
난 노인네처럼 혀를 차며 놈으로부터 등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