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4-1화 : 거대한 적(敵)의 숨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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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4-1화 : 거대한 적(敵)의 숨결.(1)


1-4. 거대한 적(敵)의 숨결.(1)

[ 동천만년영삼(東天萬年令蔘)… 즉, 십 수세기 전의 강력한 행성 에너지를 극밀도로 함유한 ‘고려산삼’의 효능이 세포의 노화를 방지하고 손상 세포의 재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에너지 효과가 1000년에 걸친 세월 동안 유지될 정도로 안정적이며 지속적으로 고착화 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사례로서, 확실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대상 생명체, 코드 명 금동에 대해, 보다 다양한 스캔과 임상실험을 비롯한…… ]

< 야, 야아~ 대충 해둬! 난 그냥 금동이가 ‘산삼 먹고 용됐다’ 정도로 이해하련다. >

[ 주인님의 현재 감정은 이해하지만… 주인님 역시 소량이지만 같은 영약을 복용한 바 있습니다. ]

< 아, 그런가? 하지만… 부작용이 ‘장수만세’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 또… 여하간의 경우라도 나중에 따지자. 지금은 저 녀석을 분석하고 실험하고 그런 생각 자체도 하기 싫어. >

[ …알겠습니다. ]

그렇게 언제나 냉철한 우리의 몽몽 선생께서 잠깐 딴지를 걸긴 했지만… 그런 정도로 금동이와의 재회가 가져온 기쁨이 퇴색되지는 않았기에, 나는 오전과 달리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룰루랄라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는 길을 재촉할 수가 있었다. 조수석에서 금동이를 소중하게 껴안고 있던 하은이가 문득 입을 열었다.

“…유준 오빠.”

“어, 왜?”

“정말이야? 오빠가 이 마이클의 ‘전주인’이라는 거야?”

“어이- 우리 구여운 동생양반. ‘전주인이 아니라, ‘원주인’! 본래 주인이라고 해야지.”

무심코 웃으며 대꾸해 줬지만, 하은이 이 녀석 음성이 어째……

“…아무려면 어때. 지금은 내가 마이클의 주인이야!”

어랏-? 아주 노골적인 반응일세? 이거… 아무래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는 걸? 일단 다시 차를 적당히 세우고……

“하은아, 얜 말야……”

“증명해봐! 오빠가 마이클의 주인이었다는!”

금동선생 강림(?) 이전과 달리 고집스런 표정과 적개심…!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장난감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의지에 불타는 어린아이 같은 막무가내 모드랄까…? 음- 여기서 금동이에게 예전에 나와 몽몽이 입력(?)한 명령어 몇 가지를 실행하도록 하면 납득하려나…? 하지만 그건……

“그게- 사실 좀 전엔 니가 전주인 운운해서 나도 그냥 농담한 거 뿐이야. 난 애초에 금동이의 주인이 아니라… ‘친구’ 거든.”

“나, 나도 마이클을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생각해!”

“그래. 그럼 된 거지 뭐. 친구를 굳이 옛친구 지금 친구로 나눌 필요는 없잖겠어?”

내 말에 하은이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뭔가 생각해 보는 것 같더니만 곧 낮게 중얼거렸다.

“……!”

“뭐?”

“후후- 미안해. 내가 어리석은 생각을 했나 봐. 지나치게 예민했던 거… 인정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 조금 전까지의 표독스런 표정을 지워버린 하은이는 작게 한숨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마이클, 아니 본래 이름이 금동이라고 했지? 금동이는 내가 처음 진심으로 마음을 연 친구라서… 언제고 전 주인에게 돌아갈지 모른다고… 항상 걱정했었거든.”

하은이는 잔잔한 슬픔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금동이를 안은 팔에 힘을 주며 금동이의 부드러운 금빛 털에 자신의 뺨을 살짝 기댔고, 그러는 녀석의 눈가에 반짝작고 애달픈 물방이 맺혀 흔들리고 있었다. 보는 사람… 특히 남자라면 대뜸 보호본능 신경의 터보 스위치가 올라가며 ‘우어어~ 널 지켜주기 위해서는 전세계와 맞짱을 떠도 좋아!’라는 대사를 외치고 말 법한… 특급 미소녀 전용의 고등 스킬이랄까? 나 역시 순간적으로 ‘금동이 너 가져’라는 소리가 나오려는 충동이 생길 정도였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금동이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거야. 뭐- 나야 금동이가 본래 의리파 원숭이라 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매우 애매모호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다시 차를 출발시켰고, 하은이의 하얀 얼굴 위로 ‘뜻밖이다’라는 표정이 알게 모르게 스쳐갔다. 녀석이 계속 완벽한 연기력으로 ‘아픔을 간직한 가냘픈 소녀’ 모드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내가 녀석의 시선에서 날 은밀하게 탐색하는 불손한(?) 의도를 찾아낼 수 있게 된 건… 녀석이 입 속에서 중얼거린 외국어를(영어도 아니고 스페인어라나?) 몽몽이 놓치지 않고 알려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은이는 내가 제 2 외국어를 전부 통달… 한 로봇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무심결에 이렇게 중얼거렸던 것이다.

  • 이 오빠는 전형적인 L타입의 남자. 그렇다면……

정하은이란 소녀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좋았던 기분이 급격히 다운되기 시작했지만 나 역시 대한민국 진씨 가문 최강의 사악내숭…! 나는 씁쓸함을 숨긴 채 계속 본래의 임무대로 친절한 오라버니 모드로서 녀석을 에스코트했고, 오래지 않아 나의 키트 1호는 오전에 출발했던 동네 어귀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7남매 중 하은이의 어머니와 가장 친하셨다는, 그래서인지 고작 몇 년에 한두 번 정도에 불과했다는 이모님의 안부 편지를 유일하게 받아 보셨다던 어머니는… 오랜 세월 만나지 못했던 동생의 자식을 눈물로 맞이하셨다. 그 사이 낯술로 불콰해진 안색의 아버지께선 공연히 헛기침소리를 내며 딴청을 피우시고……

“…안녕하세요, 큰 이모.”

새삼 기가 막히시는지 쉽게 말문을 꺼내지 못하시는 어머니와 달리 하은이 녀석은 부드러운 미소와 인사로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사진으로 본 적 있지만… 역시 저희 어머니와 많이 닮으셨네요.”

하은이의 말에 어머니는 더욱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쏟기 시작하셨고 녀석의 손을 놓을 줄을 몰랐다. 문득 하은이 녀석의 눈가에도 어른거리기 시작한 물방울을 보며… 최소한 그 것만은 진심이기를 바랬다. 나는 눈물의 이산가족상봉 분위기에 동참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심정이어서 슬며시 집 밖으로 나가며 몽몽을 불렀다.

< 몽몽… 저 녀석 분석결과는 아직도냐? >

[ 1차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정하은님이 진하연님의 환생일 가능성은 67.3%입니다. ]

< 67.3%…? 50% 이상이면 일단 환생이 맞다는 거야? 하지만 이건 대교에 비해서 너무 낮은 수치 아닌가? >

[ …정하은님과 진하연님의 신체 일치도는 98%로 우연으로 판단하기에는 불가능한 수치입니다. 그러나 영체의 일치도는 65%에 불과합니다. 인간 영혼의 환생 체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실험과 실증 자료가 부족하므로 두 가지 요소의 수치화에는 70% 이상의 높은 오류 가능성이 존재하며 환생 판정에 있어서의 요소 간 비율 적용에 대한 오류 가능성은 2450년 마지막으로 발표된 환생 이론을 기초로…… ]

으이 쒸~! 대교 때는 비교적 간단하더니 이번엔 왜 이리 복잡해? 불확실성이 많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각오는 했었지만서두……

[ …이러한 불확실성에 의해 해당 인물의 환생에 대한 판단에는 몇 가지의 추론만을 권장하며…… ]

숫자에 약한 치명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까지 마이 카 키트 1호에 기대 선 채 몽몽의 환생 관련 논문 발표(?)를 들어주었다. 몽몽도 예의 은발 소년 모드로 잘 정리된 차트를 일일이 짚어가며 열심히 보고했고… 뭐, 그 동안 나도 놀고만 지낸 건 아니어서 복잡한 숫자와 이론이 난무한다고 예전처럼 벽 잡고 절규하거나 애꿎은 몽몽을 구박하는 짓을 하진 않게 되었지만… 역시나 내 맷돌 두 뇌의 가공할 기능은 대부분의 복잡한 이론을 맷돌로 콩 갈 듯 갈아서 뭉개(?) 버리고 결국 후반의 몇 가지 정리된 결과물만을 챙기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결국 요점은 하은이 같은 경우 무림시절 대교와 현시대 대교의 신체 일치도 82%, 영체 일치도 99%와는 정반대의 케이스라 이거 아냐. >

[ 그렇습니다. ]

< 그리고 그런 이유가… 대교는 극히 적은 횟수, 거의 다이렉트로 환생한 거 같고… 그에 비해 하은이는 하연이 환생이긴 해도 그 동안 훨씬 많은 횟수로 환생을 거듭하여 지금은 1000년 전과는 많이 다른 영혼이 된 거 같다는… 그런 얘기지? >

[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생 과정 끝에 때마침 주인님의 주변 인물로 나타난 이 심상치 않은 우연… ‘불확실성의 실제적 결과’에 대해서는 이후로도 규명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

< …그래. 어쨌거나… 이제 일단 하은이가 하연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여야 할 것 같군. 날 목적으로 한 환생인지 어쩐 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진하연과 내가 남남이 아니게 된 현실도…… >

나는 결국 길게 하아아~ 한숨을 내쉬며 새삼 하은이가 있는 집 안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다른 건 다 둘째 치고라도, 불과 세 살의 어린 나이에 가문에서 쫓겨나 머나먼 미국 땅에서 자라야 했던 정하은… 그런 상황만 봐도 중원의 원판과 강제로 헤어져 묘강에 던져졌던 전생 진하연의 복사판인 셈인데… 몽몽이 말한 ‘불확실성의 실제적 결과’란 건 결국 흔한 말로 ‘운명’이라는 걸까…? 그렇다면 인간은 환생을 한다 해도 결국 비슷한 운명을 겪으며 살아가게 된다는 뜻……? 제기… 그건 어쩐지 짜증나는 가정이다. 물론 내가 한 편으로 걱정하고 있는 ‘또 다른 가정’도 결코 유쾌한 건 아니지만… 쳇-! 어쩌면 난 너무나 거대해서 실체를 가늠하기도 어려운… 그런 존재를 주제넘게 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그… ‘타임씨’가 대교를 돌려 준 시점에서는 대충 화해할 생각이었는데……

[ 그나저나, 주인님! ]

< …왜, 요정 몽. >

복잡하고 착잡한 기분이라 시큰둥하게 대답했지만, 요정 몽 녀석은 그에 아랑곳없이 호기심에 반짝이는 눈빛으로 키트 1호 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 저도 재회가 기쁘긴 한데… 그보다 금동 옹(翁)은 어째서 아직 변신을 하지 않죠? ]

< 금동 옹…? 풋~! 그래, 틀린 표현은 아닌 것 같다만…… >

난 차문을 열고 이산가족 상봉 시간 동안 잠시 차 안에 대기시켜 놓은 금동이를 나오게 했고, 금동이는 가볍게 몸을 날려 예전처럼 내 어깨 위에 올라탔다.

< …변신은 또 무슨 얘기냐? >

[ 인간들의 전설에는 오래 묵은 짐승들이 요괴가 되는 얘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금동 옹도 1000년이나 묵었으니 이젠 뭔가로 변신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나는 다시 푸핫-! 하고 웃고 말았지만, 그러고 보니… 정말 1000년이나 묵었으니 구미호처럼 꼬리가 몇 개 더 늘어나거나 손오공으로의 진화 같은 것도 가능할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이보슈, 금동 옹! 혹시……”

나와 요정 몽의 의혹에 찬 시선을 받으면서도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금동이는 문득 고개를 들더니 옆집 담장 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담장 위에는 때마침 회색의 도둑고양이(또는 길냥?)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녀석도 문득 고개를 돌리다가 우리 금동이와 눈이 마주치는 것 같았다. 고양이는 순간적으로 긴장하며 냐아앗~ 경계의 소리를 내며 털을 곤두세웠지 만… 다음 순간, 급속도로 기가 죽어 니이이아~ 힘없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느 사이 금동이는 그 고양이 앞의 담장 위에 서서 여유 있는 태도로 턱을 긁고 있었고, 그 금동이가 내 어깨를 박차고 뛰어 올라 담장 위에 내려설 때까지의 과정은 나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을 정도였다.

“저 녀석 여전히… 아니, 더 빨라진 것도 같네.”

금동이는 사람처럼 손을 내밀어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고, 덩치로만 보면 금동이 못지 않은 회색의 도둑고양이는 도둑고양이 특유의 앙칼진 자존심은 어따 팔아먹었는지 얌전히 몸을 낮춘 채 녀석의 손길에 머리를 맡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금동이 저 녀석, 여의봉 휘두르며 72가지 둔갑술을 부리는 손오공까지는 무리라도… 최소한 짝퉁이 아니라 진짜 백수지왕(百獸之王) 금모신원(金毛神猿)이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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