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4-3화 : 거대한 적(敵)의 숨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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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4-3화 : 거대한 적(敵)의 숨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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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거대한 적(敵)의 숨결.(3)

[ …주의하십시오, 주인님. 하은님과 금동, 어느 쪽에도 외부 발신기 같은 추적장치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 니가 말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다. 뭐… 추적장치 같은 게 없는데도 이렇게 계속 하은이를 놓치지 않고 추적 또는 미행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평범한 인물은 아니라는 거라는 것도 당연한 거고… 그래, 조심해야지. >

[ 또한, 공항에서부터 주인님의 이목과 저의 감시 기능에도 감지되지 않고 있습니다. ]

<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도 목표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만만찮은 인물… 혹은 조직…? 설마 그 유명한 자동차 회사는 아닐 테지? >

[ G.M이란 이니셜에 해당하는 인물이나 조직을 검색 중이나 의심되는 대상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

< 계속 부탁해. 그리고… 음, 근데 하은이 지금은 뭐하냐? 그 녀석은 G.M에게 답장 안 쓰나? >

[ 화면을 모두 닫는 것으로 보아 답장을 쓸 생각이 없는 듯… 아! 서둘러 돌아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

< 뭐? 설마 벌써 G.M이 습격을…… >

[ 그건 아니예욧! 하은님이 주인님의 책상 서랍을 열어 보기 시작했어요! ]

< 뭐야, 요정 몽! 괜히 놀랐잖아! 내 책상에는 별것도 없는데 뭐…… >

[ 그렇게 여유부릴 상황이 아니라구욧! 현재 주인님 책상에는…… ]

< 뭐, 뭐야? >

요정 몽이 알려주는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에 나는 다급한 마음에 공공보법을 발동, 벼락같이 옥상을 떠나 내 방 앞까지 날아갔다. 때마침 부모님들께서 거실에 안 계신 건 다행이었지만……

[ 아! 이미 하은님이 두 번째 서랍에서 주인님의 애장품을…… ]

< 야! 그건 애장품이 아니고 단지… 으- 하여간! >

이미 한 발 늦어 버린 터라 하는 수 없이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하은이 녀석은 내 추억의 무공서(?)를 펼쳐들고 넘기며 피식거리고 있었다.

“어 야아~ 그건……”

“후후- 이제 보니까 오빤 이런 무술을 익히고 있었던 거네?”

으- 이노무 기집애, 하필 제일 야시시한 사진이 나온 펼쳐 보이다니!

“아니, 그게… 그 것도 결가부좌가 맞긴 한데, 그게 아니고……”

“뭘 그리 당황하고 그래? 남자들이 이런 책 한 권쯤 가지고 있는 거야 당연한 거지.”

하은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책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 겉 표지에 붉은 글자로 크게 새겨진 ‘섹시 태극권’이란 제목… 참 오랜만에 본다. 각종 자세를 취하는 사범(그냥 모델?)이 전부 반나의 여자인 흐믓한 내용의… 으- 지금 추억을 되새길 때가 아니지?

“어머? 한 권뿐이 아니네?”

“어, 그건 작은형이… 야아-“

나는 키득대는 하은이 녀석의 손에서 섹시 태극권은 양반일 정도로 적나라한 서양 잡지를 빼앗아 다시 서랍에 넣고 닫아 버렸다.

“뜻밖인 걸? 오빤 주가혜 같은 스타일뿐만 아니라 이런 금발 미녀들도……”

“으씨~ 아니라니까? 이건 작은형이……”

“흐음- 어째서 이런 상황에서 남자들이 변명하는 말은 세계 공통인 걸까?”

하은이 녀석은 내 변명, 아니 진실 설명을 씹으며 문 쪽으로 걸어가더니만 문득 고개를 돌렸다. 놀리면서도 그나마 이해한다는 태도였던 녀석이 갑자기 괴이한(?) 시선을 던지며……

“근데… 좀 불쌍하다. 그 나이까지 이차원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니!”

그렇게 마무리 펀치를 날린 다음에야 총총히 나가버렸다. 으워어어어어어어~ 이렇게 억울할 수가!

졸지에 정신발육부진의 변태로(직접 말은 안 했지만 그런 의미가 담긴 경멸의 눈초리였다.) 몰린 나는 꽤 한참이 지난 후에야 패닉 상태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 에효~ 결국 ‘여동생을 가진 남자의 요주의 행동’ 하나에 걸린 셈이네요. 하지만… 제가 하은님께 모습을 보일 수만 있어도 저 책들은 진유민(작은형)님이 주인님 책상에 넣어 주고 가신 거고, 주인님께선 한 번도 펼쳐 본 적이 없다고 증인이 될 수도 있을 텐데…… ]

< 그러게 말이다. 내가 이런 책들을 보고나 그런 취급을 받았으면 좀 덜 억울했을 텐데…… >

[ 아, 근데… 그 섹시 태극권이란 책만은 주인님 거 맞죠? 구석에 조그맣게 주인님 이니셜이 써 있었다구요. ]

< 그야, 나도 사춘기 때는… 음, 하여간 그 책도 벌써 버린 줄 알았는데… 작은형은 대체 어디서 그걸 찾아낸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그걸 원주인인 나에게 제대 선물이랍시고 이딴 책들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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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버리던가 하려고 ‘야한 책’, 소위 ‘사춘기 시절의 낭만(?)’을 모두 꺼내던 내 손길이 본능적으로 잠시 멈칫 하고 말았다. 으음… 이런 서양 잡지에는 금발에 징그럽게 크기만 한 서양 여자들 사진만 있는 줄 알았더니 늘씬한 동양 미인들도… 오호~ 이런 것도 오랜만에 보니까… 이거 후끈 달아오르는 구먼.

[ 주인님! ]

< 응? 어, 난 그냥…… >

[ 여길 보세요, 주인님! 주인님 PC의… 이 디렉토리에도 소위 야한 사진과 동영상이 가득해요. 이거 역시 진유민님께서… 음, 하지만 조만간 중요 데이터 저장 공간이 모자랄 것 같은데… 어쩌시겠어요? ]

< 그, 그래? 그건… 에… 전부 지우면 작은형이 집에 왔을 때 화를 낼지도…… >

나는 솔직히! 그 중 한 편도 못 본 게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슬쩍 요정 몽의 눈치를 살폈다. 녀석은… 다른 감정은 전부 인간과 유사하게 구성되었지만 성적인 부분만은 제외되어 있다고 했다. 지식 측면에서야 알 거 다 알지 몰라도, 그쪽의 감정이 아예 없기 때문에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냥 무덤덤 할 수밖에 없다나? 그렇지만… 나는 어차피 저 어리고 순진한 눈망울 앞에서(그게 비록 인간이 아닐 지라도) 야시시한 걸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철판이 못된다. 결국…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김씨 장군의 적반하장(?) 심정으로 명령을 내릴 수밖에!

< 젠장! 지…워. 전부. >

보라 모 여성 단체여! 나 진유준, 그대들이 원하는 대한민국 모범청년! 그대들이 증오하는(진짜?) 음란물들을 과감히 날려 버리노라!

[ 근데, 진유민님이 화내시면 어쩌시게요? 몇 개라도 남겨 두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

< …됐어. 작은형은 어차피 이런 자료 구하는데 귀재야. 오죽하면 친구들 사이에서 유민 프로덕션으로 불리겠어. >

‘무삭제’, ‘희귀’, ‘풀버전’ 같은 단어들로 치장한 자료들이 들어있던 디렉토리가 통째로 사라지고… 그런 나의 결단을 칭찬하듯 바탕 화면의 대교가 방긋 웃어 주는 것 같았다. 그래~ 내게는 대교가 있다! 음침한 이차원 세계 속이 아닌 현실의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오오~ 역시 대교는 나의 천사! 내 영혼의 청량제! 너의 눈부신 미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른 불손한 영상들이 말끔히 사라지고 마는 구나!

[ 으응…? 왜 갑자기 팔을 주의 깊게 살피세요? ]

< 없다. >

[ 예? ]

< 닭살이… 훗~! 이짓도 자꾸 하니 익숙해지나 보다. >

[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아, 몽몽 오빠가 보고 드릴 게 있대요. ]

[ 그렇습니다, 주인님. G.M이란 이니셜이 뜻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조직’을 발견했습니다. ]

< 그래? 역시 조직이었던 거야? 아- 잠깐! >

엉뚱한 일 때문에 본론을 잠시 잊고 있었다는 생각에, 다소 풀어졌던 자세와 정신을 바로 하며 몽몽의 보고를 듣기 시작했다.

[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나, 대상 조직은 죽련이나 삼합회처럼 화교들의 비밀결사인 천지회(天地會)를 전신으로 한 조직 중의 하나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 조직의 대표적인 특징은 과거의 천이단(天耳團)과 같이 ‘정보만을 취급’한다는 점이며…… ]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 천이단? 천이단 이라고? >

[ 현재까지의 정보로는 대상조직이 과거의 천이단과 가장 유사한 성향의 조직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여타 조직들과는 달리 폭력조직으로 표면화되지 않고 철저하게 비밀에 쌓여 있었기 때문에 여러 국가들의 정보 기관에서도 최근에야 존재를 인식하게 된 듯하며 공식 문서에는 아직 정식 명칭도 올라와 있지 않은 상태여서 저도 발견이 늦었습니다. ]

그런가…? 으음~ 이게 아무리 전산망을 장악한다해도 결국 컴퓨터에 기록된 정보만을 얻을 수 있는 체제의 한계인 건가?

< 그렇다면 넌 왜 그 조직을 G.M이라고 판단한 거지? >

[ 미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의 보고서 중 몇 군데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Gold Monkeys라 칭했다’라는 문구가 발견되었습니다. ]

< 화, 황금 원숭이? 그건 골든 차일드 보다 더 노골적으로 금동이네? >

[ 현재의 상황에서는 그런 판단도 가능합니다. ]

< 판단도 가능,이 아니라 당연한 거 아냐? >

[ 본래 중화권 국가들의 문화에서 원숭이는 매우 친숙한 존재이며 많은 단체나 장소, 개인 별칭에까지 Monkey라는 명칭이 쓰일 정도로 매우 대중적입니다. 때문에 ‘금동이라는 특별한 존재의 현존.’ 그리고 ‘금동과 과거의 정보단체(천이단)와의 밀접한 관계’라는 전제가 없었다면 저도 가칭 Gold Monkeys조직을 주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

그런…가? 우리 나라에서 ‘홍길동’이라는 인물 이름이 동사무소 등본 뗄 때 견본으로 쓰일 정도 인 것처럼… 중화권에서 황금 원숭이는 그리 특별한 명칭이 아니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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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일단 확인은 해 봐야겠지? >

[ 그렇습니다. 1차 확보된 재원을 이용하여 확장 체제를 구축 중이니, 곧 가칭 Gold Monkeys 조직에 대한 정보를 다각도로 수집하겠습니다. ]

벌써 ‘검은 돈’을 어느 정도 빼돌려서 그걸로 쓸만한 인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어쩐지… 비화곡의 월영당(月影堂)과 천이단의 정보전 배틀을 추진하려고 했었던 때가 생각나는군.

< 어쨌든, G.M이 천이단… 천이단 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천이단 같은 조직이 쉽게 역사 속으로 사라진 건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지만… 만약 정말 그들이 건재하다면… 그렇다면 천우신…! 내 친구 천우신도 혹시… 으음~ 그 친구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그건 정말 반가운 일이지만… 그렇지만…… >

난 또 다시 착잡해지는 기분 때문에 인상을 긁을 수밖에 없었고, 요정 몽은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 에…? 왜 그러세요, 주인님? 천우신님은 진하연님과 달리 그야말로 절친한 친구 분이셨잖아요. ]

< 그야, 임마. 우린 물론 친했지. 난 정말 녀석이 보고 싶고, 예전처럼 그 녀석과 술 한잔하면서… 제기~ 그렇지만! 만약 녀석까지 환생을 해서 내 눈앞에 나타난다면… 그럴 경우엔 정말 보통 일이 아니잖아. 대교는 자신의 의지로 날 따라 환생한 거고, 하은이는… 그래, 걔까진 그냥 우연이라고 쳐도 그 우연이 반복된다면 그건 더 이상 우연일 수가 없는 거잖아. >

[ 그런…대요? ]

< 그런대요라니? 그럼 그 잘난 타임씨가 손을 썼다는 거고, 나와 대교를 1000년 전처럼 쌩고생 시킬 생각이라는 거잖아. >

[ 어머?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타임씨, 소위 증명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가… 또 굳이 주인님을 괴롭힐지 모른다는 건… 으응~ 혹시 타임씨는 1000년 전 무림에서 주인님을 고생시킨 게 미안해서 헤어졌던 분들을 모두 이 시대에 몰아서 환생시켜 주는 건 아닐까요? ]

< …몰아서 뭘 어째? 훗~! 나도 요정 몽 너처럼 모든 걸 맘 편히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 전 그런 게 좋은데…… ]

< 나도 그런 거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타임씨가 과연… 에이 씨~ 계속 생각만 하고 있는 건 더 못 참겠다! 몽몽, 집안 상황 좀 알려다오. >

[ 주인님의 부모님 두 분은 안방에서 취침에 들어가셨고, 하은님 역시 유민님 방에서 금동과 함께 잠이 든 상태입니다. ]

< 쫓기는 녀석 치곤 참 여유 만만이로군. >

어쨌든… 본래 내일까지 하은이 반응을 보고 나서려고 했었던 계획을 수정한 나는, 곧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정글도와 소도구(무림에서 가져온)까지 몇 개 챙겨서 집을 나섰다.

20분 정도 후. 나는 몽몽이 말했던 동북방 230미터 지점의 모텔 단지(?) 앞에 서게 되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우리 동네에도 디즈니랜드가 생겼나 보다 싶었을 정도로… 뭔 놈의 동네 숙박업소들이 이렇게 화려한지 원. 본래는 옥상에서부터 천잠사(天蠶絲)를 타고 내려가 창문으로 침투할 생각이었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본 끝에 일단 목표 모텔 정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카운터의 종업원인지 주인장인지는 TV 보느라 고개를 돌려보지도 않았고, 복도며 계단에서 물씬 풍기는 자극적인 향수 냄새는 어쩐지 신경에 거슬렸다. 군대에서 휴가 나와 친구들과 근처의 방 잡고 술 퍼먹을 때는 잘 몰랐는데 멀쩡한 정신으로 와보니 이런 곳은 어째 좀……

공연히 어색한 기분으로 5층까지 올라간 나는 몽몽이 알려주는 505호실 앞에서 잠시 심호흡을 한 다음 천천히 문을 두드렸다. 설사 천이단이 맞다 하더라도 대빵(이려나? 지금도?) 천우신이 직접 왔을 리는 없겠지만……

[ 세상에, 주인님! 방안에, 방안에…… ]

요정 몽이 먼저 호들갑스럽게 방 안 인물들의 정체를 알려왔고, 그 때문에 나는 안에서 들려온 ‘누구냐’는 소리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천우신…은 아니라지만 그에 못지 않게, 아니 더 뜻밖의 녀석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금동. 골든 차일드 때문에 왔다.”

겨우 입을 열어 대답해 주자 곧 문이 열렸지만 나는 쉽게 걸을 떼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너머의 낯익은 소녀를 바라보았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설마 오늘 처음 만난 오빠를 보낼 줄은 몰랐지만……”

생글거리며 그렇게 말한… 인형처럼 작고 깜찍한 소녀는 고개를 돌려 방 안 쪽의 또 다른 소녀에게 외쳤다.

“언니, 그만 좀 해! 그 여자가 드디어 사람을 보냈다구!”

인형 같은 소녀 ‘미령’이의 말에도, TV 앞에서 헤드폰을 끼고 게임에 빠져있는 소녀 ‘소령’이는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타임씨 당신 정말… 이건 친절이요? 음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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