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41-1화 : 모자랐던 신화(神話).(1)
5-2. 모자랐던 신화(神話).(1)
산 속의 내 수련장은 잘해야 농구장 두 개 정도 크기의 공터였다. 그런 공터에 백여 명의 인원이 모여 있다가 일시에 사방으로 달아나는 광경은 나름대로 장관이었다. 보천구룡대와 일백마군의 후계자들은 내가 날려 댄 검기의 사정권 밖에 엉거주춤 서서 다음 행동을 망설이고 있었다.
전쟁터처럼 사방에 피어오른 흙먼지 때문에 전부 육안으로 보이는 건 아니지만… 저 인간들, 아직도 내 진심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군. 그렇다면……
“제 팔 결, 복룡출사결(伏龍出射訣)……”
나는 낮게 몇 마디를 흘리며 정글도를 두 손으로 모아 잡았다. 두 손으로부터 동시에 전해진 내력이 각각 두 줄기 검기가 되어 정글도를 감아 돌기 시작했다.
눈치 빠른 자들이 서둘러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려 도망치기 시작한 순간, 나는 모두를 대상으로 초식을 발동했다.
“광효폭풍(狂哮暴風)!”
미친 용이 포효하며 폭풍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생사금마도결 중에서는 드물게 문자 그대로에 가까운 초식이다. 잠시 후, 내가 정글도를 멈추었을 때는 주변에 자욱했던 흙먼지와 자잘한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사람들의 그림자 역시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까지 이렇게 간단히 전멸했을 리는……
[ 지금의 공격으로 다수의 지하무림인들이 부상을 입고 대피 중입니다. 그 중에는 홍콩에서 주인님을 도왔던…… ]
< 됐어, 몽몽. 넌 그 놈, 소군황이나 놓치지마. >
[ …알겠습니다. ]
소군황 놈은… 내게 너무나 간단히 두 번이나 얼굴을 베였다는 사실에 꽤나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 후로는 변변한 저항도 못한 건 물론이고, 급기야는 다른 마군들보다도 먼저 달아나 버렸다.
< …좋아. 전부 아주 좋아. 역시 이 곳은 최고야. >
나는 정글도를 어깨에 걸치고 잠깐 내력을 점검해 보았다. 날뛰었던 정도에 비해 소모가 극히 적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력이 소모된 직후 빠르게 보충되는 거지만 말이다.
“금동이, 너도 갈래?”
난 문득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바위 뒤에 숨어있던 금동이는 슬금슬금 기어 나와 상황을 살피더니, 곧바로 나에게 꺅꺅대며 성질을 내기 시작했다.
“미안, 미안! 넌 네가 알아서 잘 피할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사과는 했지만… 난 금동이가 지금 화를 내는 이유가 자기 자신의 안전보다도 천우신의 상자와 술항아리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 녀석은 그 와중에도 그 물건들을 바위 뒤로 가져가 보호했던 것이다.
“정말 잘했어, 금동아. 하지만… 안에 담긴 그 친구의 마음은 이미 받았으니, 천년 동안이나 수고해 준 그 물건들은… 이제 좀 쉬게 놔두자. 대신 지금은……”
금동이에게는 너무 길고 어려운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에 얘기까지 알아들었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문득 다른 일을 생각해 내는 기색이던 금동이가 산아래 쪽의 소군황이 달아난 방향을 가리키며 펄펄 뛰기 시작했던 것이다.
몇 분 후.
나는 금동이와 함께 차가운 겨울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숲 속을 달렸다. 옛날과 달리 지금은 마군황인 내가 쫓는 입장이고 다른 자들은 달아나고 있는 상황이다. 어차피 혼자서 전부를 동시에 칠 수 없는 이상 가장 비중이 높은 놈을 골라 먼저 패는 게 정석인 것이다. 물론… 그 특별한 놈에 대한 내 감정도 특별하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 몽몽! 놈과의 거리는? >
[ 주인님의 현재 속도로 약 2분 거리, 적의 도주 속도로 보아 접촉 예상 지점은 3분 20초 정도로 추정됩니다. ]
< …일행은? >
[ 6, 7명 정도로 추정되며 상시 기습 가능성이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
흐음, 그 정도야 뭐. 어디… 아예 예고를 해 줄까?
“야, 소군황! 나 지금 너에게 가는 중이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앞쪽의 숲에서 뭔가 번쩍 하는 느낌이 들었다.
느낌? 본 게 아니고?
나는 순간적인 판단과 함께 몸을 낮추었고, 그 직후 쾅! 쾅! 쾅! 요란한 총성이 울려왔다. 그러나 총탄은 전혀 어림도 없는 곳으로만 날아 들 뿐이어서 굳이 경공을 멈출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앞쪽에서 바람을 타고 몇 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 무슨 짓들인가? 정말 그걸 쓰는 거야?”
“그럼 어떻게 막아! 그, 그 사람도 허용한다고 했잖아!”
“그래! 어떻게든 피하고 봅시다!”
자중지란…? 아니,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닌가? 뭐…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지.
“초사마군의 부탁을 생각해서라도 일단 소군황만이라도 대피를……”
총을 들고 있는 마군 한 명이 하던 말을 맺지 못하고 굳어진다. 어느 틈에 어둠을 뚫고 나타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와 그의 옆에 서 있던 마군의 총구가 동시에 날 향해 움직였지만, 그들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것보다 내가 더 빨랐다. 나는 급브레이크를 조금 늦게 밟은 것처럼 그들 사이를 뚫고 지나간 후에야 신형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내게 총을 겨누었던 두 명이 그제야 총을 떨구며 자신들의 손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몽몽의 예측대로 그 두 명 외에도 네 명의 마군들이 더 서 있었지만 그들은 총이나 다른 어떤 무기도 꺼내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난 본성이 너무나 약하고 착한 걸까…? 하다못해 부상자 두 명에게 ‘끊어진 힘줄은 서둘러 병원에 가면 이을 수 있다’라고 말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오늘은 상냥한 밤이 아니었기에, 난 짧게 물었다.
“복종? 아니면 죽음?”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나의 살기와 ‘진심’을 느끼고 두려움에 질린 상태에서도 극단적인 질문에 대한 반발심과 최후의 자존심이 그들을 버티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반응은 이런 반응대로 기분 나쁘지 않다. 모순적인 생각인지 모르지만, 난 절대적인 지배를 원하는 한 편… 너무 쉽고 힘없이 무너지는 지하무림 또한 보고 싶지 않기도 하니 말이다.
“너희들의 대답은 다음에 듣기로 하지. 오늘은 그걸 가장 먼저 묻고 싶은 놈이 따로 있으니까.”
나는 그들 반대파 마군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소군황 구영웅 놈의 추격을 재개했다.
조금 전… 비록 어림도 없는 방향의 총격이긴 했지만… 어쨌든 총격이 시작되기 전에 뭔가 느낌이 왔었지…? 좋아! 위기 감지 감각도… OK!
짧게 자가 점검을 마치고 경공의 속도를 점차 올리려고 했을 때, 몽몽이 알려 왔다.
[ 목표의 도주 방향과 예상 지점으로 보아 목표물은 주인님께 따라 잡히기 전에 차량이 대기 중인 장소까지 도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 …하는 수 없군. 금동아! >
나는 내 옆을 나란히 달리고 있던 금동이를 부르고 녀석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금동이는 나나 천우신이 경공을 펼칠 때도 어지간히 따라 달릴 수 있는 스피드가 있어서인지 다소 자존심 상해하는 눈치였지만, 결국 몸을 날려 내 등에 매달렸다. 순간적으로 가속도를 붙이며 새벽공기를 가르기 시작하자 웬지 묘한… 그리웠던 기분이 떠올랐다.
부딪쳐 오던 공기의 저항이 사라져 가고 발바닥이 땅을 차는 느낌마저 점차 멀어지며 마치 육지 위를 비행하는 듯한 이 느낌은… 연옥도 수련 시절에 공공법의 최고 스피드를 기록했을 때와 가까운… 아니, 거기에 금동이가 있기 때문인가…? 그렇군. 후후~ 그때 난 발목에 돌을 매달고 등에는 금동이를 업고 있었지. 으음… 그런데, 그래도 늦었나…? 간만에 내력 조절을 의식하지 않고 스피드에 올인한 보람도 없이……?
산에서 거의 다 내려온 시점에서 드디어 따라 붙었지만, 이미 소군황 놈은 그곳에 세워져 있던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있었다.
내가 이 스피드를 더 유지할 수 있는 거리는? 놈의 차가 출발하자마자 낼 수 있는 스피드는?
재빨리 계산해 봤지만, 나는 놈의 차가 부아앙- 출발하는 순간 곧바로 그런 계산 자체를 포기해야 했다.
치이~ 차는 좋은 거 타고 왔네. 저런 급 출발에 급 가속이 가능하다니 말야.
나는 결국 경공 운용을 거두어 멈춰 섰고, 소군황의 차는 벌써 멀찍이 튄 상태였다. 그러나… 놈에게는 불행히도 놈이 탄 차의 앞에는 거의 일방 통행만이 가능할 정도로 좁은 길뿐이었다.
덕분에 이동 경로와 지점은 단순. 스피드는 약간 유동적. 현재 내 위치에서 저격(?) 가능한 마지막 포인트는……
난 정글도를 옆으로 비켜들며 놈에게 전음을 보냈다.
< 월광절화결(月光切花訣)… 청섬백(靑纖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