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43-1화 : 후회하지 않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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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43-1화 : 후회하지 않았다.(1)


5-4. 후회하지 않았다.(1)

앞의 소이탄 발사기는 조금 뜻밖이었지만… 저 하인드 헬기들이 있다는 것은 이곳에 오기 전에 몽몽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금동이에게 전투헬기를 만나 공격받았을 때의 반응을 테스트해 봤던 거고, 몽몽은 물론 나와 저 하인드 헬기의 대전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기도 했다.

그 결과는… 승률 50%. 즉, 상황에 따라 질 수도 이길 수도 있다는 건데 지금은 그 승률이 더욱 낮아진 상태이다. 사방이 탁 트인 벌판이라는 지형도 불리하지만, 조금 전까지 있었던 전투로 인해 나의 비인간적인 전력이 노출되어 하인드 헬기 측에서도 방심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불행히도, 그 낮은 승률조차 저 괴물 하나를 상대했을 경우를 상정한 것이었다.

50% 이하의 승률밖에 나오지 않는 적기가 총 3기면 대체 어떤 승률이 나오는 걸까? 훗! 그냥 0%라고 하는 게 나으려나…? 하지만……

사실은 결코 0%가 아니다. 몽몽이 그 전투 시뮬레이션을 마지막으로 한 후 이미 10시간이 넘게 지났다. 몽몽에게 저 하인드 헬기에 대한 자료가 얼마나 정확히 입력되어 있는지 몰라도 나의 전투력에 대한 자료는 이미 지난 일…! 불과 10시간 동안에도 인간은, 나 진유준은 진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사이 하인드 헬기들은 40여 미터 정도 거리의 상공에 도착해 있었다. 거대한 사신처럼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더 이상 접근하지 않은 채 전자 장비로 날 관찰하고 있는 기색은 오히려 조심스런 암사슴(hind)에 가깝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곧… 오겠지? 우선은 웬만한 차체를 순식간에 걸레로 만들어 버린다는 캐를링 포를 긁어대는 것으로 인사를 해 올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강력한 파괴력의 로켓포를 연사하여 아까의 다연장 소이탄 이상으로 이 지역을 초토화시킬 것인지… 어느 쪽이든 내 쪽에서의 반격 책은 저 하인드의 방탄 장갑을 깰 수 있는 월광절화결 뿐이다.

그러나… 나의 월광절화결은 아직 속도가 너무 느려서 최소한 15미터 거리 안에서 쓰지 않으면 하인드의 기동력을 무력화 할 수 없다. 또한 현재 나의 내력으로는 쓸 수 있는 것도 단 한 번……!

그러니까 이번 승부의 요점은 어떻게 저 높은 곳에서 쏟아지는 집중포화를 뚫고 15미터의 거리를 좁히느냐 인데… 만약 실패하면… 끝내 월광절화결이 빗나가기라도 하면… …훗! 아무려면 어떠냐. 내게는 월광절화결이 전부가 아니다. 어떻게든, 어떤 식으로든 다시 저놈들의 약점을 찾아내고 공략하여 추락시켜 주면 되지.

자아- 가자. 가자, 진유준!

[ 주인님! ]

< 윽, 몽몽! 왜? >

팽팽하게 당겨져 막 쏘아지려던 상태였던 나는 다소 퉁명스럽게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에게 몽몽은 드물게 조심스런 음성으로 말했다.

[ 적기는 레이저 거리 측정기 등의 전자 장비를 탑재한 전투 헬기입니다. ]

< 알아. 니가 벌써 다 얘기했잖아. >

[ 지금까지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상대가 전자 장비를 쓰고 있다면…… ]

몽몽이 지금까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되지만… 그보다!

[ 허락하신다면 적기의 장비를 무력화시키고 싶습니다만…… ]

에고고- 몽몽에게는 그런 게 가능하지, 참!

< 에이~ 진작 말하지 그랬어. 깜박 했지 뭐냐. >

[ 주인님……? ]

< 좋아, 몽몽! 놈들의 장비를 부탁해. 단, 소군황과 지하무림 사람들이 보기에 티가 나지 않게 내 공격이 수월해 질 정도로만! >

[ …알겠습니다. ]

쯧…! 공연히 긴장했었네. 그럼 어디… 가볍게 가볼까?

나는 금동이까지 불러 등에 업고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고, 곧 바로 시작된 적기의 무시무시한 공습을 당당히 정면으로 뚫고 나갔다. 거의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나의 주위와 뒤쪽의 땅이 초토화 되는 모습, 그래도 멈추지 않는 나의 질주는 아슬아슬하고 스펙타클한 장관…이기를 나는 바랬다.

몽몽의 서포트에 의해 보이는 것보다 상당히 안전하고 빠르게 육박해 가자, 그제야 당황한 하인드들이 다급하게 산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나는 3기의 하인드 사이의 공중으로 도약하며 청섬백을 펼쳤다. 세 개의 창백한 초승달에 의해 서걱! 서걱! 서걱! 3기의 하인드가 타타늄 장갑이고 나발이고 종이장처럼 잘려져 나갔다.

나는 공중에서 최대한 멋지게 보이도록 화려하게 공중제비를 넘은 후 모래사장에 착지했다. 돌아보며 확인할 것도 없이, 마치 귀찮게 날아다니는 잠자리 세 마리를 잡은 것뿐이라는 듯 태연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나의 등뒤로 거대한 하운드의 몸체들이 추락했고 요란한 폭음과 함께 치솟는 불길로 사막의 새벽을 밝혔다.

치솟는 폭연과 불길을 배경으로 뻔뻔스럽게 온갖 폼을 다잡으며 걷고 있는 나에게 몽몽이 말했다.

[ 헬기의 승무원들은 추락직전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

< 상관없지만… 알려 줘서 고맙다, 몽몽. >

[ 그런데… 주인님. ]

< 훗~! 니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안다. 지금까지는 나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일에는 너의 도움을 거절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가급적 최소한의 도움만을 요청하더니 지금은 왜 주저 없이 너의 결정적인 서포트를 받은 거냔 말이지? 그러고 나서도 이렇게 뻔뻔하고 말야. >

[ 뻔뻔하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한 것 같지만, 요점은 맞습니다. ]

< …내가 그런 행동을 고수해 왔던 취지는… 지금도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은 사실 그렇게 순수하지 못했어. 나 자신의 힘만으로 어떤 일이든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런 능력에 대한 욕심과 함께… 난 결국 두려웠던 거야. 네가 떠나고 없을 경우를 두려워하는 나약함…! 그래… 하지만 이제 난 자신 있거든. 니가 있으면 있는 대로 최대한 활용해 도움을 받고… 그렇게 지낸다 하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지기라도 하면 또 없는 대로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자신이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

[ …알겠습니다, 주인님. ]

< 너도 알겠냐, 요몽? >

[ 에, 예? 저요? ]

< 그래 임마! 몽몽보다는 너 들으라고 굳이 설명해 준 거였어. >

[ 어…… ]

< 니가 산에서부터 나오지 않게 된 것이 나에게 삐쳐서인지, 날 걱정해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걱정하는 거라면 걱정하지 마. 난 변하지 않고 예전 그대로의 나야. >

[ 아…! 그, 그렇지만…… ]

< 그렇지만, 뭐, 임마. >

[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아, 아니에요. 담에 물어 볼 게요. ]

< 훗~! 녀석. 알겠다. >

요몽이 뭘 묻고 싶은지는 알 것 같았다. 요몽이 정상적인 날 판단하는 기준 중 가장 큰 기준은 아마도 ‘인간 생명의 존중’,
따라서 내가 지금 ‘진심으로 소군황을 죽이려 드는 걸까?’… 이 부분이 가장 궁금한 것이다.

< 몽몽! 이제 다시 소군황을 연결해 줘. >

[ 알겠습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

몽몽의 우려와 달리, 놈은 곧 전화를 받았다.

“자아- 소군황! 또 남은 게 있으면 빨리 꺼내봐! 설마 이게 다는 아니지? 응?”

확실히 제대로 대꾸할 여력은 없는 것 같지만……

[ 현재 소군황의 신체… 특히 뇌파가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

“자, 이제 어쩔 거지? 아직 그 저택에는 많은 병력이 남아 있잖아! 안 그래? 아직 포기하지 말라구!”

그래… 몽몽의 체크한 바로, 아직 놈에게는 군대가 더 남아있다.
내가 소군황이라면 이쯤에서 깨끗이 손 들고 항복해 버리던가, 아니면 끝까지 싸울 것이다.
지금까지의 싸움에서 상대가 소모한 내력을 계산해 보고 전투 패턴에서 약점을 찾아내어 남은 병력으로 어떻게든 공략해 볼 것이다.
자아- 너의 근성을 보여 봐라, 소군황!

[ …소군황은 지금 막 휴대폰을 버리고 도주를 택했습니다. ]

쳇~! 악바리가 못되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근본까지 나약하고 지저분한 놈이었을 줄이야.
그렇다면 역시… 이 녀석은 죽을 수밖에 없다.
나는 작게 한숨 지으며 경공을 발동하여 고비 저택을 향해 달렸다.
이제까지와 달리 가로막는 자들이 전혀 없었기에 불과 몇 분만에 도착할 수는 있었으나, 그 사이 소군황 놈도 용케 떨리는 발걸음을 재촉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 …무장이 되어 있지 않은 민간 소형 헬기입니다. ]

저택의 옥상에서 떠오른 것은 몽몽의 설명 그대로의 작고 귀여운(?) 소형 헬기였다.
허공에서 방향을 잡기 위해 선회하는 헬기의 움직임이 어딘가 이상해 보인다 했더니… 조종석의 유리 너머에 보이는 조종사는 소군황 자신이었다.
나는 즉시 메고 있던 활을 꺼내 들고 차가운 강철 화살을 메겼고, 그런 나를 본 소군황 놈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지는 것 같았다.

투앙-!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첫 번째 화살이 조종석 유리에 꽂혀 들어갔다.
다음 순간, 놈의 헬기는 급격히 선회하며 금방이라도 추락할 것처럼 제멋대로 날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어찌어찌 움직임이 좋아지는 것으로 보아 놈이 직접 화살에 맞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두 번째의 화살을 메겨 당긴 채 놈의 헬기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고 놈도 아득바득 달아났다.
내게서 멀어지기에 급급해 이동괘도가 단순해 졌다 싶었을 때, 투앙-! 두 번째 화살이 헬기의 뒤쪽 연료통을 향해 쏘아졌다.

[ 명중했습니다. 하지만 폭발 가능성은 적습니다. ]

그렇…군. 비록 연료를 줄줄 흘리면서 날고 있기는 해도 간단히 터져 주지는 않는군.
어쩐다? 강철 화살은 본래 두 발 뿐이었다.
일반 화살에라도 내력을 넣어 쏴 볼까? 아니면 차라리 정글도로 삼시전결을… 으음… 아니, 아니… 서두를 필요는 없지.

나는 추격을 멈추고 활을 거두어 들였다.
내가 경공을 멈추자 놈의 헬기는 비틀거리는 기색이 여실함에도 차츰 내게서 멀어지더니 곧 커다란 모래 언덕 너머로 사라져 갔다.

< 몽몽! 놈의 헬기가 버틸 수 있는 한계를 계산해 줘. >

[ 알겠습니다. ]

< 그리고 다른 헬기나 차, 여하간 사막을 가로지를 수 있는 장비를…… >

응?

저택 쪽에서 웬지 야단스러운 기색이 느껴져서 돌아보니 구양대주를 비롯한 대주들과 마군들이 쏟아져 나와 내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인정파 반대파를 가릴 것 없이 예전과 똑 같은 표정이 되어 몰려 온 그들은 내 앞에서 일제히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이대로 먼저 인사를 받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

[ 주인님! 아무래도 추격을 서두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소군황이…… ]

…뭐? 이런 제기, 인사 받고 어쩌고 할 때가 아니로군.

“전 지하무림이 천주께 다시 정식으로 인사 올……”

구양대주는 새삼 감격스런 목소리를 냈지만, 나는 손을 저어 그의 말을 막았다.

“미안하지만, 인사를 받는 건 아직 일러.”

나는 다소 냉랭한 어조로 말하며 모두를 지나쳐 다시 저택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구양대주가 황급히 따라붙으며 말했다.

“끝내 굴복할 용기조차 내지 못한 자입니다. 이젠 저희들에게 맡기셔도……”

“아니! 마무리까지 내가 할 거야.”

“그, 그러시다면 이제 모시는 것만이라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건… 그래야겠군.”

허락은 구양대주에게 했지만 아무래도 이번 일은 구양대주의 몫이 아닌 것 같았다.
저택 안에서 군용 짚차 한 대가 기운차게 튀어 나와 모래먼지를 날리며 이쪽으로 오는데… 운전자는 짝퉁 흑주 은사마군이었고 조수석에는 자룡대주가 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천주. 저택에 남아있는 헬기가 모두 운행 불능이라 하는 수 없이 이 것이라도……”

“괜찮아. 좋아, 가자!”

나는 훌쩍 몸을 날려 짚차의 뒷좌석에 올라탔다. 구양대주는 어쩐지 복잡한 표정이 되어 배웅했지만 은사마군은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너무나 기쁜 표정으로 부아앙- 엑셀레이터를 밟기 시작했다.
구양대주나 다른 자들은 내가 보여 줄 건 다 보여줬으니 멈출 것이라고 여긴 것과 달리, 이 여자들은 내가 끝까지 소군황을 쫓을 것이라고 예측한 모양이었다.

< 자룡대주! >

“예, 천주!”

머리를 쓸어 올리며 고개를 돌려 대답하는 자룡대주의 표정도 은사마군 못지 않게 상큼하고 밝았다.

< 당신 정도 내력이면 전음도 어느 정도 쓸 수 있지 않나? 그것도 못 배웠어? >

“아, 아닙니다. 짧은 거리라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천주께 전음을 쓰는 것은 무례한 짓이라 배웠습니다.”

대체 왜 그게 무례한 짓이라는 전통이 생긴 거지? 음… 전음을 ‘귓속말’이라고 인식한 건가?

< …됐어. 쓸 수 있을 때는 써도 좋아. >

< 감사합니다, 천주! >

< 은사마군도 전음을 써도 좋아. 두 사람은 본래 아는 사이였나? >

< 예, 천주! >

여자가 동시에 너무나 씩씩하게(?) 대답한다. 둘이 같이 왔길래 그냥 한 번 물어본 건데 정말 아는 사이였다니…
그럼 은사마군이 사라진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던 건가? 지하무림의 수뇌부는 젊은 여자의 비율이 극히 낮지만 양에 비해 질은 상당히 우수한 편… 음, 흠! 내가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지.

< 몽몽. 보고를 계속 해봐. >

[ 예, 주인님. 조금 전 소군황은 어디론가 무선으로 구조요청을 했으며, 그것을 수신한 곳은 67.3KM가량 떨어진 ‘군사기지’였습니다. 정식 기지 명은 ‘6676 기상관측대’ 표면적으로는 기상 관측을 위한 설비와 소규모 병력만이 주둔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미국 정보부와 중국 국가중앙군사위원회의 기밀 문서를 추적, 분석한 결과 ‘핵미사일 기지’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

핵… 미사일이라…! 하아~ 말이 씨가 된다더니, 정말 거기까지 가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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