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43-4화 : 후회하지 않았다.(4)
5-5. 후회하지 않았다.(4)
다시 또 얼마 후.
나는 몽몽의 안내에 따라 간단하게 목적지로 가는 입구에 도착하여… 척 보기에도 압도적인 바위산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거의 대부분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졌다는 이 거대한 바위산도 사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내 시야를 초월한 저 너머까지 얼마나 넓게 바위산들이 이어져 있는지는, 이미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바가 있음에도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오늘 내가 모두를 이끌고 가야 할 목적지는 바로 그 광대한 바위 산 지역의 아래… 어쩌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깊고 광활할지도 모를 지하세계에 숨겨져 있다. 천우신이 두 번째 상자의 바닥에 남긴 글은 ‘한 발 물러서서 살피면’이었고 그 말처럼 한 발 뒤로… 즉, 다시 상자 잠금 장치의 글귀로 돌아가 분석해 봤을 때 나왔던 건 바로 이 곳의 ‘좌표’였던 것이다.
난 그런 지하세계로 향하는 입구, 그러나 그런 것치고는 상당히 작아서 사람 두 명이 나란히 서면 딱 맞을까 싶은 입구 앞에서 얼마간 더… 다른 마군들의 집합을 기다려 줘야 했다. 본래 지하무림은 다른 무림 문파들과는 달리 군대로 치자면 ‘특기병’들의 모임인 셈이라 무공이나 신체적 능력은 거의 일반인에 가까울 정도로 약한 마군도 있었다. 그래서 난 도착 순서에 차이가 있는 것도 당연한 거라 생각하고 느긋하게 기다렸지만, 정작 나와 비슷하게 도착한 구양대주와 자룡대주 등은 꽤 불편한 마음으로 다른 마군들의 집합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특히 구양대주는 초조하게 연신 인원을 체크하고 있더니 드디어 내게 보고했다.
“소인을 포함한 총 100인의 대주와 마군들의 집합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렇…군.”
“몇몇 마군들이 그 동안 이런 상황을 대비하지 못해 결국 천주를 기다리시게 한 점, 어떻게 사죄 드려야 할지……”
내가 나보다 늦게(그래봐야 이십여 분 정도지만) 집합한 모두를 찬찬히 훑어 본 건, 구양대주나 초사마군처럼 나이 지긋한 노인네들도 많은 데 나 때문에 낙하산까지 타고 공수훈련 받듯 고생하는 것이 미안해서였지만, 아직은 풀어주기 싫어서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됐어. 오랜 세월 멋대로들 살다보니 둔해진 자들도 있겠지. 하지만… 앞으로는 각오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어쩔 수 없는 여건에서 애써 힘들게 보조를 맞춘 자들은 나의 말이 생트집으로 느껴질 법도 했지만… 지금 대부분의 마군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알아서 반성하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군기가 들어서 무조건 군말 없이 따르기 시작한 분위기는 당연히 원하던 바!
“자, 그럼… 가자.”
나는 먼저 몸을 돌렸고, 모두가 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따르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앞장서서 입구를 통과해 들어가며 모두에게 전음을 보냈다.
< 우리 지하무림의 세 번째 귀물은… 이 동굴 어딘가에 잠들어 있지. 굳이 말하자면… 이 미지의 지하세계가 곧 ‘거대한 천연의 상자’라고 할까? >
사실… 이 입구와 동굴의 어느 정도까지는 이미 발견되고 탐사되어 중국 정부에 의해 관리되는 지역이었다. 지하무림의 정치력에 의해 지금은 관리인들이 임시로 철수한 상태여서 아무도 남아 있지는 않아도 드문드문 설치되어 있는 인공의 조명 장치들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지역은 아주 일부이며 그 앞으로는 내 표현 그대로 ‘미지의 세계’인 것이다.
[ 현재까지 장가계에서 발견,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곳 중 가장 유명한 곳은 ‘황룡동굴’입니다. 이 동굴은 그와 비슷한 규모로 추정되며 황룡동굴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확인되기에는 많이 세월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
몽몽이 대략이라도 수치를 말하지 못하고 단지 ‘많은 세월’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오히려 이 동굴이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감이 잡힌다고 할까…? 어쨌든… 처음에는 많은 이들을 인솔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잘 못 느꼈지만… 이 동굴의 규모와 신비로움은 볼수록 정말 감탄스러울 정도이다. 비화곡의 성지와 와룡전(臥龍殿)의 동굴들은 사실 딱딱하고 인공적인 느낌이 너무나 강했었는데 이 곳은 달랐다.
이런 동굴에서 천장의 고드름처럼 늘어진 종유석, 땅에 대나무처럼 솟아오르며 자라고 있는 석순의 성장 속도가 일년에 0.1mm 정도라는 것도 아무리 무식한 나라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면서도 실감나지 않는 건 저 1M 정도의 석순이 1만 년이라는 세월의 노력이 들어간 자연의 예술품이라는 것과 그보다 더 큰 석순이며 종유석을 끝도 없이 만날 수 있다는 사실, 심지어 석순과 종유석이 만나 무수한 석주(石柱)를 이룬 곳도 보인다는 점이었다. 수 만년… 혹은 무한히 존재하며 무한히 성장하는 생명체 속에 들어온 느낌이라고 할까……
이런… 이렇게 세월의 단위가 달라 멈춘 것과 마찬가지인 곳이라면… 그렇다면 고작해야(?) 천 년 전에 이 곳에 왔을 천우신도 지금의 나와 똑같은 풍경을 보았다는 얘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불연듯 가슴속에 벅찬 느낌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흘러들어오는 아쉬움도 있었다.
만약 내가 그 당시… 대교와 함께 이 곳에 왔더라면… 그랬다면 나는… 나와 대교는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장소 하나를 공유할 수도 있었을 것을……
[ …주인님. ]
< …왜, 몽몽. >
[ 그 쪽이 아닌 것 같습니다. ]
< 아, 그, 그래? >
나는 멍하니 엉뚱한 곳을 향하려던 발걸음을 돌려 몽몽이 알려주는 쪽으로 진로를 수정해야 했다. 다행히 가장 빨리 날 따라오던 자룡대주조차도 약간 거리를 두고 있던 참이라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는 못한 것 같았다.
쯧…! 정신차리자, 진유준. 지금은 그런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다. 난 지금 자그마치 100명의 수하들을 책임지고 인솔하는 몸이 아닌가.
< 모두… 전음으로 대답해라. >
< 예!!!!!!!!!!!!!!!!!!!!!!!!!!!!!!!!!!!!!!!!!!!!!!!!!!!!!!!!!!!!!!!!!!!!!!!!!! !!!!!!!!!!!!!!!!!!!!!!!!!! >
으음… 실제 목소리의 대답이나 환호성이야 익숙하지만, 백 명분의 전음은 처음이라 느낌이 꽤 색다르군.
하긴 환호성 같은 거야 본래 그런 거라고 해도 보통 백 명이 동시에 귓속말을 해오는 경우는 없을 테니……
< 이제부터는 설치된 조명도 없으며, 천년 전 내 친구와 지하무림의 선조들이 다녀간 이후 아무도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을 구역으로 들어가는 거야. 다들 준비 한 불을 꺼내고… 길을 잃지 않도록 더욱 주의해. >
< 명심하겠습니다!!!!!!!!!!!!!!!!!!!!!!!!!!!!!!!!!!!!!!!!!!!!!!!!!!!!!!!!!!!!!!!!!!!!!!!!!!!!!!!!!!!!!!!!!!!!!!!!!!!! >
< 그리고… 중간과 후위에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역할은 구양대주와 은사마군 명부화에게 맡긴다. 모두 두 사람의 지시에 따르도록! >
< 복명!!!!!!!!!!!!!!!!!!!!!!!!!!!!!!!!!!!!!!!!!!!!!!!!!!!!!!!!!!!!!!!!!!!!!!!!!!!!!!!!!!!!!!!!!!!!!!!!!!!! >
내 지시에 따라 구양대주와 은사마군이 뒤로 빠지기 시작했는데 그 중 명부화가 살짝 전음을 보내왔다.
< …감사합니다, 천주. >
그녀의 전음은 내게만 보내 온 건데도, 눈치 빠른 자룡대주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반짝이며 은사마군, 짝퉁 흑주 명부화를 보는 것 같더니 슬며시 내게 가까이 따라 붙었다. 그녀는 자신만 가까이 남은 것이 오히려 만족스러운 듯 미소지으며 전음을 썼다.
< …천주. 천주께서는 물론 과거 이 곳에 와 보셨겠지만 저는 처음이라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 >
< 아니. 나도 처음이야. >
< 예? >
< 그 친구가 목적지의 좌표를 남겼기에 그 곳을 찾아가는 것일 뿐이야. 이제부터는 나도 길을 몰라 헤맬 수도 있으니 잘 따라오고… 또한 어디서 어떤 것이 튀어나올 지 모르니 알아서 조심해. 특히… 지하수로에 빠지기라도 하면 나도 구해주기 어려울 거야. >
< 아…… >
이런 동굴에서의 전형적인 겁주기 멘트였지만, 자룡대주는 정말 겁을 먹은 듯 주위를 돌아보며 마른침을 꼴깍 삼킨다.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걷던 발 밑에 새삼 엄청 신경을 쓰며 슬며시 내 등의 배낭 끝을 잡는 그녀의 모습은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실상은 별로 위험하거나 헤맬 일이 없는 것이, 동굴 안에는 천이단(天耳團)과 지하무림의 춘전(春典. 무림 각파의 자체적인 암호) 중에서 노부(路符. 길에서 쓰는 춘전.)가 번갈아 가면서 남겨져 있었다.
그런데 문득… 다른 걱정이 한 가지 들기는 했다. 내가 아까 마군들이 내게 불만이 없어 보인다고 했을 때, ‘대부분’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아직도 몇몇 마군들… 초사마군과 그의 일파였던 자들 일곱 명이 아직도 약간 떨떠름한 표정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초사마군 같은 경우는 비록 지금 겉으로 굴복한 태도를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 어딘가 껄끄러운 구석이 느껴지는 것이… 자기 자신의 감정은 둘째 치고라도 아끼는 제자의 몰락에 대한 분노만은 씻을 수 없다는… 혹은 또 다른 어떤 감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여한간 나는 초사마군에게서 아직도 ‘완전한 굴복’을 한 게 아니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만약, 초사마군과 그 일파가 다시 뭔가를 꾸민다면…
그래도 역시 날 직접 노릴 생각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굳이 가능성을 들자면 이 동굴에서 폭탄 같은 걸 터트려서 다 같이 죽자는 막가파 동귀어진(同歸於盡) 정도 일 것 같은데……
확실히 아주 가능성이 없는 가정은 아닌 것도 같지만… 나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초사마군이 소군황 때문에 내게 원한을 품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역시 지하무림의 후예… 설마 그 정도로 막가는 인생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초사마군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소군황을 폐인화 시킨 걸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그리고 초사마군과 남은 자들에 대해서는 일단 신경을 꺼두기로 했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법이 아니라는 건 내가 더 잘 알고… 끝까지 날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시는 소군황의 경우처럼 엄한 짓을 하지 못한다면 된 거다. 그 이상은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차원이 아닐 테니 말이다.
< …몽몽. 아직 멀었냐? >
[ 약 5분 정도 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 됩니다. ]
< …원판 놈이나, 여하간 다른 사람들의 흔적은? >
[ 조명이 설치되어 있던 마지막 지점이후로는 인적이 없습니다. ]
앞의 상자 두개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 정도 거리를 오가면서 몽몽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흔적을 말끔하게 없애는… 놈이 그렇게까지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면 놈도 두 번째 상자까지가 한계였고 천년 전의 천이단에서 쓰던 좌표는 알아보지 못해 이 곳까지는 못 찾아 온 것일 수도 있으려나?
< 몽몽. 천우신이 내게 천이단의 지도를 보여주며 천이단 만의 좌표 쓰는 법을 알려 준 게 언제였었지? >
[ 주인님께서 ‘북천여제(北天女帝) 자옥령’과의 비무를 마치고 마군황에 오르기 위해 출발한 이후였습니다. ]
그래… 그랬었지. 그렇다면 몽몽의 전 주인인 ‘미래 여자 싸가지 진’이 몽몽의 데이터를 모두 백업한 건 그 이후가 확실하고… 쯧~! 원판 놈도 천이단의 좌표를 알아 볼 수 있었겠군. 그렇다면 놈이 상자를 미리 열어보고 몽몽의 스캔을 막는 물질을 발라 놓았던 건 역시 그냥 가벼운(?) 장난일 뿐이었던 건가? 이 곳까지는 별로 흥미가 없어서 오지 않았을 뿐인 거고……
나는 다시 기분이 나빠지려 했지만, 애써 그런 감정을 털어 냈다. 놈이 지금까지 어떤 짓을 꾸며오고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일일이 신경 쓰는 건 나만 피곤해 지는 일이다. 나 자신이 비화곡주 역할을 하고 있을 때 너무나 잘 느꼈었던 것처럼 놈은 본래 제정신일 때가 더 적었다는 놈이니까 말이다.
으음~ 그런데 뭔가 좀… 새삼 원판 놈을 생각하다보니… 최근 내가 놈에 대한 어떤 점을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네…? 뭐…지? 놈에 대한 대응 심리가 안정된 것과는 또 다른… 분명 다른 중요한 걸 알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놓치고 지나온 듯 하기도 하고……
[ 주인님! 도착했습니다! ]
< 아, 그, 그래. >
생각에 빠져있던 나는 불쑥 코앞에 나타난 벽에 조금 놀라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고, 그 때문에 미처 서지 못한 자룡대주가 등 뒤에서 쿠욱 부딪쳐왔다.
“천주. 죄송… 어멋? 조심하세요, 승룡대주(乘龍隊主)!”
“어… 미안하오, 자룡대주.”
나와 자룡대주 말고도 다들 좁은 동굴 길을 다닥다닥 붙어오다가 줄줄이 추돌 사고를 냈는지 뒤에서 서로에게 사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100중 추돌 사고를 낸 운전자(?) 답지 않게 뻔뻔한 태도로 모두에게 조금씩 더 물러서라고 명령하며 정글도를 치켜들었다. 원판 놈에 관한 생각은 잠시 젖혀두고… 지금은 마지막 문을 열 때였다.
< 몽몽. 이 벽의 너머가… 확실히 맞는 거지? >
[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문 역시 천년 정도의 세월 동안 아무도 손을 댄 흔적이 없습니다. ]
겉으로 보이는 벽의 모습은 다른 곳처럼 석회암이 녹아든 물이 흘러내리며 형성된, 약 10CM 정도 두께의 석피(石皮)때문이라는 얘기였다. 몽몽은 그 돌의 가죽 속에 감추어진 또 다른 석재 문을 비추어 주었고, 나는 그 라인을 따라 정글도를 휘둘러 잘라냈다. 그 다음 장력을 돋구어 밀어보니 문은 싱거울 정도로 쉽게 스윽 기울어져 안으로 쿠웅- 쓰러졌다. 나는 새삼 감개무량한 기분으로 석실 안에 첫 발을 디뎠다.
“아~!”
나 다음으로 실내에 들어선 자룡대주가 먼저 작게 탄성을 울렸고, 한 명씩 안으로 들어서는 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따악 입을 벌리고 있었다. 석실 안은… 내벽 곳곳에 야광주(夜光珠)가 촘촘히 박혀져 있어서 어두운 동굴을 오랜 시간 작은 후레쉬 불빛만을 의지한 채 지나 온 모두에게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빛을 제공하고 있었다. 공간 또한 매우 넓어서 나와 모든 대주, 마군들이 모두 들어와도 절반도 채우지 못할 지경이었으며 천장의 높이도 족히 20미터가 넘을 것 같았다.
“세상에… 우리 지하무림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자룡대주는 거듭 감탄하며 야광주의 불빛에 비친 천장의 종유석이 뽐내는 기묘한 아름다움에 취해 버린 것 같았고, 그건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이 석실 가장 깊숙한 지점의 벽을 한 번 바라본 후로 거기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석실 벽에 새겨진 글자들… 천년 전 나와 칼을 섞었던 지하무림의 대주와 마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필체가 모두 다른 것으로 보아 각자 자신의 손으로 새겨 넣은 것이 분명했다. 문득, 당시의 지하무림인들이 이 석실에 모여들어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 광경이 보이는 듯했다.
그래… 세 번째 상자는 없고… 이 곳 자체가 바로 세 번째 상자… 지하무림의 귀중한 유물인 것이다. 그 때의 그들이 나나 후손들에게 남기는 다른 말, 다른 글이 없어도 그들의 마음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은… 아니, 아닌…가? 뭔가 이름 말고도 다른 글이 있다. 여기… 나의 바로 눈 높이에 쓰여진 짧은 몇 자의 문장……
우리는 후회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