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44-2화 : 원판의 위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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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44-2화 : 원판의 위기?!.(2)


< 몽몽. 지금 이 놈 어딨는지 알 수 있나? >

[ 조금 전의 수신지는 DP 본사로 나오지만, 그곳을 중계지로 한 다른 장소일 가능성도 높습니다. ]

< 그럼 대교는? 그녀의 현재 위치도 아직 파악 안 되었나? >

[ 역시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소속사의 스케줄 조정 및 DP와의 통화 내용으로 보아 1시간 이내에 홍콩을 떠나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

홍콩을 떠난다…? 게다가 하필 이런 때에 몽몽이 파악하기 어려운 경로로 움직인다는 건… 일단 새로운 원판 놈의 수작으로 생각하고 봐야겠지…? 만약 그렇다면 놈은 대체 대교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

< …오삼숙. 오삼숙에게 연락해 봐. >

[ 이미 같은 소속사의 한 인물로 위장하여 통화해 보았습니다만, 그는 이번 여정에서 제외되었다고 합니다. ]

< …GM! 첸이나 미령이로부터 연락 없었어? >

[ 그렇습니다. 추가로 의뢰할까요? ]

< 그래. ‘그들이 봤을 때 수상한’이 아니라 ‘무조건’ 대교의 행적을 알아내라고 해. >

[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밖에 대기 중이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

어… 그렇군. 명부화나 구양대주는 몰라도 자룡대주의 발걸음 소리는 확실히 티가 나는군.

내가 점차 초조해지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있자니까, 구양대주와 자룡대주가 빠른 걸음으로 석실에 돌아와 구양대주가 먼저 보고를 시작했다.

“지시하신 대로, 현재 신불산 인근에 있는 천주의 친구 분들과 서울의 양친, 각 지방의 일가친지에까지 호위병력을 배치했습니다.”

“벌써 그런 곳까지?”

“예. 실은 지난번 친우 분들의 사고 직후 다른 분들의 소재 파악도 미리 해두기 시작했었습니다.”

“과연… 구양대주로군. 고마워.”

“아, 저 역시 지시대로 홍콩행 특별기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미안하지만… 자룡대주. 그건 잠시 보류야.”

“예? 그럼……”

“그건 일단 대기. 그리고 구양대주! 보고에 주가혜에 관한 것이 빠져있었지?”

“그러합니다. 죄송하지만 그녀에 관한 건 뜻밖이라… 아, 하지만 곧 완벽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물론 그래야지. 그런데… 일이 좀 급하게 된 것 같아. 그래서 난 이미 GM에게 그녀의 수색을 의뢰했어.”

“예? GM이라면 천이단을 전신으로 한……”

“어, 어째서! 천주! 천주께는 저희들이 있잖습니까!”

“진정해, 자룡대주. 어때…? 이번 기회에 우리 지하무림의 정보력을 내게 확인시켜 주겠나?”

음…? 경쟁심리를 자극하려고 한 말이었는데… 어째서 저들의 얼굴에 빠르게 득의만만… 그런 표정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거지?

“천주가 계시지 않은 지하무림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지하무림은 GM조차 따르기 어려운 정보망이 이미 구축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반드시 GM보다 먼저 천주께 주가혜의 행적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침착하고 신중한 구양대주가 이렇게 자신감을 보일 정도인 건가, 지하무림의 정보력이?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세월의 흐름과 함께 더욱 정보조직으로서 특화된 GM과 달리 저희들은 완전히 일반 사회에 동화되었습니다. 즉,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다’는 말은 과거의 천이단에서 저희 지하무림으로 옮겨졌다고 자부합니다.”

흐음…! G.M.과 정말 그 정도로 입장이 바뀌었는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좋아. 기대하겠어. 그럼 기다리는 동안 한 가지 더… 두 사람은 지금부터 날 보좌할 소규모 정예 조직을 새로 구성해 줘야겠어.”

내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은 더욱 화색을 띠기 시작했다.

“어사조(御使組)…입니까?”

“그래. 어사조. 단… 당신들 자신, 두 사람은 제외하고, 내가 지금부터 말해 주는 사람들을 우선 선발해. 그리고 다른 이들은……”

“자, 잠깐만요! 아… 가, 감히 말씀 도중에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째서 저희들을……”

“…두 사람처럼 이미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넓은 영향력을 가진 이들은 지금까지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편이 좋아. 어사조 멤버들은 24시간 날 위해 움직일 수 있는 자들… 예를 들어, 은사마군!”

내가 말끝에 목소리를 높여 자신을 부르자, 문 밖에서 대기 중이던 은사마군이 화들짝 놀라는 기색과 함께 석실로 뛰어들다시피 들어왔다.

“…가이드 일은 이제 그만 둘 수 있겠나?”

“무, 물론입니다!”

“좋아. 은사마군 명부화. 네가 첫 번째 어사조 멤버이며, 이후 나와 다른 지하무림인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가… 감사합니다. 천주!”

명부화는 내가 민망스러울 정도로 감격하며 엎드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지만, 자룡대주는 극도의 불만과 무조건 복종 사이에서 갈등하는 빛이 역력했다.

“다음은 천음마군, 그를 찾아서 데려와. 그리고……”

나는 그 전에 몽몽이 뽑아 놓았던 데이터를 기준으로 필요한 인력을 차례대로 불러 주었다.

“…그 외 추가할 인력이 있으면 다시 알려 주겠어. 실시.”

“복명!”

대답은 세 사람에게서 동시에 나왔지만, 자룡대주의 목소리만은 작은 듯했다. 구양대주는 처음 잠깐만 약간의 섭섭한 기색이 있었을 뿐, 곧 납득하고 내 명령을 접수하는 데 전념하는 듯 했으며 별다른 군소리 없이 석실을 나갔다. 그러나 자룡대주는 끝내 굳은 얼굴을 펴지 못했으며 나가다가 말고 잠깐 날 돌아보는 눈빛이 뭔가 심상치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다시 불러 엉뚱한 짓을 하지 말라고 못을 박아 둬야 하나, 잠시 갈등했지만 결국 그만두고 말았다.

계속 침착하게 모든 일을 처리한다고 했지만… 역시 지금의 나에게는 정신적인 여유가 모자랐던 것이다.

나는 다시 혼자 석실에 남게 되자, 주머니에서 대교의 동판 편지를 꺼내 보았다. 메시지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건 천년 전의 대교가 직접 만지고 글자를 새겨 넣었던… 지금으로서는 내가 떠난 후의 대교가 남긴 유일한… 그녀의 ‘유품’인 셈이었다.

[ …주인님. 괜찮으시겠습니까? ]

< 그래. 아직… 비교적. >

[ 대교님과 관련된 일조차 침착하게 처리하신 것은 분명 효율적이고 합당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너무 억제하시려고 만 하는 건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도 있습니다. ]

< 그런…가? …훗! 네가 그런 식의 충고를 다하다니…… >

내가 광분하면 진정하라 하더니, 잘 참아내고 있으니 오히려 폭발(?)시킬 것을 권하는 셈인가? 확실히… 최근 나름대로 정신적인 각성을 한 내게도 대교에 대한 일에는 냉정과 균형을 유지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대교가 말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건… 그 어떤 현실에서도, 자기 자신의 의지로도 어쩔 수 없는 마음… 그런 게… 그래야 하는 게 사랑… 그리고 나 또한 그럴 수밖에 없다면……

< …방법은 하나. 내가 더 강해지는 것…! 냉정을 잃거나 그 어떤 상황도 상관없을 만큼 절대적으로 강해지는 수밖에! >

나는 대교와 그녀의 너무나 짧고 오래된 러브레터 앞에서 다시 한 번 맹세했다. 더, 더 더욱 강해지고 또 강해져서 지금의 널 지켜내겠다고… 다시는 너와의 약속을 어기지 않겠다고… 말이다.

[ 주인님. GM으로부터의 연락입니다. ]

< 그래? 큰소리와 달리 역시 전문가들이 더…… >

[ 그리고, 구양대주도 지금 막 다른 지하무림인에게 대교 님에 관한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

호오- 지시 받은 건 나중이었는데 거의 동시에 완료되었다면… 그렇다면 지하무림의 승리로군. 이거 기대 이상인데?

[ 대교님의 목적지는 중국 심천(深川)의 보안(寶安) 공항입니다. 보안 공항에 대기 중인 특별기의 운행 일정을 해킹 해 본 결과… 최종 목적지는 이곳 장가계입니다. ]

이 곳…이라고? 바뀐 원판 놈… 친절하게도(?) 현재 내가 있는 곳에 무대를 만들어 주겠다는 건가?

[ 장가계 시 외곽에서 이틀 전부터 홍콩의 유명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한 야외 공연이 열리고 있으며 해당 공연을 취재 중인 기자들의 통화를 도청해 본 결과, 마지막 날인 오늘 공연의 후반 시간이 비공식적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그 시간에 대교 님을 출연시킬 예정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

이 것…봐라? 몽몽의 조사와 예측이 맞다면… 공연 중인 대교를 습격할 테니 어디 한 번 막아봐라… 그런 얘기?

“천주! 주가혜의 행방을 알아냈습니다!”

서둘러 달려와 뒷북을 치는 구양대주. 그러나 그에게 ‘난 이미 당신의 보고할 내용과 그 이상의 보고를 몽몽에게 받았소.’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조용히 그의 보고를 들어주었다.

“…그러하니, 곧 최종 목적지도 알아내어 경호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주가혜 양이 가수이니 현재 장가계에서 공연 중인 무대에 출연하러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자세한 것은……”

“음, 내 생각도 그렇소. 구양대주의 판단대로 그 공연장을 먼저 확보해 두도록!”

“복명!”

“그리고… 이제 웬만한 보고는 은사마군을 통해도 되요. 원거리에서도 일반 전화보다 보안이 강화된 통신에 대해 연구해 봐야겠지만… 그 전에도 이렇게 일일이 직접 오갈 것 없어요.”

“알겠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주.”

으음… 군기 잡는 시간이 끝나고 나니, 이렇게 연세 많은 할배에게 반말하는 것도 어색하고 당연히 계속 내 따까리로 쓰는 건 더욱 부담스럽다. 사실 그게 구양대주를 어사조에서 제외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여쭐 것이 있습니다. 주가혜 양의 경호는… 물론 천주께서 지시하신 일이니 만큼 최선을 다할 것이나, 아무래도 현장의 식구들에게는… 좀 더 구체적인 ‘급’이랄까, 그러한 점을 주지시키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몽몽에게는 단지 초월적인 첨단과학 능력에서 뒤졌을 뿐, 구양대주의 일 처리는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화곡 지총관의 성실함에 천우신의 치밀하면서도 유연한 두뇌가 겸비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흐으음- 어쨌든… 대교에 대해서는 말이 나온 김에 확실히 해두긴 해야겠군.

나는 대교의 동판 편지를 감춰 쥐고 있던 왼손에 조금 더 힘을 주며 말했다.

“그렇다면… 모두에게 이렇게 전달하도록. 주가혜 경호의 급은… 나와 동급! 그녀는… 조만간 지하무림의 안주인이 될 사람이라고!”

나는 대교가 장가계의 공연장에 도착할 즈음까지 지하무림의 석실에서 운기조식을 하면서 기다렸다. 이 장소를 택한 대교와 천우신은 천 년 후의 상황을 예측하기라도 했던 걸까…? 이 석실 안은 해저 연옥도의 다음, 신불산에 버금갈 정도로 기의 흐름이 좋았다.

[주인님.]

몽몽이 알람 기능까지 해 주었을 때에야 나는 운기조식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석실을 나서자 어사조 멤버 1호인 명부화가 먼저 내 뒤를 따르기 시작했고, 동굴 출구까지 도착하자 멤버 2호인 천음마군이 기다리고 있다가 꾸벅 상체를 숙였다. 내가 친구인 소군황을 폐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에 대한 감정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의 시원스런 표정을 보면 그런 의심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 은사마군! 오랜만이야!”

명부화에게 인사를 건네는 태도도 지극히 밝고 스스럼없었다. 정작 명부화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간단하게 고개만을 숙여 보였을 뿐이지만 말이다. 내가 두 사람을 대동하고 올라 탄 헬기에는 자룡대주가 대기하고 있었더니 헬기가 출발하기도 전부터 신생 어사조의 멤버들 명단과 각각의 프로필까지 수록된 서류를 내밀었다. 나는 헬기가 출발한 후 계속 조용히 그녀로부터 받은 서류를 넘기다가 일곱 번째 인물에서 멈칫했다.

이름, 페트라 왕. 나이 스물 하나… 중국계이나 인도 국적. 전산망 관리와 해킹 전문가. 각종 전자 장비를 직접 개조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음…? 소령이와 비슷한 과의 여자인가…? 하지만… 용모와 분위기는 어째 정 반대인 것 같군.

<그 서류에 나와있듯, 페트라는… 저희 자룡대(紫龍隊)의 부대주입니다. 저 대신 천주를 잘 보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자룡대주의 표정이 아까보다 풀어져 있는 걸 보니 나름대로 마음을 정리했나 싶었다.

<그런데 부대주라니… 그 동안은 잊고 있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 듣기로 지하무림은 1인 전승으로 이어졌다고 했던 것 같은데……>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저와 구양대주, 초사마군처럼 나름의 세력을 이룬 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군들은 보통 각자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으니 그 영향력 아래에 있는 자들도 빠르게 자신들이 지하무림의 식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룡대주의 능력이 더 돋보이는군. 그 나이에 구양대주나 초사마군과 같은 노장들에게 견줄 정도의 조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 말야.>

<아, 아닙니다. 전 사부를 만날 당시… 사내에서 조금 주목받기 시작한 사원이었을 뿐입니다. 모든 것은 저의 사부가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솔직히 털어놓으며, 자룡대주는 문득 작게 한숨지었다.

<저의 사부는… 알고 보면 가엾은 분이죠. 대략의 세월을 가늠하여 천주께서 자신의 대에 돌아오실 것이라 믿었던 겁니다. 결국 무공 외의 모든 것을 제게 물려준 직후 사고를 당했을 때……>

자룡대주는 슬픈 듯 아닌 듯 구분이 안 가는 미소를 지으며 한 손을 들어, 보이지 않는 가상의 다른 손바닥과 마주치는 손짓을 해 보였다.

<터치! 네게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멋진 남자를 만날 행운을 넘긴다! …그게 유언이었습니다.>

그, 그런… 부담스럽고 멜라꼬리한 사연이… 으음… 선조인 초상희는 대체 후손들에게 나에 대해 뭘 어떻게 전달해서 그런 비극적인(?) 사태가 일어나게 한 거지?

<흠, 음… 실망했겠군. 실제로 날 만났을 때는 말야.>

<아, 네, 조금.>

쳇…! 그렇다고 그렇게 솔직히 말하기냐?

<후후~ 하지만 곧 선조와 사부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죠. 선대의 모든 분들이 저를 부러워하고 계실 겁니다.>

허어~ 그거, 참. 내가 어디 가서 딱히 미움받아 본 적은 없긴 하지만… 그건 그만큼 무난한 처세를 하며 튀지 않게 살아 온 것이었을 뿐이고, 지금도 그저 운 좋게 칼 좀 쓰게 된 남자에 불과한 건데… 으으음… 여자의 미모처럼 남자에게는 강력한 힘! 그게 진정 인간 사회의 진리(?)라는 건가…? 아니면… 내게 20세를 넘겨야만 각성하는 특별한 매력이 봉인되어 있다가 이제야 풀렸다거나… 쯧…! 별 생각 다 나네.

자룡대주와 사부의 사연 때문에 잠시 새삼 왕자병과 거지병(?)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보니, 어느 사이 목적지가 가까워져 있었다. 자룡대주는 헬기를 문제의 공연장에서 백여 미터쯤 떨어진 건물 위에 착륙하도록 했고, 그곳에는 앞서 출발했던 구양대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구양대주는 헬기에서 내리는 내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천주! 현재 가능한 모든 병력을 공연장에 배치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뭔가 이상합니다!”

구양대주의 찡그린 눈살은 헬기 프로펠러의 거센 바람 때문만이 아닌 것 같았다.

“수상한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구양대주, 아니 현장의 병력들이 바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놈들을 보냈단 말인가? 그게 이번 원판의 방식인가?

“우리 측 병력 배치 상황은?”

“주가혜님이 도착하시기 전에 일부 병력들이 무대 뒤에 배치되었으며, 공연 진행자들 중 몇 명은 본래 유희마군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나머지 대부분의 병력에게는 관중들 사이에 섞여 있으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라는 지시를 내려놓았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관중들에 섞여 있는 자들은 모두 현 위치에서 이탈 시켜요.”

“그러면……”

“막는 건 됐으니, 모두 퇴로 확보에 집중시키고……”

나는 구체적인 세부사항을 지시하며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장에 가까워질수록 수많은 사람들의 열기가… 누구나 자연스럽게 발산하는 기운의 집합체가 점차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대략… 적게 잡아도 1만 5천에서 2만 정도의 머릿수였다. 그런 엄청난 관중들 앞에 세워진 무대의 위쪽 현수막에는 ‘경천삼소시’라는 무대 명칭이 붉은 글자로 새겨져 있었다. 무대 위의 남성 5인조 댄스 그룹은 그 명칭에 걸맞는 무대를 만들고자 화려한 춤과 함께 나름대로 노래 비슷한 걸 열창하고 있었다.

공연이 시작된 지 이미 2시간 정도가 지났다니, 대교가 마지막에 깜짝 출연할 시간은 1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난 모든 수하들이 내가 지시한 지점으로 이동한 후, 천천히 관중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빽빽하게 붙어선 사람들을 통과해 가며 느낀 것은 사람들의 전체적인 기운이 상당히 불안정하다는 점이었다. 거침없이 속에 있던 것들을 발산하려고 했던 욕구에 제동이 걸려 어설프게 흘러나오는 느낌이랄까? 그건 지금 무대 위에서 춤추고 있는 무늬만 가수인 놈들 탓도 있을 것 같기는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 사람들이 마음껏 공연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무대가 40여 미터 정도로 가까워졌을 무렵에 모습을 드러낸 ‘이질적인 관중집단’을 향해 내력을 담아 나즈막이 말했다.

“비켜!”

눈앞에 있는 수백 명의 기운이 움찔, 하더니 이내 거의 동시에 모든 자들이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서늘한 시선과 기세가 일시에 몇십 배나 많은 다른 관중들을 얼어붙게 했다.

“…부대, 차렷!”

맨 앞쪽에서 들려온 소리에 관중이되 관중이 아닌 자들이 동시에 자세를 통일한다.

“…167열과 168열 기준으로 전체 좌우로 일보 갓!”

이어지는 군대식 구령에 맞춰 수백 명의 놈들이 단 두 명의 병사, 아니 두 대의 기계처럼 좌우로 이동해 길을 텄다. 나는 그런 길을 천천히 통과해 무대 쪽으로 나아갔다. 모두 사복을 입고는 있지만 엄연한 군대, 그것도 생체강화병사들로 구성된 이 특수 부대의 앞에서 지휘관인 듯한 남자가 스윽 내 앞길을 가로막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낯익은 얼굴을 한 그 거구의 백인 남자 앞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론…! 너였나?”

그랬다. 한강 고수부지에서 만났었던, 2미터 가까운 신장과 거대한 바위처럼 위압적인 신체를 가진 인간의 얼굴을 하고 괴물의 기운을 발산하던 그 남자였다.

“날 기억해 준 건가? 영광이로군, 진유준 하사!”

비아냥거리는 말투와 살기는 예전 그대로… 아니, 뭔가… 뭔가 변해있다. 놈은 본래 심상치 않은 놈이었고, 겉으로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 보였지만, 나의 위험 감지 세포는 민감하게 몇 번이고 적색 경고등을 밝혀대고 있었다. 론은 그 굵은 입술을 비틀어 웃으며 말했다.

“그때 못한 승부… 오늘은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 같군.”

나는 놈의 수상하게 변질된 기운과 살기, 적개심 등을 온몸으로 받으며 원판(첫 번째)이 이 하얀 괴물 론에 대해 언급한 말을 떠올려 보았다. 원판은 자신의 허락 없이 움직인 블러디 울프(bloody wolf), 현대의 혈랑대에게 경고하며 ‘론의 처지를 부러워하게 만들어 주지’라는 협박을 했었다.

“…꽤나 심한 꼴을 당했었던 모양이군, 네 마스터에게.”

“당신은 상상도 못할 걸? 내가 당신 때문에 당한 고통을!”

조금씩 더 이글거리는 론의 분노를… 나는 슬쩍 무시하며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래, 잘 해봐.”

스쳐가며 짧게 남긴 나의 말에 론의 분노와 살기가 더욱 급격히 상승하여 마치 악의에 찬 검은 용암이 등 뒤로 부어지는 것만 같았다.

[ 주의하십시오, 주인님. 아직 분석이 끝나지 않았지만… 론이라는 남자의 신체는 그동안 상당부분 ‘강화 개조’된 것 같습니다. ]

강화… 개조? 이미 블러디 울프 중에서도 최강, 나와 일대일로 붙어도 쉽게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놈이 거기서 더 강화되었다고? 나는 내가 느낀 꺼림칙함이 결코 막연한 기분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계속 놈을 돌아보지 않은 채 무대의 바로 앞까지 갔다. 무대 위에서 춤추던 앳된 얼굴의 5인조는 그 사이 춤도 멈추고 어색한 태도로 쭈빗거리며 서 있을 뿐이었다. 2만 명의 관중들이 일시에 침묵하여 찬바람만 감돌기 시작한 무대에서 누가 태연히 공연을 계속할 수 있겠는가만은… 우습게도 스피커에서는 계속 그들의 노래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기들 노래조차 제대로 소화 못해서 립싱크하는, 화려한 춤과 얼굴밖에 없는 놈들인 것 같지만… 오늘은 최소한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 더 쪽팔리기 전에 들어가!”

나의 친절한 충고에 5인조는 비로소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하더니, 곧 앞서거니 뒤서거니 후다닥 무대 뒤로 달아나 버렸다. 이어 무대 뒤에서 나온 사회자는 난감한 얼굴로 굳어버린 군중을 새삼 확인해 보더니 내게 도움을 청하는 시선을 보내 왔다.

저 남자가 유희마군의 제자 내지는… 여하간 우리 지하무림의 식구인 모양이군. 어쩐…다? 애써 홍콩에서 날아 온 대교가 출연도 못했는데 이 무대를 끝낼 수는… 없겠지?

<우습지도 않은 것들이 섞여있긴 했어도, 이 무대는 아직 진짜 하이라이트가 남아있어. …어때?>

나는 비로소 몸을 돌려 론을 마주보며 그렇게 전음을 보냈고, 론은 예의 굵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모름지기 진정한 전투는 흥겨워야 하는 법! 전 부대… 쉬엇! 지금부터 마음껏 이 공연을 즐긴다! 실시!”

론의 명령에 수백 명의 블러디 울프가 동시에 ‘옛썰! 캡틴!’을 외쳤다. 그리고는 즉각 환호성과 박수로서 관중 본연의(?)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란… 이렇게 많은 대중들이란 오히려 단순한 구석이 있는 걸까? 선두의 무리들이 뿜어대던 알 수 없는 위압감과 살기로 인해 꺼져 버렸던 전체의 불길이, 그 선두의 무리들이 불씨를 당기자 다시 빠르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아~ 이런, 이런… 그동안 굳어있던 모 부대 장병들께서 이제야 눈과 귀를 뜨신 모양이군요! 멋진 지휘관님께 감사를 보내며… 자아- 이제 이곳 장가계의 수십만 팬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홍콩 최고의 미녀 그룹을 소개합니다!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이들은……”

기회를 놓칠세라, 재빨리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한 사회자의 소개 멘트에 따라 발칙한 의상에 미끈한 몸매의 여자 애들이 하나둘 무대 위로 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대기실에서 바깥의 분위기를 전해 들었는지 하나같이 긴장되고 겁먹은 표정이었지만, 곧 그 얼굴에 그려져 있던 가식적인 미소가 자연스런 웃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안에서 들었던 말들이 거짓말(?)이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앞의 남자 5인조에 비해 너무나 밝고 활기찬 공연을 시작한 그녀들은… 그러나 물론, 나의 관심 밖!

나는 높은 무대의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블러디 울프 부대를 향해 앉았다. 뒤쪽의 관중들은 블러디 울프들 때문에 날 보지 못하고, 무대 위에서도 무대에 가려 내가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풀어진 군바리들은 동서고금… 심지어 원판이 키운 블러디 울프들도 마찬가지인 건지, 놈들은 다들 바로 조금 전까지의 살벌한 모습을 버리고 무대 위 미소녀들의 몸짓과 목소리에 광분해 있었다.

일촉즉발의 전투를 앞두고 상대에 대한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것은 울프 부대 앞에 버티고 선 백색 괴물 론, 그리고 놈과 마주한 채 정글도를 어깨에 걸치고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나… 둘뿐이었다.

“자기들 노래조차 제대로 소화 못해서 립싱크하는, 화려한 춤과 얼굴밖에 없는 놈들인 것 같지만… 오늘은 최소한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 더 쪽팔리기 전에 들어가!”

나의 친절한 충고에 5인조는 비로소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하더니, 곧 앞서거니 뒤서거니 후다닥 무대 뒤로 달아나 버렸다. 이어 무대 뒤에서 나온 사회자는 난감한 얼굴로 굳어버린 군중을 새삼 확인해 보더니 내게 도움을 청하는 시선을 보내 왔다.

저 남자가 유희마군의 제자 내지는… 여하간 우리 지하무림의 식구인 모양이군. 어쩐…다? 애써 홍콩에서 날아 온 대교가 출연도 못했는데 이 무대를 끝낼 수는… 없겠지?

<우습지도 않은 것들이 섞여있긴 했어도, 이 무대는 아직 진짜 하이라이트가 남아있어. …어때?>

나는 비로소 몸을 돌려 론을 마주보며 그렇게 전음을 보냈고, 론은 예의 굵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모름지기 진정한 전투는 흥겨워야 하는 법! 전 부대… 쉬엇! 지금부터 마음껏 이 공연을 즐긴다! 실시!”

론의 명령에 수백 명의 블러디 울프가 동시에 ‘옛썰! 캡틴!’을 외쳤다. 그리고는 즉각 환호성과 박수로서 관중 본연의(?)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란… 이렇게 많은 대중들이란 오히려 단순한 구석이 있는 걸까? 선두의 무리들이 뿜어대던 알 수 없는 위압감과 살기로 인해 꺼져 버렸던 전체의 불길이, 그 선두의 무리들이 불씨를 당기자 다시 빠르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아~ 이런, 이런… 그동안 굳어있던 모 부대 장병들께서 이제야 눈과 귀를 뜨신 모양이군요! 멋진 지휘관님께 감사를 보내며… 자아- 이제 이곳 장가계의 수십만 팬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홍콩 최고의 미녀 그룹을 소개합니다!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이들은……”

기회를 놓칠세라, 재빨리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한 사회자의 소개 멘트에 따라 발칙한 의상에 미끈한 몸매의 여자 애들이 하나둘 무대 위로 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대기실에서 바깥의 분위기를 전해 들었는지 하나같이 긴장되고 겁먹은 표정이었지만, 곧 그 얼굴에 그려져 있던 가식적인 미소가 자연스런 웃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안에서 들었던 말들이 거짓말(?)이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앞의 남자 5인조에 비해 너무나 밝고 활기찬 공연을 시작한 그녀들은… 그러나 물론, 나의 관심 밖!

나는 높은 무대의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블러디 울프 부대를 향해 앉았다. 뒤쪽의 관중들은 블러디 울프들 때문에 날 보지 못하고, 무대 위에서도 무대에 가려 내가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풀어진 군바리들은 동서고금… 심지어 원판이 키운 블러디 울프들도 마찬가지인 건지, 놈들은 다들 바로 조금 전까지의 살벌한 모습을 버리고 무대 위 미소녀들의 몸짓과 목소리에 광분해 있었다.

일촉즉발의 전투를 앞두고 상대에 대한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것은 울프 부대 앞에 버티고 선 백색 괴물 론, 그리고 놈과 마주한 채 정글도를 어깨에 걸치고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나… 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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