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45-1화 : 5-7. 흥겨운 전투.(1)
5-7. 흥겨운 전투.(1)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일이 시작되려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밝고 화려한 무대가 계속 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무대 밑에서 론의 이글거리는 살기를 받으며 원판의 평범한 아파트…를 가장한 건물에서 있었던 블러디 울프와의 싸움을 떠올렸다.
“빅 고렘(Big Gorlem)……!”
그 때 싸웠었던 블러디 울프의 중대장 중 한 명은 저 론 중령을 그렇게 불렀었다. 그 별명의 유래에서 예상되는 론의 전투스타일은 전차의 장갑처럼 두꺼운 근육으로 무장한 방어력과 파워를 위주로 한 파이터…! 하지만 몽몽의 분석은 거기에 몇 가지를 더 한다.
[…해당 인물이 갖춘 현재의 근육 장갑은 강력한 방어력에 유연성과 순발력까지 더해진 형태입니다. 또한 극도로 활성화 된 신경 조직으로 보아 반사신경과 스피드 등 모든 면에서 현재의 주인님에 근접한 수준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상의 분석은 기본적인 스캔 정보만을 토대로 한 것이며 아직 해당 신체에 추가 된 능력은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신체 조직의 변화 패턴과 뇌파의 평균 방출량 변화로 보아 전체적인 전투력의 균형 있는 강화 업그레이드로 추정되나, 패턴을 벗어난 특수 능력의 존재 가능성도 인지해 두실 것을 권고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얼마나 더 강해 졌는지는 몰라도… 마치 내가 나름대로 각성하는 걸 기다렸다는 듯한 업그레이드로 군.>
새삼 원판 놈과의 게임… 놈이 날 대상으로 계획한 모든 것이 불쾌해 진다. 놈은 날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으로 여기며 즐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원판 놈은 착각하고 있었던 거다. 원판 놈이 부처님 수준일 수가 없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난 72가지 둔갑술로 만족한 원숭이가 아니니까 말이다. 다만 문제는……
나는 론에게 비죽이 웃는 표정을 보였고, 론 역시 입술을 비틀어 마주 웃는다. 전체적인 전투력의 상승으로 나와 거의 동급의… 일종의 ‘외공의 초고수’가 된 데다 그 외의 특수능력까지 있을 지 모른다는 저 괴물도 문제지만……
나는 론을 응시하던 시선을 잠깐 돌려 그 뒤쪽의 다른 블러디 울프들을 보았다. 비록 론 만은 못하다해도 저들 역시 한 명 한 명이 엄청난 전투력을 가진 놈들이다. 난 원판의 아파트에서 저 놈들 22명과 격돌해 모두 격파한 경험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중 두 번째… 그래, 6중대라고 했었다. 6중대 11명과의 전투에서 죽을 뻔한 고비를 한 번 넘기고 정글도에 약간의 손상을 입기까지 했었다. 물론 지금의 난 그 때의 내가 아니라지 만… 지금 놈들의 머릿수는 그 때의 수백 배…! 정확히 말하면, 론을 제외하고도 총 340명이다.
저 론 중령까지는 지난 번 원판 놈의 작품. 즉… 나의 각성 및 업그레이드를 계산해 게임의 난이도를 적당히 높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론이 몰고 온 저 수백 명의 블러디 울프들은 현재의 바뀐 원판 놈의 깽판…이랄까? 아무래도 놈은 균형있는 게임을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다.
<…론. 하나 묻자. 너희 마스터 말인데… 최근 뭔가 이상해지지 않았나?>
론에게 전음을 보내자, 그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관심 없어. 이제는 마스터의 변덕도 날 막을 수는 없을 테니까 말야.”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지금 변덕이라고 칭한 걸 보니 뭔가 느끼고 있기는 한 모양이군. 뭐, 어쨌든!
<…하긴. 나도 별로 관심이 없기는 해. 미친놈이 치트 키 써가며 게임 자체보다는 상대를 이기거나 죽이는 재미만을 느끼려 드는 건 알겠지만… 나도 그리 호락호락 당해 줄 게이머가 아니거든.>
“진유준, 하사!”
<…왜.>
“말이 많군.”
윽…! 한 방 먹었다.
“당신과 마스터가 어떤 게임을 벌이고 있는지 따위는 중요치 않아. 난… 내 싸움에 다른 자의 전략이 끼어들게 할 만큼 약하지 않다!”
이… 이런 단순한 놈 같으니. 네가 그렇게 강하다는 게 바로 원판 놈의 전략에 포함되는 것인데 정말 그걸 모르는 건가…? 론의 사고방식이 다소 어이가 없었지만… 놈의 순수함(?)만은 인정해 줘야 할 것 같았고, 게다가 어쩐지 놈에게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좋아, 론. 니네 마스터 따위는 잊고… 우린 그냥 즐겨보자.>
나는 다시 웃었고, 론도 비로소 만족스럽게 웃는다.
[어~ 이건 또 무슨 모드인가요? 어째 이리 화기애애 한가요?]
<…요몽. 니 눈엔 그렇게 보이냐? 서로 상대방을 분쇄하며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전투를 즐겨보자고 합의하는 이 미친 분위기가……?>
[우웅~ 말씀을 듣고 보니 정상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두 어쩐지 뭔가 보기 좋은걸요? 남자들은 때로 싸우면서 우정을 다진다면서요? 애들은 싸우면서 친해진다는 말도 있고… 어, 에구! 죄송해욧! 와아- 이제 곧 대교님의 출연인가 봐요!]
요몽 녀석은 재빨리 포롱- 사라져 버렸지만 난 이미 어느 정도 맥이 빠지고 말았다. 어째… 요몽의 ‘분위기 깨는 신공'(?)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교님의 공연 같은 경우는 중계하겠습니다.]
<…몽몽. 친절은 고맙지만, 그만 둬. 난 지금 대교를 볼 여유가 없어. 오늘 나는 관중이 아니라, 가디언이니까!>
나는 새삼 각오를 다지며 이를 악물었다. 론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준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그걸 믿고 방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들께… 한 가지 뜻밖의 행운을 안겨드릴 수 있게 된 것을 무한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내 등 뒤 무대에서 들려오는 사회자의 목소리에 꾸밈없는 흥분이 섞여 있었다.
“예정에 없었던, 추가 공연! 동양의 진주라는 우리 홍콩에서 그보다 더 빛나는 진주 중의 진주!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한 진정한 뮤지션! 그녀의 이름은… 주! 가! 혜!”
내게는 아직도 낯선 이름이 불려지는 순간 공연장의 모든 관중들에게서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제야 정말로 하늘이 놀랄 정도의 무대가 시작된다는 신호탄이 울리는 속에서… 난 홀로 긴장하며 정글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너무나 익숙한 대교의 발걸음 소리와 관중들에게 인사하는 그녀의 사랑스런 목소리에 기뻐하다가…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이… 살기! 더욱 달아오른 공연장의 열기 때문에 미세하게 느껴질 뿐이지만… 관중들의 환호와 애정의 물결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검은 거품…! 하나… 둘… 셋…? 아니 넷…인가? 대략적인 위치만 가늠이 될 뿐 정확하게 누군지는 아직……
번득, 차가운 빛줄기 하나가 무대 위를 향해 쏘아졌다. 그걸 감지함과 동시에 나의 정글도 역시 선뜻 허공을 갈랐다. 퉁…! 누구라도 맹렬하게 날아든 금속이 더욱 강한 뭔가에 부딪친 소리라고는 믿지 못할 정도의 소리였다. 그 작고 섬뜩한 소리는 이미 시작된 반주와 대교의 노래에 묻혀졌고, 내 검기에 걸려 하늘로 날아갔던 뭔가가 다시 떨어져 내리는 것 역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몽몽은 우리로부터 불과 몇 미터 정도 거리의 땅바닥에 떨어져 꽂힌 그 것이 무엇인지 말해 주었다.
[…현 시대의 연마 기술을 초월한 특수 금속으로 제작된 ‘칼날’입니다. 형태로 보아 칼의 손잡이에서 고속으로 사출되는 방식으로 추정됩니다. 지금의 러시아, 구(舊) 소련의 특수 부대 스패츠나츠에서 즐겨 사용했다는 NR-2와 같은 방식이나, 위력은 2.8배 강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쳇…! 그런 위력의 비검을 이 정도 거리에서 쏘면 거의 총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론 녀석, 이렇게 비열한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웃! 또 온다!
다시 소름끼치는 섬광처럼 비검이 무대 위로 날아들기 시작했지만, 그때마다 나의 무형검기 역시 발동하여 모두 막아냈다.
순식간에 열 개의 칼날이 내 주위의 땅바닥에 꽂히거나 누워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왼손을 건빵 주머니에 넣어 나의 암기(?)를 한 웅큼 쥐었다. 본래 소군황을 상대할 때 쓰려고 준비해 온 암기… 기계의 베어링에 쓰이는 콩알만 한 크기의 쇠 구슬이다.
거기… 거기의 너냐?
나는 다른 관중들처럼 무대에 집중하고 있는 블러디 울프들 사이에서 유독 굳어진 낯빛으로 총을 꺼내드는 놈을 발견하자마자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쇠 구슬 하나를 날려 놈의 이마에 명중시켰다.
그리고 또 한 놈, 두 놈… 총 네 놈이 쇠 구슬을 맞고 고통스런 얼굴로 몸을 구부려야 했다.
내가 포착한 마지막 놈은 론의 바로 뒤쪽이었고, 그 놈을 향해서도 어김없이 쇠 구슬이 날았다.
그러나 그 쇠 구슬만은 목표에 명중되지 못했는데… 그것은 론이 자신의 머리 위를 통과하려던 쇠 구슬을 한 손으로 잡아챘기 때문이었다.
<역시… 다르군. 하지만, 실망이야. 넌 이런 멋진 공연은 즐길 여유까지 가진 전사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야.>
“…아니. 난 계집의 노래 따위는 애초에 관심조차 없었다. 다만 병사들의 사기와 무엇보다 너, 진유준 하사의 거리낌없는 전투력을 보고 싶었을 뿐!”
그렇게 말하는 론의 뒤에서 마지막 놈이 끝내 총을 꺼내 대교를 겨냥하고 있었다.
나는 즉각 삼시전결을 발동하여 놈을 치…려고 했지만, 론이 한 발 빨랐다.
론은 어느 틈에 손을 뻗어 그 큰 손아귀 안에 자기 부하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누가… 끼어들라고 했나?”
“어, 헉, 마, 마스……”
원판의 명령이었다고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결국 꺽꺽- 소리뿐, 끝까지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는 못했다.
“미안하게 됐군, 진유준 하사. 내가 없는 사이 나의 부대에도 썩은 근성을 가진 놈들이 생겨 버린 모양이야.”
<…이미 늦었어, 론.>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서며 뒤를 돌아보았다.
일이 이 지경이 되자 결국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눈치를 챈 대교가 노래를 멈추고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난… 불과 며칠 전이었지만 아득히 오랜 세월을 보지 못했던 것만 같은 그녀를 바라보며 사과했다.
<미안해. 막아 주려 했는데… 그렇지 못하게 된 것 같아.>
“진… 유준, 씨? 어째서 그런 곳에… 그리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글쎄… 간단히 설명될 상황이 아니라, 지금은 한 가지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그녀에게 씁쓸하게 웃어 보이며 다시 론과 블러디 울프를 향해 돌아섰다.
<너의 공연을 방해한 놈들… 모두 용서 못해!>
“아, 그, 그러지 말아요!”
대교는 다급하게 외쳤지만 이미 나의 살기는 발동했다.
그런 나의 기세에 반응하여 블러디 울프 부대도 급격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어!”
론은 으르렁거리는 음성으로 기뻐하며 허리에서 내 정글도 크기의 커다란 대검을 뽑아들었다.
나는 정글도를 어깨에 걸치며 빅 고램 론과 수백 명의 블러디 울프 부대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고램이라 불리는 괴물이고 나발이고 단 한 놈도 내 뒤로 통과시키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아~”
더욱 나의 분노를 자극하는 대교의 탄식 소리였다.
그런데… 문득, 그게 흐으읍 하고 숨을 들이키는 소리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대교의 입에서 엄청난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 발성연습…?! 하여간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괴성이었다.
마이크로 증폭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인간의 목이 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정도라고 할까?
그 터무니없이 강한 비명의 위력 앞에, 나의 살기에조차 기죽지 않았던 블러디 울프의 대다수가 귀를 막고 질린 듯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런 모두를 향해 대교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제 목소리, 크죠?”
그녀의 천진한 말과 표정에, 그래도 버티고 있던 론까지 천천히 대검을 내려트리기 시작했다.
“하아~ 이제야 조금 진정이 되시나요? 으음- 다들 오늘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이며, 어떤 시간인지는 알고 오셨을 거예요.
그러니… 제게 조금만 더 기회를 주시겠어요? 반드시 실망시키지 않는 노래를 들려 드릴게요. 어때요?”
대교의 비명(?)에 이은 설득이… 먹혀들고 있다…?
론, 저 인간이… 대검을 검집에 집어넣어 버리네?
“멋진 선제 공격…! 좋아, 인정! 인정하자구, 블러디 울프 제군들!”
그렇게 외친 론은 아예 척 자리에 앉아 버렸고, 블러디 울프들도 꺼내 들었던 무기를 하나둘 도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오히려 벌쭘해진 내가 대교와 무대를 돌아보니, 그녀는 여느 무대에서처럼 환하게 웃으며 두 손을 치켜들고 있었다.
잠시 숨죽이며 공연장 밖으로 달아나야 할까를 망설이는 것 같았던 관중들이 다시 환호하기 시작했다.
저 많은 사람들이 이게 이벤트성 해프닝이라고 이해해 버리는 분위기인 것은 어이가 없었지만…
결국 나 역시 정글도를 거두고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이번에는 강력한 적들에게 등을 보이고 대교를 향해서 말이다.
다시… 아니, 이제야 그녀의 무대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