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45-3화 : 5-7. 흥겨운 전투.(3)
[ 주인님! 총! 총! ]
요몽의 다급한 경고가 있은 직후, 요란한 총성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지프차 주위의 지면이 콩 볶듯 튀어 올랐지만 은사마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예의 난폭 운전 솜씨를 보이기 시작했다. 쿠와악- 삽시간에 속도를 올려 달아나는 차에서 뒤를 돌아보니, 수많은 군중들의 모습이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선두의 론과 블러디 울프들의 모습이 작아지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악당 놀이는 이쯤에서 끝내고 본격적인 대처를 해야 할 것 같았다.
< 방심하지마, 은사마군. 곧 추적해 올 거야. 예정된 지점으로 최대한 빨리 이동해. >
< 복명! >
나는 차에 설치된 무전기를 켜고 다른 지하무림인들을 불렀다.
“모두 사전 지시한 패턴으로 이동해! 곧 적의 추격과 공격이 있겠지만, 명심해! 정면으로 붙지마! 놈들 한 명 한 명의 전투력을 마군들 이상으로 생각해! 알겠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번 작전은 내가 목표 지점까지 도착하는 게 우선이야! 다들 날 엄호하면서 절대로 적과 정면 충돌하지마!”
우리 지하무림의 평균적인 전투력을 얕봐서 몇 번이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소집된 우리 측 병력들은 구양대주의 수하들을 급한 대로 불러모은 거라 블러디 울프쯤 되는 강적과의 정면 대결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보천구룡대는 아무리 좋게 봐도 과거처럼 지하무림을 지탱하는 최강의 무력조직이라고 하기는 어렵지. 음… 하지만 곧 전 지하무림에서 엄선된 자들로 어사조가 구성되고 보천구룡대도 정비하여 예전의 전투력을 되찾게 하는 건 시간 문제…! 뭐, 그때까지는 내가 직접 할 수밖에 없… 어…? 이런, 이런!
< 천주! >
[ 주인님! ]
은사마군과 몽몽이 거의 동시에 날 부른 건 우리 차가 달려가고 있는 이 도로, 장가계 시의 외곽으로 빠지는 도로 저 편에 한 무리의 전투병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도주로에 매복이 있는 건 당연한 거라 할 수 있으니 그리 놀랍지는 않았지만… 길을 다른 차들로 완전히 막아 버린 데다 몇 명이 로켓포까지 쏠 준비를 하기 시작하는 건 기대 이상이었다.
< 멈추지마! >
나는 은사마군에게 차를 멈추지 않도록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거칠게 달리는 차의 앞좌석을 한 발로 밟고 서서 무공을 펼치는 건 보기보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나는 연옥도의 거친 파도에 띄워 놓은 통나무 위에서도 생사금마도결을 수련했던 몸이다. 자아- 간다. 간만에 삼시전결… 어? 어라라?
내가 생사금마도결을 펼치기 직전, 뭔가가 슈욱- 내 머리 위를 지나갔다. 섬광과 연기를 뿜어내며 적들을 향해 맹렬하게 날아가고 있는 그것은… 소형 미사일이었다. 자신들이 한발 늦은 걸 깨달은 적병들이 다급하게 몸을 날려 피하는 광경에 이어 차단벽 역할의 차량이 미사일에 적중되었다. 격렬한 화염에 휩싸여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차를 보며 다소 벌쭘해진 나는 정글도를 거두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 틈에 나타난 또 한 대의 지프차가 우리 차의 뒤를 따르고 있었으며 차의 뒷좌석에 나처럼 서서 개인 미사일 발사기를 메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또 한 발의 미사일을 적들에게 발사했고, 그런 후에야 입을 열어 특유의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보고를 했다.
“소인, 천음마군! 신생 어사조의 일원으로서, 천주 호위에 합류합니다!”
이어 운전대를 잡고 있는 구릿빛 피부의 남자가 천음마군 못지않게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실연자(失緣者), 전황마군(戰徨魔君)! 복귀와 동시에 어사조 배치를 명 받았습니다!”
실연자…! 이건 어떤 이유에선지 행방불명된 자들을 칭하는 용어다. 은사마군에 이어 두 번째 복귀자인 건가? 말투가 어쩐지 군발틱한 것이… 음, 그러고 보니 본래 전황마군은 옛날부터 전쟁터의 용병이 직업이었으니 당연한 거겠군. 으음… 그나저나, 두 터프가이들이 한 발 앞선 포격으로 적 병력을 무력화시키고 방어벽까지 거의 날려버려 준 건 좋은데, 아직 채 날아가지 않은 차도 있는 데다 길 자체가 화염과 포연에 휩싸여 있잖은가. 역시 내력이 많이 소모되더라도 생사금마도결로 남은 차체들을 날려 길을 터야겠…
< 꽉 잡아 주세요, 천주! >
< 뭐? >
말릴 틈도 없이 차가 길가로 붙는가 싶더니 오른쪽 바퀴가 도로의 턱을 디디며(?) 투웅- 그 쪽만 솟아올랐다.
“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차 밖으로 퉁겨 나가는 대교를 간신히 붙잡았고, 그녀를 안아듬과 동시에 거의 직각으로 세워지는 차의 옆면으로 뛰어 올라서야 했다.
< 야, 야! 명부화! >
< 예, 천주! 명령대로 멈추지 않고 통과하겠습니다! >
< 으~ 그게 문제가 아니라, 미리 말을 했어야 할 거 아니야! >
< 죄, 죄송합니다, 천주. >
대교가 떨어질 뻔했기에 야단을 치긴 했으나… 재주만을 보면 칭찬 받아 마땅한 수준이었다. 영화에서야 차를 옆으로 세워서 한 쪽 바퀴로만 달리며 좁은 장소를 통과하는 장면을 자주 봤지만 그건 미리 준비된 장치를 이용한 거고, 방금 은사마군은 길가의 턱을 이용한 것만으로 같은 일을 해낸 것이다. 그런데다가 그 후로도 속도를 거의 줄이지 않은 채, 교묘하게 방향전환까지 해가며 포연과 불길에 휩싸인 차체들 사이를 통과해 가고 있었다. 이런 명부화와 달리 전황마군은 그냥 무식하게 밀어붙이며 따라오고 있군. 차만 튼튼하면 차라리 저런 방식이 더 나을 수도 있겠… 웃! 살기였다. 나는 재빨리 대교를 왼쪽 팔로만 고쳐 안으며 길 양쪽에서 감지되는 살기들을 향해 정글도를 휘둘렀다. 간만의 삼시전결이 쏘아진 불길 너머에서 낮은 비명과 총성이 들려왔다. 그래도 블러디 울프답다고 할까…? 미사일 포격으로 기습당했음에도 반격할 수 있는 상태의 병력이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나의 마무리를 끝으로 우리는 비교적 쉽게 적의 매복을 깬 셈이었다. 명부화는 폭격 장소를 통과하자 차를 원위치 시켰고 나 역시 대교와 함께 뒷좌석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대교는 차에서 퉁겨 나갈 뻔했을 때의 비명 외에는 계속 조용했었고 저항의 몸짓도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무반응이 오히려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 괜찮…아? >
조심스럽게 묻자 대교는 잠시 날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예. 하지만 조금 정신이 없네요.”
하핫~ 참으로 대단한 대교다. 느닷없이 납치되어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도 고작 그런 정도의 감상이라니 말이다. 솔직히 뺨 한 대 맞는 것 정도는 각오했었는데, 악당에게 납치된 공주님이 이렇게 담담하게 나오니 오히려 재미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그리고… 말해 주실 거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 그야 당연하지. 그렇지만 얘기가 좀 길어. 우선 목적지에 도착한 다음, 그런 다음 얘기해 주면 안될까? >
낮게 한숨을 한 번 내쉰 대교는 잠시 나름대로 뭔가 생각해 보는 것 같았다. 우리가 탄 차는 어느덧 시를 완전히 빠져나가고 있었고 전방의 들판에 내가 올 때 타고 왔던 헬기가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겠어요. 당신을 믿겠어요.”
믿…는다고? 이런 상황에서 날… 천년 전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이상,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남자일 뿐인 나를 믿어 주겠다고……? 납치한 공주님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격려(?)까지 받는 바람에, 잠시 주춤했던 기분이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 몽몽! 적의 본대는? >
[ …적의 본대는 전원 차량을 확보하여 추격을 재개했습니다. 그러나 주인님 일행이 헬기에 탑승하기 전까지 따라 붙을 수는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
< 그…래? 정말 놈들이 차만 타고 온다고? >
[ 그렇습니다. ]
이것…봐라? 원판에게 동원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헬기 같은 건 아예 준비를 하지 않았단 말인가? 뭔가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일정을 바꿀 상황도 아니었기에, 나는 차가 헬기 앞에 도착하자 곧바로 대교를 헬기에 옮겨 타도록 했다. 그런데 대교는 헬기에 오르다가 갑자기 뭔가에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에, ‘에릭’?”
< 뭐? 에릭? 그게 누구…… >
엥? 금동이?
대교는 헬기 안쪽에서 날 기다리며 뒹굴거리고 있던 금동이에게 팔을 내밀었고, 금동이도 대교를 보더니 주저 없이 몸을 날려 그녀의 품에 안겼다.
뭐…야? 금동이는 저 녀석은 지금까지 내가 몇 번 대교의 사진이나 공연 동영상을 보여줘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다. 그래서 기억을 못하나 보다 했더니… 그게 아니라 이미 나보다 먼저 만났었기 때문에 시큰둥했던 거였던 건가…? 미국에서 하은이를 만난 것도 그렇고… 하여간 정말 신출귀몰한 녀석이다.
< 에릭…이라고? 넌 금동이한테 그런 이름을 붙였었니? >
나도 헬기에 오르며 묻자 대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반년쯤 전에 저희 집 마당에 나타났었고, 주인을 찾을 수가 없어서 한동안 함께 있다가 또 어느 날 사라졌던 아인데… 진짜 이름은 금동…라고요?”
< 응, 금동이! >
“그럼 이 금동이도… 아니, 아니에요. 이 것도 나중에 함께 듣겠어요.”
대교는 금동이와의 재회 때문에 한층 더 혼란스러워지는 모양이었지만, 이번에도 자세히 캐묻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한 번 ‘믿는다’고 했으니 끝까지 그러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랄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모든 일에 대한 설명이 약속보다 늦어지게 되면 엄청 혼나지 싶었다.
서서히 떠오른 헬기의 고도가 상당히 높아져 방향을 정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을 때, 그제야 뒤에서 우릴 쫓는 수십 대의 군용 지프차와 트럭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헬기의 속도가 훨씬 빠르니 점차 멀어지고는 있었고… 난 이렇게 긴박감 없는 추격이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주인님. 코드 명 원판으로부터의 연락입니다. ]
몽드폰을 들고 통화 버튼을 누르자, 원판은 지난번 통화 때처럼 불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말했다.
“큭,큭. 진유준… 당신 결국 큰 실수를 했군 그래. 론 중령을 정말 화나게 한 것 같으니 말이야.”
< 어… 내가 그랬나? >
“지하무림의 힘을 얻은 건 축하해 주겠지만… 설마 그들로 론 중령과 블러디 울프 부대를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후후- 두려움에 떨며 도망치는 시간은 이제 시작……”
< …닥치시고. 야 짝퉁 원판! 너 잘 들어. 론과 블러디 울프가 확실히 무서운 놈들이라는 건 나도 인정해. 하지만… 너 정말 내가 그 놈들이 두려워 떨며 달아나고 있을 거라는… 그런 택도 없는 생각을 한 거냐? 그래서 내가 소군황을 괴롭힐 때처럼 바짝 쫓지도 않고 일정한 속도로 압박해 가라는 명령을 내리기라도 한 거야? 응? >
“……”
< 뭐야. 너 정말 그런 거냐? 너, 인격뿐만 아니라 지능도 바보로 바뀌었냐? >
“…진,유,준! 언제까지 그런 허세를 부릴 수 있는지 보겠다.”
띠익- 하고 전화가 끊겼다.
< …몽몽. 이거 정말 원판 맞냐? >
[ …음성 정보는 일치합니다. 현재 주인님은 원판의 존재 자체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셨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원판에 대한 대처에 수월함을 느끼고 계신 것으로 추정됩니다. ]
< 그야, 그런 거라면…… >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웬지 씁쓸하기도 했다.
[ 주인님. 이번에는 론의 연락입니다. ]
론도 원판처럼 어설픈 심리전을 걸어오는 거 아닌가 싶어 망설여졌지만, 일단은 받아 보았다.
“진유준 하사…! 대체 어떻게 된 거지?”
< 어… 미안. 화났어? >
“…잘 들어, 진유준! 내가 그 저주받을 인큐베이터에서 나와 출동 명령을 받았을 때… 난 그 동안의 지옥 같은 고통과 목마름이 일시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진유준은 더 강해졌고, 강해지는 중이다. 그러니 너의 모든 것을 불태워 반드시 소멸시켜라.’ 이 것이 마스터의 명령…! 그런데 설마, 이런 식으로 달아날 줄은……”
< 고맙다, 론. >
“뭐?”
< 아니, 그냥 네가 차라리 훨 낫다는 생각에… 암튼, 우린 네 말처럼 흥겨운 전투…! 그걸로 가자구. >
“…더 이상 달아나지 않겠다는 뜻인가?”
< 근데 그게… 나의 부하들은 아직 조직 정비가 덜 끝나서, 나 혼자 할 생각이거든? 그러니 유인작전 정도는 인정해 주기 바래. 오케이? >
나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론은 크하핫-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론은 무엇보다 내가 ‘혼자 상대해 주겠다’고 한 부분에서 흥이 되살아 난 모양이었지만… 통화를 끝내고 헬기 벽에 기대앉은 나의 기분은 론처럼 간단히 회복되지 못했다.
원판…! 아무리 어쩌니 해도 나보다 잘난 놈…! 그래서 아득바득 극복해야 할… 필생의 라이벌로 생각했던 그 놈이 갑자기 별 거 아닌 놈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해서… 난 왜 이렇게 착잡한 기분이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