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47-2화 : 지하무림 VS 블러디 울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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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47-2화 : 지하무림 VS 블러디 울프.(2)


< 다들… 대답하지 말고 듣기만 해. >

나는 동굴 안의 수하들 위치를 대충 가늠해 전음을 보내기 시작했다.

< 내가 설치한 진법에 대해서는 이미 전달받았겠지? 계속 지형과 그 진법들을 이용해서 시간을 끌어라. 이건 숨어있는 적의 보스를 끌어내기 위한 지연책일 뿐이니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마라. 이상! >

사실 현재 원판이 그리 멀리 있지도 않으니, 굳이 기다리며 오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내가 직접 쳐들어가는 편이 빠르고 확실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지금까지 선전하고 있는 지하무림이라도 언제 방어가 깨져 모두가 위험해질지를 내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역시 적과 아군의 전력을 확실히 파악하고 있는 건 지휘관에게 필수적인 요소인 건데, 아쉽지만 내겐 지금까지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니……

< 동굴 입구 부근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적들의 선두에 서서 다가오고 있는 거구의 백인 남자가 보이겠지? 그가 바로 적 부대의 지휘관, 론 중령이다. 그와는 특히 어떤 일이 있어도 정면대결하지 마라. 알겠나? >

으음… 수하들이 대답할 수 없다는 거 알면서도 무심코 묻고 말았다. 전음도 불편한 구석이 있어서, 내력의 깊이에 따라 쓸 수 있는 거리가 한정이 되는 건 물론이고 숙달되지 않으면 상대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고는 1대1 전음도 어렵다. 나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 대략의 위치와 범위를 한정해서 쓸 수도 있고, 누가 전음을 보내오면 그쪽 위치를 파악할 수도 있지만 수하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뭐, 어쨌든.

내가 새삼 소개한 론 중령…! 저 인간은 여전히 지치지도 않고 위압적인 기운을 뿜어내고 있군. 다른 지부하들과 달리 우리측의 기습 공격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거침없이… 어…? 계속 발걸음이 멈출 기색이 없다는 건…? 어떤 형태의 함정이 있는지도 모르는 동굴 속으로 지휘관이 먼저 들어가겠다고…? 으으음~ 지금까지의 행동 패턴을 봐서는 론도 진법을 잘 알 것 같지는 않지만, 만약 원판이 최소한 지휘관급에게는 진법 교육도 시켜놨다면… 그럴 경우에는 좀 곤란한데… 어쩐다…? 그럴 경우에는 ‘시간 끌어서 원판 유인하기’는 포기하고 바로 내가 나서는 수밖에 없을… 아, 다행이다. 론이 결국 동굴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래, 아무리 놈이라도… 어…? 그게 아닌…가?

론이 전진을 멈춘 것은 함정을 예상한 조심성이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적’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론과 정면 대결을 하지 말라고 했건만 그래도 기어이… 그것도 단신으로 걸어 나오고 있는 저 인간은… 천음마군이었다.

< 이, 이봐, 천음마군! >

나는 다급하게 전음을 날렸지만, 천음마군은 아랑곳없이 론과 그 뒤의 블러디 울프들을 주욱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어~ 당신이 바로 이 무식한 부대의 보스인가?”

“…그렇다. 너는?”

“난, 마군황 직속 어사조의 천음마군! 지금은 임시 8소대의 소대장이지.”

“어사조…? 임시 소대장…? 훗~!”

론은 가소롭다는 듯 웃었지만, 그것은 입 뿐… 두 눈은 치밀하게 천음마군을 관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천음마군은 총과 여타 현대 병기들은 모두 동굴 안에 두고 왔는지 한 손에 그의 독문병기 정육점 칼을 들고 있을 뿐이었다.

“너희들의 마군황인가는 대체 어찌 된 거지? 흥겨운 전투를 즐기자고 해 놓고는 계속 꽁무니만 빼지를 않나… 이제는 애송이 하나를 내세워 날 대적케 하겠다니… 이거 정말 불쾌한 걸?”

론은 허리춤에서 대검을 빼어들며 은근한 살기를 피어 올리기 시작했다. 말과 달리 ‘격렬하게’가 아니라 은근히…?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불쾌해 하는 건 아니라는 뜻일까? 아니, 아니… 아무래도 저게 진짜 빡 돌았을 때의 모드 같은데… 이거 역시 내가 나서야 하는 건가?

물론 전에 내가 천음마군을 상대했을 때 너무나 쉽게 제압할 수 있었던 건 그의 무공을 내가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의 천음마군은 결코 약하지 않다. 그렇지만 상대가 너무……

“불쾌…하다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어디서 되 먹지 못한 자가 인공적으로 전투력만 높여서는 감히 천주와 맞상대를 하려 들어?”

천음마군의 으르렁거리듯 외치는 말에 론의 살기가 주춤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순간적이었고, 그 직후 론의 살기는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치솟기 시작했다.

“인공적인 전투력! 그 인공적인 게 얼마나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지 알고서나 함부로 지껄이는 거냐?”

“내가… 알게 뭐냐! 반칙은 반칙!”

반칙이란 말과 함께 천음마군의 신형이 눈부신 속도로 론을 향해 쏘아졌다. 나도 전에 한 번 겪어 본 적이 있었던 천음마군의 강력한 검광이 일직선으로 론의 목을 노리고 날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천음마군의 앞을 엄청난 무언가가 가로막는 것 같았다. 바람의, 폭풍의 벽…? 하여간 정체불명의 압도적인 장벽이 펼쳐지며 천음마군의 칼이 허무하게 옆으로 튕겨 나갔다. 더구나 그 위세에 밀린 천음마군은 연속기를 펼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칼과 함께 옆으로 신형을 날려 간신히 몸을 가눌 수 있었을 뿐이었다.

거리가 있고 어두워서 나도 확실히 본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론은 무공의 어떤 초식을 펼친 게 아니고 대검을 든 팔을 단순한 괘도로 휘둘러 막았을 뿐인… 그런 거… 같지? 이 어둠 속에서 천음마군 정도의 고수가 펼친 공격을 너무나 간단히 꿰뚫는 반사신경은… 그렇다치자. 그러나 팔이 휘둘러지며 발생한 풍압과 살기로 천음마군의 전진 방향을 바꿀 정도라는 건… 이건 내 예상조차 뛰어넘는 수준…!

그동안 계속 나와 동급의 전투력일 거라고 했지만 그건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 한 말일 뿐, 실제로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나도 모르게 정글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원판 유인작전이고 나발이고 당장 달려 내려가 저 괴물과 한 판 뜨고 싶다는 충동이 너무나 강렬했다. 그러나 난 결국 그러지 못하고 꾸욱 눌러 참을 수밖에 없었다. 먼저 싸움을 건 당사자, 천음마군이 조금도 물러설 마음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공짜로 얻은 힘치고는… 제법인 것 같군.”

천음마군은 여전히 빈정대는 말투로 론을 자극하며 칼을 쥔 자신의 팔과 어깨를 천천히 돌려보고 있었다. 말과는 달리 첫 격돌에서 상대의 비정상적인 강함을 실감하고 긴장하여 새삼 자신의 힘과 저울질해 보고 있는 듯…!

그래… 천음마군. 상대는 분명 강하지만 따로 무공을 익히지는 않은 자야. 이번에는 좀더 신중하게 자신의 무공 기법, 테크닉 위주로 나간다면 조금 전처럼 간단하게 막히지는…

웃! 저 인간, 또!

나는 천음마군, 아니 야후장로의 기질을 잠시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천음마군

은 더욱 일체의 잔재주 없이 온 힘을 모아 론에게 달려들었다. 언뜻 단순하고 무모한 듯 보이는 그 공격에 론이 비로소 신중한 방어 태세를 갖추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쩡-! 쩌엉-! 쩡!

연속해서 강렬한 타격음이 터져 나왔다. 일격 하나하나에 방어고 나발이고 무조건 상대를 분쇄해 버리겠다는 천음마군의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은 상대가 너무 나빴다. 론은 그 거구를 거의 움직이지도 않은 상태에서 간단히 천음마군의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쳇…! 왠지 나도 분한 마음이 드는 걸…? 론이 지금까지 한 말로 보아 생체강화 과정도 그리 간단한 건 아닌 모양이지만, 그래도… 스스로의 노력과 땀으로 강해진 천음마군의 일격이 저렇게 무력하게…

으음… 근데… 어째서지…? 천음마군은 어떻게 아직도 저렇게 조금도 기죽지 않은 표정일 수가 있는 거지?

아…! 그러고 보니 칼의 격돌 소리가……
까각!
내가 뒤늦게 깨닫는 순간, 론의 대검 중간쯤이 깨져 나갔다. 일순 굳어지는 론의 표정과 회심의 미소가 떠오른 천음마군의 얼굴! 그러나……
…이런, 이런. 천음마군, 저 양반…! 이걸 노린 게 아니었단 말인가? 적의 무기를 깨 절호의 기회를 잡아 놓고는 오히려 재빨리 물러나는 건 또 뭐야?
물론 무기가 손상되었다고 간단히 당할 론도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천음마군은 그걸 계산해서 물러난 건 아닌 것 같았다. 천음마군은 길지도 않은 사이 이마를 타고 흐르기 시작한 땀을 손목으로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칼은 몸처럼 강화시키지 못한 모양이지? 한 번 기회를 줄 테니 다시 무기를 잡아.”

천음마군의 말에 론의 입이 천천히 좌우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론의 굵은 입술 사이로 하얀 이빨과 붉은 잇몸이 드러나며 크크큭 만족스런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이런 놈을 만나는군, 그래.”

론은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고, 그러자 블러디 울프 중의 한 명이 자신의 대검을 그 손을 향해 던졌다. 건네 준 다기 보다 마치 찔려 죽으라고 던진 것이라 오해될 정도로 빠르게 날아오는 대검을 돌아보지도 않고 잡아챘다.

“좋아, 애송이! 나도 너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지. 도망쳐라, 지금 당장!”

“웃기는 소리!”

이번에는 천음마군이 발끈 했고, 다음 순간 론의 거구가 거짓말처럼 빠르게 천음마군을 향해 육박해 갔다. 나의 공공보법과 맞먹을 정도의 순간적인 이동 스피드에 이어 지금의 거리에서는 나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초고속의 검광이 천음마군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카각! 칵! 칵!
조금 전과는 약간 다른 파찰음이다. 천음마군도 이번에는 정면으로 막지 않고 론의 공격을 최대한 흘려내고 있다는 의미! 아무리 힘의 격차가 크다해도 천음마군이 저대로 계속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면 역전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으~ 아닌…가? 막연히 기대를 품기에는 천음마군의 기세가 너무 약해져 있다. 나름대로 크로스 카운터를 노리는 눈치인 것 같기도 하지만… 론은 아직도 모든 힘을 다하고 있지 않는 게 분명하고, 그러면서도 방심의 기색도 없다. 제, 젠장…! 힘내라! 힘내, 천음마군! 당신의 저력을 보여 달라구!
나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천음마군의 신형은 점차 뒤로 밀려나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천음마군은 이를 악물고 보법을 방향을 바꾸었다. 내력의 흐름은 물론이고 근육에 주어지던 힘까지 억지로 역행하는 움직임이 너무나 확연해 끼익-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기혈의 막힘과 힘줄이 가닥가닥 끊기는 고통과 맞바꿔 천음마군이 손에 넣은 건 당연히 반격의 찬스였다. 순간적으로 사정권에서 벗어난 천음마군의 신형을 쫓아 론의 대검이 다급하게 괘도를 바꾼 것과 천음마군의 칼이 론의 목줄기를 향해 날아든 것은 거의 동시! 나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 터진 건 그 다음이었다.

“크윽!”

짧은 비명이 터져 나온 천음마군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스쳐갔고, 이어 그의 상체가 격렬하게 비틀리며 선혈을 뿜어냈다. 비틀, 주춤, 뒷걸음질치는 천음마군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공연장에서 대교를 노렸었던 NR-2 방식의 비검…? 론이 그걸 쐈다…? 론, 너 이 새끼이이!

“으아아아아~!”

분노에 찬 괴성을 터트린 건 나보다 론이 먼저였다. 론은 자신이 쥐고 있던 비검의 손잡이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내가 당장 튀어 나가려던 행동을 멈춘 것은 론이 너무나 비참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자신의 부하들 쪽으로 몸을 돌렸기 때문이었다. 론은 아까 자신에게 칼을 빌려주었던 부하에게 달려가 거칠게 그의 멱살을 잡아들어 올렸다.

“너어~ 저렇게 치졸한 칼은 가지고 다니지 말랬지?”

“주, 중령님. 그, 그건 정규 장비……”

“닥ㅤㅊㅕㅅ!”

론의 어마어마한 주먹이 말대꾸를 하던 부하의 복부를 올려쳤고, 상대의 몸은 기역자로 꺾임과 동시에 허공을 날았다. 언뜻 보기에도 몸무게 80킬로는 나갈 건장한 사내의 몸이 몇 미터를 날아간 끝에야 퍼퍽- 둔탱한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널부러졌다. 아무리 블러디 울프의 강화육체라 하더라도 다시 일어서지는 못할 것 같았다. 론은 그런 부하에게는 끝까지 시선을 주지도 않고 즉시 천음마군을 향해 돌아섰다. 천음마군은 한 손으로 대검의 날이 박힌 가슴을 부여잡고 있으면서도 굳건히 버티고 서 있었다.

“미안하다! 생각 없이 아무 칼이나 받아 쓴 내 잘못이다. 오늘은… 네가 이겼다, 애송이!”

론의 사과와 항복 선언에 천음마군이 비로소 입가를 올려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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