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48-1화 : 무정한 정글도에 꽃잎은 떨어지고.(1)

랜덤 이미지

극악서생 3부 – 48-1화 : 무정한 정글도에 꽃잎은 떨어지고.(1)


5-10. 무정한 정글도에 꽃잎은 떨어지고.(1)

불과 11명의 전력으로 날 궁지에 몰아 넣은 바도 있었던 블러디 울프. 그 블러디 울프들의 수백 명 러시에 지휘관은 빅 고램 론……!

나는 그런 압도적인 전력차를 지하무림의 지원사격으로 극복하며 시간을 끌면… 초조해진 원판이 나타나리라고 생각했다. 처음 대교를 납치(?)해 올 때의 생각처럼 내가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하던가 여하간의 형태로든 블러디 울프를 제압해 버릴 경우에는 원판이 그냥 가버릴 우려가 있고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죽은 척을 한다던가 해서 원판을 유인하는 건 그리 내키지 않을뿐더러 상황 조성도 마땅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지연 작전의 핵심은 일단 적절한 ‘균형감’이었다.

어느 쪽도 압도적으로 우세하지 못하지만 우리 쪽이 약간 밀리는 정도에서 시간을 끄는… 이건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그리고 만약 그 균형이 깨질 조짐이 보이고 그 때까지도 원판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때는 결국 다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원판은 다음으로 미루고 당장의 블러디 울프들만 제압하는 것으로 상황 종료. 아니면 지하무림을 완전히 믿고 나는 단독으로 원판을 치러 가기. 이 두 가지 패턴 중의 하나를 말이다.

으음… 그런데 난 지금의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늘의 블러디 울프는 알고 보니 당나라 부대인 것 같고 그래서 지하무림의 현재 전력으로도 그럭저럭 막아내고 있으며 이제는 지들이 알아서 자중지란까지 일으키며 시간을 끌어 주고 있다.

모든 상황이 내 기대 이상으로 잘 흘러가고 있는데… 그런데 난 왜 이렇게 찜찜하고 뭔가 거슬리는 걸까…? 이렇게 더 시간을 끌어봤자 원판이 끝내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 아니면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도 원판의 작전이고 내가 뒤통수를 맞을 뭔가가 있는데 놓치고 있다는 위기감……?

나는 지하무림의 선전을 기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이상으로 현재의 전황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쾌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을 다각도로 생각해 봤지만 좀처럼 이거다 싶은 걸 잡을 수가 없었다.

아… 내가 딴 생각하고 있는 사이… 블러디 울프 진영 자체적으로 벌이던 케이시 대위와 고이즈미 소령의 배틀이 끝난 건가? 결과는… 케이시 대위의 승리…?

케이시 대위가 땀과 피에 더럽혀진 몸으로 숨을 몰아 쉬고 있는 걸 보니 상당히 치열한 접전이었던 모양인데… 근데 그 접전을 펼친 상대, 고이즈미 소령은 어딨는 거야?

뭐…야? 튄 거야? 싸우다 말고?

난 딴 생각하느라 못 봤지만, 케이시 대위의 어이없어하는 표정과 태도로 보아 전혀 그럴 기색을 보이지 않다가 얍삽하게 튄 모양이었다.

“…대결, 아니 징계를 완료하지 못했습니다. 즉시 추적하여……”

케이시 대위의 보고에 론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놈이 계속 날 의식하지 않았다면 귀관도 그렇게 쉽게 놈을 몰아붙이지는 못했을 거야.”

“그건… 중령님이 없는 장소에서는 제가 진다는 뜻입니까?”

“아니, 평소라면 그럴 리가 없지. 만약 마스터가 소령에게 귀관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기라도 한다면 승부를 점치기 어려워질지도 모르겠지만 말야.”

“아아- 그러고 보니, 언젠가 도홍 대령님이 그를 평가할 때… ‘위대한 존재를 위해서, 같은 최면이 걸리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을 걸 싸움조차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음… 그렇다면 왜 추적을 막으셨습니까?”

“흐흐흐- 재미…없잖아. 귀관은 눈앞의 군침 도는 상대들을 뒤로하고 그 딴 원숭이 사냥을 하고 싶은 건가?”

“하긴……”

“도홍 대령에게 연락해. 작전은 일시 소강상태. 진유준 측은 복잡한 구조의 동굴을 은신처로 선택해 수성전 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완전 제압에는 좀더 시간이 걸릴 듯! 그리고… 탈영병 한 명 발생.”

“…정말 그렇게 보고해도 되겠습니까? 고이즈미 소령은 소령대로 마스터께 직접 이 쪽의 상황을 보고할 겁니다.”

“상관없어. 해석은 그 쪽이 알아서 하겠지.”

“…알겠습니다.”

케이시 대위는 통신병인 듯 보이는 블러디 울프를 손짓해 부르더니 시키는 대로 무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사이 론은 뒷머리를 극적이며 다른 블러디 울프들을 돌아보았다.

“흥이 깨져 버렸군. 어디 다른 대타 없나?”

론의 무책임하고 제멋대로인 태도에 또 어떤 자가 나설까 싶었지만… 있었다, 나서는 자가. 게다가 이제 보니 매우 낯익은 얼굴의 흑인 남자였다.

“…6중대 대장, ‘콜린’ 대위입니다.”

역시… 원판의 아파트에서 내게 일장을 맞고 중상을 입었었던 콜린 대위다.

“흐음- 귀관은 진유준 하사와의 대전 경험이 있다지?”

“예, 중령님. 그때 당한 저와 부하들은 본사의 의료 팀에 의해 대부분 부상에서 회복되었지만, 두 명은 끝내 재기 불능으로 판명, 은퇴 당했습니다.”

“그… 원한인가?”

“군인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이미 저희들은 그의 상대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썩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콜린은 씁쓸한 표정과 함께 동굴 입구 쪽에 서 있는 내 수하들, 승룡대주와 전황마군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역시 부하들은 부하들끼리 놀아야죠.”

“후후. 패기는 부족한 것 같지만 나름대로 괜찮군. 좋아. 이번엔 자네 차례야!”

“감사합니다, 중령님!”

론 말대로 패기는 부족한 듯 싶었지만 그만큼 안정적인 분위기의 콜린 대위가 앞으로 나서자 그의 뒤로 역시 낯익은 6중대 병력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일일이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몇 명의 얼굴에 난 칼자국은 아무래도 얼마 전 내가 원판의 아파트에서 그려줬던 거지 싶었다.

이제야 제대로 지하무림 VS 블러디 울프의 2라운드가 시작되는 건가? 부상당한 천음마군과 그를 치료 중인 천의마군을 제외하면, 내가 동굴에 남게 한 소대장들은 승룡대주와 전황마군, 그리고 다른 두 명의 마군들… 모두 지하무림에서 손꼽히는 강자들이다.

적어도 네 번의 멋진 대결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얘긴데… 으으음!

나는 다소의 아쉬움을 누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동굴의 수하들 모두에게 전음을 보냈다.

<…모두 계속 예정대로 적들을 상대하고 있어. 나는… 지금부터 이 곳을 떠나 적의 보스를 치러 간다.>

난… 아직 내 찝찝한 기분의 정체를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원판을 기다리고 있기만 하는 건 의미가 없… 아니, 그 무엇보다 지루하다.

수하들의 신나는(?) 배틀을 계속 구경만 하고 있기에는 내 피가 너무 끓는다. 아무리 쌈 구경이 구경계의 지존이라 할지라도, 쌈이란 모름지기 직접 해야 제맛!

< …내가 끝내기 전에 먼저 당하지 말고 버텨! 알겠나? >

< 예, 천주! 모두 살아서 천주의 승전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

나는 은사마군이 대표로 보내 온 대답을 들으며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단숨에 소리도 없이 블러디 울프들의 머리 위 밤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는 나의 귓가에 케이시 대위의 음성이 들려왔다.

“중령님! 도홍 대령님이 직접 오시겠다고 합니다.”

…뭐?

조금 당황해서 하마터면 경공이 흐트러질 뻔했다. 다행히 별 문제없이 블러디 울프들의 포위망 바깥의 나무 위에 안착하긴 했지만, 예정과 달리 잠시 경공을 멈추고 케이시 대위와 론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도홍 대령이? 그의 부대와 함께 말인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작전에서 대령님의 부대는 마스터 호위를 맡고 있는데 설마 그들까지 함께 오겠습니까.”

“…훗! 모르지. 마스터를 호위하는 건 도홍 대령의 부대뿐이 아니니까 말야. 마스터를 노리는 자가 누구건… 호위는 그들, ‘아주 특별한 늑대’들만으로도 충분할 거야. 나 역시 그 자들과 싸우는 건 내키지 않을 정도니까 말야.”

아주… 특별한 늑대? 원판의 곁에 론이 꺼릴 정도의 놈들이 또 있다는 건가…? 게다가 도홍…! 그 자가 오고 있다고? 어쩌지…? 그가 합세해도 지하무림이 지금까지처럼 버틸 수 있을까…? 난 지하무림이 무너지고 대교까지 위험해지기 전에 특별한 늑대들을 깨고 원판을 잡을 수 있을까?

돌발 상황과 그에 따른 복잡한 계산이 머리 속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행동방침을 결정하고 다시 경공을 발동하기까지 소요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다시 어두운 숲을 가로질러 달리며 몽몽의 하위체를 꺼내 들었다.

“몽몽-! 들리냐? 원판의 위치는?”

[ …마지막 확인되었던 11시 방향 2.7KM 정도 후방으로 추정됩니다. ]

역시 원판 놈은 나와 지하무림이 무력화된 걸 확인하기 전에는 다가올 마음이 없는 거다. 이제부터는 시간과 타이밍 싸움! 나와 도홍, 둘 중 누가 먼저 상대 진영을 깨고 목표물을 차지하느냐!

나는 몽몽에 이어 자룡대주에게도 무선을 보냈다.

“자룡대주! 들리나?”

“예, 천주!”

“잠시 후, 후위에서 적의 지원 병력들, 혹은 단독으로 나타나는 적이 있을 거다. 그를 그냥 통과시켜!”

“후위…입니까? 조금 전 전방에서 한 명이 단독으로 저희 진영에 나타나 현재 교전 중입니다.”

뭐…? 아, 탈영병(?) 고이즈미 소령!

“그 놈도 그냥 통과 시… 아, 아니. 벌써 교전 중이라고?”

“예. 이미 저희 측 몇 명이 당해서 구양대주가 직접 상대하겠다고 나섰는데… 통과시킵니까?”

그 개새! 당하긴 론과 케이시에게 당해 놓고 어따가 화풀이를 하고 있는 거야? 썅~! 내가 지금 아무리 바빠도……

“명령 취소! 어디야, 그 놈!”

자룡대주가 알려주는 지점은 다행히 내가 가야 할 방향에서 그리 많이 벗어나지는 않았다. 나는 경공에 좀 더 박차를 가하며 정신없이 달려갔고, 오래지 않아 구양대주가 몇 명의 수하들을 이끌고 고이즈미 소령과 대치하고 있는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이즈미 소령은 론의 앞에 있을 때와는 달리 의기양양한 태도로 칼을 휘두르고 있었고, 벌써 몇 명의 말단(으로 추정되는) 지하무림 사람들의 시신이 주위에 쓰러져 있었다.

“이런- 고이즈미 같은 새끼!”

최대의 욕을 퍼부으려 했는데 뭔 소리가 나온 거야? 고이즈미더러 고이즈미 같은…? 에이 몰라!

“모두 비켜!”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구양대주와 수하들은 내가 오는 걸 안 순간에 이미 물러서고 있었기에 나는 주저 없이 정글도를 휘둘렀다. 크와아아앙~! 대륙을 뒤흔드는 대호의 포효와 같은 파공성이 울려 퍼지며 검기가 폭풍처럼 고이즈미 소령을 덮쳐갔다. 일순 안색이 변한 고이즈미 소령이 다급하게 몸을 날렸지만 백호참격의 파장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하고 어색한 몸짓으로 땅바닥을 뒹굴었다. 놈이 간신히 몸을 가누고 일어서려는 순간, 나는 놈의 바로 코앞에 도착해 있었다.

“생사금마… 아니, 그건 아까워!”

나는 정글도의 끝으로 놈의 가슴 혈을 찍어 다시 뒤로 자빠트렸다.

“만만한 사람한테만 짖는 개, 된장 바르기!”

그런 초식이 어딨겠냐만, 하여간 잠시 내키는 대로 놈을 전투화 발로 밟다가 조금 열 받은 게 가신다 싶었을 때 물러나며 구양대주를 불렀다.

“구양대주!”

“예, 천주!”

“난 지금 좀 바빠서……”

나는 얼결에 날 따라 손을 든 구양대주의 손에 짝-하고 손바닥을 친 후 말했다.

“바톤 터치! 된장 마저 발러! 수고!”

난 즉시 자리를 떠나, 다시 본래의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가는 도중 정말 맞아 죽는 개소리 같은 비명이 들려와서 슬쩍 돌아보니 구양대주를 비롯한 수많은 지하무림 식구들이 고이즈미 소령을 에워싸고 뭔가… 매우 아스트랄한 보복을 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놈이 우리 식구들을 해치지만 않았어도 조금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알게 뭐냐. 강적을 피해 도망쳤으면 얌전히 지네 천황… 아니, 원판에게 가서 꼰지르기나 할 것이지, 감히 우리 구역에서 깽판을 쳤으니 저런 말로도 당연하지.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