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49-2화 : 그녀들의 사랑 방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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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3부 – 49-2화 : 그녀들의 사랑 방식.(2)


“원판을 ‘구해달라’고? 이거 분명히 ‘도와 달라’는 말보다는 강도가 세지? 그리고 굳이 영혼이라고 한다는 건… 에… 그건 아직 속뜻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 여자 대체 뭐야?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를 구해달라는 메시지는 그렇다 쳐도, 그걸 전달하는 방식이 너무 모순적인 거 아냐?”

나는 이성이 약간 돌아오자마자 란의 어깨를 잡아 그녀를 밀어냈다. 남자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이런 미녀의 키스라면 헤럴레-할 거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다.

“뭐…요, 이건. 뭐 꼭 이런 식으로……”

퉁명스럽게 말하며 눈살을 찌푸려 보였지만, 란은 오히려 살짝 웃으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후후~ 보험 하나 더 드는 셈 친 거였어요.”

“보…험?”

“그래요. 하지만 그 의미를 포함해서 오늘은 더 이상 그 어떤 대화도 어려울 거 같아요. 다만……”

란은 문득 낮은 한숨을 내쉬더니 더 사뿐사뿐 뒤로 물러나며 환하게 웃었다.

“마스터를 위한 일을 한 가지 더 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것만은 말씀드리고 싶네요. 전 비록 마스터께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아닌… 심지어 세 번째조차 되지 못할지 몰라도… 말예요.”

이 여자… 꽤나 우울한 얘기를 잘도 기쁘게 웃으며 하는 군.

“당신 얘기,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난 그런 사고 방식은 별로 맘에 안 들어. 사랑은 본래 이기적인 것, 정말 좋아한다면 어떻게든 차지해야 하는 거 아뇨? 첫 번째 자리 말이요.”

“후후.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전 마스터께 절 사랑하는 기쁨을 드리지 못해도 상관없고 저만 그 기쁨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어요. 제 사랑도… 이미 충분히 이기적이죠.”

응? 그건 또 뭔 이론이 그래?

“그… 뭐, 댁이 어떻게든 만족한다면 제3자가 더 뭐랄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충고는 감사해요. 기회가 된다면 저도 한 번 도전해 보겠어요.”

“…뭐, 힘내쇼.”

무심코 응원까지 해 주었다. 그런 나에게 란은 다시 한 번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나는 이제 정말 돌아갈 생각에 그녀로부터 돌아섰다. 근데 뭐랄까… 좀 묘한 기분이었다. 사실상 일이 시원스럽게 해결된 건 아니고, 오히려 원판을 능가하는 정체와 규모 불명의 적이 등장했다는 것을 알았을 뿐인 밤인데도 불구하고 두려움은 고사하고 불안이나 초조한 정도의 기분도 들지 않는 나 자신이 신기하기도 했다. 나는 아까 맹렬하게 달려왔던 산길을 되짚어 천천히 돌아가다가 문득 그 이유를 깨닫고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래… 오늘은 대교가 기다리고 있구나.


대교는 그 사이 몽몽에게 얼마나 많은 과거의 얘기를 듣고 있었을… 어? 이런.

마음과 달리, 나는 동굴이 다시 보이기도 전에 경공을 멈추어야 했다. 산 바로 아래에서 빅 고램 론과 도홍이 함께 이끄는 블러디 울프 병력들과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사실 마주쳤다기보다는, 내가 그들 머리 위의 나무들 사이를 달려가다가 무심결에 멈추고 그들을 내려다보았을 뿐이지만 말이다. 음… 역시 전형적인 ‘패잔병’들의 퇴각 분위기로군. 지금까지 무패, 무적의 행진만을 거듭해왔던 부대라서 그런지 더욱 처연한 느낌을 주는 것 같…기는 하지만! 저 선두의 지휘관 두 명의 속마음은 별로 그렇지도 않겠지?

내가 이렇게 내려다보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 아무래도 바로 눈치 깐 것 같았다. 론이 또 새삼 타이밍 맞게 입을 여는 걸 보니 말이다.

“도홍 대령님…! 그러니까 결국 오늘 마스터의 호위에 동원된 ‘특별한 늑대’들은 세 명이었다, 이거죠?”

뭐…야? 그럼 그 달밤의 귀신 삼인조가 정말 ‘특별한 늑대’였던 건가?

“…그래. 그런데 귀관은 그 SBW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 아마?”

도홍이 대답하며 반문하자, 론은 쿡- 낮고 짧게 웃었다.

“당연히, 그런 덜떨어진 놈들에게 상부에서 스페셜이란 이름을 붙여 준 것부터가 웃기는 일.”

론의 웃음이 문득 조금 더 길게 이어졌다.

“크큭큭-! 결국 개당 200만 불이 넘는다는 비싼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밖에 못하는 놈들! 누구라도 방심만 하지 않으면 당할 리가 없는 병신들이죠.”

저 인간… 달밤의 귀신들을 높게 평가하는 것도 아니면서 내게는 공연히 특별하니, 자신도 상대하기 싫다느니 헛소리를 들리게 했던 거군. 어쨌거나 ‘방심하지 말라’는 뜻이었다니… 저 인간도 생긴 거 답지 않게 은근히 친절하네.

“…그런 병신들에게만 마스터의 호위를 맡기고 마스터의 곁을 떠난 나나, 전체 전황을 빨리 정리하지 못한 귀관 모두 책임은 면치 못할 거야.”

“…그렇겠죠.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처벌이 또 그 캡슐, 지옥의 가마솥 행이라 할지라도… 그 후에 다시 내게 진유준 부대와의 전투 기회를 준다면야……”

웃…! 저 인간, 지금 말하면서 슬쩍 내 쪽을 돌아 본 거 맞지?

“그런 욕구는 나도 마찬가지…! 곧 누구에게든 다시 기회가 오겠지.”

쯧, 론처럼 노골적으로 돌아보지는 않았어도 도홍 역시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로군. 어쩔 수 없는 전투광 둘은 주거니 받거니 다정한(?) 대화를 내가 들리게 하면서도 걸음은 멈추지 않아서 차츰 내게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내가 그들이 알거나 말거나 뒤에서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 건, 사실 나 역시 오늘 밤 그들과의 직접 전투가 무산된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래… 다음엔 정말 제대로 붙어 보자구, 제군들. 만약 오늘보다 더 강화돼서 온다면… 그건 물론 더 환영!

다소 썰렁한 형태기는 했지만, 블러디 울프들과도 인사를 나눈 후 다시 경공을 재촉해 동굴로 돌아와 보니… 예상대로 모든 지하무림 병력들이 동굴 앞 공터에 모여 있었다. 나는 사실 돌아오면서 갈등했었다. 모두에게 ‘적의 보스는 가짜, 더구나 적의 진짜 보스보다도 무서운 적의 추가 확인. 따라서 우린 앞으로 X됐다.’라는 소리를 해줘야 할까를 말이다. 그러나……

“천주! 무사 귀환과 승전을 경하드립니다!”

구양대주의 대표 인사가 끝남과 동시에 승전한 부대 전원의 엄청난 환호성 소리가 밤하늘을 뒤흔들었다. 아직 승패에 대해서는 정식보고를 받지 못했지만, 블러디 울프들과 일대일 맞짱을 떴을 소대장들도 비교적 무사한 모습으로 구양대주 바로 뒤에서 주먹을 불끈 쥔 채 환호하고 있었다.

그래…! 이런 분위기에서 굳이 썰렁무쌍한 앞일을 알려 줄 필요는 없겠지. 그런 일 같은 건 본래 보스 혼자 고민하는 거고, 이런 분위기는 더욱 살려서 탄력받게 하는 것 또한 전략적으로도 정석! 나는 결국 잠깐의 갈등을 접고 나 역시 모두와 함께 이 분위기를 즐기기로 결정했다. 근데… 그런 내 눈에 새삼 밟히는 저 남자…! 다른 마군들과 함께 나란히 서서 기분 좋게 웃고 있는… 그 심각한 부상에서 깨어난 것도 용하다 싶은데도 기어이 또 부축도 받지 않고 서 있는 천음마군…! 저 인간은… 정말이지 못 말리는 남자다.

“…은사마군.”

“예, 천주.”

“천음마군의 술병 압수해.”

“복명!”

은사마군은 기뻐하며 천음마군의 손에서 냉큼 술병을 빼앗아 버렸다.

“어, 어? 은사마군!”

“천주의 명령이에요! 제가 제발 중상자답지 않은 짓 좀 하지 말랬죠?”

“으~ 천주, 너무 하십니다. 검남춘 한 잔은 전투 후의 제 유일한 낙인데……”

천음마군은 정말로 불만인 듯 울상을 지었지만, 나는 그런 그를 무시한 채 모두를 향해 외쳤다.

“자아- 오늘은 나와 재회한 지하무림의 첫 승전일이다! 오늘밤은 모두 축하주를 마시며 밤을 새자! 단…! 동료들의 만류에도 기어이 까불다가 다친 천음마군만 빼고!”

다시 환호성과 웃음소리가 뒤섞여 터져 나왔다. 은사마군은 천음마군에게 샘통이라는 듯 혀를 낼름 내밀고 있었고, 천음마군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기라도 한 사람처럼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내가 술을 준비하라고 한 건 불과 10분 전…! 그럼에도 벌써 이렇게 많은 병력들을 위한 술이… 아니, 아예 야외라는 걸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술상이 차려진다는 건……

“…천년 전, 천주께서는 지하무림 제패를 완료한 시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죠?”

자룡대주는 순식간에 준비되어 즐비하게 늘어선 술상들 앞에서 말을 이었다.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라고요.”

“내가… 그랬던가?”

“그렇게 전해집니다. 그런데 막상 가셔서는 반주로 독주를 몇 동이나 비우셨다고도 전해지죠. 하여- 미리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어, 그건 좀 과장된 전설 같아. 난 그저 간단히 몇 잔만 했었던 것 같은데……”

“아무려면 어떻겠습니까. 오늘은… 저도 오랜만에 취하고 싶은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그래. 당연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자룡대주는 기쁜 안색으로 날 상좌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자룡대주의 준비성이 날 약간 곤란하게 한 건, 난 본래 승전 기념 파티가 시작되기 전에 석실로 돌아가 대교를 데리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준비가 너무 빨라서 구경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지금이라도 서둘러서 데려오면… 음… 근데 내 생각만 하고 대교를 난데없는 이런 자리에 끌어들이는 건… 그건 대교를 너무 불편하게 하는 거 아닐까? 더구나 대교는 지금 과거의 얘기를 모두 알고 어떤 기분이 되어 있는지 모를 상황…! …그래. 차라리 잘 되었다. 모두와 건배한 후 천천히 가자. 물론 그녀와도 과거를 회상하며 술 한잔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면… 그땐 정말 최고의 밤이 되는 거지만… …쯧! 진유준, 너무 욕심부리지 말……

[주인님!]

“응? 어, 몽몽?”

[예, 주인님! 조금 전 대교님께 대부분의 과거 정보를 마쳤습니다.]

“그, 그래? 대교의 반응은… 어때?”

[아직도 본인의 실제 기억이라고 인식하시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아, 아무래도 직접 확인하시는 편이 좋을 듯 합니다. 방금 은사마군이 석실로 돌아왔고 대교님은 그녀의 말에 거부감 없이 동행을 허락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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