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3부 – 5-1화 : 골든 차일드의 가치.(1)
1-5. 골든 차일드의 가치.(1)
우리 동네 모텔 복도에서 나는… 소령이와 미령이 두 자매 세트(?)와의 재회에 대한 반가움보다도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한 의혹이 더 커져버린 상태로 멍하니 소령이와 미령이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 참~! 게임 좀 그만 하래두?”
미령이는 결국 약간 신경질적으로 소령이 머리에서 헤드폰을 벗겨 버렸고, 그제야 소령이는 게임기를 내려놓으며 미령이를 돌아보았다.
“그 여자, 무슨 생각인지 골든 차일드는 안 보내고 다른 사람을……”
“아, 금동이?”
미령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령이가 반색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후다닥 내 쪽으로 달려왔다.
“금동이! 금동이~! 금동아아~!”
맨발로 복도까지 나온 소령이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내 주변을 살피고는 이어 내 옆, 복도의 양쪽까지 기웃거렸다. 그래도 결국 금동이가 보이지 않자 눈살을 찌푸리며 날 올려다보았다.
“금동이는?”
“어, 그게 아직은……”
내가 말을 얼버무리자 대뜸 소령이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잔뜩 불만 어린 눈빛으로 날 노려보던 소령이는 문득 뭔가를 깨달았는지 비로소 고개를 갸웃했다.
“당신, 누구?”
녀석의 한 발 느린 반응을 접하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얼굴을 가까이서 잘 보니 원판 소령이와는 뭔가 약간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하는 짓은 소령이 그대로랄까……?
“난… 저기, 에~ 일단 얘기 좀 하자.”
내가 그렇게 말하며 방 안으로 들어가려는 몸짓을 보였을 때에야 뚱한 얼굴로 물러서는 소령이. 그런 소령이에 비해 미령이는 훨씬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의 그 들고양이 같은 눈을 반짝이며 날 살피고 있었다.
일단 미령이의 안내대로 창가 쪽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아서 다시 찬찬히 보니 미령이도 소령이처럼 용모는 어딘가 원판 미령이와 조금 다른 느낌이 들긴 했다. 그래도 이 정도나 닮은 애들이 금동이와 연관되어서 등장했다는 건 역시…… 하연이의 화신 하은이는… 비교적 정상적인(?) 환생으로 치고, 금동이야 지가 알아서 장수했으니 나와 다시 만난 질긴 인연만을 쬐금 특별한 경우로 치자. 금동이와 천이단 후보이자 현 시대 비밀결사 G.M의 인연도 금동이가 본래 천우신과 절친한 사이였으니 역시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런데- 이젠 거기에 소령이와 미령이까지 환생했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이 옆방에는 혹시 천우신이 사영 아저씨, 야후 장로, 지총관 등과 고스톱이라도 치고 있는 거 아닐까?
[ 현 위치의 양쪽과 맞은 편의 방에까지 두 아가씨의 수하인 것으로 추정되는 병력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
< 광은 누가 팔… 아니, 하여간 또 누구 알만한 인물 있냐? >
[ 현재까지의 스캔 결과로는 환생자로 추정되는 인물은 없습니다. ]
< 그래? >
사실 타임씨의 의도가 마음에 걸려서 그렇지 그 사람들과 다시 만나게 된다 해도 그 자체는 좋다. 그러나 그런 반가운 사람들 말고, 만약의 경우 짜증나는 스트레스 제조기 사갈새끼까지 나타난다면… 그건 그렇다 치기 전에 타임씨부터 치고 볼 일인데… 젠장 오늘따라 웬 친다는 표현이 이렇게 겹쳐? 어랏? 겹쳐도 치는 거 일종인가…? …에구, 정신 차리자 진유준! 자꾸 딴 생각 잇기로 현실 도피하면 안 돼! 환생러시(?)가 이미 대세라면 그에 맞춰 대응해야지 더 이상 혼란스러워만 하는 건 곤란하다구!
“장소가 좋지 못해 손님 접대가 미흡한 점은 이해해주세요.”
쯧…! 말은 그렇게 하지만 테이블에는 정식 다기 세트가 갖추어져 있었고, 미령이는 손님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듯 알맞게 끓고 있는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향기로운 차를 우려내기 시작한다. 이건 내가 집에서 나올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건데……
“사실… 우린 당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요.”
정면으로 마주 앉은 미령이가 그렇게 말했고, 난 설마…하면서도 녀석의 다음 말에 주목했다.
“국적 대한민국. 19##년 7월 18일생. 혈액형 A. 맞죠, 진유준씨?”
일단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쟤 입으로 ~씨 소리를 들으니 기분 참……
“19##년 **초등학교 입학. 19##년 졸업……”
바톤을 이어받듯 입을 연 소령이 녀석은 내 모든 프로필, 군대에서 제대한 날까지 줄줄이 꿰기 시작했고 부모님과 형제관계 심지어 조카들 생일과 이름까지… 음, 하지만 역시 정작 중요한 나와 자신들의 인연까지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게 당연한 거라는 건 알지만 어쩐지 섭섭하기도 했다.
“됐어, 언니. 그쯤 해 둬.”
그냥 두면 우리 가게 단골 손님들 이름까지 줄줄이 말할 것 같은 기세의 소령이를 말린 미령이가 새액-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실례인 줄 알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그레이스 정과 관련된 사항은 뭐든 조사해 두었지요.”
“…빠졌어. 중요한 것이.”
아, 무심코 괜한 말을 했다.
“에? 그럴 리가?”
내 말에 소령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는 눈치였지만, 미령이는 그때까지의 미소를 지워버림과 동시에 싸늘한 표정으로 돌변해 버렸다. 거기다가 매우 숙련된 동작으로 테이블 밑에 숨기고 있던 권총, 몽몽의 표현대로라면 일반 규격 외의 소형 총기를 빼들고 있었다.
“…미안. 그냥 한 말이야. 빠트린 거 별로 없어.”
나는 두 손을 들고 항복 포즈를 취하며 그렇게 말했지만 미령이는 더욱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과연…! 우리는 당신에 대해 뭔가 빠트린 거 같네요. 설사 그레이스 정에게 우리들에 대해 미리 들었다고 해도, 당신이 조사대로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신상이 낱낱이 드러나는 데도, 그리고 총구 앞에서도 이렇게 태연할 수는 없죠.”
“아냐, 나 실은 겁먹었어. 난 표정 변화가 좀 늦은 타입이거든.”
미령이는 결국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총구를 거두었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뭐죠?”
내 정체나 마나, 오늘 하루만에 벌써 두 번씩이나 여자애들에게 이게 무슨 꼴인지… 설마 총 겨누며 반응 살피기가 요즘 여자애들 유행은 아니겠지?
“역시… DP의 사람인 건가요?”
“DP? 그건 또 뭐야?”
“아니라는 건가요?”
“난 그냥… 진유준. 너희가 조사한 그대로의 사람이야. DP 같은 건 몰라.”
“15년 만에 만났을 뿐인 친척 오빠가 이곳에 온 것은 그레이스 정에게 순진하게 이용당하는 상황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DP의 공주님도 만만치 않군요.”
DP의 공주님…? 제기- 하은이 녀석, 쫓기는 처지에 잘도 여유를 부린다 싶더니만 고 녀석도 혼자가 아니라 어떤 세력을 등에 업고 있다는 건가? 아무튼, 그보다……
“어이~ 멋대로 오해하지 말고, 우선 DP가 뭔지 좀 말해 줄래?”
“계속 모른 체 할……”
“Delight Present는 14년 전 설립된 거대 다국적 기업으로 현재 주력 사업은……”
“언니!”
소령이는 샐쭉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고 미령이는 다소 맥이 빠진 표정으로 잠시 사이를 둔 후에야 말을 이었다.
“그… 어쨌든! 우리도 DP와는 어떠한 문제도 생기지 않길 바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에요. 하지만 골든 차일드를 되찾기 위해서라면 결코 물러설 수 없어요.”
“나도 어쨌든!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르겠으니, 우선 정리 좀 해야겠다.”
나는 쯧, 쓴 입맛을 다신 다음 말을 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그 DP인지 하는 기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하은이가 DP라는 대기업의 공주님이라는 건 대체 무슨 뜻이지?”
“…그레이스 정은 DP의 오너가 공인한 ‘유일한 가족’이죠.”
“가…족? 그 애가 거기에 양녀로 들어가기라도 했다는 건가?”
“당신이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면, 더 이상 얘기해 줄 수 없어요.”
젠장! 하은이 녀석, 대체 뭐야? 과거의 진하연처럼 현 시대에서도 어린 나이에 벌써 거대한 다국적 기업을 장악하고 있다는 거야? 가족이란 건 대체……
“그건… 일단 그렇다 치고, 그럼 너희들은 왜 금동이를 그토록 되찾으려 하는 거지? 그렇게 꺼려하는 곳과 맞서면서까지 말이야.”
“흥~! 뻔뻔스럽군요. 골든 차일드는 본래 우리가 주인이에요.”
“맞아! 금동이는 내 친구야! 돌려줘!”
…미령아, 니 언니 소령이 괜히 노려보지 마라. 내게는 너의 주장보다 소령이의 절절한(?) 외침이 더 와닿으니까.
“골든 차일드는… 우리에게 단순한 애완동물이나 마스코트 같은 게 아니에요. 훨씬 더 중요한… 우리들 정통성의 상징이라구요!”
이어진 미령이의 말은 좀 뜻밖이었다. 천이단 정통성의 상징이라… 내가 떠난 후 금동이는 천이단에서 그 정도의 위치가 되었던 건가?
“그게, 내가 오늘 온 건 사실 하은이나 너희들 둘 다 금동이의 소유권을 주장할 자격이 없다는 걸 말하려고 한 거였는데… 어째 상황이 좀……”
“뭐라고요?”
“어쨌든, 금동이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야. 자기가 있을 곳을 선택할 권리는 녀석 자신에게 있는 거지.”
“그야, 하지만 골든 차일드는 이미 100년이 넘는 세월을……”
——————————
미령이의 얼굴에 아차,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아, 아무튼 골든 차일드는 오랜 세월을 우리와 함께 해왔어요. 우연히 만난 그레이스 정과 잠시 함께 있는 건 단지 일시적인 변덕일 뿐이라고요!”
흐음— 사실 나야 ‘에게~ 겨우 100년밖에 몰라?’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그 정도도 기밀 사항이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내가 알고 있는 걸 어느 정도는 밝혀줘야 대화가 통하려나?
“금동이가 보기와 달리 100년이 넘게 산 장수 원숭이… 전설의 금모신원이란 건 알아.”
“뭐, 뭐예요?”
미령이는 새삼 내 표정을 살피며 더욱 의혹에 찬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 주의하십시오, 주인님. 다른 방의 병력들 중 세 명이 현 위치로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
몽몽의 경고가 있은 후, 불과 몇 초가 지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방안으로 들어오는 남자들의 표정이나 몸놀림에서부터 ‘잘 훈련된 안정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몽몽에 의하면 총기류를 지니지는 않은 대신 암기 같은 걸 숨기고 있는 모양이었고, 특히 가운데의 긴 장발 남자는 현 시대로 돌아온 후 처음으로 보는 상당한 내공의 소유자였다.
“…챈.”
미령이가 쓴웃음을 지으며 부른 것이 장발 남자의 이름인 모양이다.
“…괜찮습니다, 아가씨. 이 남자는 이미 골든 차일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날 돌아본 장발 남자 챈은 작고 가늘게 찢어진 두 눈 사이로 칼날 같은 안광을 번득이고 있었다. 소령이와 미령이는 얼굴마담(?)이었고 이 남자가 숨은 실력자라는 전개랄까…